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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미디어서평

[광주일보] 박석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니>

by 푸른사상 2023. 4. 11.

 

박석준 시인 “자유 의미와 ‘인간적인 삶’ 묻고 싶었죠”

광주 출신 전교조 해직교사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니’ 펴내
역경 속 사람들의 현실 삶 그려
“흔들리는 이에게도 아름다움 있어”

중학교 2학년 때 집안의 파산, 대학교 1학년 당시 남민전 사건에 관련된 형들의 수감, 1983년 형들 사건으로 1983년 안기부에서 각서를 씀, 1989년 전교조 결성 이유로 해직을 당함.

대부분 시인은 시를 쓰게 되는 계기가 있다. 어느 날 문득 시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닌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박석준 시인(65)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시인의 운명을 잠시 생각했다. 그는 시를 쓸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듯 했다.


“남민전 사건으로 형들이 무기형, 15년 형을 받고 수감생활을 했던 까닭에 돈을 벌어야 했어요. 그런 조건들은 자연스럽게 제게 소외와 아픔, 상실, 슬픔, 불안, 절망과 같은 의미를 새겼습니다. 그러다 이런 일들이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요.”

네 번째 시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니’(푸른사상)을 펴낸 박석준 시인. 첫눈에도 다소 병약해 보이지만 강단이 있어 보였다. 내면에 여린 감성이 자리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단단한 옹이 같은 게 느껴졌다.

그는 “꽃나무가 주는 자극보다는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에 더 짙은 마음을 쏟겠다”며 “세상살이, 사람살이에서 섬세하고 신중하게 살아가겠다”며 시집 발간 계기를 말했다.

초록색의 표지와 달리 시집에 담긴 시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아마도 살아온 삶이 시집에 투영돼 있기 때문일지 몰랐다. 대개의 경우 시는 시인이 살아온 만큼의 텍스트를 구현하고 있기 마련이다.


그에 따르면 광주 계림동에서 태어났지만 중학교 2학년 때 집안이 파산했다. 언급한 대로 그가 대학교 1학년 때 형들이 남민전 사건에 관련되면서다. 당시 해남 출신 김남주 시인 등이 구속됐고 많은 이들이 옥고를 치렀다.

“사람은 자유로운 혹은 부족함이 없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데” 라는 생각을 자주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청소년기에 닥친 어려운 조건들은 이후 그의 삶을 지배했다. 허약한 몸과 집안의 파산이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누군가는 수감된 형들에게 영치금을 마련해주어야 했다. 어렵게 임시교사 자리를 얻었지만 안기부는 각서를 쓰지 않으면 교사생활을 할 수 없다고 엄포를 놨다.

“당시 식구들은 여관에서 겨우겨우 살아가는 처지라 그 조건을 수락해야만 했어요. 그 후엔 3년 정도 수업도 감시받았습니다. 저는 어떡해서든 몸은 아프지만 직장을 잡아 집안을 건사해야 했습니다.”

교육 현장에서의 삶도 평탄치 않았다. “단순히 돈을 벌러 간 곳에서 교육현실을 알게 되면서” 교육운동의 길을 선택한다. 평교사협의회, 전교조 결성에 참여했고 해직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럼에도 시인은 “가난이나 결여 혹은 소외로 인해 흔들거리는 사람에게도 ‘살아온 만큼의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난관에 부딪힌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주시한다. “자본주의 한국사회에서 자유의 의미와 인간적인 삶은 어떤 모습인가를 새겨내는 것에 주안점”을 둔 것은 그 때문이다.

“…말소리가 그 사람의 형상을 병실에 그려낸다./ 말소리는 사랑 있는 사람의 형상이다./ 사람의 소리는 사람의 형상을 시간에 그려낸다./ 63살 2020년 2월로 온 나는 삶이 저지른 죄가 있지만,/ 사람의 소리, 시이면 좋겠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표제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니’는 민낯으로 진심으로 살아온 시인의 삶이 응집돼 있다. 남몰래 속으로 삭여온 지난 시절은 아리지만 깊은 여운을 준다. 여리고 순수한 진실한 화자의 모습이 겹쳐진다.

시를 쓰게 된 것은 대학 1학년 때인 1979년 친구의 권유로 전남대 용봉문학회에 가입하면서다. 그에 따르면 길에서 만난 조진태, 이승철 시인 등 시인이 꿈인 청년들을 만나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시를 쓰게 됐는데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다가 1985년 ‘흙’이라는 시 형식의 글을 썼고 수감된 지 9년이 되어도 풀려나지 못하는 형들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와 나의 처지를 생각하다가 ‘일상 1-1’이라는 시 형식의 글을 썼다”고 했다.

그의 문단 데뷔는 지난 2008년 문학마당에 ‘카페, 가난한 비’가 당선되면서다. 이후 자서전 ‘내 시절 속에 살아 있는 사람들’과 시집 ‘거짓 시, 쇼윈도 세상에서’ 등 모두 4권의 문집을 펴냈다.

고(故) 문병란 시인과도 인연이 깊다. 박 시인에 따르면 문 시인과 창작활동을 담은 100여 통의 편지 교류는 문학 인생에 전환점이 됐다.

“선생님이 시를 적어 편지를 보내면 저 또한 답장을 해야 했기에 시를 지을 수밖에 없없습니다. 선생님은 저의 글을 보고 습작시, 초고, 미완작, 수작, 쾌작 등으로 생각을 적어 편지에 보냈습니다. 그 부분에 따라 저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구요.”

한편 조진태 시인은 “애잔하다 싶으면 그의 격정에 놀라고 가냘프다 곰곰이 마주하면 그의 강인한 삶의 의지와 불굴의 응전에 경외하게 된다”고 평한다.

광주일보, "박석준 시인 “자유 의미와 ‘인간적인 삶’ 묻고 싶었죠”", 박성천 기자, 2023.4.10

링크 : http://www.kwangju.co.kr/article.php?aid=1681124700750956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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