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2 간행도서

김희원 장편소설, <붉은 무덤>

by 푸른사상 2022. 11. 22.

 

분류--문학(소설)

 

붉은 무덤

 

김희원 지음|푸른사상 소설선 41|146×210×14mm|312쪽

18,000원|ISBN 979-11-308-1970-9 03810 | 2022.11.20

 

 

 

■ 도서 소개

 

불꽃처럼 치열한 삶을 살았던 고려 말 최고의 명장, 최영

 

김희원 작가의 장편소설 『붉은 무덤』이 <푸른사상 소설선 41>로 출간되었다. 고국에 침입한 왜구와 홍건적을 격퇴하며 흔들리는 나라의 운명을 끝까지 지켜낸 고려 말 최고의 명장이자 불세출의 영웅인 최영 장군의 불꽃처럼 치열했던 삶을 소설로써 재현한다.

 

 

■ 작가 소개

 

김희원

충남 홍성 출생으로,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지천명의 나이에 구인환, 전규태 두 분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나온 후 지금까지 꾸준히 소설을 써오고 있다. 소설집 『겨울도시』(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와 『아부레이 수나』(2015년 세종도서 문학부문 선정)를 펴냈으며 다수의 단편이 있다. 예술평론가상, 직지문학상, 한국소설작가상을 수상했다.

 

 

■ 목차

 

▪작가의 말

 

1. 검은 안개

2. 비범한 아이

3. 졸병이 되어

4. 공민왕과의 만남

5. 전쟁의 시대

6. 홍주의 달아기씨

7. 홍건적의 난

8. 계속되는 내란

9. 혼군과 요승

10. 목호의 난

11. 사라진 태평성대의 꿈

12. 홍산대첩

13. 최무선과 진포대첩

14. 백전백승의 대가

15. 황산대첩

16. 벽란도

17. 직언직설

18. 칼날이 꺾이다

19. 새로운 시대

20. 무인의 길

 

참고문헌

 

 

■ '작가의 말' 중에서

 

누군가 그랬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태어난 땅의 냄새를 따라 회귀(回歸)한다고.

우연일까, 필연일까.

지금도 홍주 어딘가에 머물고 계실 그분 최영 장군, 그리고 낯선 도시에서 흔적도 없이 한 점 바람처럼 떠돌다 사라질 나의 몸이 기억하는 홍주. 그 사이로 긴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소설은 인연과 인과의 산물이라고. 하지만 최영(崔瑩)이란 역사적 거대한 성(城) 앞에서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막막했지요. 이리 가도 저리 가도 장군의 실체는커녕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무심한 시간만 강물처럼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밤이고 낮이고 마치 그리운 먼 옛날을 찾아가는 방랑자의 누더기 행색으로 장군을 부르며 홍주 어딘가를 허기가 진 채 정처 없이 헤매고 다녔지요. 참담하고 안타까운 슬픈 시간들이 또 그렇게 마냥 흘러갔습니다.

소설을 써보겠다고, 설익은 광기가 아닐까? 이미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로 엮는 그 자체가, 어설프고 헛된 꿈이자 설익은 광기 같았습니다. 암담하고 비루(悲淚)한 순간순간 맥없이 허공만 바라보았지요. 마치 요동 정벌을 꿈꾸시고 위화도 회군의 고통 앞에서 울지도 못하시던 당신처럼. (중략)

숨이 막히고 깜깜한 긴 터널을 이제 겨우 막 빠져나온 것 같습니다. 한없이 부족하지만 ‘붉은 무덤’을 통해 역사적 영웅 최영과 홍주(현, 홍성)라는 고을이 모든 분께 기억되기를 곡진한 마음으로 소망해봅니다.

 

 

■ 추천의 글

 

7백 년의 시간을 건너 못다 한 원(願)과 한(恨)으로

혼란한 시대, 어지러운 세상과 함께 우리에게 찾아왔다

 

모든 작가들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는 언젠가는 필히 써야만 한다는 소명감, 쓰고 싶다는 소망으로서의 이야기가 있다. 글쓰기가 비록 어렵다 하나 그 비원(秘願)은 글쓰기를 필생의 업으로 이끌어가게 하는 추동력이 되기도 하고 남루한 현실에서 초발심을 돌아보게 하며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기도 한다.

성품의 유장함과 웅숭깊음으로 천상 충청도 그것도 홍성 사람일 수밖에 없는 김희원 작가가 오래 품고 삭여온 이야기를 소설로 형상화하여 내놓았다. 충청남도 홍주(홍성), 그 고장의 우직하고 뜨겁고 넉넉한 자연과 기운, 예로부터의 전설까지 어우러져 탄생시킨 한 남자의 불꽃처럼 치열했던 삶과 그가 살았던 시대를 그려냄으로써 역사 속에 박제되어 있던 인물에 살과 피를 넣어주고, 그 내면의 뜨거움과 깊디깊은 어둠을 그려 생명을 주었다. 그렇게 최영 장군은 7백 년의 긴 시간을 건너 못다 한 원(願)과 한(恨)으로, 그가 살았던 혼란한 시대, 어지러운 세상과 함께 우리에게 찾아왔다. 그가 오직 운명으로 받아들여 살았던 무(武)란 무엇이었을까. 끝내 그를 사로잡고 놓지 않았던 무(武)에의 매혹과 열정, 무한한 어둠을 품은 뜨거움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이 소설은 한 작가의, 자신을 낳고 키워준 고향에 대한 헌사로도 읽힌다. 하늘 아래 그곳은 불세출의 영웅을 낳은 산하,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애옥살이들을 품어 안으며 작가의 곡진한 마음, 견결한 붓에 의해 특별하고 고유해진다.

― 오정희(소설가)

 

 

■ 출판사 리뷰

 

고려 말 최고의 무장으로서 평생 전장을 누비며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몸 바쳐 싸웠던 최영 장군의 불꽃처럼 치열했던 삶이 김희원 작가의 장편소설 『붉은 무덤』에 재현된다. 원의 간섭이 극에 달하고 민심은 흉흉했던 혼란한 시대, 자주 독립을 꿈꾸던 공민왕을 보필하면서 고국을 위협하는 왜구와 홍건적을 격퇴하고, 전국 각처의 반란을 평정하며 흔들리는 나라의 운명을 끝까지 지켜낸 최영 장군은 우리 역사에 길이 남아야 할 또 한 명의 위인이다. 불세출의 영웅을 낳은 고장이자 김희원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충청남도 홍주(홍성), 그 고장의 우직하고도 넉넉한 자연의 풍광과 범상치 않은 기운 그리고 예로부터 전해져온 전설까지 어우러져 탄생한 한 장군의 일대기가 이 책에 펼쳐진다.

대대로 문신을 배출했던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최영은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용맹스러웠으며 무예에 소질을 보였다. 고려 연안에 출몰하는 왜구를 진압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면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주 국가의 기틀을 세우기를 꿈꾸는 개혁군주 공민왕으로부터 신임을 얻게 된다. 북으로는 홍건적을, 남으로는 왜구를 물리치는 데 온 힘을 다하며 최영은 공민왕과 함께 고려의 부흥을 꿈꾸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이어진 원나라의 지배로 국운은 기울 대로 기울었으며, 친원파를 제거하고 내정 개혁을 꾀했던 공민왕은 노국대장공주가 죽은 이후로 절망에 빠져 혼군이 된다. 최영은 공민왕의 뒤를 이은 우왕을 옹위하면서 원명 교체기의 혼란기에 고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요동 정벌을 계획하지만, 시대의 흐름은 그의 편이 아니었고,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잡은 이성계 일파에게 패배한 최영은 고려의 사직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산화하고 말았다.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라는 명언을 남겼을 정도로, 최영 장군은 사욕을 탐하지 않는 강직한 무인이었다. 피와 살을 가르는 참혹한 전쟁터에서는 물러섬 없이 수많은 외적을 물리쳤고, 조정에서는 바른 정치를 펼치기 위해 노력했다. 작가는 “유구한 시간이 흘렀지만 오늘도 홍주인들은 금마총 앞에서 당신을 그리며 항상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홍주(홍성) 사람뿐만 아니라 이 작품을 통해 최영 장군의 소망과 열정을 각인하게 된 이들이라면 모두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 작품 속으로

 

소년 최영은 말을 타고 달리다, 활터를 찾아 철마산과 용봉산을 오르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힘이 온몸에서 불끈불끈 솟아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그 험한 바위산의 부글부글 끓는 잠재된 기운이 온통 최영에게 옮겨가는 듯했다. 어쩌면 용봉산이란 자연의 섭리가 소년을 무인으로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특히 소년 최영은 장군봉을 좋아했다. 턱까지 차오른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장군봉 바위에 털썩 걸터앉아, 미래의 늠름한 장군이 될 자신을 그려보곤 했다. 그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오래된 굽은 소나무들이, 마치 호위무사처럼 등 뒤로 소년무사를 맞이하며 서 있었다. 최영은 마치 용봉산의 모든 바위들이 장차 자신이 호령할 병사들인 듯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렇게 용봉산은 최영의 가슴속에 강인한 무사의 힘을 심어주고 있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 바위를 바라보던 소년은 변화무쌍한 그 장군봉을 닮아가는 듯 변해갔다. (24쪽)

 

서릿발 같은 최영의 호령과 동시에 화살이 빗발처럼 쏟아졌다. 마치 우박이 쏟아지듯. 역시 최영은 신궁이었다. 백발백중, 신궁답게 빛처럼 빨랐다. 최영의 화살은 바람이요, 적들은 바람 앞의 촛불에 불과했다.

화살 꽂히는 소리, 칼 부딪치는 금속성의 부르짖음. 죽어가는 병사의 마지막 절규만 해무처럼 짙푸른 바다를 온통 감쌌다. 이곳엔 오직 죽느냐, 죽이느냐 절체절명의 순간만 존재했다. 이 절명의 순간 이게 무슨 조화일까. 갑자기 북쪽에서 때아닌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세찬 바람이었다. 신명(身命)을 바친 탓일까. 기막힌 천우신조였다.

“배를 돌려라.”

어느 것이 적선인지 서로 분간할 수 없는 아수라장의 시간들. 앞으로 뒤로도 진퇴양난의 입장이 되자, 왜구들이 진률(震慄)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야아, 적들이 도망간다.”

누군가 소리쳤다.

서서히 퇴각하는 왜구들을 향해 최영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마지막 전진 명령을 내렸다.

“쥐새끼 한 마리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촘촘히 막아라!”

“빨리 후퇴하라!”

(68쪽)

 

살다 보면 오르막길도 오르고 굽은 길도 가야 한다. 최영은 한사코 그 길을 외면한 채 평생 무인의 길을 따라 직진만 고수하고 살았다. 모난 돌이 정에 맞는다고, 때로는 나아가고 때로는 수그리고, 중심을 잘 잡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게 인생이라고 했다. ‘나는 순로(順路)를 두고 무엇 때문에 역로(逆路)만 찾아다니며 고생을 사서 했을까’ 사람들은 대부분 나라의 녹을 먹는 재상 자리에 오르면 권력, 재물, 안목을 키우고 세상살이를 영악하게 익혀나갔다. 그 길만이 부귀영화를 보장해준다는 듯. 그러나 최영은 오로지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선친의 유훈만 가슴 깊이 품고 살았다. 설사 그 삶이 빈한해도 유훈을 동아줄처럼 붙들고 평생 분수 넘는 욕심은 품어보지 않았다.

단 한 번 큰 욕심을 부렸다. 요동 정벌은 오랜 욕망이자 숙원이었다. 끝내 버릴 수도 씹어 뱉을 수도 없는 욕심이었다. 마지막 피 한 방울도 왕조를 위해 쓰겠다던 백전백승의 장수 최영. 그가 풀어내야 할 태산 같은 짐이자 책무였다. (287쪽)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