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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간행도서

울산민족문학회 엮음, <신화 바다 대곡천>

by 푸른사상 2022. 1. 17.

 

분류--문학()

 

신화 바다 대곡천

 

울산민족문학회 엮음|동인시 12|134×205×14mm(하드커버)|112쪽|15,000원

ISBN 979-11-308-1883-2 03810 | 2021.12.31

 

 

■ 도서 소개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의 신화를 노래 부르다

 

신화가 살아 숨 쉬는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을 다시 불러낸 『신화 바다 대곡천』(울산민족문학회 엮음)이 <푸른사상 동인시 12>로 출간되었다. 아득한 선사시대를 간직하며 원시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암각화 및 각석을 시인 및 작가들이 노래한다. 인류의 문화유산 앞에서 먼바다를 거슬러 오르는 고래를 꿈꾸고 있다.

 

 

■ 저자 소개

 

참여한 작가들(글)

강현숙, 곽구영, 구명자, 김윤삼, 김종원, 김태수, 나정욱, 노효지, 도순태, 박기눙, 백무산, 서경, 손인식, 송은숙, 엄하경, 이노형, 이동고, 이병길, 이수진, 이숙희, 이인호, 이제향, 임윤, 장상관, 정석봉, 정성희, 정소슬, 조덕자, 조숙, 조숙향, 황주경

 

참여한 작가들(사진)

구정회, 이수일, 김정임

 

 

■ 목차

 

▪ 여는 글 - 신화의 바다, 반구천

 

강현숙_ 천전리 각석 가는 길

곽구영_ 물속으로 들어간 말을 찾으면 옥색 하늘이 비칩니다

구명자_ 그들은 이제

김윤삼_ 취업 공고판, 반구대

김종원_ 그곳에는

김태수_ 야문 돌 하나 돌팔매 되어

나정욱_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노효지_ 천전리, 기억의 바위

도순태_ 벽벽(碧碧)

백무산_ 다시 천전리 암각화 앞에서

서 경_ 2017년 가을, 반구대 암각화

손인식_ 여나산곡(餘那山曲)

송은숙_ 바위의 씨앗

엄하경_ 암각화 속으로

이노형_ 울산역에서

이병길_ 사랑, 암각하다

이수진_ 반구대 블루스

이숙희_ 암각화

이인호_ 비가 새긴 그림

이제향_ 반구대 암각화

임 윤_ 선사시대의 밤

장상관_ 암석으로 가는 암각화

정석봉_ 대곡천 암각화

정성희_ 무량한 바위 책입니다

정소슬_ 호랑이 담배 피던 마을, 한실

조덕자_ 그대에게 가는 길

조 숙_ 기억하다

조숙향_ 강물에 갇혀

황주경_ 오래된 달력

 

박기눙_ 각서, 각식, 각석의 변주

이동고_ 도착한 날

 

▪ 참여한 작가들

 

 

■ 여는 글

 

신화의 바다, 반구천

 

숲속에 또 하나의 바다가 있습니다

태고의 시간이 잠든 바위처럼 깊고 검은 바다가

 

깊은 밤이면 먼 바다 고래는

강을 거슬러 오릅니다

달빛에 물비늘 일렁이며

더운 김 하얗게 수면 위로 번지는

검은 강 거슬러 숲속 바다를 찾아오곤 했습니다

 

이곳은 시간을 삼킨 바다였습니다

나무가 걸어 다니고 바위가 아이를 낳고

사슴들이 노래를 하고 뭇 짐승들이

서로 다른 몸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숲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아직 사람의 이름을 얻지 못했습니다

 

나누어지지 않았던 몸이었습니다

이 바다는 먼 옛날 고래가 바다로 떠나기 전에

살기도 했던 숲이었습니다

 

이름이 너와 나를 분리하기 이전의 숲이었습니다

빛과 그림자도 태어남과 죽음도 사람과 짐승도

하나의 몸을 이룬 생명의 바다였습니다

신화가 살아 숨 쉬는 바다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름을 얻고 나서

숲을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저 너머를 발명하고 내일을 발명하고

지금 이곳을 원망했습니다

나와 너를 발명하고

전쟁을 발명했습니다

검은 바람이 하늘을 뒤덮으며 몰려왔습니다

바다는 병이 들고

숲은 불탔습니다

 

강은 가로막혀 물길이 끊겼습니다

숲속 바다를 찾아온 고래의 등에는

작살이 깊이 박혀 있었습니다

어린 고래들의 울음소리 숲을 뒤흔들었습니다

 

고요의 바다는 피로 물들었습니다

죽은 사체들이 강을 타고 내려왔습니다

병든 고래들의 신음 소리가

암각화밤마다 인간의 마을에 유령처럼 찾아왔습니다

고래는 오르지 못할 강을 밤마다

거슬러 오르다 지쳐 돌아갔습니다

 

강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바다가 있었습니다

뜨거운 심장이 뛰는 바다와

바위처럼 깊고 고요한 바다

생명의 날숨과 들숨처럼

푸르고 검은 대칭의 두 바다가 있었습니다

 

신화의 꿈은 생명의 꿈입니다

고래는 아직도 고요의 소리를 따라 깊은 밤

강을 거슬러 오릅니다

― 백무산(시인)

 

 

■ 추천의 글

  

신과 자연과 인간이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던 시대. 반구대 암각화가 그려지던 시기는 어느 하나가 자신의 우월을 강조하며 타자를 억압하는 것이 아닌 서로가 존중받던 시대였습니다. 인간은 신을 두려워했고,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았으며,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자각하며 정신적으로 지금보다 훨씬 더 풍요로웠을 겁니다. 거대한 기후 위기가 닥쳐오며 숲은 타들어가고 강은 흘러넘치고 바이러스가 인간의 삶을 철저히 유린하는 지금, 우리가 다시 반구대 암각화를 떠올린 이유입니다. 반구대 암각화를 통해 우리가 지금껏 놓친 것이 무엇이고 무엇을 다시 일깨워야 하는지 생각합니다. 그래서 반구대 암각화를 떠올린다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성찰입니다.

― 이인호(시인)

 

 

■ 시집 속으로

 

천전리 각석 가는 길

                                  강현숙

 

고라니 지나가는 길

새들 쉬어 가는 곳

뒤돌아보면 아무것도 없는

무애의 걸음으로

이 세상에 온 적 없다는 듯이

이 세상 살지 않은 듯이

훌훌 왔다가 훌훌 져버리는

여름날 저 붉은 백일홍처럼만

살다가 져버렸으면 한다

끝없이 시공간을 탈주하며

어딘가로 흘러가고 싶을 뿐,

굳이 길이어야 했을까

굳이 새겨지는 의미라야 했을까

 

 

다시 천전리 암각화 앞에서

                                  백무산

 

다들 어디로 떠나버렸나요

여기 왜 적막한 고요만이 남은 거죠

나는 얼마나 오래 떠돌았나요

 

바위에 새긴 글들이 바람에 다 지워지도록

기억의 흔적들이 물에 다 씻겨 가버리도록

얼마나 오래 길을 잃고 떠돌았나요

언젠가 돌아올 거라고 믿었나요

돌아오면 찾아오라 바위에 길을 그려두었나요

 

이것은 물길이고 저것은 산맥입니다

저 너머 어딘가에 터를 잡았나요

저것은 바다이고 이것은 뱃길입니다

이곳을 떠나야 했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 먼 옛날 아프리카를 떠났듯이

그렇게 검치호랑이 메간테리온을 따라

어머니의 땅을 떠났듯이

해류를 타고 귀신고래를 따라 북해로 떠났나요

이 평화롭던 땅에 무슨 불화가 있었던가요

 

참혹한 전쟁을 치러야 했나요

힘겹게 일군 행복이 타인에게는 지옥이 되었나요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나요

내일을 발명했나요

다시 얼음이 뒤덮이고 봄이 오지 않았나요

불타는 욕망이 숲을 태워버렸나요

저 너머를 발명했나요

물을 건넜나요 저것은 먼 바다의 섬입니다

 

저 그림은 아무것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돌아온 나는 떠난 내가 아닙니다

나는 다른 짐승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내가 새긴 그림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선사시대의 밤

                                  임 윤

 

능선 거닐던 햇살이 실눈으로 그린 노을은

그늘로 치환된 선사 이야기

척추가 휘고 지독한 통증으로 걸음이 무뎌도

고래는 바다를 호랑이는 숲을 기억합니다

 

출렁거리는 문자로 왁자한 계곡

족쇄를 채우려 안달해도

물고문 일삼고

곡괭이 들이대며 으름장 놓아도

결코 가부좌를 풀지 않을 작정입니다

 

초저녁부터 옛이야기만 술술 풀어놓습니다

새벽의 윤곽이 뚜렷해질 때까지

아이 웃음소리와

움막에서 흘러나오는 가는 불빛

 

햇살이 정수리에 닿기 전

풀어놓았던 이야기 거둬들여

바위문은 흔적도 없이 굳게 닫혀버립니다

바위 속으로 빨려든 귀신고래

책갈피를 접고 긴 울음을 바다로 흘려보냅니다

 

 

 

호랑이 담배 피던 마을, 한실

-2 3의 반구대 암각화 발굴을 고대하며

 

                                  정소슬

 

내 고향 망성리에서 고개 하나만 넘으면 한실이다. 거기 왕고모할머니 살고 계셔서 아주 어릴 적부터 아버지 등에 업히거나 손에 이끌려 종종 넘어 다니곤 하였다. 고개 하나라지만 반나절이 더 걸리는 꽤 높고 긴 산길이었다.

 

할머니 생신이거나 잔치가 있는 날, 먼 산길을 걸어 마을로 내려서면 어김없이 곰방대 톡톡 두들기며 나무 턱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 담배통에서 주섬주섬 뭔가 꺼내 건네시는데 싯누런 엿이었다. 담배 냄새는 이미 호랑이가 다 채가고 없고 달달한 단내만 입안을 채워오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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