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시)
오늘의 지층
조숙향 지음|푸른사상 시선 166|128×205×7mm|128쪽|10,000원
ISBN 979-11-308-1972-3 03810 | 2022.11.25
■ 시집 소개
혹독한 시간을 이겨내며 날아오르는
한 마리의 나비 같은 시편
조숙향 시인의 시집 『오늘의 지층』이 <푸른사상 시선 166>로 출간되었다. 일상적 삶의 무게에 짓눌린 슬픔과 상실감의 정서가 시집의 저변을 이루고 있지만, 그것에 매몰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 마리의 나비가 날아오르듯 새로운 삶의 방향을 모색하고 가능성을 추구하고 있어 깊은 감동을 준다.
■ 시인 소개
조숙향
강릉 자조와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스무 살쯤 강릉을 떠났고, 울산에서 살면서 현재 독서 교육을 하고 있다. 2003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시집 『도둑고양이 되기』, 동인지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등이 있다. 울산작가상을 받았다.
■ 목차
제1부
밤나무 그늘에 앉아 / 오늘의 지층 / 그림자 / 그 밤의 텍스트 / 청춘 / 침대에 눕다 말고 / 꽃 핀 날 / 소식 / 여기, 서성이다 / 낯선 아침 / 검은 것이 내려앉는 오후 / 지갑 / 놀이터 / 연극이 끝나면
제2부
코로나19 / 오동꽃이 지고 있다 / 선택된 장례식 / 발설 / 그 흔한 복은 다 어디로 갔을까 / 그해 여름, 처용 / 어떤 기숙사 / 그 겨울의 삽화 / 요양원이 사는 법 / 섬마을 영순이 / 뇌물을 받는다 / 휠체어를 밀고 가는 저녁 / 서로의 풍경 / I have a dream
제3부
부석 / 어떤 부부 / 맨드라미 붉게 피다 / 수신 중 / 그날 토끼는 죽었다 / 임종 / 애증 / 잠들 때까지 / 두텁게 다가오는 것 / 홍도의 밤 / 가상현실 / 안개 아침 / 둥근 가을 / 월식
제4부
어떤 날은 / 강물에 갇혀 / 그녀의 방 / 한낮, 냄새에 취하다 / 일상이 낀 열쇠 / 희망 사항은 희망일 뿐 / 겨울 산책길 / 나르시즘 / 꿈 이야기 / 처용과 물길 / 환상이 깨질 때 / 아직도 땡삐가 / 연결고리 / 접속
작품 해설 : 차지위물화, 그 아날로지의 사유-이병국
■ '시인의 말' 중에서
가볍게 살고 싶었다.
이 기회를 잘 살았노라 말할 수 있도록
■ 추천의 글
조숙향 시인은 한 마리의 나비가 되어 붉은 저녁 쪽으로 가고 있다. 가는 동안 길이 사라지기도 하고 어디쯤에서 길을 잘못 든 것 같기도 해 현기증을 느낀다. 길이 흐리고 어둡고, 허공이 커다랗게 다가오기도 한다. 제 그림자의 상처를 응시하고, 또 다른 나비의 죽음을 만나기도 한다. 그렇기에 나비는 자신을 “이해하는 것”에도, “세상을 이해하는 것”에도, “신을 이해하는 것”(「두텁게 다가오는 것-팡세」)에도 어려움을 갖는다. 하지만 나비는 되돌아가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게 할 수 없기에 견뎌내야 한다고 중얼중얼 혼잣말하는 버릇이 생기고, 이마에 땀방울이 벚꽃처럼 피기도 한다. 허공의 길을 끌어당기는 나비는 상처를 입은 채 언덕 위에 불끈 솟아 있는 나무들을 바라본다. 바람이 지나간 길에 햇살이 푸른 것도 발견한다.
― 맹문재(문학평론가, 안양대 교수)
■ 작품 세계
조숙향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을 펼친다. 첫 시를 읽기 시작해서 마지막 시에 이르면 문득 장자(莊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을 떠올리게 되는데 ‘나비’와 관련된 시편들이 유독 눈에 들어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꿈에 나비가 되어 만족스럽게 날아다니다가 꿈이 깨어 스스로를 나비가 된 장주인지, 장주가 된 나비인지 생각하다 그 구별을 무의미하게 여기곤 ‘차지위물화(此之謂物化)’, 즉 만물이 하나 된 물아일체를 깨닫는 것을 조숙향 시인의 시와 나란히 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오독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적 주체가 존재의 바깥에서 나비를 바라보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모호한 움직임에 집중하면서 분명한 감각으로 외부 세계와 그것이 재현하는 바를 존재의 안쪽으로 끌어오는 조숙향 시인의 독특한 사유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 너머로 “내가/먼지인지 구름인지 바람인지/새소리인지”(「접속」) 그 구분이 지닌 불가지성에 관한 성찰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는 ‘나는 누구인가’ 혹은 ‘존재의 삶이란 무엇인가’ 등 실존적 질문으로 이어지고 시 속에 재현된 경험과 그것을 둘러싼 원체험의 질료로 전유되어 흥미로운 시적 구조물을 축조한다. 이때의 원체험은 유년 시절에 국한되지 않으며 삶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경험되고 누적된 무의식적 침투로 의미화된다. (중략)
조숙향 시인의 시편들은 나비와 ‘나’의 아날로지가 불러일으키는 감응을 원체험으로 삼아 “허공이 치명적인 공허라는 것을/온몸으로 받아들였을 즈음/한 마리 자나방”(「연결고리」)이 되어 날아오르는 것처럼, 삶의 유한성을 뛰어넘어 무한한 가능성을 펼쳐 보이는 시적 경이를 현시하는 동시에 형이상학적 비전을 모색하며 새로운 시적 사유의 변곡점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저 순결한 감응의 밀도가 우리 삶의 곡절을 얼마나 위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삶의 무의미와 허무 그리고 절망과 고통에 대한 통절한 자각을 거쳐온 것이기에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가능성의 실존적 울림으로 우리를 충만하게 할 것이다.
― 이병국(시인, 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오늘의 지층
1
너에게서 나에게로 가는 저녁
경계가 지워지는 하늘
신선한 아침에 빛났던
너의 눈동자에 모래바람이 분다
너무 많은 밝음에서 너무 흔한 어둠으로
서로를 통과하며
흐린 고요를 남긴다
짝을 잃은
풍산개의 풀린 눈빛에 저녁이 담겨 있다
2
흰나비 떼가 날아오른다
오늘의 일기 앞에서
하늘을 물들이는 낯익은 새소리
철 지난 진달래 꽃잎
웃자란 새싹들
버석거리는 소나무 입술
쉴 곳을 잃어버린 바람이 내 뒤로 사라진다
먼 산에 하얗게 얼음이 덮인다
여기, 서성이다
1
여기, 겨울 아침 흔들며 흘러가는 물소리가 있다
물소리에 섞여 자갈은 굴러가고
강물에 발 담그고 우두커니 서 있는 잿빛 두루미도 있다
강 가장자리에서 반짝이는 얼음빛줄기와
강가를 지키는 댓잎에 걸린 햇살이 시리다
2
여기, 어둠이 번져 얼룩진 유리창에 손을 대면
불 꺼진 거실에서 맴도는 정적이 숨 쉰다
눈 감으면 소리 없이 움직이는 시계 초침 보이고
실금 간 접시에 담긴 타버린 생선이
깨진 믿음과 닫힌 마음 사이에서 일렁거린다
3
오래된 침식과 세월의 뼈, 또는 그 뼈와 강물의 파동 사이
나는 여기 머물고 또 흐른다
접속
나비 한 마리가 날아온다
내 몸에 붙는다
더듬이를 까닥까닥
내가 무엇인지 확인한다
걸음을 당기자
내 주변을 샅샅이 탐색하다가
내가 지나온 오솔길 상수리 나뭇잎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나비는 내가
먼지인지 구름인지 바람인지
새소리인지 알아챘을까
나는 마스크를 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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