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산문)
부드러움의 미덕
김재은, 김학주, 안삼환, 이상옥, 이상일, 이익섭, 장경렬, 정재서, 정진홍, 곽광수, 김경동, 김명렬 지음
숙맥 15|153×224×18mm|288쪽|22,000원
ISBN 979-11-308-1974-7 03810 | 2022.11.28
■ 도서 소개
행복을 나누며 부드러운 사회로 나아가는 길
남풍회의 합동 문집인 숙맥 15집 『부드러움의 미덕』이 푸른사상사에서 출간되었다. 수필을 중심으로 예술평론, 논평, 서평, 여행기 등 이 책에 실린 자유롭고 폭넓은 주제의 글들에는 원로 교수들이 그간 쌓아온 학문적 지식과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인생길을 앞서 걸으면서 터득한 필자들의 삶에 대한 통찰과 깊은 사유를 통해 부드러운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소망이 새겨진 글들이다.
■ 저자 소개(전공 및 대학)
김재은 발달심리학 이화여자대학교
김학주 중국고전문학 서울대학교
안삼환 독문학 서울대학교
이상옥 영미문학 서울대학교
이상일 독문학 성균관대학교
이익섭 국어학 서울대학교
장경렬 영문학 서울대학교
정재서 중국고전문학 이화여자대학교
정진홍 종교학 서울대학교
곽광수 불문학 서울대학교
김경동 사회학 서울대학교
김명렬 영문학 서울대학교
■ 목차
책머리에
김재은
한국인은 가슴에 불을 안고 산다
떼창과 팍스 문두스
김학주
내 자신의 산책을 둘러보면서
잠참(岑參)의 시 「등고업성(登古鄴城)」을 접하고
안삼환
손상익하(損上益下)의 정신
한 서양학도의 늦깎이 ‘귀향’ 메모
해공 선생과 국민대, 그리고 ‘국민의 대학’
겸괘(謙卦)
이상옥
첫눈에 반하기-3제(三題)
평등주의 허상
참나무가 없고 들국화도 없네
기어이 꽃을 피워 열매 맺으리
생강나무와 얼레지에 밴 사연
이상일
수필거리 찾기
한국발 창작발레 <인어공주>의 설화 담론
70년대 한국 창작무용 사조의 형성기
이익섭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개굴개굴 개구리 목청도 좋다
호시무라 게이코
장경렬
미라보 다리 아래로 센강이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흐르네
환란의 시대, 이 시대의 시인과 시의 역할
어머니 또는 엄마라는 마법의 말
정재서
주술적 믿음에 기대고 싶은 시대
유토피아 환상 좇는 인류 열망
성인·신선·부처는 시대의 산물
서평들
정진홍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 순례기
곽광수
프랑스 유감 IV-9
김경동
부드러움의 미덕
김명렬
조병화 선생님
하베아스 코르푸스
건란 (2)
기도
비창 소나타
■ 책머리에 중에서
수필집 동인 『숙맥』은 신변잡기식 수필집 동인 활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처럼 공연평론도 제출받고 시도 실리고 소설이나 희곡 단편(斷片)도 실릴 수 있으며 일기나 여행기도 마다하지 않는 폭넓은 언론 미디어라는 이야기이다. 그다음부터 동인지 숙맥은 나의 독일문학과 현대연극 외곬 글쓰기의 숨통을 틔워 주어서 내 신변잡기, 일상 이야기도 들려 드리고 좀 진지하게 연극이나 무용 평론도 담고 낙수도 거둬들이며 낯선 아이디어도 맡겨 놓는 편리한 광장이 되었다. 그래서 이번 호에는 전부터 풀리지 않던 시의 공동 작업 가능성을 타진하듯 일인 단독 작업인 평론의 공동 작업 시도도 손대어 본다. 그런 것이 숙맥 동인지니까 가능한 것이다.
말은 그렇게 해도 숙맥 동인지 머리말을 처음 쓰면서 반드시 동인들 모두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지 모른다는 기우도 있다. 처음 동인지를 내자면서 대학의 전문성에 지친 서울대학 문리대 어문학과 출신들이 마음 편하게 주변 잡기 쓰듯 수필집을 내고 싶다던 중론이, 말하자면 세월이 가면서 나이 든 동인도 떠나고 새로 몇몇 동인들이 참여하게 되고 수필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장르의 글쓰기로 변모되어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동인들이 여러 글쓰기의 종합·통합 형식이 싫어서 차라리 순수하게 수필 ‘문학’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그런 목소리들이 괴어들면서 『숙맥』 동인지도 어느 사이에 15집을 내게 되었다.
(이상일)
■ 책 속으로
우리 한국인들은 이런 분노의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방출하는 방법을 은연중 모색해 왔었다. 원래 정신역학적으로 보면, 행복에 겨우면 새로운 창조와 혁신은 불가능하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예능(entertainment)이었다. 예능은 분노 분출의 가장 효과적이고 긍정적인 통로의 하나이다. (김재은, 「한국인은 가슴에 불을 안고 산다」, 24쪽)
조조는 중국 문학사상 올바른 문인 의식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최초의 시인이다. 여기에 그의 아들 문제(文帝) 조비(曹丕, 187~226)와 조식(曹植, 192~232) 및 그들을 따르던 문인들이 가세하여 동한 말 헌제(獻帝)의 건안(建安) 연간(196~219)에 이른바 건안문학을 발전시키어 중국의 전통 문학이 이루어지며 발전하게 된다. 따라서 중국의 전통 문학은 조조로부터 이루어져 발전하였다고 할 수 있다. (김학주, 「잠참(岑參)의 시 「등고업성(登古鄴城)」을 접하고」, 46쪽)
태산 같은 도량을 가슴에 품은 채 흙처럼 소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괜히 이웃을 원망할 필요도 없고,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성낼 필요도 없을 것이며, 불필요한 재화를 탐하다가 소유의 덫에 걸려 헛된 발버둥을 칠 필요도 없을 테니, 안분지족(安分知足)이 거기에 이미 갖추어져 있는 까닭이리라. (안삼환, 「겸괘(謙卦)」, 86쪽)
평등 혹은 평등주의는 모든 정치이념이 표방하는 최고의 가치이고 그 자체로 흠잡을 데가 없다. 그래서 인간은 평등을 원하고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난다.”고 외치지만 그 본성이 이기적이고 교활하고 간악해서 평등을 향한 소망을 물거품으로 만든다. 근자에 우리 사회를 크게 흔들었던 사건들이 그 점을 거듭 확인해 준다. 그러므로 평등주의 이념이 궁극적으로 성취하고자 하는 사회는 하나의 유토피아요 허상일 뿐 결코 실현될 수 없다.
(이상옥, 「평등주의 허상」, 101쪽)
당시 1970년대는 한국 현대 무용사의 관점으로 봐서 중대한 전환기다. 국가 문화정책이 수립 공포되고 문화부 관료 행정직이 예술영역 현장에 깊이 개입한다. 무용의 해, 대한민국 무용제의 개최, 창작무용 대극장 수렴… 거기에 대학무용과의 확대 설립과 전문 무용수들의 많은 배출, 대학 기반의 동인 무용단들의 창립, 거기에다 무용과 교수세(勢)와 무용학원장들이 지켜 온 개화기 이래의 신무용 세대 간의 잠재적 갈등도 무시할 수 없다.
(이상일, 「70년대 한국 창작무용 사조의 형성기」, 126~127쪽)
그러고 보면 작은 것이 위대하다. 과연 한 알의 밀알이 큰 밀밭을 이룬다. 육당이 당장은 맹꽁이 한 마리의 외로운 울음이지만 그것이 온 들판을 채우는 개구리 소리를 이끌어 내리라고 외쳤을 때의 그 외침은 막막하게 막힌 세상에서 희망이 안 보여 더욱 크게 울부짖은 애절한 기도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기도는 예견이기도 하였던 것일까. 그 맹꽁이 소리는 모두를 불러일으켰다. 지금 우리는 너도나도 개굴개굴 개구리 목청도 좋지 않은가.
(이익섭, 「개굴개굴 개구리 목청도 좋다」, 147쪽)
타고르처럼 맑은 긍정의 마음을 지닌 시인과 그의 시가 우리 곁에 존재하는 한, 그리고 이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이들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는 한, 우리는 누구도 외로울 수 없다. 우리는 마음과 마음을 이어 주는 시인의 그의 아름다운 시를 통해 ‘하나’가 될 수 있기에. 우리는 모두가 외롭지만 물리적인 외로움을 뛰어넘어 마음으로 ‘하나’가 될 수 있기에.
(장경렬, 「환란의 시대, 이 시대의 시인과 시의 역할」, 167쪽)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재산의 많고 적음으로 계층을 구분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으나 아주 먼 고대에는 정신적 수준 곧 영성(靈性)의 등급에 따라 계급이 정해졌다. 가령 문명의 초기 단계에서는 제사장이 모든 것을 지배하지 않았던가? 중국 최초의 정복왕조인 은나라의 임금은 사제와 통치자를 겸한 무군(巫君, Shaman King)이었다. 동양사회에서의 사-농-공-상의 신분 서열도 대체로 이런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정재서, 「성인·신선·부처는 시대의 산물」, 190쪽)
삶이란 ‘과정’임을 되생각하게 해 줍니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성숙하고 퇴락하고 죽음에 이르는, 잠시도 머물지 않는 흐름의 이음이란 사실을 조망하게 해 주는 거죠. 머무는 것 없음, 정지하는 것 없음, 무상함이 삶의 본연임 등이 이때 되살핌에서 솟는 두드러진 터득일 겁니다.
(정진홍,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 순례기」, 222쪽)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여느 때처럼 서로의 암묵의 합의로 정해졌다고 할 늦은 잠자리 시간에 그가 들어왔고, 우리들은 각각 달리 힘들인 삶으로 인해 잠에 떨어졌다. 그런데… 지금 이야기하려고 하는 사태가 벌어진 때는, 창문이 밝은 달빛으로 훤하던 것이 곧 알게 될 이유로 너무나 뚜렷이 기억되므로, 밤 시간이 한참 깊어진 시점이었을 것 같다. 나는 갑자기 깊은 잠에서 소스라쳐 깨어났다. (곽광수, 「프랑스 유감 IV-9」, 236쪽)
공자도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己所不欲勿施 於人).”[『논어』]고 가르쳤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데 이와 같은 진정성을 전제하고 사심을 버린 상태(狀)에서 배려하고 함께 아파하고 더불어 행복을 나누는 부드러운 마음가짐이야말로 사람 사는 세상에서 부드러움의 극치가 아닌가 싶다. (김경동, 「부드러움의 미덕」, 258쪽)
크고 튼실한 꽃 여섯 송이가 해맑은 인사를 건넨다. 아, 그리고 두 자 가웃 꼿꼿이 하늘로 치솟은 푸른 잎들의 장쾌한 기상이 나의 미약한 기맥을 강하게 자극한다. 그 잎들에서 뿜어 나오는 왕성한 생명력은 쇠잔한 내 가슴에 찌릿하도록 세찬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렇게 네 번째나 꽃을 피워 나의 귀환을 축복해 주는 건란의 기를 받았으니 발병하기 전보다 더 강건한 기력을 차릴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든다. (김명렬, 「건란 (2)」, 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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