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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간행도서

박정선 장편소설, <꽃들은 말이 없다>

by 푸른사상 2022. 8. 12.

 

분류--문학(소설)

 

꽃들은 말이 없다

 

박정선 지음|푸른사상 소설선 36|146×210×16 mm|224쪽

17,000원|ISBN 979-11-308-1937-2 03810 | 2022.8.10

 

 

 

■ 도서 소개

 

아직 피어나지 못한 꽃들을 덮친 거대한 파도

 

박정선 작가의 장편소설 『꽃들은 말이 없다』가 <푸른사상 소설선 36>로 출간되었다. 맹골수도를 지나던 대형 여객선이 바닷속으로 침몰하여 수백 명의 희생자를 낸 그날을 작가는 잊지 못한다. 자본과 권력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인간의 존엄이 파괴당하고 말았던 냉혹한 현실 속에서 피우지 못한 한 떨기 꽃들과 같은 아이들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 작가 소개

 

박정선

소설가, 시인, 문학평론가. 숙명여대 대학원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영남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로 『백 년 동안의 침묵』 『동해 아리랑』 『가을의 유머』 『유산』 『순국』 등이, 소설집으로 『청춘예찬 시대는 끝났다』 외 4권. 시집으로 『바람 부는 날엔 그냥 집으로 갈 수 없다』 외 8권, 서사시집으로 『독도는 말한다』 『뿌리』, 에세이집으로 『고독은 열정을 창출한다』, 평론 및 비평집으로 ?존재와 사유?, 『타고르의 문학과 사상 그리고 혁명성』 『인간에 대한 질문-손창섭론』 『사유와 미학』 『해방기 소설론』 등이 있다. 심훈문학상, 영남일보문학상, 천강문학상, 부산문학상 대상, 김만중문학상, 해양문학대상(해양문화재단), 한국해양문학상대상, 아라홍련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예창작, 인문학 강사로 출강하고 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우리의 기억은 그날로부터 멀어졌다. 이대로 살아도 좋을까? 이는 분명 우리가 안고 있는 부조리한 현상이며 불합리한 의식이다. 따라서 이런 문제는 작가에게 언어로 행동할 것을 종용하게 되고,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것을 사명으로 받아들이게 마련이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을 쓰면서 행복하지는 못했지만 부족하나마 작가로서 소명감을 의식했다는 생각은 조금 들었다.

앞으로도 지구는 쉬지 않고 도는 불변의 진리를 수행할 것이다. 지구처럼 우리의 삶도 쉼 없이 돌고 돌면서 사건이 발생하고 되풀이될 것이다. 그리고 불행은 아무도 원하지 않고, 아무도 선택하지 않지만, 누구도 피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므로 함께 행복하기 위해, 함께 행복하기를 빌면서 슬픔의 노래를 망각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엘리엇의 시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황무지」)처럼 잔인한 4월이 다시 잠든 뿌리를 깨워 향기로운 라일락을 피워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선사시대 동굴벽화처럼 우리 모두의 가슴에 새겨져 있는 그날의 슬픔은 그들의 슬픔만으로 끝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존엄해야 하기 때문이다.

졸지에 멀리 떠나버린 그들은 이제 성인의 나이를 먹었다. 무사히 여행을 다녀왔다면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 당당한 사회인이 되어 우리와 함께 인생을 논하며 삶을 고민하며 오늘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영원한 10대의 소년 소녀로 하늘나라 별이 되었다. 오늘 밤도 어느 하늘에선가 어둡고 험한 이 세상을 비추고 있을 것이다. 꽃들은 말이 없다. 말이 없는 그들 앞에 조용히 이 작품을 바친다.

 

 

■ 출판사 리뷰

 

2014년 4월 16일, 제주로 향하던 대형 여객선이 진도 인근 해상에서 전복되어 수학여행을 떠나던 학생들을 비롯해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사고 당시 정부의 부실한 대응, 해경의 소극적인 구조, 언론의 무책임한 오보 등은 전 국민을 분노와 비탄에 빠뜨렸다. 참사가 벌어진 그날, 바다를 가린 자욱한 안개처럼 진실은 깊은 바닷속으로 수장되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꿈을 향해 날개를 펼치기도 전에 거대한 파도에 희생된 아이들을 떠올리며, 박정선 작가는 이 소설을 썼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나’는 제사에 참석하러 고향 동거차도에 내려왔다가 뱃일하는 아버지를 돕기 위해 바다에 나가, 바다 폭포라고 불릴 정도로 물살이 센 맹골수에 휩쓸려 전복되는 여객선을 발견한다. 어선들이 달려들어 구조하려 했지만, 선장은 승객을 두고 무책임하게 탈출하고 구조대의 초동 대처 실패로 인해 여객선에 갇힌 수백 명의 목숨은 저 깊고 어두운 바닷속으로 침몰하고 말았다. 고향 땅에서, 그것도 바로 눈앞에서 사건을 목격하고 서울로 돌아온 ‘나’는 정치적 이념에 얽매여 유가족을 향해 비난과 공격을 퍼붓는 직장 상사와 분위기에 휩쓸려 이에 동조하는 동료들, 그에 맞서 싸우는 젊은 직원 이민구 사이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사건 발생 8년이 지난 지금도 ‘세월호’라는 이름은 우리 모두에게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겼다. 진실 공방은 끝없이 계속되고 있고, 진상 규명을 위해 고군분투한 유가족들은 ‘아직도 세월호 이야기냐’며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업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한 자본주의와 그것을 이끈 정치 권력이 참사의 원인이 되었다는 학계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자본과 권력 앞에 인간의 존엄이 파괴당한 탓에 이제 막 꿈을 향해 발돋움하는 어린 청소년들이 하늘나라의 별이 되고야 만 것이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여전히 차가운 바닷속에서 떨고 있을 꽃 같은 아이들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아픔을 시인들은 당시 시로 묶어냈다. 그러나 소설은 많지 않았다. 무려 8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에야 ?꽃들은 말이 없다?라는 작품이 발표되었다. 왜 그럴까, 소설이 왜 이렇게 늦게야 나왔을까? 작가는 너무 아파 차마 발표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끝내 작가적 소명 의식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고 했는데, 작가의 그 소명 의식은 곧 우리 모두의 소명 의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작품 속으로

 

우리 배가 현장에 도착하자 해경 헬기가 날아오고 있었다. 곧이어 해경 경비정이 도착하고, 여기저기서 어선들이 줄지어 달려오기 시작했다. 가까이에서 바라본 여객선은 거대한 배였다. 배는 벌써 좌현으로 15도 이상 기울었고, 우현은 물속에 있어야 할 흘수선 아래까지 밑창이 드러난 상태였다. 그리고 기울어진 쪽은 2층까지 물에 잠겨 있었다. 어마어마한 여객선이니만큼 배에서 사람들이 떼를 지어 쏟아져 나올 것 같은데 그러지 않았다. 다만 바다 위에서 구명조끼를 입은 사람들 수십 명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빨리! 빨리!”

아버지가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을 빨리 건져 올리라고 소리쳤다. 아버지는 마치 전장에서 진두지휘하는 장수 같았다.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우리는 물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에게 구명줄을 던졌다.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은 한곳에 있지 않고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여객선 바로 밑에 사람들이 더 많았다. 아버지는 그곳으로 배를 몰 것을 지시했다. 박 씨 아저씨가 서둘러 배를 여객선 가까이 접근하려고 시도했다. 그때 해경선에서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 방송이 나왔다. (49~50쪽)

 

뉴스는 계속되었다. 아나운서는 사망한 남학생이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벗어주고 바다로 뛰어들었다는 말을 여러 번 되풀이했다. 어머니는 “워매, 징한 거! 생때같은 새끼들 어쩌까이! 어쩌까이!” 하면서 손으로 가슴을 쳤다. 뉴스는 사고가 난 여객선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방송국 스튜디오에는 이미 선박 전문가와 해양 전문가들이 나와 있고, 그들의 말에 의하면 스타호는 일본 어느 해운사에서 18년 동안 사용한 것을 우리나라 해운회사가 고철 값에 사 왔으며, 고철에 가까운 배를 들여와 돈을 벌게 해준 것은 국가라고 했다. 2009년에 개정된 법 때문이었다. 그때 연안 여객선의 수명을 최대 30년으로 늘려준 법이 통과된 탓에 C 해운회사는 버려도 아깝지 않은 배를 헐값에 사다가 승객과 화물을 몇 배로 더 실을 수 있도록 불법 증개축을 했고, 나라에서는 그걸 바다에 띄워 돈을 벌도록 허가를 해준 것이었다. (60~61쪽)

 

나도 부장님처럼 혼자 중얼거렸다. 부장님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때, 이민구가 나에게 그랬지. ‘중요한 일일수록 근원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고. 그 말도 그때는 개소리로 들렸거든. 이제야 알았지 뭐야. 근원, 거기에 모든 게 숨어 있다는 걸.”

나는 말 대신 내가 지은 노래를 불렀다. 이민구가 따라 불렀다.

부장님도 말을 멈추고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우리가 부르는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노래를 듣고 있던 부장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부장님은 붉어진 눈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꽃들은 말이 없어. 그래서 문제야. 그게 문제라고…….”

우리는 계속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부른 노래는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멀리 사라져갔다. 어쩌면 아이들을 찾아가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제발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 주기를 나는 간절히 빌었다. (212~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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