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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간행도서

우한용 장편소설, <소리 숲>

by 푸른사상 2022. 5. 26.

 

분류--문학(소설)

 

소리 숲

 

우한용 지음|푸른사상 소설선 34|145×210×19 mm|320쪽

18,000원|ISBN 979-11-308-1923-5 03810 | 2022.5.31

 

 

 

■ 도서 소개

 

충만한 생명과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소리 숲

 

우한용의 장편소설 『소리 숲』이 <푸른사상 소설선 34>로 출간되었다. 고창의 역사와 함께해오며 참회의 삶을 살아가는 노인의 수수께끼 같은 삶과 그의 자서전 대필을 제안받은 청년의 서사가 교차된다. 인간 성장과 깨달음의 과정이 담긴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충만한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숲의 소리가 들린다.

 

 

■ 작가 소개

 

우한용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국어교육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같은 대학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문학과 문학교육을 연구해왔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다. 1986년 『월간문학』에 소설 「고사목 지대」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근 10년 동안 매년 소설집을 한 권씩 냈다. 그가 과업으로 삼은 과제는 환경(장편소설 『생명의 노래(1, 2)』), 폭력(장편소설 『악어』), 식민지와 노예제도(소설집 『수상한 나무』), 인간의 성장과 자아 형성(장편소설 『심복사』 『소리 숲』) 등이다. 이런 주제는 우리가 인간적 위의(威儀)를 지키면서 자연과 더불어 오래 살아가야 하며, 자생력을 가진 자연을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일종의 윤리 의식을 토대로 한 생태학적 상상력의 반영이다.

 

 

■ 목차

 

작가의 말 : 느낌과 이야기

 

1. 서장:출발

2. 이력서

3. 면접

4. 뿌리로 돌아가서

5. 손가락 마디

6. 산꽃 자지러지는 길

7. 참나무

8. 보리 팰 때

9. 몸풀기

10. 추락의 추억

11. 평생도 앞에서

12. 오동나무 뜰아래

13. 벌 떼의 노래

14. 불가마

15. 옥색 두루마기

16. 상여놀이

17. 귀토(歸土)의 장

18. 종장

 

작품 평설 : 숲의 소리를 들어라 _ 윤대석

 

 

■ '작가의 말' 중에서

 

나에게 숲은 유토피아의 표상이다.

나는 평생 숲에서 살고 싶다. 숲은 지극히 풍성한 생명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풍성하다는 것은 모자람이 없다는 뜻이다. 물질 측면에서는 물론 정신 차원에서도 숲은 충만한 공간이다. 숲은 너그럽다. 숲은 정신을 높은 차원으로 이끌어 올린다. 숲에서 인간은 성장한다.

세속의 삶이 끝나면 나는 숲으로 돌아가고 싶다. 세속에서 지은 죄를 사죄하는 과정이 될 터이다. 그것은 이승의 때가 묻은 육신을 숲에 들여보내 정화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내 육신을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싶은 심정은 순박하다. 그러나 유토피아 표상을 직설적으로 그리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느낌을 먼저 시 형식으로 제시하고자 했다.

대개는 그렇다. 느낌이 먼저 오고 이야기는 뒤에 따라온다. 소설이 힘든 이유는 느낌을 이야기로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그럴듯한 작품이 된다. 그럴듯하다는 건 사리가 맞는다는 뜻이다. 소설가는 느낌과 사리 사이를 오가면서 작업을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산다는 게 이야기 속에 느낌을 버무려놓는 일이 아니겠나 싶다.

 

 

■ 작품 세계

 

『소리 숲』은 누구를 주인공으로 보는가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호기심 많은 스물세 살 젊은이 윤종성이 주인공이라면 이 소설은 그의 성장담으로 교양소설, 성장소설이 될 것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서정주,「 국화 옆에서」) 여든 다 되어가는 김대성이 주인공이라면 이 소설은 죽음으로 귀결되는 한 인간의 삶을 그린 전기소설, 혹은 의미 있는 죽음/삶을 준비/마무리하는 노년소설이 될 것이다. 또한 단순한 배경에 그치지 않고 살아 숨 쉬는 땅, 고창과 그에 발 딛고 사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라면 이 소설은 지역소설이 되고, 고창으로 상징되는 이 땅의 삶과 역사, 그리고 자연을 포착하고 의미 짓는 탐구의 주체인 대학과 그 학문적 앎이 주인공이라면 이 소설은 대학소설, 지식소설이 될 것이다.

사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 모두이면서 또 이 모두를 넘어선다. 윤종성과 김대성, 대학과 고창,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고 그것을 모두 품으면서도 그것을 넘어서 존재하는 것, 그것은 숲이다. 그 숲이 내는 소리가 이 소설이고 고로 ‘소리 숲’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읽어서는 안 되고 들어야 한다. 아니 듣기 위해서 읽어야 한다. 읽는 것은 지향적인 행위이지만 듣는 것은 주체가 사라진 순수경험이다. 마치 맥놀이가 나의 의지, 지향성과는 상관없이 내 귀를 통해 마음속에서 울리듯이. 이 소설에서 통주저음으로 끊임없이 울리고 있는 이 맥놀이, 숲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이 소설을 읽어야 한다. 이 모순 속에 이 소설의 독법이 있다. 읽어라, 그러면 들릴 것이다.

- 윤대석(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작품 평설 중에서

 

 

■ 출판사 리뷰

 

환경, 폭력, 식민지와 노예제도 등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해온 소설가 우한용의 장편소설 『소리 숲』에는 생명력 충만한 숲의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인간은 세상을 감각하고 성장한다. 이 책의 배경인 전북 고창을 저자는 생생하게 체험하면서, 그 느낌을 먼저 시로 읊은 뒤 이야기로 풀어내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스물세 살 청년 윤종성은 1년간 대학을 다니다가 학비 부담으로 휴학을 결정한다. 몇 년 전 외삼촌이 양녀인 소말리아 소녀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을 목격하고 그를 살해하려고 했으나 실패한 적이 있는 윤종성은, 그로 인한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김제 금산사에서 타종의 순간 당좌에 손을 밀어 넣어 왼손 손가락 네 개가 모두 잘린 상태다. 휴학 이후 경제적인 문제로 고민하던 그는, 김대성이라는 참회의 삶을 살아가는 노인의 자서전 대필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게 된다. 처음 만난 윤종성에게 거액의 통장을 맡길 뿐만 아니라 손가락 치료를 도와주기까지 하는 이 노인에게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 그의 수수께끼 같은 삶이 고창의 역사, 자연, 문화와 얽혀 펼쳐진다.

살인 미수로 인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속죄하는 방법을 찾던 윤종성이 자서전이라는 방법으로 자기 죄를 고백하려는 김대성을 만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인간 성장과 깨달음의 과정이 담긴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충만한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숲의 소리가 들릴 뿐만 아니라 범종의 맥놀이와도 같은 긴 여운이 마음속에 깊이 울려 퍼질 것이다.

 

 

■ 작품 속으로

 

김대성은 들고 있던 젓가락을 식탁 위에 터억 놓고는, 뭔가 생각이 떠오른다는 듯이 윤종성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허먼 말이지라, 인간이 저지른 대죄(큰죄)도 회개를 통해 사죄가 된다고 생각하오?” 윤종성은 찔끔했다. 술기운이 뒷목을 타고 핏줄을 부풀리며 올라왔다.

“대죄라면……?” 윤종성이 그 뜻을 물었다. 김대성은 멈칫하다가 말을 이어갔다.

“말하자먼, 이건 할아버지 대부터 아버지를 거쳐 내려오는 죄인데, 사람 목숨을 해하였다든지 나라에 역적질을 했다든지, 그런 죄를 대죄라 하지 않습디여. 내가 저지른 죄 씻어버리지 못하고 저승 언저리에서 헤매돌까 걱정이 되야서……. 속으로만 죄씻이를 할 게 아니라 터놓고 죄를 씻으려고 허다 본게 고백이란 게 생각나등만. 죄를 터놓는다는 그긴 내 이야그를 글로 써서 터놓으려는 것이제. 내가 내 생애를 글로 쓸 재간이 없어서 게다가 부탁하려 하오. 내 목숨이 기록할 가치가 있다면 그 기록을 남기고 싶은 것이지 않겄어라?”

사제 앞에서 고백하듯이 말하는 태도는 사뭇 진지했다. 그러나 그 죄라는 게 뭔지 실체를 밝히지는 않았다.

(46~47쪽)

 

척서암에서 연락이 왔다. 웬만큼 준비가 되었으면 고창으로 내려오라는 것이었다. 앞으로 열 달 안으로 김대성의 전기를 완성해야 하는 제가 눈앞에 산처럼 다가와 앞을 가로막았다. 그것은 자신이 개척해 돌파해야 하는 과업이었다. 관산대학교에서 한 해, 세상사를 겉으로만 이해했다면 이제는 인간사 속살의 광맥을 파들어가는 일을 해야 하는 시점에 다다라 있는 셈이었다. 어느 시인의 시구절처럼 ‘모험과 깨달음’이 기대되는 일이었다.

(100쪽)

 

맥놀이는 일종의 여운(餘韻)이다. 범종의 소리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종신에 새겨진 당좌를 당목으로 타격함과 동시에 발생하는 타음(打音)은 콰르르릉 천지가 무너지는 소리이다. 이어서 꾸웅하고 울리는 원음(遠音)이 잠시, 삼사 초간 이어진다. 그리고 이후 여음(餘音)은 몸을 뒤틀면서 멀리 퍼져 나가는데, 높낮이를 달리하는 소리가 우웅우웅 무한공간을 향해 흘러가게 된다. 그 소리가 삼십삼천 도솔천으로 인간 영혼을 실어 나른다고, 불가에서는 이야기한다.

“사람도 마찬가지, 깊은 울림을 주는 사람은 한 몸에서 주파수가 다른 소리를 낸다고 할까. 청정무구한 영혼과 죄로 더럽혀진 몸뚱이가 하나의 자아 속에 통일을 이룬다면, 그걸 인격이라 해야 할 게 아닌가? 성인들의 생애가 대개 그렇게 이질적인 것의 통일을 보여주지.”

(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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