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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간행도서

배명희 소설집, <엄마의 정원>

by 푸른사상 2023. 2. 3.

 

분류--문학(소설)

 

엄마의 정원

 

배명희 지음|푸른사상 소설선 44|146×210×13mm|224쪽

17,000원|ISBN 979-11-308-2013-2 03810 | 2023.2.10

 

 

■ 도서 소개

 

새로운 출구를 향한 빛줄기를 찾아내는 소설들

 

배명희 작가의 소설집 『엄마의 정원』이 <푸른사상 소설선 44>로 출간되었다.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가득한 현실에서 고통과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작가는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작품 속 인물들은 출구 없는 삶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몸부림침으로써 틈으로 새어드는 한 줄기 빛을 발견하여 그곳으로 한 발 나아간다.

 

 

■ 작가 소개

 

배명희

군인 아버지를 따라 춥고 외로운 38선 부근의 전방에서 유년을 보냈다. 그래서 사람이 조금 삭막하다. 2006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와인의 눈물』이 있다.

 

 

■ 목차

 

▪작가의 말

 

광장

페트병

노란 가로등

어둠 그 너머

엄마의 정원

재건축

롤러코스터

 

작품 해설:출구 없는 삶에서 찾은 빛 - 박덕규

 

 

■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책에 실린 소설 속 사람들은 외롭다. 가난해서, 친구나 사랑이 부재해, 혹은 비가 내리거나 세상이 두려워.

인간이 안전하고, 행복하기 위해 스스로 걸어 들어간 제도. 가정, 사회, 그리고 강철로 만든 견고한 담장 안. 경계로 내몰린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불안하다.

고독과 달리 외로움은 위안을 받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무엇이 그들을, 우리를 위로할 수 있는지 사실 모르겠다.

사람은 원래 외로운 존재이고, 타인의 도움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은 너무 쓸쓸하다.

삶이 그런 것이라 해도, 생명은 능동적이다.

약자에게 자꾸 가혹해지는 세상에서 소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사람마다 능력과 역량이 다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약자인 우리 모두 서로를 위로하고, 공감하는 것. 그것이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위로가 될지 잘 모르겠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다.

그동안 쓴 글을 세상에 내보내니, 어쩐지 쓸쓸해진다. 이 산이 아닌가? 하고 다른 산을 올랐다는 장군처럼, 좀 더 즐겁고 행복하게 말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 싶다.

세상이 쉽게 변하지 않는 것처럼 사람 또한 쉬이 바뀌지 않는다. 깨진 사금파리가 칼날이 되는 법. 무딘 날로는 아무것도 베지 못할 것이다. 나의 어딘가를 날카롭게 벼려야 할지 찾아봐야겠다. 그것이 부디 오래 걸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추천의 글

 

아직도 살아 있는 목숨이 부끄러워 멀리서 훔쳐보던 세상 문을 열고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배명희 작가의 「광장」을 보았을 때 나는 어쩔 수 없이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이건 우리 문단사에 빛날 작품이야! 훗날 이 작품이 소위 문단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가를 나는 구태여 따져 묻지 않겠다. 다만 여전히 문단을 지키는 이들이 있다면, 운동권이나 좌우 고하를 떠나 그들에게 간곡하게 부탁하고 싶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의 「광장」을 한 번이라도 읽어달라고!

― 송기원(소설가)

 

 

■ 작품 세계

 

현대소설은 사회 현실에서 횡행하는 모순을 그 현장의 체험자를 내세워 증언하는 데서 뚜렷한 형태를 갖추었으며, 대표적으로 한국 단편소설이 지난 100년 넘도록 그러한 ‘겉과 속의 차이’를 하나의 집약된 상황으로 제시하면서 인물의 심정을 주목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어왔다. 이제 2020년대, 어쩌면 그 소설마저도 역사의 진화, 자본의 축적, 개인의 성취를 위한 최전선에 있었으나 그 어느 것도 자기 것으로 얻지 못한 이들의 모습을 흔해빠진 양상으로 치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오늘 배명희의 소설을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긍이 ‘국뽕’으로 자리바꿈하는 동안‘커진 그림자’에 압도된 이들이 결코 소수가 아니며 그 ‘다수’들이 최소한의 자기 영역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된 상태에 놓여 있음을 문학적으로나마 문제 삼지 않으면 안 된다.(중략)

배명희의 소설들은 현실에서 자본을 창출하거나 그것을 분배받거나 할 위치에서 밀려난 인물을 다루고 있다. 그 인물이 처한 출구 없는 삶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을 되새김질할 수 있는 구체적 실증이 된다. 그 인물은 그런데, ‘재건축’으로 상징되는 헛된 미래를 향하는 길을 애써 차단하고, 출구 없는 삶 안에 남아 끝까지 몸부림침으로써 얻어낸 틈을 비집어 새로운 출구를 향한 미미한 빛줄기를 찾아낸다. 바닥으로 처진 삶은 이렇게라도 생기를 얻어야 하는 것, 배명희의 2020년대식 리얼리즘 소설의 진정한 가치도 이런 데 있다.

- 박덕규(소설가, 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중에서

 

 

■ 출판사 리뷰

 

이 소설집에는 현실에서 자본을 창출하거나 그것을 분배받을 위치에서 밀려난 인물들이 등장한다. 배명희 작가는 자본의 모순으로 가득한 현실 속에서 고통과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집회에 동원되는 힘없는 노인들의 모습, 외국인 노동자들의 열악한 삶, 가난으로 인한 고통,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삶 등 현대인들이 가진 소외감과 공허함을 섬세하게 그려내면서 이들을 따스하게 어루만진다.

첫 번째 소설 「광장」은 생활전선에서 밀려나 일상을 주체적으로 꾸리지 못하는 노년층의 삶을 다루고 있다. 공원에서 막걸리 한잔 즐기는 것도, 조의금이 없어 친구의 장례식장에 가는 것도 부담스러운 70대 노인 박씨. 그와 같은 노인들에게는 참여만 하면 식사도 해결해주고 국가를 위한 일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달아주는 광장 집회에 동원되어 구호를 외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자식조차 따뜻한 손 한 번 잡아주지 않는 게 현실이지만, 한때는 열심히 일해서 “세상을 이만큼 만든” 사람들이다. 가족에게도 소외된 이 노인들은, 사회와 연결되어 있는 유일한 통로인 광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표제작인 「엄마의 정원」은 병원에 장기 입원한 엄마와 간병하는 딸 ‘기화’가 등장한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충격, 어머니에게 버림받았던 기억으로 인한 상처를 지닌 기화는 이별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있다.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기화가 어머니와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되면서 가슴 깊이 묻어왔던 어린 날의 상처를 직시하게 된다. 이외에도 학교폭력으로 인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친구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살아온 사람의 회상을 펼친 「롤러코스터」,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외국인 노동자를 향한 폭력을 다룬 「페트병」 등도 주목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일상에 파고든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고 있으면서도 자신만의 단단한 세계를 펼쳐 보인다. 출구 없는 삶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몸부림침으로써 틈으로 새어드는 한 줄기 빛을 발견하여 그곳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 작품 속으로

 

언젠가 박씨는 김씨와 변가에게 이 석연찮은 감정에 관해 말을 꺼냈다. 박씨의 말에 변가는

“공장이나 도로, 작은 나사못 하나까지 당신이나 나 같은 사람이 만들었지. 이 두 손으로 말이야.”

하며 거친 손을 눈앞에 활짝 펴 보였다. 박씨는 변가의 그런 터무니없는 자신감을 좋아했다.

“대통령이나 잘난 몇 명이 아니라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세상을 이만큼 만든 거라고. 어깨를 쫙 펴고 다녀. 자, 어깨 좀 펴란 말이야.”

술이 얼큰해진 변가는 박씨의 어깨에 양손을 얹고 안마하듯 주물렀다. 술 취하면 변가는 김씨에게 아이처럼 아양을 떨었다.

“형, 한 병만 더. 응, 딱, 한 병만…….”

평소에 조용한 박씨도 술이 들어가면 말이 많아졌다.

“누구도 우리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아. 평생 일을 한 이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거든. 자식 새끼까지 말이야. 그게 세상이라고.”

(「광장」, 27~28쪽)

 

4층 계단에서 남자가 빈 페트병을 발로 차며 내려왔다. 수십 개의 빈 생수병이 남자의 발길질에 벽으로 날아가거나 계단에 튕겨 텅텅 소리를 냈다. 계단 중간쯤에서 남자는 허리를 굽혀 빈 물병을 집어 들더니 우수이에게 달려들면서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우수이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어눌하게 외쳤다.

“때리지 마요. 아파요.”

“처먹었으면 버려야지 빈 병을 왜 집구석에 모아두냐고. 돼지 새끼야.”

빈 생수병으로 때리는 게 성에 차지 않은지 남자는 생수병을 내던지고 주먹을 휘둘렀다. 몸을 움직이기도 힘든 좁은 곳에 남자와 여자가 동시에 우수이에게 달려들었다.

(「페트병」, 50쪽)

 

기화는 헬기장이 보이는 복도 창가로 갔다.

기화를 보던 그녀의 눈동자에 두려움에 떠는 어린 기화, 상실이 두려워 손을 내밀지 않는 아이가 들어 있었다. 여름비가 줄기차게 내렸다.

헬기장에서 비를 맞고 있는 헬기 위로 사진 속 젊은 아버지의 얼굴이 기구처럼 떠 있었다. 비를 맞고 있는 아버지는 점차 나이 든 얼굴로 변해갔다. 부부는 닮는다더니 아버지는 나이를 먹으며 점점 어머니와 닮아갔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늙고 있었다. 아버지를 잃은 게 아니라 가슴 깊이 가둬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의 정원」, 1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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