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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간행도서

김미수 장편소설, <바람이 불어오는 날>

by 푸른사상 2022. 1. 13.

 

분류--문학(소설)

 

바람이 불어오는 날

 

김미수 지음|푸른사상 소설선 32|146×210×15 mm|264쪽

18,000원|ISBN 979-11-308-1882-5 03810 | 2022.1.10

 

 

 

■ 도서 소개

 

바람이 불어올 날을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김미수 작가의 장편소설 『바람이 불어오는 날』이 <푸른사상 소설선 32>로 출간되었다. 사라진 탈북자 출신 사업가를 찾아 휴전선 너머 북한으로 잠입한 진보적 언론사의 북한 전문 기자가 그 금지된 땅에서 맞닥뜨리는 일들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함경도 산골짜기의 한 마을에서 혁명의 바람이 불어올 날을 기다리며 외롭고 무모한 도전을 감행하는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 작가 소개

 

김미수

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미로」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로 『소설직지』 『재이』 『아빠 살고 싶다』, 소설집으로 『모래인간』이 있다. 『소설직지』로 직지소설문학상 대상(2013)을, 단편 「내일의 노래」로 북한인권문학상 대상(2014)을 받았다.

 

 

■ 목차

 

작가의 말

 

1. 경계인

2. 홀린 자, 머저리

3. 갇힌 사람, 가둔 사람

4. 흩어진 가족

5. 추방당한 남자

6. 가장 끝에 있는 자

7. 혁명회 동지

8. 영원한 조부와 아버지

9. 숨어서 기도하는 사람들

10. 가방 전달자

11. 위험한 보안원

12. 들불처럼

 

 

■ '작가의 말' 중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날을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갈 수 없는 나라의 한 주민인 렴민도 그중 한 사람이다. 나는 그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다. 내 기대가 클수록 그는 더욱 무모해졌다. 무모함 말고는 독재자 앞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보였다. 거대악 앞에 대다수 사람들은 순종하며 자신의 삶을 영위하겠지만 렴민은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그런 자의 결말을 누구든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부디 사람들의 그런 짐작이 맞지 않도록 분발하라고, 나는 렴민을 더욱 부추겼다. 그래서 아마 이 소설은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고 누군가에게는 과도하게 우연적으로 읽힐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그 정반대로 읽힐 수도 있다. 그 어떤 경우든 나는 지난 3년 동안 렴민과 함께 만든 ‘무모한 도전’을 후회하지 않겠다. (중략)

작가는 누구인가. 그것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만큼 난해하다. 이런 난해한 질문이 이 소설을 쓰는 내내 나를 괴롭혔다. 작가가 온종일 자료만 봐도 되는가. 작가가 이렇게 전문가의 이야기만 들으러 다녀도 되는가. 작가가 내 눈으로 확인한 사실을 바탕으로 그 사실이 왜곡되어 세상에 굴러다니고 있다고 이토록 분노하고 다녀도 되는가. 과연 내가 본 어떤 자료가 사실이고 어떤 전문가의 말이 정확하단 말인가. 자료를 볼수록 자료를 불신하게 되고 전문가를 만날수록 전문가를 불신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앞에서 말이다.

이런 혼돈의 와중에 김정은은 미국의 대통령을 만나 포옹했다. 북한에 급변 사태가 일어나고 곧 통일이라도 될 것처럼 모두 환호했다. 북한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저렇게 반응할 수 있을까. 내 중얼거림에 사람들은 괜한 어깃장을 놓는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나는 조용히 집으로 돌아와서 렴민에게 말했다. 조금만 더 분발하자. 더 이상 무모해지지 않아도 될 때까지. 누구도 막을 수 없을 바람이 불어오는 그날까지.

 

 

■ 출판사 리뷰

 

김미수 작가의 장편소설 『바람이 불어오는 날』은 두만강과 압록강 너머 북한의 낯선 풍경을 그린다. 북한에 잠입한 남한 사람을 화자로 설정하였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특별하다. 사라진 탈북자 출신의 사업가를 찾아 조선족 브로커를 통해 휴전선을 건너 북한으로 잠입한 진보적 언론사의 북한 전문 기자가, 그 금지된 땅에서 맞닥뜨리는 불안하고도 기이한 사건들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함경도 산골짜기의 한 마을에서 자유와 혁명의 바람이 불어올 날을 기다리며 외롭고 무모하기까지 한 도전을 감행하는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거대한 독재체제 앞에서 해방과 자유를 갈구하는 그들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진보적 언론사의 북한 전문 기자인 탁에게 탈북민 출신 사업가인 이도수가 찾아온다. 탁은 남한에 정착하려는 탈북민을 도울 수 있게 자신의 기업을 키우도록 언론에 홍보해달라는 이도수의 부탁을 들어준다. 그러나 이도수는 거액의 사업 자금을 횡령하고 잠적해버리고, 피해자들에게 시달리다 이도수를 쫓아 중국의 국경으로 떠난 탁은 조선족 브로커의 알선으로 이도수의 고향에 잠입한다. 그곳에서 탁은 뜻밖의 살인사건을 목격하고, 렴민이라는 수상한 사내에게 감금된다. 함경도 산골짜기의 황량한 마을 추월리에서는 불안하고 긴장된 기류가 휘몰아치고, 탁은 렴민이 주도하는 혁명회라는 조직에 가담하게 되는데…….

북한을 전문으로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지식인이 직접 북한 사회에 속하게 되고 그들과 어울리는 서사를 통해서 북한 사람들이 겪는 애환과 고통을 생생하게 전달한다는 독특한 소설이다. 이는 김미수 작가가 직접 북한 전문가와 탈북자를 취재하고 많은 자료를 검토했기 때문에 가능하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북한과 북한 사람들의 숨겨진 진실을 이 책에서 발견함으로써, 그들과 연대하고 이해하는 데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 작품 속으로

 

지난 몇 달 동안 중국 쪽에서 두만강 너머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때에도 저렇게 희미한 불빛 하나라도 발견하고 싶어서 눈을 치뜨지 않았던가. 그때의 일이 어느새 까마득히 먼일처럼 떠오른다. 중국 공안과 북한의 국경 수비대가 한시도 빼놓지 않고 숲속에서 마주 보며 총을 겨누고 있어서 두만강을 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던 나날들. 날이 저물면 막막한 심정으로 두만강을 서성이던 숱한 날들. 북한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던, 아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시간을 지나, 지금 도수의 고향인 추월리에 들어와 있다니, 이런 현실이 꿈만 같고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14쪽)

 

북한으로 들어오기 전, 그러니까 도수가 실종되기 전, 도수는 탁에게 말하곤 했다.

“한국으로 도망쳐서 살게 되니까 처음엔 머리가 팽글팽글 돌았소. 하고 싶은 게 많기도 하고 뭐부터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자유란 걸 누려봤어야 자유를 누릴 줄 아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소. 우리는 대체로 위에서 지시하는 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됐거든요. 우리에게 가장 큰 적은 개인적인 생각이나 행동이었는데, 여긴 뭐든 내게 결정하란 거요. 선택이 얼마나 어려운지, 결정이 얼마나 힘든지, 그런 게 얼마나 부담스럽던지.” (51~52쪽)

 

‘종교는 반동적이고 비과학적이다. 사람들이 종교를 믿으면 계급의식이 마비되고 혁명하려는 의욕이 없어진다. 종교는 아편과 같다.’

희명은 학교 교과서를 통해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웠다. 어떤 형태의 종교든 허위적이고 미신이라고 했다. 종교는 지배계급이 인민을 속이고 억압 착취하는 도구라 했으며 대중의 혁명의식을 마비시키고 착취와 억압에 무조건 굴종하는 무저항주의를 고취하는 아편이라고 배웠다.(64쪽)

 

“저 회색 높은 울타리가 쳐졌던 건물을 파괴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여전히 견고할 독재자 앞에서.”

“단순히 하나의 건물을 파괴한 거로 생각하나?”

탁은 렴민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전국의 신전이 파괴되는 것이 오래 걸릴 거 같나? 아마 신전들은 어느 날 누군가의 기획으로 한꺼번에 지어졌겠지. 그러니 한꺼번에 없어진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지. 동시다발적으로 십여 군데 건물이 폭발될 날도 올 거야. 조직적이고 동시다발적이라서 수사에 혼선을 주겠지. 마치 봄날에 제멋대로 무더기로 피는 봄꽃을 보는 것처럼 어어, 하면서 한 시절이 지나갈 수도 있어.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전국적인 규모의 항거 같은 것이 진행될 수도 있고. 내 조부와 아버지가 중국을 떠돌면서 평생을 바쳐서 갈구하던 해방과 자유가 어느 날 문득, 오게 되겠지.”

“추월리 사람들은 이런 짓을 저지르고도 안전하겠습니까?”

“물론이지. 우리 조직은 자본이 튼튼하거든. 입막음이 조직적으로 되어 있으니까. 점차 정예화된 부대처럼 추월리 사람들이 들불처럼 다른 도시로 불길을 옮겨붙일 날이 오겠지.”

렴민은 활짝 웃는다. 아무런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 같다. 하늘 한가운데 뜬 보름달이 창문 안으로 남김없이 비친다. (257~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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