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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간행도서

김은정 시집, <황금 언덕의 시>

by 푸른사상 2022. 4. 14.

 

분류--문학()

 

황금 언덕의 시

 

김은정 지음|푸른사상 시선 155|128×205×8mm|140쪽|10,000원

ISBN 979-11-308-1906-8 03810 | 2022.4.10

 

 

■ 도서 소개

 

한 그루의 신단수가 건네주는 삶에 대한 지극한 헌사

 

김은정 시인의 시집 『황금 언덕의 시』가 <푸른사상 시선 155>로 출간되었다. 신화적인 언어와 발상으로 창조해낸 한 그루의 신단수와도 같은 시편들에서 시인의 개성적이고도 역동적인 상상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삶의 순간들을 심원한 사유와 감각으로 형상화한 작품들을 음미함으로써 폭넓은 삶의 지혜를 만나게 된다.

 

 

■ 시인 소개

 

김은정

경상남도 사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하였다. 『현대시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경상국립대학교 사범대학 사회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연암 박지원의 풍자 문학에 나타난 정치적 상징」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경상국립대학교에서 강의하였다. 한국사회과교육연구학회 부회장, 토지문학제 운영위원이다. 시집으로 『너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일인분이 일인분에게』 『열일곱 살 아란야』, 학술서로 『연암 박지원의 풍자정치학』 『상징의 교육적 활용-미란다와 크레덴다』(공저) 등을 펴냈다.

 

 

■ 목차

 

제1부 부라보(富羅寶)!

자연법 / A4, 무량수전 / 아미타붓 / 오두막 / 시인의 주소는 원고지 / 빈칸들 / 흑심 / 전설 위의 지금 / 바른 소리 / 비너스 땅콩 / 정월 대보름 / 노동 예찬 / 부라보 / 100%

 

제2부 진리에서 오신 분

마침표 / 잔소리 칵테일 / 편견 / 구토 / 근성 / 백정 / 구조 조정 / 지렁이 / 믿는 도끼 / 자동이체 / 멀미 / 규정집 / 건배하는 튤립 / 진리에서 오신 분

 

제3부 심청 보림

가위 / 개 같은 로봇 / 하늘을 가득 메운 경고 / 황금 언덕의 시 / 받침 / 의자들 / 버스 정류장 / 종가 / 유자의 달 / 마상청앵도 / 연꽃이 피어 있는 책상 / 심청 보림 / CCTV

 

제4부 파란 코끼리의 나라

포스터 / 에밀레종 소리 무늬 / 눈 / 해인사역 / 새 선 바위 / 자전거를 타고 가는 하수오 / 사랑한다 KAI / 탱고 원피스 / 시원한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 오이 냉국수 / 겨우살이 / 색연필로 지은 밥 / 나의 아침 식사는 햇살 스테이크 / 여왕의 시대를 머리에 인 소녀 / 파란 코끼리의 나라

 

작품 해설 : 신화적 순간을 기념하는 한 그루의 신단수 - 유성호

 

 

■ '시인의 말' 중에서

 

내 혀는 불의 알입니다!

 

스스로 스스로를 칭찬해야 이룹니다.

 

 

■ 작품 세계

  

김은정 시인은 사물이나 상황의 속성을 직관적으로 파악하면서 그 안에서 삶의 본령을 깨달아가는 지성적 적공(積功)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물론 그녀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사물이나 상황에 어떤 통일성을 부여하려 하지 않고 다만 개개 시편을 통해 그러한 여러 차원의 발견 과정을 충실한 개별성과 완결성으로 형상화하는 시인이다. 그리고 그 결과를 정신적 차원으로까지 도약시키면서, 어떤 한 가지 주제나 원리에 의해 기획되는 시쓰기 관행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그 점에서 김은정의 근작(近作)은 그녀가 궁극적으로 지향해가는 시적 좌표를 미덥게 실천해 보여주는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녀의 언어에 선명하게 새겨진 삶의 순간들을 응시함으로써 그러한 실천의 순간에 동참하게 된다.(중략)

김은정 시집 『황금 언덕의 시』는 시인이 만난 사물과 상황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그것을 심원한 사유와 감각으로 기록해간 결실이다. 마치 “햇볕이 물리 치료를 해주는 휴양소”(「버스 정류장」)와도 같은 이번 시집에서 이러한 집중적 형상화 원리는 균질적 성과를 낱낱이 거두면서 때로는 사물 자체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때로는 시인 자신과 사물의 관계가 그리움의 힘으로 나타나는 형식으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절실하고도 진중한 실존적 기억에서 사물과 정서가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순간을 끌어들이면서 시인은 우리로 하여금 삶에 필연적으로 개입하는 환한 깨달음의 순간을 응시하게끔 해준 것이다. 앞으로도 김은정 시인은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각인된 이러한 시간 경험을 가장 중요한 삶의 형식으로 삼으면서 시를 써갈 것이다. 물론 지나온 시간에 대한 일방적 미화나 퇴행 욕구는 그녀의 시와 전혀 관련이 없다. 오히려 그녀의 작품에는 시간의 불가역성에 대한 안타까움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시간의 흐름을 삶의 유일한 형식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간혹 “긴 철길 소실점 거기까지 그리움과 기다림을 가르치던/무심한 간이역”(「의자들」)을 떠올리지만 그 안에서 시인은 유한자로서의 겸허함이나 메말라가는 삶에 대한 자기 확인을 지속해갈 것이다. 그 점에서 이번 시집에 선명하게 나타난 삶의 고단함은 가혹한 절망이나 달관으로 빠져들지 않고 세계내적 존재로서 가지는 고유한 긴장과 그에 대한 활달한 성찰로 거듭나고 있다 할 것이다. 우리도 그 안에서 신화적 순간을 기념하는 한 그루의 신단수가 건네주는 삶에 대한 지극한 헌사를 만나고 있지 않은가.

- 유성호(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작품 해설 중에서

 

 

■ 추천의 글

 

내 나름으로 개념의 품질을 재본다면 은유는 정서 쪽이고 직유는 뚱한 의지 쪽일까 한다. 김은정의 시가 20여 년 전의 재래어조이기보다 여러 인문 개념의 후생(厚生)으로 정서보다는 의지를 선양한다. 그만큼 강직한 진술의 충돌성을 자아내며 화자를 앞세운 무위(武威)를 펼친다. “내 혀는 불의 알입니다!”라는 시인의 통증 같은 화두야말로 근원적이기도 하며 거꾸로 반근원적인 시인의 혼불로 작위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를 자주 비시적(非詩的)인 상태로 방기하는 듯한 쾌감으로 시의 섬세한 율격을 놓아버린다. 이런 시도가 상투화되는 것을 방어할 성능이 그때그때 긴요하리라. 예컨대 나를 사로잡은 바 「전설 위의 지금」, ‘…였다고 하네’의 연발보다는 결구의 “풍부한 과거 덕분에/이렇게 으쓱!”인 것 말이다. “…감정이 시간을 낳고 시간이 도약을 부추기네”의 감정이입의 비약이나 요약은 여기서 생략해도 섭섭하지 않겠다. 또한 설명과 산문화의 유혹을 덜 뿌리친 데도 몇 군데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절창 “100%”에 이르러 나는 경악한다. 이토록이나 화자의 자기 부정적인 표적으로 단호한 수리(數理)의 시학을 완성한 바에 박수갈채 왜 없으랴. 때는 시의 현재는 시를 극소수의 밀어나 사어(私語)로 남게 한다. 이 사어는 사(私)가 사(死)의 음사 아닌가 하는 불길한 연상 작용도 자아낸다. 이런 판에 무슨 오기인가. 활발발(活發發)한 대승의 칼날이 숫한 흉금의 핏물을 배어나게 하지 못한다. 그래서 “솥에 쌀을 안치듯 의자에 나를 앉힌다.” “이런 개 같은!”

어즈버 김은정 읽어온 지 몇십 년인가.

― 고은(시인)

 

 

■ 시집 속으로

 

시인의 주소는 원고지

 

시인의 주소는 원고지

원고지는 소지를 끓이는 솥,

 

성채처럼 솥 안에서 헤모글로빈이 걸어 다닌다.

무릇 당신의 상징 태양의 고수레로 끼니를 이으며

신실하게 사랑에 빠지는 자음과 모음의 천태만상

굿판 같은 붓판을 달구는 광대한 원고지 솥 안

이 법계의 맞춤법은 저 법계의 것과는 사뭇 다른가?

가끔은 이 법계 저 법계 맞춤법을 모두 내던지는

그 갸륵한 시무 위에 빨간 립스틱을 솟대로 둔다.

 

자장면을 비빈 젓가락으로 유리 천장을 깨면서

춤추듯 쏘아 올리는 소도!

 

 

멀미

 

멀미에는 귀천이 없다.

 

너울너울 파도를 타고 출항하면서 뽐내고 장담하며 자신만만했던 유스티티아도 멀미,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도 멀미, 빨강머리 앤도 멀미, 백조 왕자도 멀미, 반달곰도 멀미, 셰퍼드도 스피츠도 포메라니안도 멀미, 도라지꽃도 멀미, 글라디올러스도 멀미.

 

멀미에는 우대도 없고 차별도 없고 외모지상주의도 없고 빈부격차도 없다. 학력과 학벌도 영향력이 없고, 참한 인성도 반듯한 품성도 소용없고, 값비싼 품종이라는 희소성도, 색으로도 향으로도, 기부와 봉사, 사회 공헌 이력도, 알아서 봐주는 일이 없다.

 

거친 파도의 도마 위 격동의 천부생명권, 그 존엄성 외에 교양을 첨가하고 철학을 장식하고 의상과 장신구를 달리하며 층층 분류한 계급과 계층 구별 짓기가 사라진 극한 상황에서는 현장 경험으로 단련된 면역 체질만이 존재의 격을 수호하는구나.

 

모두들 멀미 앞에는 평등한가.

 

 

황금 언덕의 시

 

한 여자가 걸어간다.

이 지상에 도착한 복잡한 하오의 표면을

자신의 하이힐 굽으로 똑 똑 똑 두드리고 있다.

 

거대한 성문처럼 지표가 열리고

그 내부에서 인디아나 존스의 발굴 같은

기적이 줄 줄 줄 나올 것 같은 예감이다.

 

겹겹의 우주가 쌓여 있는 층층의 신비주의

정령이 에워싸고 있는 이 세상의 핵 가운데 핵

씨앗처럼 그녀는 북두를 조금 빗겨 난 위치에서

사랑으로 가득한 두루마리, 그 영혼의 소슬 기둥

자주적으로 곧추선 시곗바늘처럼 움직이고 있다.

 

초가을 황금 언덕을 오르는 그녀는

지금, 이 순간을 기념하는 한 그루의 신단수다.

에르메스 핸드백을 든 별자리 같기도 한 듯

지체 높게 나아갈 길을 걸어가는 백두의 사제다.

 

그녀의 진주산 비단 목도리가

그녀의 날개처럼 살아 펄럭인다.

 

비로소 찬란한

절정의 때를 만나고 있는 그녀의 숨결이

보란 듯 이 세상 정면 잠금장치를 푸는 시간

유서 깊은 파텍 필립의 침향을 더한다.

 

신림 같은 황금 언덕을 걸어가는 그녀

우주의 태극 원반 위에서 세수하고

탁족도 그리던 그 지문으로 맞은

행복한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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