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시)
속삭거려도 다 알아
유순예 지음|푸른사상 시선 152|128×205×8mm|132쪽|10,000원
ISBN 979-11-308-1880-1 03810 | 2021.12.31
■ 도서 소개
가족과 고향을 향한 지극한 사랑의 노래
유순예 시인의 시집 『속삭거려도 다 알아』가 <푸른사상 시선 152>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농사를 천직으로 삼고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늙은 어머니를 지극한 사랑으로 노래한다. 서울 생활을 마감하고 귀향해 치매 환자들을 부모님처럼 돌보는 시인의 마음은 그지없이 따스하다.
■ 시인 소개
유순예
전라북도 진안고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지게와 쟁기, 어머니의 호미에서 시론을 배웠다. 2007년 『시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시집으로 『나비, 다녀가시다』 『호박꽃 엄마』가 있다.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등에서 어린아이들과 함께 시를 공부하다가 귀향했다. 현재 고향에서 “속삭거려도 다 알아”듣는 치매 어르신들의 입말을 받아쓰며 살고 있다.
■ 목차
제1부
땡고추 / 자성화(自成花) / 앵화(櫻花) / 화용(化蛹) / 사월, 새벽 비 / 감기 / 설사 / 황새체 / 야스쿠니 비둘기 / 마늘빵 세 개 / 다래끼 / 홀가분해진 우리 / 딴생각
제2부
능이 / ‘신들린 탑’이 낳은 설화 / 뿌리면 거두리 산마을 / 어리벙벙역에서 또랑또랑역으로 갈아탄 억새 / 태평봉수대, 산천초목에 외치다 / 밤느정이 / 망중투한 / 10분 24초 / 늙은 호박 / 전라도 부추꽃 / 어린 바람의 신혼집 / 상자해파리 / 씨방, 서로의 당도를 확인하다
제3부
속삭거려도 다 알아 / 치매꽃 1 / 치매꽃 2 / 치매꽃 3 / 치매꽃 4 / 산죽, 바람의 말을 해설하다 / 틀니 수행 / 인후염 / 오타 혹은 오류 / 제라늄 백일장 / 늦장마의 페로티시즘 / 연리지 / 형상과 형체의 합장 / 식은땀 / 그립니다, 붓글씨 / 처서 무렵 / 바닥청소부 코리 / 날다, 구피
제4부
소쩍새 새댁의 노래 / 강주룡 / 만유인력상수 / 가는잎할미꽃 / 신구간 / 딴전부리다 / 묵정밭 / 누드 비치 혹은 블랙스 비치 / 항암사 여승 / 통정 / 소주 / 그때는 주정 지금은 주전부리 / 왈가닥 / 우리 집 바깥양반 / 알싸한 깡패 / 구름 침대 / 풍어를 먹어 치운 홍어
작품 해설 : 육필(肉筆)로 쓴 시 -문종필
■ 시인의 말
시시한 일상을 가미하는 억새의 노래입니다.
먼저 간 사람들
끼고 볼 사람들
가야 할 사람들
그 사람들과 함께 이 노래를 듣고 싶습니다.
■ 작품 세계
유순예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기가 11월과 12월 사이이니 『나비 다녀가시다』(2007)와 『호박꽃 엄마』(2018) 이후 거의 4년 만에 출간된 시집이다. 출판 연도를 확인했을 때,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 사이의 간격이 10년 정도 존재하지만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죽을 때까지 현역으로 남는 것이 진정한 작가들의 꿈이라면 유순예 시인도 꼭 그렇게 되기를 희망해본다.
어쩌면 작품의 질이나 평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방식으로 ‘나’를 갱신하는 것일 테다. 시집은 거울처럼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는 행위이니 그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은 특별한 것이 되면 안 된다. 깨닫고 성장하는 삶 자체는 보통 인간의 삶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러한 진폭은 더 이상 특별한 것이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을 ‘때’까지 끊임없이 가슴속에서 반복되어야 한다. (중략)
시인의 삶은 고달팠지만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녀 곁에는 “서로의 당도”(「씨방, 서로의 당도를 확인하다」)를 묻어주는 좋은 사람들이 있고, 2014년 이후 광화문광장에서 “똘똘 뭉친 우리”(「홀가분해진 우리-시인 고(故) 강민 선생님을 그리며」)들의 우정도 소중하게 품고 있다. 무엇보다도 “엄마 뭐 해 어디야? 밥은 먹었어?”(「10분 24초」)라고 안부를 물어주는 멋지고 든든한 아들이 곁을 지켜주고 있다. 고생 끝에 ‘낙’이 찾아오기 시작한 것일까. 시인은 한국 현대사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해서도 외면하지 않는 곧은 사람이다. 약한 존재들에 대해서도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는 그녀의 체험 ‘시’를 믿어도 될 것 같다.
화려하진 않지만 ‘나’를 넘어선다는 점에서 ‘보통’의 삶은 값지다. “몸엣것 가고 난/몸에서/맑은 꽃”(「식은땀」) 피어나듯이 멋진 길 당당히 걸어가시기를 응원한다. 그 길은 아마도 지금과는 다른 ‘낙(樂)’의 삶이 될 것 같다.
― 문종필(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 추천의 글
유순예 시인은 추운 겨울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정의를 부르짖던 열혈 지사였다. 그런데 시인은 돌연 신산한 객지 생활 30여 년을 청산하고 고향 진안으로 귀향했다. 유 시인이 귀향한 것은 『호박꽃 엄마』에서도 보여줬듯이 효를 다하지 못한 부모님에 대한 부채 의식과 관련이 깊다. 아버지께 못다 한 효를 홀로 계신 어머니께 다하고자 선택한 것이다. 유 시인의 가슴은 늘 뜨거운 열정과 사랑으로 충만하여 고향에서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면서 치매 환자를 부모처럼 보살피고 있다. 그 현장에서 느끼고 체험한 것을 시작품으로 담아내는 작업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제 좀 살 만하니까/말하는 법도/옷 입는 법도/잊어버리고/부뚜막에 쪼그려 앉아 감자밥 짓던/먼 기억들마저 가물가물하다/울었거나 웃었거나/아들이 아버지로 보이고/거울 속의 내가 죽은 어머니로 보이고”(「치매꽃 1」)라고 노래한 것이 그 여실한 모습이다. 유순예 시인은 호박꽃 엄마이기도 하고, 치매 환자를 돌보는 치매꽃 엄마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로서 사랑이 넘치는 시인이다.
― 서정란(시인)
■ 시집 속으로
설사
저 원수 똥 받아내려고 개고생 참아낸 줄 알어?
부아가 치민 어머니
병든 남편의 똥 묻은 바지 벗겨
구린 푸념을 짓이긴다
저 주둥아리 받아치려고 발암(發癌)벽 세운 줄 알어?
구석으로 몰린 아버지
서울이 궁상맞다며
애먼 티브이만 째려본다
바지에똥지린놈,당신이아니라,당신을공격한,불한당인줄도모르는
아버지나
병든남편수발들기위해,낯선도시큰병원을옮겨다니다,울화통터진
어머니나
마음 둘 곳 없어
마음에 없는 소리만 하신다
으드득 바드득!
병든 새의 날개에서
깃털 빠져나가는
소리 간당간당하다
뿌리면 거두리 산마을
주소 변경을 왜 이렇게 자주 했어요
월셋집 반지하 창문으로 도둑이 다녀갔어요
햇살 없는 안방으로 곰팡이가 스며들었어요
보증금을 올려달랬어요
허물고 재건축 공사한다고 나가달랬어요
호적초본의 질문에 위의 사실대로 대답을 못 했어요
도회지 생활 삼십여 년 동안
매년 한 번꼴로 이사 다닌 처지였어요
신랄하게 쏘아보던 태풍이 이참에는
나를 아예 고향 산골짝으로 날려 보냈어요
전라북도 진안군 뿌리면 거두리 산마을
산골짝에 안주하신 나의 뿌리와
그 발치에 터 잡은 나의 줄기들이
뿌리면서 거둘 만한 집 한 채 장만했어요
이젠 주소 변경이라는 번잡한 놈
얼씬도 못 하겠지요
속삭거려도 다 알아
오줌 어르신도 잘 잤고
똥 어르신도 잘 잤는데요
배회 그 어르신은
밤새 오락가락하셨어요
노인 요양 시설 야간 근무자와 주간 근무자의
인수인계 대화를 귀담아들은
어르신, 병상에 누워
눈을 똥그랗게 뜨고 바라보신다
아흔여섯 살인 당신이
마흔한 살이라고 우기는
어르신, 굳어가는 혀로
떠듬떠듬 말씀하신다
소, 속삭, 거, 려, 도, 다,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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