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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간행도서

권위상 시집, <마스카라 지운 초승달>

by 푸른사상 2022. 5. 11.

 

분류--문학()

 

마스카라 지운 초승달

 

권위상 지음|푸른사상 시선 157|128×205×8mm|152쪽|10,000원

ISBN 979-11-308-1914-3 03810 | 2022.5.12

 

 

■ 시집 소개

 

역사의 용접봉처럼 파란 희망의 불꽃을 달구는 시편들

 

권위상 시인의 첫 시집 『마스카라 지운 초승달』이 <푸른사상 시선 157>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사회의 폭력에 정면으로 마주하고 질곡에 맞닥뜨려도 결코 타협하지 않는 진실을 추구하고 있다. 파란 희망의 불꽃을 달구는 시인의 신념과 의지가 강렬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 시인 소개

 

권위상

부산에서 태어났다. 2012년 『시에』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산하 민족문학연구회 사무국장, 한국작가회의 연대활동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부산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친일 문인을 기리는 문학상 폐지를 위해 노력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 목차

 

제1부

절반의 바다 / 나트륨 / 고아원 부근 / 도림동 철공소 / 대머리 가계도 / 포클레인 / 밥상의 내력 / 안개 / 강화도 / 저격수 / 소문 / 데드 마스크 / 명품 가방 / 전기구이 / 폭염

 

제2부

소소한 관조 / 목욕탕 / 얘들아 / 지구 이야기 / 오리나무 / 탄소의 본질 / 상처 / 별 / 사과나무, 융복합 / 고향 / 조난 / 그들 / 생명보험 / 벽보를 붙이며 / 현대인으로 사는 법

 

제3부

GP에서 / 흔들리는 일몰 / 장마 / 등 / 폭풍전야 / 청춘들 / 한탄강 / 와사풍 / 사라진 봄 / 공사장 가는 길 / 폭설 / 저수지 자동차 / 오실로스코프 / 우리는 아직 멀었다 / 문자의 행적

 

제4부

겨울 일기 / 물류 창고 / 당신의 영역 / 우리가 알고 있던 부동산 투자는 끝났다 / 정립 / 상가 / 투수 변천사 / 직공 / 슈더에게 / 칼 / 겨울강 / 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1 / 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2 / 어둠을 밝히다

 

작품 해설 : 아이러니에 깃든 세계의 진실 - 이명원

 

 

■ '시인의 말' 중에서

 

계가가 끝났다

꽃놀이패에 걸린 대마를 살리기 위해

식은땀을 꽤 흘렸다

두텁게 두지 못해 쫓기다가

안에서 궁하게 살 수밖에 없었던 곤마

두 눈을 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집이 부족하다

 

내내 초읽기에 몰려 살아온 인생

데드라인을 넘나들던 기억

끓는 된장국 거품을 걷어내며

숟가락을 얹어본다

 

밤하늘 별빛이 아름답다

 

 

■ 추천의 글

 

권위상 시인에게 인생은 거품을 튀기면서 살아간다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일깨우는 바다 앞에 선 작은 항구다. 파도에 밀려 “새하얗게 부서지는 갈망/그리움이 닿아야 할 곳은 어디인가”(「절반의 바다」)라고 묻는다. 그래서 시인은 “이 목숨을 값으로 치면 얼마나 될까” 추궁하다가 “생명 앞에서 인간은 평등하다고 굳게 믿어왔건만/생명이 다하는 날 생명보험 회사는/직업과 월수입, 학식과 장래성 따위가/각자의 가격임을 호프만식으로 명쾌하게 제시해주었다”(「생명보험」)라는 허망 앞에 서게 된다. 불확실성 시대 앞에서 시인은 “오직 반복하는 실험과 두드려야 하는 수식들. 내가 나를 믿고 나의 확신을 믿고, 믿고 싶은 것을 믿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실패”(「나트륨」)를 거듭한다. 그는 겨울의 빈 들판에 선 허수아비처럼 “빈 가지에 굴뚝새 점 찍힌 목소리/그만큼 가는 누이의 감성을 밟고/겨울이 흘러가는구나”(「겨울 일기」)라며 봄을 기다린다. 아니, 시인은 봄을 기다리지 않고 “제 몸을 녹여/단절된 세상을 이어주는 용접봉/저 불꽃에 심어져 있는 파란 희망”(「도림동 철공소」)을 향해 역사의 전위에 선다.

― 임헌영(문학평론가·민족문제연구소장)

 

권위상의 시는 나트륨 금속에서 집을 지키는 아내를, 오실로스코프 장비에서 등이 굽은 어머니를, 비금속 탄소에서 자동차 안에 탄불을 피우는 청년을 발견하고 품는다. 밤새 실험한 데이터에 사과나무 묘목도 심는다. 서로 다른 대상들을 외면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끌어안아 존재의 의의를 심화시키는 것이다. 시인의 그 의식과 태도는 상상에 함몰되거나 기운에 기울지 않을 만큼 견고해서 이치를 지향한다. 그리하여 고아원의 아이들이며 도림동 철공소며 공사장 가는 길이 관념적이지 않다. 캄캄한 지하실에서의 전기고문이며 여순사건이며 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이며 촛불 집회가 추상적이지 않다. “눈물은 모든 것을 씻어가지 않”(「조난」)는다는 시인의 인식은 얼마나 실제적이고 가치적인가.

― 맹문재(시인·안양대 교수)

 

 

■ 작품 세계

  

권위상의 시편들을 살펴보면서, 나는 최근 몇 년간 그가 보여주었던 문학운동적 활동이 그의 시에 상당 부분 영향을 드리웠을 것이라는 예견 속에서 작품을 읽어나갔다. 그런데 막상 원고를 다 읽고 나서 발견하게 된 그의 시세계는 나의 예상과는 좀 다른 것이었다. 물론 이 시집의 가장 뒷부분에 있는 「친일 문인 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라는 제목의 두 편의 시와 「촛불을 밝히다」와 같은 시는 그의 문학사적 신념이 비교적 명료히 나타난 것으로, 다른 시에서의 “불확실성 시대에 나는 적당히 타협할 우군도 없다”(「나트륨」)는 표현이나, “정확한 절단이 가끔 필요한 삶”(「도림동 철공소」)과 같은 엄밀한 현실 인식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정치와 역사와 문학에 대한 시인의 입장과 시각을 명료하게 진술하고 있었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정치적·역사적 질곡에 대한 시인의 비타협성은 이를테면 「저격수」 같은 작품에서 상징적으로 잘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이 시의 도입부에서 시인은 현실을 “무덤 속 혹은 구름 속”으로 규정한다. 역사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부조리성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어서 시인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가치평가를 “역사에 맡기자는 주장에 저격수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금 시 속의 “저격수”는 “어금니를 깨물며 방아쇠에 검지를 올려놓”은 채 “목표물”을 향해 “총구”를 고정시키고 있는데, 그는 결국 손가락을 당겨 “목표물”을 향해 총알을 “격발”한다. 그러나 죽음에 이르는 것은 저격의 목표물만이 아니다. 그 역시 대응사격에 의해 “조준경이 깨”진 상태로 “심장에서” “피”를 내뿜으며 죽게 된다.

결국 “그와 목표물은 한날한시에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게 된 셈인데, 이것을 통해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한 줄의 역사적 사건 속에 숨어 있는 서로 다른 비타협적 신념과 항쟁의 격발에 대한 정당한 가치평가와 의미화가 필요하다는 의지 또는 신념이다. 비유컨대 저격수의 “격발”의 의미를 정치적으로 의미화하는 것이 역사이며, 역사의 해석과 판단을 둘러싼 의미론적 항쟁에 참여하는 게 시인의 신념이라는 것을 이 시는 잘 보여준다. (중략)

권위상은 개인적 삶과 역사적 기억에 숨겨져 있는 ‘이면의 진실’을 성찰하고 표현하는 데 그의 시적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의 시에 항용 등장하는 아이러니의 어법과 인식은 개인적·역사적 진실을 탐구하기 위한 시적 망원경이자 현미경이다. 시적 진실과 역사적 진실에 대한 두 방향에서의 탐구는 권위상의 시를 더욱 풍부하게 발성하게 만들 것이다

- 이명원(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작품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나트륨

 

나트륨 혼합물이 비커에서 끓고 있다. 이 금속은 다른 물질과 결합하여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다. 소금의 원료가 되었다가 인류를 멸할 폭발물로, 실험자인 나와 동화되었다가 우주의 일부로 돌아가는 저 생명체, 놀랍다. 눈을 크게 뜨고 데이터를 축적하면 차차 쌓여가는 점성. 끈적이는 땀을 닦아내면 편두통이 바늘 같은 새치를 통해 콕콕 찔러온다. 저 혼합물이 비등점을 넘어갈 때 나는 담을 넘어 우주로 비행할 것이다. 벨이 울리고 점멸등이 켜지자 비로소 나는 허리를 편다.

 

나의 혼합물이 우주에서 유영하고 있다. 불확실성 시대에 나는 적당히 타협할 우군도 없다. 누구와도 섞일 수 없는, 오직 반복하는 실험과 두드려야 하는 수식들. 내가 나를 믿고 나의 확신을 믿고, 믿고 싶은 것을 믿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실패를 믿어본다. 이따금 내가 나를 부정하려 치면 서로 투명한 가슴을 포개 차례를 기다리는 저 비커들이 한꺼번에 반란을 일으킬 것이다. 눈금이 닳아서 희미해진, 백내장을 앓는 어머니의 눈동자를 가진 저 순수한 목숨들.

 

마스카라 지운 초승달. 아내의 잠이, 서툰 화장이 거울 가를 더듬는다. 무서워요 오늘도 못 들어오시죠. 차가운 시간이 뚜벅뚜벅 다가와 목덜미를 짓누른다. 은박지처럼 반짝이는 밤하늘 나트륨 가루가 뿌려져 있다. 저 분말이 아내의 눈물과 반응하면 하얀 불꽃이 되어 폭발할까. 백 년을 기다렸다는 고차방정식의 한 축, 그 미지수로 남을 수 있을까. 일교차가 심하다. 이제 나트륨 조각을 썰어야 할 시간이다.

 

 

저격수

 

여기는 무덤 속 혹은 구름 속, 박제가 된 채

저격수가 조준경 십자선을 통해 목표물을 훑다

저 아래 수만 인파 속으로 날리는

단 한 방의 저격으로 그의 신념은 이루어질 것이다

 

그를 쓰러뜨리면 이 모든 불행이 한꺼번에 사라질 수 있을까

반대로 엄청난 혼란과 소요 피의 보복이 벌어질 수도 있겠지

 

누구는 테러라 할 것이고 누구는 의거라 하겠지만

대체로 불리한 자들의 변명

이 사건을 역사에 맡기자는 주장에 저격수는 동의하지 않는다

 

신호가 잡힌다

환호하는 군중들 사이로 목표물이 등장한다

어금니를 깨물며 방아쇠에 검지를 올려놓는다

숨을 들이켜고 적정선에서 숨을 멈춘다

목표물이 멈추자 총구가 고정됐다

격발 순간

목표물은 비틀거리고

경호원들이 다급히 목표물을 덮쳐 에워싸고

도처에 배치된 요원들이 대응사격을 한다

 

동시에 조준경이 깨지고

저격수의 심장에서 내뿜는 피

 

상황이 종료되었다

저격수가 원하든 원치 않든

그와 목표물은 한날한시에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동시대를 거쳐간 역사의 흔적으로 남았다

 

이들이 흘린 피는 각자의 신념이었고

이로써 역사의 한 페이지는 붉은 줄을 그으며 넘겨진다

 

역사는 그런 것이다

 

 

 

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 1

 

나라를 빼앗긴 이회영 여섯 형제가 비분강개해

전 재산을 정리해 가족 모두를 이끌고 만주로 넘어가서

독립전쟁을 준비하다 쫓겨 다닐 때

누구는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황군을 위해 목숨 바치자고 시를 헌사했다

해방이 되고 군부 독재가 들어서자

독재자를 찬양하고 그를 위한 시를 헌사했다

미당 서정주, 그가 그랬다

 

가장 밟지 말아야 할 길을 걸어간 그를 기리자고

조상의 친일을 물타기 하고 싶은 언론사에서 만든

미당문학상

오늘날에도 이 상을 심사하고

고개 숙여 감사히 받고

박수 받고

두둑한 상금으로 동료들에게 밥과 술을 사고

가슴에 단 훈장을 어루만지는 시인들아

 

부끄럽다

진실로 부끄럽다

인간이 짐승과 다르다면 부끄러움을 아는 것일진대

부끄러움은 구겨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시 쓴다고

문학 한다고

 

차라리 붓을 내팽개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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