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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간행도서

이충옥 소설집, <들리지 않는 소리>

by 푸른사상 2023. 1. 30.

 

 

분류--문학(소설)

 

들리지 않는 소리

 

이충옥 지음|푸른사상 소설선 43|146×210×14mm|240쪽

16,900원|ISBN 979-11-308-2005-7 03810 | 2023.1.24

 

 

■ 도서 소개

 

가족 사진첩과도 같은 소설

 

이충옥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 『들리지 않는 소리』가 <푸른사상 소설선 43>으로 출간되었다. 부재하는 모성애, 자살로 휘청거리는 가족의 삶 등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가족 문제를 강렬하게 투사하고 있다. 가족 사진첩과도 같은 소설들은 얽히고설킨 다양한 가족들의 모습을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 작가 소개

 

이충옥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에서 태어나 자욱한 물안개와 반짝이는 물결을 보며 소설가의 꿈을 키웠다. 먼 길을 돌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전문가과정을 수료했다. 제18회 신라문학대상에 단편 「보청기」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제2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제8회 경북청송문학대전 등에서 수상했다.

 

 

■ 목차

 

▪작가의 말

 

행복한 돼지

섬은 기다린다

까치, 둥지를 옮기다

들리지 않는 소리

다리 앞에서

가위

아파트

 

작품 해설:공감과 위안의 복원 _ 추선진

 

 

■ '작가의 말' 중에서

 

문주란 꽃이 활짝 폈다.

친구가 분양해준 두 포기 문주란은 한여름 옥수수 잎처럼 푸른 잎만 자랑했다. 물과 햇볕은 충분할 텐데, 너무 온실에서 키우는 건가, 정성이 부족한 탓인가, 화분에 갇혀 있어 그런가, 꽃을 모르는 수놈인가 별별 생각이 오갔다. 그렇다고 나무처럼 우람해지거나 키가 쑥쑥 자라 곤란하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딱 그만큼에서 머물러 잡초처럼 죽지도 않으니 분재 키우는 셈 치자 했는데 불쑥 꽃대가 올라온 것이었다. 30년 만이었다.

무척 기뻤다. 백합보다 은은한 향에 취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좋은 기운이 차올랐다.

 

스무 살까지 할머니와 언니랑 살았다. 멀리 계신 부모님은 줄줄이 늘어나는 동생들이 차지했다. 모두 모여 산 건 겨우 3년 정도였다.

양수리 집은 늘 고요했고 적막했다. 하루하루는 무채색, 멀리서 보면 아늑했고 가까이 들여다보면 공허였다. 시선은 시끌시끌한 이웃집으로, 동네로 향했다. 복작복작 사는 사람들의 삶이 궁금했다. 소설의 시작이었다. 영혼은 얽히고설킨 사람들의 일상으로 스며들어 함께 밥을 먹고 자고 고민하고 싸우고, 몰래 울었다. (후략)

 

 

■ 작품 세계

 

이충옥의 첫 번째 소설집 『들리지 않는 소리』는 가족에 대한 기록이다. 마치 가족 사진첩과도 같은 이 소설집은 다양한 가족들의 모습을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물론 작가는 이러한 물음에 대해 절대적인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가족에 대해 간곡하게 되묻는 것을 통해 작가는 공감과 위안을 건져내고, 가족이 주는 이 가치를 여전히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족’은 하나의 관념이다. 우리는 가족을 개인의 감정적인 기대와 현실적인 욕구를 모두 충족해줄 수 있는, 타인이 아닌 존재로 이루어진 공동체로 이상화한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근대 가족의 모델은 가족을 국가가 성립할 수 있게 하는 기본 단위로 상정한 근대 국가가 기획한 것이다. 그것은 부모의 사랑, 자식의 효라는 신화로 지탱되는 “사회적 관계의 재생산을 보증하는 국가 이데올로기 장치”다.

우리가 처한 현실은 이러한 이상과는 다르다. 가족 구성원은 공동체의 일원이기 전에 다양한 욕망을 가진 개인이다. 경제적, 사회적인 문제들은 가족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결정적인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근대의 논리가 해체되는 것과 보조를 맞추듯이 가족의 형태와 위상도 달라지고 있다. 가족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억압과 폭력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 문제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가족은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비정상이며, 개인을 억압하는 국가의 공모자이다. 아무런 갈등과 억압이 없는 이상적인 공간으로 인식될 때, 가족은 정상의 이름으로, 국가의 공모자로서 작동하는 억압적 기구로 기능한다.

가족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족이라는 이상을 해체해야 한다. ‘가족이라는 이상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해결책은 어쩌면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발생하는 충격을 완화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가족이 이상이며 근대의 기획일지라도 우리는 가족이 가진 가치를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사회학적 분석과 심리학적 진단이 제시하는 해결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이충옥의 서사는 이것을 해결하고자 한다. 가족이 줄 수 있었던 가치인 공감과 위안을 재인식하게 하는 것을 통해서 말이다. 공감과 위안은 소외되는 개인의 삶을 지탱할 만한 것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 추선진(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중에서

 

 

■ 출판사 리뷰

 

우리는 모두 태어나는 순간 가족의 일원이 되어 누군가의 자식이자 형제로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오늘날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붕괴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억압과 폭력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사회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충옥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 『들리지 않는 소리』는 부재하는 모성애, 자살로 휘청거리는 가족의 삶 등 다양한 가족들의 얽히고설킨 사연을 펼쳐내어,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가족 문제의 면면을 강렬하게 투사하고 있다.

첫 번째 작품인 「뱀」에는 가족을 이탈한 엄마와 그로 인해 상처받은 딸 은재가 등장한다. 결혼해 타국에서 살고 있는 은재에게 엄마는 여행을 핑계로 느닷없이 찾아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은재를 대한다. 여전히 큰 상처로 남아 있지만, 은재가 일하는 스시집 사장의 충고가 그녀의 얼어붙은 마음을 흔든다. 가족의 일원이기도 하지만, 자신처럼 욕망을 가진 한 개인으로 엄마를 바라볼 수 있게 되면서 엄마라는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 분주했던 삶에서 벗어나 여유를 되찾게 된다.

「다리 앞에서」는 남북분단으로 인한 가족 문제를 다루고 있다. 분단으로 인해 가족의 몸과 마음이 흩어져 잃어버린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 불안을 안고 살아가지만, 자신을 위로하는 또 다른 가족에게 치유 받는다. 표제작인 「들리지 않는 소리」에는 귀가 어두운 한 노인이 등장한다. 보청기를 맞춘 노인은 애써 외면해왔던 진실을 듣게 된다. 가족의 상실이 한 사람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경제적·사회적 문제로 인한 현실의 난관 앞에서 가족의 이상이 무너지는 모습을 그린 「행복한 돼지」 「까치, 둥지를 옮기다」 등도 주목된다.

가족으로 인해 상실하고 갈등하더라도 그 연결고리를 끊어낼 수 없는 이유는, 결국 그들만이 줄 수 있는 가치와 힘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이 지점을 포착하여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가족이 주는 공감과 위안의 가치를 되새긴다. 현실의 문제에 부딪히며 겪게 되는 실패와 좌절 순간들을 극복하고 가족으로 인해 삶을 지속할 원동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 작품 속으로

 

내가 환에게 자리를 피해달라고 했어. 내일 가는데, 너랑 시간을 보내고 싶었거든. 은재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웨이브진 갈색 머리가 어깨 너머에서 찰랑거리는 그녀의 모습은 낯설었다. 자신과 무관한 어떤 손님 같았다. 어디든 뱀은 존재해. 숲을 거닐다가 나는 뱀의 매력에 빠졌고, 넌 뱀과 함께 있는 나를 보고 비명을 질렀을 뿐이야. 그 비명을 들은 사람이 하필 네 아빠인 게 문제였지. 네 아빠랑 나는 서로 맞지 않았던 거야. 그런 거야. 너에게 한번은 변명하고 싶었어. 뱀? 겨우 뱀이라고? 은재는 탁자 밑에서 두 손을 꽉 잡고 입술을 깨물었다. (「뱀」, 34쪽)

 

그녀는 맥없이 그대로 주저앉았다. 심장이 벌렁거려 운신할 수가 없었다. 딸의 죽음을 남의 입으로 들은 것은 오래전이었다.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마음으로는 그것이 가능했다. 딸은 매순간 살아 있었다. 때론 멀리 가 있기도 했고, 가까이에서 자신을 지켜보기도 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그녀의 마음속에서 딸은 숨을 쉬었고, 만질 수 있었고, 그리고 얘기를 나누었다. 딸이 밤에 들어오지 않는 건 출장을 갔기 때문이었다. 같이 밥을 먹지 못하는 건 야근 때문이었다. 새댁이 한 말은 열심히 일하는 딸에게 퍼부은 악담이었다. 마음 같아선 문을 열고 들어가 새댁의 머리채를 잡아 마구 흔들고 싶었다. 더없이 소중한 딸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하지만 새댁에겐 친정엄마가 함께 있다. 그보다 든든한 배경이 또 어디 있으랴. 그녀는 손을 귀에 댔다. 좋은 소리는커녕 겨우 이런 소리를 듣자고 보청기를 했나 싶었다. (「들리지 않는 소리」, 126쪽)

 

“섬에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어.”

수희의 말에 수인은 터지려는 비명을 참기 위해 한숨을 몰아쉬었다. 엄마나 수희나 모두 제정신이 아니라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할머니 말에 어깃장이 일었어. 할머니가 뿌리라는 유골을 손에 꼭 움켜쥐고 있다가 집에 와서 작은 병에 담아 화단에 묻었어. 이사한다는 말에 옆집 언니를 졸라 배를 타고 아버지를 섬으로 데려갔어.”

수인은 기분이 미묘했다. 아버지가 섬에 있다니, 위안이 되는 한편으로 묘하게도 질투가 일었다.

“아버지는 엄마를 기다렸어. 아버지가 바다로 흘러가면 엄마가 와도 영영 만나지 못할 거 같았어. 어린 마음에 모래밭보다 나무 밑이 나을 것 같아 가장 큰 나무 골라 땅을 파고 꼭꼭 숨겼어. 커봤자 내 키보다 조금 높은 나무였지만 말이야.” (「섬은 기다린다」, 84~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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