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시)
눈 맑은 낙타를 만났다
함진원 지음|푸른사상 시선 170|128×205×7mm|128쪽|12,000원
ISBN 979-11-308-2015-6 03810 | 2023.3.6
■ 시집 소개
항아리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독자와 함께하는 시편들
함진원 시인의 시집 『눈 맑은 낙타를 만났다』가 <푸른사상 시선 170>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자본주의 체제에 종속되어 끊임없는 욕망과 탐욕에 허우적거리는 도시인들의 삶을 직시하고 그 대안으로 두레밥 문화를 제시한다. 항아리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함께 어울리면서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공동체 사회를 소망하는 것이다.
■ 시인 소개
함진원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95년 『무등일보』 신춘문예에 시 「그해 여름의 사투리 調」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인적 드문 숲길은 시작되었네』 『푸성귀 한 잎 집으로 가고 있다』, 연구서로 『김현승 시의 이미지 연구』가 있다. 기린독서문화교육원을 설립하고 기린작은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치유 글쓰기와 책 읽기 독서 모임을 하는 등 책 읽는 사회 만들기 운동을 하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이다.
■ 목차
제1부
증심사에서 / 고인돌 공원 / 목련꽃 피었습니다 / 운다고 옛사랑이 오겠냐마는 / 무위사에서 / 드들강변에서 / 엄마 생각 / 라일락꽃 그늘 아래서 / 비단향꽃무 / 상처 / 오후 한때 / 진순이 / 은혜로움이여 / 비는 내리는데 / 바느질 / 영만 마후라 / 그 겨울
제2부
귀가 없는 어머니 / 워매, 뒷개를 몰라야 / 생일 아침 / 봉자네 국밥 / 집 / 질경이 / 서서 먹는 밥 / 파리채를 들고 산다 / 눈물 꽃 / 저녁은 / 웅덩이 / 깻잎 장아찌 / 산가시내 / 기다림 / 고요에 대하여 / 화살나무 / 갈증
제3부
적막 속으로 나는 새 / 늪 / 느린 길 / 천천히 아주 천천히 / 환한 봄 따라가네 / 코스모스 / 적막에 대하여 / 해 질 녘 / 숨이 붙은 엽서 / 여름날 / 밥 / 죄는 끊기 어렵다 / 시디신 기억 저편 / 뼈의 집 / 사과꽃은 피었는데 / 코드블루 / 한 사람이 가고 있다
제4부
후회 / 사직동에서 / 울지 말아요 미얀마 / 봄이 이상해부러야 / 팽목항에서 / 늘어진 가방 / 빨간 코트를 입은 오월 / 행불자를 그리며 / 묵념의 시간 / 어머니의 노래 / 비 맞은 삼일절 / 저문 강 마음 닫으면 / 까마귀 소리 까악 까악 / 봄이 다 가부렀시야 / 그날, 도청에서 / 죄는 그렇게 온다
작품 해설 : 두레밥의 시학 - 맹문재
■ '시인의 말' 중에서
낮아지고 낮아지면 먼 산을 자주 만나고 싶다
구부러진 시간을 견디게 한 것은 시를 쓰는 일이었다
푸른 언어를 찾아가는 길은 쓸쓸하였다 다시 길을 나선다
느린 길이지만 천천히 걸으면서 풍성한 시의 들판을 만나고 싶다 봄이다 봄처럼 살아야지 올곧은 길을 묵묵히 걸으면서 낡고 오래된 풍경을 마음에 담으려고 한다 춥고 허기질 때 수선화처럼 살아보라는 마음이 있어 다시 행장을 꾸려 길을 떠난다
아무도 가지 않고 가지 않으려고 하는 길 그러나 누군가 가야 되고 반드시 가야만 되는 길 그 길을 가려고 한다
■ 추천의 글
함진원의 시는 “절룩이는 시간과 죽음의 통로를 거쳐/겨우 달리는 꿈”(「뼈의 집」)을 꾸는 사람의 시다. “울어서 될 일이면 날마다 울겠지만/울어서 될 일”(「운다고 옛사랑이 오겠냐마는」)은 아니기에 숨죽여 우느라 시의 미학까지 죄다 먹어치워버렸다. 그래, 이런 지경에서 시가 무슨 대수인가? “한 나무가 쓰러지면 옆에 나무들 따라서/시들어가기에”(「서서 먹는 밥」) 서서 밥 먹으며, 야간 일로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사는 사람의 원망과 미움과 “돌덩어리처럼//진드기처럼//단물 빠진 껌처럼”(「상처」) 달라붙는 상처를 다만 보아라. 그러다 보면 “길이 없을 때 길을 만들고/길 잃었을 때 눈 맑은 낙타를”(「느린 길」) 만나게 되는 비법을 함진원 스스로 잘 일궈내고 있다는 것을 곧 알게 되리라. 비로소 이쯤에서야 시는 정녕 살아야 할 의미를 못 느껴 죽고 싶다는 사람들을 “엄마 같은 마음”(「숨이 붙은 엽서」)으로 달래는 이야기가 되고 노래가 되기도 한다.
― 고재종(시인)
■ 작품 세계
자본주의가 주도하는 교육을 받은 대중들은 소비 세계의 일원이 되기를 희망한다. 자본주의 매체가 전하는 제품을 소유하려고 욕망하는데, 제품 자체보다 제품이 갖는 풍요로운 이미지를 소유하고자 한다. 그렇지만 그것의 획득은 쉽지 않으며, 소유한 경우에도 욕망의 추구를 그치지 않는다. 또 다른 욕망을 추구하느라 결국 욕망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통장에 문이 열리면 한 달 수고가/빌딩 무덤으로 들어가” “동굴 문 닫힌 줄도 모르고 달리기만 하는/아득한 늪에 허우적거”(「늪」)리는 것이다.
함진원 시인은 이와 같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대안으로 두레밥 문화를 제시한다. 두레밥은 두레로 일을 하고 공동으로 먹는 밥이다. 두레꾼들은 일터로 가져온 점심뿐만 아니라 오전 참과 오후 참 등을 먹는데, 자신의 집에서 평소에 먹는 것보다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고 공동체의 유대감을 가져, 힘든 농사일을 함께해나가고 상부상조의 토대를 마련한다. 노동력이 없는 마을의 노약자나 과부의 농사를 지어주거나, 마을 사람들의 대소사에 필요한 자금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두레밥 문화는 일제가 토지 조사 사업을 통해 조선인의 토지를 사유제로 만들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자영 신분의 조선 농민들이 소작인으로 내몰리면서 두레밥을 나누는 토대가 상실된 것이다. 해방 뒤에는 산업화와 도시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농촌의 공동화 현상을 가져와 두레밥 문화는 고전적인 유물이 되었다. 그렇지만 두레밥 문화가 완전하게 소멸된 것은 아니다. 그 형태는 바뀌었지만, 현재의 실생활에서 다양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함진원 시인은 두레밥 문화를 재발견하고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항아리처럼 넉넉한 사람들과 보리밥 먹”(「증심사에서」)는 것이, “공원 어귀”에 “밥차”가 들어와 “밥 냄새”를 풍기자 “구름처럼 사람들 모여”드는 때를 “은빛으로 찰랑거리는 시간”(「은혜로움이여」)으로 여기는 것이 그 모습이다. “아랫마을 감목리댁”이 “건조한 일상 풀어 수제비 쑤는 날”을 “온 동네 까치 떼 함께”(「오후 한때」)하는 잔칫날로 여기는 것도, 아주 추운 날이었지만 “따순 밥 먹자고/손잡아주는 마음 있”었기에 “환한 모란꽃을 기다”(「그 겨울」)릴 수 있었다고 고마워하는 것도 그러하다. 나아가 광주 사람들이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것을 믿”고 “정의롭게 맑고 진실하게 견디”는 마음을 “주먹밥 마음”(「그날, 도청에서」)으로 인식한 것에서도 볼 수 있다.
― 맹문재(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작품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비는 내리는데
수수한 사람들끼리 국숫집에서 국수를 먹는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기어이 흥을 놓다 콧물 훌쩍인다
여름비는 차갑게 내리고
집에 갈 생각 안 한 채
버스 끊긴 지 오래
선한 사람들끼리 모여 앉아
불어터진 국수 먹으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달빛 몸 불어오고
파꽃 여물어간다
느린 길
꿈에서 본 낙타는 없었다
등에는 낡은 시간과 하품하는 오후가
끄덕끄덕 가고 있었지
방향과 출구는 달라도 평생 동안 한 길로
가는 뒷모습
지는 해 닮았어
붉은 것 속에는 말하지 못한 노래가 살고 있지
희미한 방울 소리 내며 세상으로 갔던 느린 길
길이 없을 때 길을 만들고
길 잃었을 때 눈 맑은 낙타를 만났어
뒤돌아보지 않고 쉼 없이 가야만 했던
고단한 생 한 점 한 점 찍으며
꿈 접지 못한 채
파닥거리며, 쓰러지며, 잠을 이기며
눈먼 호랑이 찾아 순례길 떠났다는 소식
낙타 등에서 울어본 사람만 아는
풍경 소리 들으며
빨간 코트를 입은 오월
고라니 입술 사이로 저녁이 잠들면
새벽까지 총소리에 벌벌 떨던
숨소리 아슴하게 들리는 오월
선량한 연둣빛 사람들 살고 싶다고
울음 쌓인 금남로 거리
눈 감지 못한 자식 보듬고 오열하는 어머니와
미얀마 어머니는 하나이다
총으로 얻은 것은 결국 총으로 돌아가고
평화는 승리로 일어나
빨간 코트를 입은 오월이 힘내라고
임을 위한 행진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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