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시)
목련 그늘
조용환 지음|푸른사상 시선 159|128×205×7mm|120쪽|10,000원
ISBN 979-11-308-1922-8 03810 | 2022.5.31
■ 시집 소개
하얀 목련꽃을 바라보며 사유하는 삶의 정경
조용환 시인의 시집 『목련 그늘』이 <푸른사상 시선 159>로 출간되었다. 하얀 꽃을 피워냈다가 까맣게 저무는 목련의 그늘에서 시인은 삶의 의미를 사유하고 있다. 전 세계를 강타한 팬데믹 상황에 마스크가 필수품이 된 일상을 힘들게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분투와 몸부림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하는 것이다.
■ 시인 소개
조용환
1998년 『시와사람』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뿌리 깊은 몸』 『숲으로 돌아가는 마네킹』 『냉장고 속의 풀밭』이 있다.
■ 목차
제1부 경계 인간
나는 야만인이다 / 복숭아뼈를 위하여 / 아라리요 / 아파트 까치 / 이방인의 노래 / 길밥의 형식 / 별들의 노래 / 바코드 찍힌 무지개 / 마트에 가면 나는, / 텔레비전 / 입춘 근처 / 미뢰(味蕾) / 은박지별 / 비닐꽃 / 단풍 근처 / 오래된 주소 / 옥상에서 나는,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 그늘 한 채
제2부 마스크 인간
개밥바라기 / 거미를 위하여 / 너는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 다만 섣부른 봄 / 나의 아라비안나이트 / 스티로폼 서정 / 어둠 속의 당구 / 비둘기 묘지 / 간이역 / 누구나 보여주고픈 눈물이 있다 / 애완(愛玩) / 소설을 읽는 밤 / 마스크 나무 / 영안실에서 / 누가 방을 어둡게 하는가 / 그해 겨울은 몹시도 추웠네 / 거짓말로 평생을 살았다 / 고물신전(古物神殿)
제3부 초록 아가
아늬 / 첫, / 홍소를 터뜨려서, / 좋은 얼굴 / 그래도 살아간다는 것 / 야생의 남쪽 / 물꽃을 위하여 / 물꽃을 얻어다가 누구에게 바칠까, 하고 생각해보는 저녁 / 십리허(十里許) / 목련 그늘 / 겹꽃 / 아문 자국 / 회(回) / 엄동 / 사유사(思有邪) / 겨울나무를 위하여 / 초록 아가 / 초록 서시
작품 해설 : ‘이방인‑시인’의 운명, 세계의 어둠 속 신생의 ‘과정’을 거치는 -고명철
■ '시인의 말' 중에서
이제 말을 버릴 때가 됐는데
마지막 말을 얻지 못했다.
여전한 죄의 무렵이다.
■ 추천의 글
조용환의 시에 등장하는 화자는 자신이 “물려받은 건 오직 건각(健脚)뿐”(「복숭아뼈를 위하여」)이라고 여기며 달린다. 건널목을 건너고 철교를 건너고 목 잘린 가로수 길을 첨벙거리며 건넌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스산한 길에 떨어진 마스크를 밟으며 발꿈치를 달군다. 그에게 달리기는 결코 여가활동이나 취미 생활이 아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걸음마를 뗀 이후” “무엇을 향해 나아갔던”(「첫,」)가 되물어보고 사무친 마음으로 언덕을 오른다. 닫힌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새벽길을 나서서 김밥집에 들른다.
화자는 복숭아뼈까지 힘을 내어 달린다. 못에 찔려 피가 나고 속살이 드러났지만 야무지게 견디면서 “불꽃 같은 몸부림의 노래”(「스티로폼 서정」)를 부른다. 더이상 울지 않기로 다짐하고 신념으로 흘리던 눈물도 그친다. 그것만이 살길이라고, 사랑을 사랑하는 길이라고 여기고 기꺼이 나아간다. 자식을 낳으려고 출렁이는 강물을 따라 흐른다. 공중이 새들에게 젖을 물리고 길이 끝나지 않은 바퀴에게 젖을 먹이듯이, 한 마리 까치가 더 멀리 날아가도록 지킨다. “길거리에 서서” “꾸역꾸역 밥을 삼켜본 짐승만이 볼 수 있는/지평선”(「길밥의 형식」)을 하늘처럼 바라보는 것이다.
― 맹문재(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 작품 세계
전 세계를 엄습한 팬데믹의 충격과 두려움 속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비롯한 각종 방역 조치는 일상의 풍경과 리듬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지금까지 아무런 불편 없이 누려왔고 유지했던 낯익은 사회적 관계들에 심각한 균열과 파열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새로운 사회적 형식의 관계들이 아주 빠른 속도로 기존 관계들을 보완하고, 심지어 대체하려는 움직임들마저 보이고 있다. 분명, 이번 팬데믹을 경계로 인간의 삶이 이전과 달라질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조용환의 이번 시집 『목련 그늘』에서 주목해야 할 심상은 시적 주체 자신에 대한 도저한 부정을 바탕으로 한, 세계에 대한 전면적 쇄신을 향한 자기 존재의 기투(企投)로서 신생의 세계를 향한 시적 정동(情動)이다. (중략)
이번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목련 그늘」은 절창이다. 하얗게 핀 목련꽃이 시들어가는 과정을 생명이 소멸해가는 절명의 슬픔 일변도로 노래하지 않는다. 생의 빛나는 순간이 시나브로 꺼져들어감으로써 죽어가는 것이 지닌 생의 공허함에 초점을 맞추는 비장미를 환기시키지 않는다. 대신, 시인은 목련꽃이 피어 있을 때 목련꽃과 관계를 맺었던 “강물”, “참새 떼”, “소나기 치던 마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목련 그늘’에서 감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무는 것들이 옹기종기 모여/첫울음으로 지는 때에/거기 적막이 더해져야/다시 눈부신 초록을 얻는 거”란 시적 통찰에서 헤아릴 수 있듯, 지는 목련꽃이 우주적 소멸의 과정을 거쳐야만 다시 신생의 환희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고, 그래서 ‘초록’으로 표상되는 새 생명을 만끽할 수 있다는, 뭇 존재가 지닌 생의 비의적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감지한다. 그러므로 조용환 시인에게 중요한 것은 신생과 갱신 그 자체가 아니라, 신생과 갱신에 이르는 매 순간의 경이로운 ‘과정’의 신비다.
- 고명철(문학평론가·광운대 교수) 작품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복숭아뼈를 위하여
세 살, 그 어린
망각을 끝내 지켰어야 했다
못에 찔려 피가 터지고 속살이 뜨겁게 드러났지만
나는 야무지게 울음을 견뎌야 했다
그리고 썩어 문드러지기 전에 달려야 했다
물려받은 건 오직 건각(健脚)뿐
멈춰 서서, 왜 달려야 했는지 물을 틈도 없이
결국 달릴 수밖에 없었다
은행보다 희망적으로
기차보다 빠르고 정확히……
회의(懷疑)하는 순간,
모가지를 덥석 물어 뜯어버릴지도 모를
모퉁이들 사이로
숲속 동화를 찾아가는 몽상의 아스팔트를
꿈꾸듯 달려야 했다
운명적 반전은 없었다
미구의 행운을 위해
저 태양의 건륜(建輪)으로
눈이 감길 때까지 달려야 했다
초원의 건물들은 오늘도
무지개처럼 반짝거린다
목련 그늘
천지간에 하얀 꽃빛으로 놀러와
까맣게 저무는 것들을 탓하지 말라
목련 꽃잎 까무룩 흩어지면서
뜨락을 지을 때
어린 너에게는 천만년의 목소리로
놀자고 같이 놀아달라고,
다 늙은 너에게는
천지간에 새끼를 치는 뻐꾸기처럼
피붙이를 부르는 호곡(好哭)일 테니,
저 하얀 꽃잎은 절명하는 게 아니다
귀를 대이면 강물이 치고
뒤란을 떠메고 갈 듯 우짖던 참새 떼며
소나기 치던 마을을
오래오래 밝혔던 등불이었으니
하늘 닮은 눈동자들을 피워 올렸다가
저무는 것들이 옹기종기 모여
첫울음으로 지는 때에
거기 적막이 더해져야
다시 눈부신 초록을 얻는 거다
푸르러지는 뒷동산에
내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초록 아가
아가를 기다리고 있다 눈코귀입……
꽃잎차례 따라 천지사방 울음 퍼지는
아가가 태어날 것이다 봄여름가을겨울……
산맥을 넘어오는 초록의 자손이며
시냇물 적신 대지의 춤으로
하늘을 비껴 푸르게 빛나는
아가를 기다리는 어둠의 별과 아침의 창문과
한낮의 발소리들을 위해 기도한다
배회하는 축복을 위해 미소를 띄운다
무구한 숨결과 태양으로 잉태한
젖니 붉은 아가가 찾아오는 동안
손도 발도 가슴마저 내어놓고
새들의 공중에게도 젖을 물리고
길이 끝나지 않은 바퀴에게도 젖을 먹여야 한다
아가가 곧 태어날 거라고
강물의 노래를 품은 아가를
초원의 무지개를 가진 아가를
천지현황(天地玄黃)의 너를 기다린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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