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 간행도서

강태승 시집, <울음의 기원>

by 푸른사상 2023. 2. 2.

 

분류--문학()

 

울음의 기원

 

강태승 지음|푸른사상 시선 169|128×205×9mm|160쪽|12,000원

ISBN 979-11-308-2012-5 03810 | 2023.2.2

 

 

■ 시집 소개

 

삶의 한복판에서 우리를 나무처럼 세우고 빛나게 하는 시편들

 

강태승 시인의 시집 『울음의 기원』이 <푸른사상 시선 169>로 출간되었다. 이 시집은 가혹한 현실 속에서 곤궁한 삶을 영위하는 소외된 자들의 낮은 세상을 다루면서도 그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고 희망을 노래한다. 온몸으로 세상을 대하는 시인은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주체적이면서도 자연의 질서를 따르는 삶을 모색한다.

 

 

■ 시인 소개

 

강태승

1961년 충북 진천 백곡에서 태어났다. 2014년 『문예바다』 신인문학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머니투데이』 신춘문예 대상, 김만중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추보문학상, 포항소재문학상, 백교문학상, 해양문학상, 해동공자최충문학상, 두레문학작품상 등을 수상했으며, 시집으로 『칼의 노래』 『격렬한 대화』가 있다. 민족문학연구회의 회원이며 시마을 운영위원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목차

 

제1부

허기의 힘 / 집주인 만나기 / 간화선(看話禪)의 비밀 / 시 한 편 읽기 / 빗방울의 질문 / 전정(剪定) / 정화조와 매화꽃 / 화사(花蛇) / 파리의 식성 / 몸 또는 육(肉)의 반야바라밀 / 비(雨) 또는 비(非) / 쓰레기의 반야바라밀 / 여자였다 남자였다 / 슬픔 널기 / 화엄사 흑매화 / 허기의 부활

 

제2부

죽음이 도착했다 / 시(詩)에 매를 맞고 싶다 / 벚나무를 보면서 / 반항의 미학 / 과녁 / 노동의 비결 / 전기의 꽃은 옴(Ω)이다 / 피어라 연꽃! / 직립의 비결 / 나비의 꿈 / 생활고 / 자유의 식성 / 지옥행 열차 / 아프리카 반야심경 / 방사선의 밀고(密告) / 햇빛의 화장(火葬)

 

제3부

장의차 / 죽음을 자장면이라, / 물방울의 비결 / 허기의 끝 / 질문이 아니고 답? / 마음이 사는 법 / 사자(死者)의 서(書) / 화장(火葬) 또는 화장(化粧) / 지하철 의자 / 염(殮) / 잠깐 또는 금방이라는 시간 / 혀에 관한 명상 / 발바닥으로 듣기 / 고통의 힘 / 끝끝내 쓸쓸하지 않는 이유 / 부고를 미리 받다 또는 미리 보내다

 

제4부

즐거운 식사법 / 장충단공원을, / 바람의 뼈 / 괄약근 / 손과 손 / 죽음의 발자국 / 유서 즐겁게 작성하기 / 울음의 기원 / 착한 시(詩)를 쓰시는 하느님 / 전기의 우화(羽化) / 꽃신 / 낙화(落花) / 백비(白碑)는 동백꽃이다 / 나무에서 읽다 / 바다에 핀 꽃 / 나무의 반야바라밀

 

작품 해설 : 몸과 바닥을 꽃피우는 식물적 상상력-정연수

 

 

■ '시인의 말' 중에서

 

중복(中伏)에,

 

밭 가운데에 서서 햇빛에 정수리를 말리면

푸른 낱말이 땀방울로 떨어진다

콩잎을 누이면 콩잎 뒤에 숨었던 쇠비름과

개비름이 뿌리에 발목이 잡혀 도망치지

못하는 것,

누가 너희를 여기로 보냈느냐 물으면

하 하 하느님께서 보내셨다고 우긴다

것 참 하느님이 보내신 것 뽑자니 그렇고

 

그냥 두자니 콩이 여물지 못할 것인데

이 일을 어떻게 할까? 하는 정수리를

햇빛이 까맣게 데우도록 그냥 두면

목덜미에서 떨어지는 땀방울이 길을 내준다

강물이 바다로 사라지듯이

고민거리가 그냥 콩 이파리로 무성해진다.

 

 

■ 추천의 글

 

강태승 시인의 시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죽음 의식이다. 사자가 물소의 목을 물어도 “물소 추억과 사랑은 한 점 씹지 못”해 “물소 목숨은 먹지 못하고 고기만 먹은”(「울음의 기원」) 것에 불과하다고 했듯이, 시인에게 죽음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가 끊어지는 일 이상을 의미한다.

시인은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자연의 질서로 받아들인다. 삶이란 “김이 무럭무럭 나는 죽음/먹는”(「죽음을 자장면이라,」) 것이며, 바닥에 깔린 죽음이 “나무를 키우고/햇빛을 통째로 물고 있”(「발바닥으로 듣기」)다고 인식한다. 그렇기에 아침에 일어나 울타리와 뒤뜰과 산에 피어 있는 개나리며 홍매화며 진달래를 바라보면서 누군가 보낸 조화(弔花) 같다고 생각한다. “햇빛은 매일 문상할 것이고/소나무는 상주 노릇 할 것”(「유서 즐겁게 작성하기」)이기에 자신의 장례를 치르지 말고 화장해서 땅에 뿌려달라는 부탁도 한다.

김수영 시인은 『메멘토 모리』를 번역한 뒤 해설하면서 “그대는 흙이니라, 멀지 않아 그대는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는 『창세기』의 말이나 “삶의 한복판에서 우리들은 죽음에 둘러싸여 있다”라는 『찬미가』의 한 대목을 새기고 상주사심(常住死心)을 확립했다. “죽음도 닦으면 닦을수록 반짝이겠다”(「죽음의 발자국」)라는 강태승 시인의 노래 또한 지상의 우리를 나무처럼 세우고 빛나게 한다.

― 맹문재(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 작품 세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계 속으로 던져진 피투성(被投性)은 죽음이나 불안 등의 감정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에서 밝혔듯, 유한의 생명체는 시간과의 관계 속에서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안고 살아간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죽음”(「죽음을 자장면이라,」)에 대한 운명을 자각할 때, 비로소 현존재는 미래의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기투(企投)를 가능하게 한다. 기투하는 존재 방식 외에도 ‘세계-내-존재’ 속에서 타인과 상호작용하면서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 현존재는 세계 속으로 던져져 있지만, 타자와 공존하면서 삶의 의미를 확장한다. (중략)

세계-내-존재로 던져진 몸은 “가난한 그림자”가 상징하듯, 자본사회 속에서 생계를 꾸리는 벌거벗은 생명의 몸이다. “똥값이 되고 아무리 더러워져도” 노동자에게 몸이 각별하듯, 강태승의 시세계에 있어 몸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64편의 시에서 ‘안이비설신의’가 9번이나 등장하는 것도 그 때문일 터다. “망치로 안이비설신의 막고 막아도 들리는데/저 살겠다며 방귀를 뿡뿡거리는 똥자루”에서 드러나듯 안이비설신의는 몸이자, 감각이자, 정신으로 현현하고 있다. 몸은 곧 마음이니, “마음이 알몸”(「마음이 사는 법」)으로서 몸의 정신을 강화한다.

안이비설신의를 두고 불교에선 백팔번뇌로 연결하기도 하지만, 강태승은 각성의 정신이자 감각을 통해 세계의 현상을 이해하는 창구로 접근한다. 안이비설신의는 몸으로 쓰는 시적상징이자, 몸으로 피우는 꽃인 셈이다. 노동자의 몸이 노동의 현장에서 부딪히고, 서민의 삶이 사회 속에서 몸부림치듯 몸은 세상과 만나는 구체적 도구이다. 온몸으로 세상을 대하고, 현장 속에 몸을 던지는 방식을 통해 몸이 구현된다. 또한, 몸은 구체화한 삶의 세계이자, 낮은 바닥을 향하는 시선이자, 생명과 죽음이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 대한 성찰로 작동한다.

― 정연수(시인, 문학박사) 작품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벚나무를 보면서

 

나도 저 벚나무처럼 오지게 꽃을 피우고 싶다

손과 발 이마와 정수리에도 꽃을 달고 싶다

심장과 간 오장육부 어디든지 꽃 피우고 싶다

심지어 불안 우울 절망에도 꽃을 마구 달고

봄비 맞으면서 개울가에 당당히 선 나무처럼

나도 핏줄마다 뼛속 어디든 빈 곳 없이 피워

한나절이라도 벚나무처럼 환하게 서고 싶다

 

미치도록 꽃을 피우고도 올바르게 선 벚나무

환장하게 달고서도 한마디 말이 없는 나무

온몸이 부서질 듯 사지(四肢) 찢어질 듯이

보석 또는 먼지 하나 남기지 않고 수류탄처럼

제 안의 모든 것을 밖으로 던져버린 나무

나도 저렇게 하늘과 땅에 섰다가 가고 싶다

한나절이 아니라도 잠깐의 들숨과 날숨 사이,

 

개나리 진달래 목련 아니면 민들레 냉이꽃

논두렁 밭두렁이면 어떻고 외딴집이면 어떠랴

아무도 찾지 않는 암자 뒤뜰이래도 좋으니

제 꽃에 제 그림자도 맑게 빛나는 벚나무

그렇게 날 찾아오는 날이 오늘이면 좋겠다

아니 너도 이미 벚나무보다 많은 꽃을 달고

하늘과 마주친 천지를 맨발로 여행하는 중이다!

 

 

발바닥으로 듣기

 

밖에서 들어오는 소리는 걸러야 했다

안에서 나오는 것도 달궈야 하지만

발바닥 밀고 올라오는 소리는

가지마다 꽃을 매달거나 잎사귀를

계절의 속도에 차근차근 걸었다

 

발바닥 뚫은 것은 곧바로 열매 맺었다

차갑지 않은 것은 발바닥으로 왔다

귀(耳)는 발바닥이 본적(本籍)이다

눈 코 입 그리고 모공들의

발자국 따라가면 발바닥에서 만났다

 

발바닥에서 올라오는 것은

앞뒤가 선명했다 형용사와 조사의

그림자 얼씬하지 못했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라 정직한 탓이다

장사치 전단지가 주소 옮길 수 없는,

 

나무들만이 그림자 두었다가

아침이면 햇빛에 설거지하는 곳이다

발바닥에서 올라오는 것은 반듯했다

밖에서 오는 것은 언제나 비릿한

냄새를 따라가면 안이비설신의,

 

연꽃도 바닥에 뿌리를 두었다

바닥에 도착한 것들은 나무를 키우고

햇빛을 통째로 물고 있었다

세상 돌아다니다가 지치면 눕는 바닥

내 허물어질 자리 언제나 비어 있는 고향.

 

 

울음의 기원

 

사자가 목을 물자 물소의 울음이 사자의

이빨에 물려 사자 핏속으로 섞여버렸다

발버둥 칠수록 물소의 설움 분노 억울함

물소의 살아온 내력과 살아갈 날의 시간

사자의 송곳니에 오도 가도 못 하다가

차라리 사자의 이빨을 타고 개울 건너

사자의 동족으로 걸어가고 있는 오후,

 

물소 목숨은 먹지 못하고 고기만 먹은

물소 추억과 사랑은 한 점 씹지 못하고

물소의 식은 뼈다귀만 물고 다니다가

하이에나가 나머지를 숲으로 달아나자

바람이 앞질러 엎어놓는 생토(生土)에

올바르게 싱싱해지는 줄기와 가지 끝

푸르른 하늘로 나무는 둥근 웃음 걸쳤고,

 

표범의 발톱에 남은 피를 햇빛은 말려도

날아오른 독수리가 폭력을 다시 펼치자

오히려 핏줄 선명하게 빛나는 바오밥나무

허기의 등불이 사자 오장육부에 켜지면

계곡 타고 솟아오르기 전에 고기를 물어야

꺼지는 불로,

나일강은 세상에서 긴 어둠으로 반짝인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