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소설)
2023 올해의 문제소설
한국현대소설학회 엮음|153×224×18mm|368쪽
18,500원|979-11-308-2014-9 03810 | 2023.2.25
■ 도서 소개
한국문학의 ‘현재’를 확인할 수 있는 문제적인 소설들
2022년 한 해 동안 문예지에 발표된 중·단편소설 중 한국현대소설학회에서 선정한 12편의 작품을 엮고 학회의 교수와 평론가들이 해설한 『2023 올해의 문제소설』이 푸른사상사에서 출간되었다. 오늘의 사회에 감지되는 문학의 새로운 목소리와 움직임을 포착하고 그 흐름을 정리하는 이 선집은 우리의 삶과 사회에 대한 근원적인 탐색과 한국문학의 현재를 확인해주고 있다.
■ 엮은이 소개
한국현대소설학회
현대소설 분야를 전공하면서 ‘한국의 현대소설’을 강의하고 있는 교수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연구학회이다. 이 학술단체는 현대소설을 연구하고 자료를 발굴·정리하며 연구 결과의 평가를 통해 이론을 정립, 한국 현대소설 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 목차
■ 책머리에
김기태|전조등
[작품 해설] 안온한 일상이라는 전조등이 꺼진 순간들_ 최혜림
김멜라|지하철은 왜 샛별인가
[작품 해설] 지하철의 갈대와 바위에 관한 디지털 민속학_ 김건형
김병운|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
[작품 해설] 박탈당한 미래를 탈환하는 길_ 김보경
김본|슬픔은 자라지 않는다
[작품 해설] 삶을 선택하는 일_ 조연정
김애란|홈 파티
[작품 해설] 우리는 무대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_ 강도희
김이숲|관객
[작품 해설] 뽀로로 변기 위에 앉아 생각하는 사람_ 노대원
김채원|서울 오아시스
[작품 해설] ‘외’로운 사람들_ 노태훈
성혜령|버섯 농장
[작품 해설] 부조리한 현실을 내파하는 착한 사람의 잔혹극_ 오창은
이서수|젊은 근희의 행진
[작품 해설] 시대의 조건, 믿음의 조건_ 김미정
이희주|천사와 황새
[작품 해설] 아름다움을 번식하기_ 인아영
정영수|일몰을 걷는 일
[작품 해설] 이야기 없는 자의 슬픔_ 문예지
현호정|연필 샌드위치
[작품 해설] 글쓰기의 기만, 혹은 작가의 탄생_ 김종욱
■ 출판사 리뷰
매년 문예지에 발표된 소설 가운데 문제작을 선정하고 그 의미를 새롭게 조명해온 『올해의 문제소설』은 우리 소설이 이룬 성과를 정리하고 흐름을 읽어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번 『2023 올해의 문제소설』 역시 지난 한 해 동안 발표된 중·단편소설 중 우리 삶과 사회에 대한 근원적인 탐색이 돋보이고 다양한 주제 의식을 보여주는 열두 편의 작품을 골라 엮었다. 한국문학에 감지되는 새로운 목소리와 움직임을 포착하고 그 흐름을 정리한다는 데서 한국문학의 현재를 확인하는 가장 탁월한 선택이 될 것이다. 한국현대소설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대학교수들이 직접 선정하고 해설하여 독자들에게 풍요로운 독서 체험을 선사한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기후 위기와 재해가 격화되고 있으며, 정치·경제적인 불안에 내몰려져 있는 우리 사회는 커다란 위기와 도전에 직면해 있다. 분열과 반목, 차별은 더욱 심화하고 있으며 소수자들이 설 자리는 더욱 위태롭기만 하다. 이 시점에 퀴어 서사, 소외된 이웃을 카메라로 담는 프로젝트를 통해 던지는 재현의 윤리와 당사자성, 계급 문제, 불투명한 미래의 청년 세대 문제 등을 선보인 작품들이 주목된다. 열두 명 작가들은 들끓는 시대의 한복판을 살아가며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희망의 연대를 구축함으로써 더 나은 미래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 책머리에 중에서
『올해의 문제소설』은 제도권의 문학상 심사와 달리 한국문학을 전공하는 젊은 연구자들이 긴 호흡으로 작품을 읽고 논의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를 통해 한국문학에서 감지되는 새로운 목소리와 움직임을 포착하고 작가의 후광이나 이력을 떠나 문학적 성취를 선정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2023년 한국문학의 ‘현재’를 확인하고 싶다면 『올해의 문제소설』이 가장 탁월한 선택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았던 적이 드물지만 문학은 다시 한번 커다란 위기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세계는 알 수 없는 곳으로 향하고 있고 기후 위기와 재해는 더욱 가시화되고 있으며 분열과 반목은 여전히 심각하다. 한국 사회는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불안에 내몰려져 있고 참사와 비극의 공포도 엄존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인구절벽이 실현되고 있으며 소수자들의 설 자리는 오히려 더 위태로워지고 있기도 하다. 이럴 때 문학이, 소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무기력함이나 허무에 빠지지 않고 불의와 부당함에 맞서 싸우면서, 동시에 희망의 연대를 구축하면서 더 나은 미래를 향해 갈 수 있는 힘을 문학은 가지고 있을까.
여기 실려 있는 소설들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하나의 가능성으로는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지금-여기의 한국소설을 통해 그 이전의 삶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는 ‘문학적 경험’을 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
■ 책 속으로
그는 “나다운 게 뭔데! 나다운 게 뭐냐고!”라고 소리 내보고 큭큭 웃었다. 그것 또한 언젠가 본 드라마 주인공을 흉내 낸 것이었으므로 그는 다시 큭큭 웃었다. 그리고 자기다운 게 뭔지 생각하다 자기답게 사는 게 지겨워졌다.
(김기태, 「전조등」, 16쪽)
전과 비교하면 잡상인이나 성추행범은 줄어들었고 열차 내부도 세련되고 깨끗해졌지만, 보이지 않는 살기가 지하철을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그 소리 없는 인간의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흔적을 쌓아갔다. 저퀴의 지독한 타액에 신체가 손상되면서도 잡귀들은 인간을 원망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마음으로 누구를 좀 미워한다고 해서 그게 큰 잘못인가?
(김멜라, 「지하철은 왜 샛별인가」, 52쪽)
나를 죽게 한 건 병이 아니고 사람이었다는 걸. 그러니 나를 살게 할 수 있는 것도 약이 아니고 사람이라는 걸. 오늘 장희 군한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어요. 삼촌은 절대로 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았다고. 곁에 있는 사람을 하루라도 더 살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 삼촌이었고, 그래서 내가 이렇게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고. (김병운,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 75쪽)
신이 뭔가를 점지하는 것 같기도 하고, 레이저포인터로 교사의 이마를 쏘는 남학생의 짓궂은 장난 같기도 한 햇살에도 폭탄은 평화롭게 우엉차를 홀짝거렸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천천히 찻잔을 내려놓은 그 애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나 폭탄이야.”
(김본, 「슬픔은 자라지 않는다」, 101쪽)
이연은 지금도 소설이나 연극,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너무 행복한 표정을 지을 때면, 사랑이나 어떤 성취 혹은 명예 앞에서 너무 벅찬 감정을 표할 때면 어김없이 ‘저 사람 곧 저걸 잃어버리겠구나’ 예감하곤 했다. 이연은 오 대표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 어떤 주문을 외듯, 마치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과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그 사랑을 어서 잃고 싶어 하는 연인처럼 달뜬 목소리로 말했다.
(김애란, 「홈 파티」, 158쪽)
“이거 봐. 누리야, 예술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어. 영상은 특히 더 그래. 리얼하게 보여주니까.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면 가난하게 사는 사람도 줄어들 거야.”
고개를 숙이고 진영의 말을 듣고 있던 누리가 의아한 표정으로 진영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근데……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게, 가난한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를…… 사람들이 몰라서예요?”
(김이숲, 「관객」, 184쪽)
엄마는 편지를 쓰거나 밥을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양손을 그렇게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남을 괴롭히거나 자살을 할 수도 있으니까. 그게 아니고. 남을 괴롭히기도 하고 자살을 할 수도 있으니까. 이것들을 엄마도 알고 있을 거였다.
(김채원, 「서울 오아시스」, 210쪽)
기진은 혼자 말하고 있는 진화를 바라봤다. 진화는 기진을 보지 않고 남자를 줄곧 보고 있었다. 진화가 골프채를 들고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폼을 잡고 남자의 머리를 가볍게 쳤다. 스윙이 크지도 않았는데 푹, 하고 무언가 꺼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났다. 피는 튀지 않았다. 한번, 쳐보고 싶었어. 진화가 말했다.
(성혜령, 「버섯 농장」, 245쪽)
어쩌면 가장 진화한 형태의 생물은 아메바인지도 모른다. 모든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벗어던진 존재, 핍박과 식민지가 무언지 모르는 존재, 생을 가장 단순하고 솔직하게 설계한 존재, 그게 아메바인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런 상태로 이 세계에서 균형 감각을 유지하며 살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서수, 「젊은 근희의 행진」, 285쪽)
줄줄이 늘어선 기계 알들에 호스로 영양이 공급되지 않더라도 이곳은 미래였다. 일단 21세기이고, 1984, 1999, 2000, 2012 같은 중요한 년도도 지났고, 창문 밖에는 천사, 아니 상공에 출현한 인면 부유체가 있고, 남자인 유리가 임신한 걸 보면 그런 것 같았다.
(이희주, 「천사와 황새」, 300~301쪽)
“기억나는 건 무엇이든지요.” 그녀는 아마 말로 하는 것보다 글로 쓰는 편이 좀 더 쉬울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글을 쓰는 것이 직업인 사람이었고, 그녀 또한 그 사실을 들어 알고 있었으니까. 아직 그녀에게 언제부터인지 글쓰기가 그에게 결코 쉽지 않은 일, 거의 공포스러운 일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은 탓이었다.
(정영수, 「일몰을 걷는 일」, 322쪽)
꿈에 연필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그것이 꿈의 규칙이었다. 두 장의 식빵 사이에 연필들을 빽빽하게 끼워 먹을 것. 그 밖에, 그러니까 연필 외에 양상추 따위 다른 재료들의 활용은 자유였다. 예컨대 마요네즈 소스와 토마토의 신맛으로 연필의 연필 맛을 덮어 눌러도 됐다. 덮어 누를 수 있다면.
(현호정, 「연필 샌드위치」, 3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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