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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간행도서

전혜성 소설집, <백 년의 민들레>

by 푸른사상 2022. 8. 31.

 

분류--문학(소설)

 

백 년의 민들레

 

전혜성 지음|푸른사상 소설선 37|146×210×14mm|224쪽

17,000원|ISBN 979-11-308-1940-2 03810 | 2022.8.29

 

 

 

■ 도서 소개

 

1세대 여성작가의 희망과 좌절과 욕망의 기록

 

전혜성 작가의 소설집 『백 년의 민들레』가 <푸른사상 소설선 37>로 출간되었다. 억압적인 가부장제에 저항하며 여성해방을 부르짖은 한국 최초의 여성 소설가인 김명순의 삶을 그려낸 1편의 중편과 4편의 단편을 수록하고 있다. 여성으로서 겪어야 하는 가족 문제, 경제 문제, 질병 문제, 정치 문제 등이 작가의 사회적 상상력과 소설적 상상력에 의해 새롭게 조명된다.

 

 

■ 작가 소개

 

전혜성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5학년 때 펄 벅의 『대지』를 읽고 소설가의 꿈을 키웠다. 2013년 『문예운동』 소설 부문 신인상을 받으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펴낸 책으로는 장편소설 『강변의 자전거』와 소설집 『베짱이를 만나는 시간』이 있다. 2021년 단편 「해바라기」로 『울산문학』에서 시상하는 올해의 작품상을 받았다. 소설을 쓰는 일을 딸과의 대화로 삼아 애정을 쏟고 있다.

 

 

■ 목차

 

작가의 말

 

백 년의 민들레 여성소설의 기원

M

기억의 이분법

해수

해바라기

 

작품 해설상호텍스트성의 소설 기법_송명희

 

 

■ '작가의 말' 중에서

 

온종일 돌아다녀도 흙을 밟기 어려운 요즘, 자연 속 민들레를 보려 해도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가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관심 갖고 찾아보려는 이가 드물 뿐이지 민들레는 들판에 그대로 그렇게 예쁘게 피어 있다. 그녀의 가치도 이와 같을까. 쉽게 눈에 띄지 않고 찾아보려면 번거롭지만, 그녀가 꽃피운 문학, 서정과 민족 해방을 노래한 시 100여 편과 자유연애를 가부장제의 모순을 고발한 소설 20여 편과 나머지 평론 10여 편, 희곡과 번역시·번역소설들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으며 누군가의 관심으로 그 가치가 빛날 것이라 본다.

백여 년을 앞서간 그녀는 망양초라는 필명처럼 맑고 감성적인 영혼을 가졌다. 최초라는 멍에로 외로웠고, 시대적 상황 때문에 어려웠고, 가난과 비방에 시달렸고, 비판에 혹사당했다. 기본적인 삶에 대한 보장도, 화려하게 꽃피운 문학에 대한 인정과 평가를 받지도 못하고. 사람들에게 잊혀진 채 낯선 타국의 허허들판에서 풀꽃이 되었다. 겨우 1980년대 들어 애정을 가진 학자에 의해 작품이 조금씩 발굴되다가 2010년에 와서야 비로소 관심을 가진 학자에 의해 그녀의 작품집이 두껍게 묶어졌다. 그녀는 우리나라가 지난 한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 초라하게 병사했고, 매장지가 어딘지도 알 수 없다.

온고지신이 떠오른다. 백 년 전 이야기는 애써 찾지 않으면 화석화되기 쉽다. 뿌리를 찾아보고 나아간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김명순과 초석이 된 그 시대의 여성 사회 활동가들에게 여성 소설가로서 감사할 따름이다.

이번이 세 번째 소설집 출간이다. 중편 「백 년의 민들레-여성소설의 기원」과 함께 「M」, 「기억의 이분법」, 「해수」, 「해바라기」 단편 네 편을 더해 한 권으로 묶는다.

 

 

■ 작품 세계

 

전혜성의 소설에서 상호텍스트성은 중편소설 「백 년의 민들레-여성소설의 기원」에서 특징적으로 발견되는 기법이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 근대문학사에서 최초로 등단한 여성 작가 김명순(1896~1951)의 전기적 사실과 그녀가 쓴 작품들을 인용하면서 소설 쓰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특이한 소설이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사실에 기반한 김명순의 전기는 아니며, 허구로서의 소설임에 분명하다. 왜냐하면 김명순의 전기적 사실에 어느 정도 기초해 있지만 나머지는 김명순이 쓴 소설의 인용에다 작가 전혜성의 소설적 상상력이 결합되어 가공의 인위적 세계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실제 모델이 있는 소설의 경우에 일반적으로는 전기적 사실에다 작가의 상상력을 결합시켜 쓴다. 하지만 「백 년의 민들레-여성소설의 기원」의 경우는 실제 모델인 작가의 전기적 사실에다 작가가 쓴 작품들을 편집, 인용하며 인물과 사건들을 구성하고 있다.

그런데 김명순의 전기적 삶을 백 퍼센트 사실 그대로 인용한 것이 아니며, 인용한 김명순의 소설도 일정 부분 작가의 경험을 반영하고는 있지만 자전적 작품들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인용하는 방식에서도 작가 전혜성의 고쳐 쓰기에 의한 변형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백 년의 민들레-여성소설의 기원」은 허구의 텍스트임에 분명하다. 작가 김명순, 김명순의 작품들, 전혜성 작가의 상상력이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뒤얽혀 있는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나는 내가 읽고 있는 것이 김명순의 전기인가, 아니면 전혜성의 소설인가 분간할 수 없는 착각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중략)

「백 년의 민들레-여성소설의 기원」은 우리 근대문학사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여성 작가 1세대인 김명순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녀의 삶과 문학을 상상적으로 복원한 이야기다. 문학사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여성 작가의 삶과 문학을 가시적으로 복원시키는 것이 여성문학의 과제라고 할 때에 전혜성은 여성문학이 지향하는 목표에 철저한 소설 쓰기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이 작품은 김별아의 장편소설 『탄실』(2016)과 더불어 여성 작가 김명순의 삶을 복원시킨 소설로 기록될 것이다.

― 송명희(문학평론가·부경대 명예교수)

 

 

■ 출판사 리뷰

 

일제강점기 시대, 여성들의 사회활동에 제한이 있었음에도 김일엽, 나혜석 등과 함께 이른바 신여성으로 불리며 시와 소설, 산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해온 작가가 있었다. 바로 봉건적 가부장제에 저항하며 여성해방을 부르짖은 선구자이자 한국 최초의 여성 소설가인 김명순이다. 남성 작가가 주류를 이루었던 문단에서 배척되고, 악의적인 루머에 시달렸던 그녀는 척박한 땅에서 피어난 민들레와 같았다. 김명순의 전기적 삶에 소설적 상상력을 가미하여 그녀의 생애와 문학을 엮어낸 것이 이 소설집의 표제작인 중편 「백 년의 민들레」이다.

김명순은 서울 진명여학교를 졸업한 뒤 1917년 잡지 『청춘(靑春)』의 현상소설에 응모한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가 당선되어 탄실, 망양초 등의 필명으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으며 1925년 창작집 『생명의 과실』을 간행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사회는 김명순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도쿄에서 유학하던 도중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기생의 딸이라는 출신이 주홍글씨가 되어 헤픈 여자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고, 남성 문인들의 끊임없는 인격살해와 괴롭힘, 지독한 추문이 끊임없이 그녀를 따라다녔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남성 중심의 문단에서 꿋꿋하게 대항하며 김명순은 서정과 민족 해방을 노래한 시 100여 편과 가부장제의 모순을 고발한 소설 20여 편, 그 외에 평론과 희곡, 번역시 등을 발표했다. 그러나 평생 가난과 고통 속에 시달리던 그녀는 결국 일본의 한 정신병원에서 삶을 마감하고 만다.

근대문학사에서 철저하게 외면받고 배제되었던 그녀는 세상의 불평등과 불합리에 침묵하지 않고 문학으로써 해방과 자유를 꿈꿔온 것이다. 시대를 앞서나가며 수많은 작품을 꽃피운 그녀의 문학성과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는 요즘, 이 소설을 반드시 읽어야 할 이유를 깨닫는다.

중편 「백 년의 민들레-여성소설의 기원」 이외에도 이번 소설집에는 네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가족 제도에서 소외된 노년의 이야기를 담은 「해바라기」,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희생당한 한 고교생의 후일담인 「기억의 이분법」, 우울증에 걸린 여성의 이야기인 「M」, 다단계에 빠진 여성의 이야기인 「해수」가 주목된다.

 

 

■ 작품 속으로

 

“애인의 선물, 생명의 과실…….”

책을 어루만지는 손길이 애절했다. 오래전에 써놓고 발표하지 않은 원고들도 하나씩하나씩 훑어보았다. 한 장 두 장 원고를 넘기던 그녀는 마지막 소설이 되고 만 「모르는 사람같이」에서 시선을 멈췄다. 짧지만 강렬했던 글, 가슴속이 답답하다가 먹먹하기를 반복했다. 위장이 뻑뻑할 만큼 거칠게 먹은 것도 없는데, 왜 이럴까. 유순과의 이별을 떠올린 때문일까. 파릇파릇 봄날 새싹처럼 설렘으로 만나고 붉그레 물드는 저녁노을처럼 그리움만 한가득 안겨주고 떠난 사람.

‘바다 건너 오기 전날, 성균관 앞 포플러나무 아래서 바스락거리던 낙엽이 으깨지도록 기다렸지. 도덕의 굴레로 단절된 그간의 감정을 어떻게 풀 수만 있다면 다시 봄날의 속살처럼 설레던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잔뜩 부풀어서는.’

(「백 년의 민들레」, 14~15쪽)

 

탄실이 처음으로 시도한 소설의 주제는 모순된 가부장주의와 남성우월주의가 낳은 폐단에 관한 내용이었다. 처음 써보는 이런 주제의 소설이 자신의 운명을 바꿔놓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고, 소설 신인상 공모전에 당선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식과 내용이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것은 일찍부터 한문을 배우고 고전소설을 읽어오면서 그 진부한 형식을 알고 있기도 했지만, 도쿄 유학 시절에 배우고 듣고, 세계 여러 나라 소설들을 읽어온 영향이 더 컸다.

(「백 년의 민들레」, 37쪽)

 

두 경찰관은 초죽음이 된 상우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들은 사람을 다루는 게 아니라 마치 도살장에 끌려온 짐승을 다루는 것 같았다. 생각도 말아라. 억울해도 할 수 없다. 의심할 행동을 하고, 너희가 데모대에 가까이 있었던 것이 잘못이다. 자초지종 들어보지도 않고, 왜 데모하는 데 갔느냐, 우연히 그냥 구경하다가 휩쓸렸다, 그런 따위의 말은 통하지 않았을뿐더러, 설령 말을 했어도 그것은 그들의 목적에 맞지 않아 데모꾼들의 쓸데없는 변명에 불과했다. 상우를 바닥에 내팽개친 그는

“데모하다 잡혀온 놈들은 법대로가 없다!”

라고 소리치고는 다음 경찰이 처리하라는 신호를 남기고 나가버렸다.

(「기억의 이분법」, 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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