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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간행도서

신수옥 시집, <그날의 빨강>

by 푸른사상 2023. 3. 8.

 

분류--문학()

 

그날의 빨강

 

신수옥 지음|푸른사상 시선 172|128×205×9mm|152쪽|12,000원

ISBN 979-11-308-2017-0 03810 | 2023.3.8

 

 

■ 시집 소개

 

눈감은 자들을 위한 구원의 울림

 

신수옥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그날의 빨강』이 <푸른사상 시선 172>로 출간되었다. 상실과 슬픔을 끌어안으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인은 눈감은 자들을 위한 구원의 울림을 전해준다. 탁월하고 섬세한 은유와 감각적인 표현을 통해 삶의 무늬를 담아낸 시편들이 독자들의 마음에 깊은 파동을 일으킨다.

 

 

■ 시인 소개

 

신수옥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화여대에서 화학을 공부하며 정답을 찾는 것에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며 살았다. 문학의 매력에 빠져 2014년 『문학나무』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15년 ‘젊은 시 12인’에 선정되었다. 시집으로 『사라진 요리책』, 산문집으로 『보석을 캐는 시간』 등이 있다.

 

 

■ 목차

 

제1부

봄을 보내는 방식 / 파동의 날개 / 빼앗긴 날개옷 / 날개의 비밀 / 배반의 모과 / 거미줄에 걸리다 / 울음을 접다 / 침목의 침묵 / 숨은그림찾기 / 지워버린 문장 / 그날의 빨강 / 꾀꼬리 찾기 / 녹슨 거미줄 / 마침표 별자리 / 다락방

 

제2부

날개는 주머니 속을 날지 않는다 / 지붕 낮은 집 / 겨울 악보 / 양철 지붕 위의 바다 / 폐가를 찾는 방식 / 낯선 식당 / 물결 위의 마침표 / 어둠의 껍질을 벗기다 / 간이역 / 내일 피는 꽃 / 푸른 달이 떠서 / 겨울을 깨물다 / 라비린토스 / 우주를 들다 / 별이 된 너

 

제3부

백 년 너머 저편 / 숨겨진 지층 / 걸음마, 걸음마 / 완벽주의 건축가 / 꽃의 나이 / 노을에 번지다 / 망막에 감추다 / 죽음의 조도(照度) / 뜨겁게 시리다 / 고분을 발굴하다 / 바람의 어휘 / 밤의 둘레 / 숨소리 / 오후의 속도 / 골무

 

제4부

슬픔이 흐르다 / 봄의 촉감 / 울음의 방향 / 그렇게 어른이 되었네 / 보름달을 끄다 / 네가 만든 우물 / 슬픔의 우화(羽化) / 찢어진 여름 / 레퀴엠 / 인디안 서머 / 얼어야 피는 꽃 / 꽃의 실종 / 당신의 발자국 / 당신이었나요 / 그리움에 닿다

 

작품 해설 : ‘갇힌 자’들을 위한 ‘소리’의 울림-김재홍

 

 

■ '시인의 말' 중에서

 

오르지 못할 나무인 줄 알면서도

오르고 또 올랐다

 

꺾인 가지에 찔린 상처가 아파

울며 잠든 날은

잎사귀 무성한 나무

더 높은 곳에 오르는 꿈을 꾸었다

 

어디쯤 올랐을까

생각하지 않는다

 

욱신대는 발이 향하는 곳

거기가 어디든

쉼 없이 올라갈 것이다

 

 

■ 추천의 글

 

신수옥 시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날개’는 날 수 없는 날개에 대한 체험적 서사가 흐른다. 그러한 은유가 역설적으로 신수옥 시인의 예사롭지 않은 시의 날개가 되고 있다. “빈 새장에 울음을 가두고/거짓말처럼 타협하는 나날”(「날개의 비밀」) 속에 표출된 시적 진술의 행간에는 “아픈 만큼 봄이 멀리 날아”(「봄을 보내는 방식」)가는 시의 화자에 투영된 질긴 날갯짓이 숨겨져 있다. “징검다리 건너다/물속에 떨어진 별을 줍는” 예민한 부리를 가진 새 한 마리가 세상의 “징검돌에 긁힌 어둠이/젖은 허물을 벗는”(「어둠의 껍질을 벗기다」) 노래를 부르며 생애의 홰에 앉아 날개를 치는 것을 보게 된다. 신수옥 시인은 서사와 은유가 어떻게 융합되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시의 문장이 어떻게 드라마가 되고, 세상의 경계에 걸쳐진 이미지가 어떻게 시적 상상력이 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체험과 언어의 진정성이 시의 파장에 짙은 영향을 준다는 것을 그의 촘촘한 문장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이번 시집을 통해 시인의 내밀한 경험이 새로운 형상미로 나타난 것을 목도함으로써 시를 사랑하는 독자들이 신수옥 시의 독창적 세계를 충분히 만끽할 것이다.

― 김윤환(시인, 문학평론가)

 

 

■ 작품 세계

  

이번 시집 『그날의 빨강』에서도 소리에 대한 신수옥의 감각은 전면화되어 나타난다. 가령 그녀에게 ‘다락방’은 허덕이면서도 명문가 족보를 내세우는 아버지에 대한 일종의 반항의 공간이지만, 그것이 “여덟 식구 바글대는 소리가 집 안 구석구석 빈틈없이 채울 때”(「다락방」)라는 소리의 이미지와 대비되면서 날카로운 의미가 형성된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기댈 데라고는 족보밖에 없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명분론적 세계에서 벗어나려는 사춘기 소녀의 현실주의적 갈망은 소리로 인해 더욱 선명해진다.

또 노모와 딸과 함께 간 대중목욕탕에서 늙은 어머니의 ‘처진 뱃가죽’을 두고 “여섯 번을 팽창했다 오므라들어/겹겹 지층을 이루고 있다”고 안타까워하면서 “물소리 사람 소리 뒤섞인 목욕탕/눈물을 쏟아도 들키지 않는 구석에서/나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키며/아이를 끌어안았다”(「숨겨진 지층」)고 말할 때 우리는 시각 정보가 소리로 하여 인간사의 비의에 도달하는 시적 도정을 확인할 수 있다. 신수옥의 이번 시집은 ‘갇힌 자’들을 위해 보내는 예민한 ‘소리’의 울림과 같다.(중략)

신수옥의 이번 시집은 ‘갇힘’이라는 존재론적 인식이 소리와 그 리듬을 통해 표현되는 내부성의 세계를 보여준다. 인간은 공간에 갇혀 있고, 시간에 갇혀 있다. 이것은 외부적 압력이 인간에 가하는 ‘갇힘’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 어떤 규칙 안에 머물러야 한다. 영혼과 육신의 ‘틀’은 완전히 내부적인 어떤 ‘갇힘’을 의미한다. 이것은 인간의 절대적 내부성이다.

― 김재홍(시인·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파동의 날개

 

무엇이 이토록 조여올까요

 

날개가 없어 날지 못해도

괴로워하지 않았어요

 

허우적대며 온 길

오르막과 내리막이 출렁대는

파동이었어요

 

마루의 환희가

느닷없이 골에 쏟아져

눈물 헤치느라

아픈 날들 많았어요

 

살아온 날 어느 부분도

생략할 수 없어요

 

새로 태어난다면

홀가분히 날 수 있을까요

 

제 날개에 갇힌 새가

숱한 매듭에 묶인 채

곡선의 언덕에서

없는 날개를 펄럭이는 오늘

 

골짜기 아래

또 엎어져 울고 있는 내가 보여요

 

 

그날의 빨강

 

한여름 세찬 소나기 맞은 맨몸

 

가시광의 빨강을 빨아들인 꽃이

더욱 선명해졌다

 

9월의 샐비어는

탱고를 추었다

 

스무 살 처녀들의 재잘거림

 

반도네온 연주처럼

몰려왔다 사라졌다

 

빨강은 짙어지고

짙어져서 더욱 외로워지고

 

젊음을 두고 와서

머리는 늘 그쪽을 향했는데

 

돌아갈 날 기다리지 못하고

붉은 저녁노을 속으로

 

사라진 꽃

 

빨강이었다

눈이 저릴 만큼 강렬한

 

 

어둠의 껍질을 벗기다

 

징검다리 건너다

물속에 떨어진 별을 줍는다

보름달 환한 곁에

일렁이는 얼굴 하나

양수 속 슬픔이 빠져나온다

 

물길을 나누는 징검돌

제 몫을 부여안고

발아래 흔들릴 때마다 징검돌에 긁힌

오래된 통증이 날을 세운다

 

물이 모서리를 깎는 세월

부딪혀 찢긴 상처를 핥으며 울었다

 

떠나온 자리를 찾지 못해

녹슬어 빛바랜 별들을

수장하는 새벽

개울가 버들잎의

비릿한 조사

 

징검돌에 긁힌 어둠이

젖은 허물을 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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