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1 간행도서

맹문재 엮음, <박인환 영화평론 전집>

by 푸른사상 2021. 10. 12.

 

분류--영화평론

 

박인환 영화평론 전집

 

맹문재 엮음|박인환문학관 학술연구총서 3|160×232×29 mm(하드커버)|368쪽

32,000원|ISBN 979-11-308-1825-2 93810 | 2021.9.30

 

 

■ 도서 소개

 

한국 영화평론의 토대를 마련한 박인환 시인의 영화평론을 집대성하다

 

박인환 시인의 영화평론을 모은 『박인환 영화평론 전집』(맹문재 엮음)이 간행되었다. 영화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박인환은 한국전쟁 뒤 한국영화평론가협회를 결성하고 본격적으로 영화평론을 시작했다.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수준 높은 글들을 발표해 한국 영화평론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지금까지 발굴한 박인환의 영화평론은 총 59편으로 2년 남짓한 그의 작품 기간에 비추어보면 매우 놀라운 성과이다. 또한 이 전집에는 박인환의 영화평론이 발표된 잡지와 영화평론에 소개된 영화 포스터가 화보로 풍부하게 꾸며져 있다.

 

 

■ 박인환 연보

 

1926년(1세) 8월 15일 강원도 인제군 인제면 상동리 159번지에서 태어나다.

1933년(8세) 인제공립보통학교 입학하다.

1936년(11세) 서울 덕수공립보통학교 4학년에 편입하다.

1939년(14세) 경기공립중학교에 입학하다.

1941년(16세) 경기공립중학교 자퇴하고 한성중학교에 다니다.

1942년(17세) 명신중학교 4학년에 편입하다.

1944년(19세) 평양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다.

1945년(20세) 광복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상경해 ‘마리서사(茉莉書舍)’를 개업하다.

1948년(23세) 4월 20일 김경린, 김경희, 김병욱, 임호권과 『신시론』 발간하다. 4월 이정숙(李丁淑)과 결혼하다. 12월 장남 세형(世馨) 태어나다.

1949년(24세) 4월 5일 김경린, 김수영, 임호권, 양병식과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발간하다. 김경린, 김규동, 김차영, 이봉래, 조향 등과 ‘후반기’ 동인 결성하다.

1950년(25세) 1월 『경향신문』 입사하다. 한국전쟁 겪다. 9월 딸 세화(世華) 태어나다.

1951년(26세) 5월 육군종군작가단에 참여하다.

1952년(27세) 5월 15일 존 스타인벡의 기행문 『소련의 내막』 번역해서 간행하다. 6월 16일 「주간국제」의 ‘후반기 동인 문예’ 특집에 평론 발표하다.

1953년(28세) 5월 차남 세곤(世崑) 태어나다. 7월 중순 서울로 돌아오다.

1954년(29세) 1월 오종식, 유두연, 이봉래, 허백년, 김규동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 발족하다.

1955년(30세) 3월 5일 미국 여행하다. 10월 1일 시작품 「목마와 숙녀」(『시작』) 발표하다. 10월 15일 시집 『선시집』 간행하다.

1956년(31세) 3월 시작품 「세월이 가면」 이진섭 작곡으로 널리 불리다. 3월 20일 오후 9시 자택에서 타계해 3월 22일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다.

1959년(3주기) 10월 10일 윌러 캐더의 장편소설 『이별』 번역해서 간행되다.

2014년(58주기) 7월 25일 이정숙 여사 별세하다.

 

 

■ 엮은이 소개

 

맹문재

편저로 『박인환 시 전집』 『박인환 번역 전집』 『박인환 전집』 『박인환 깊이 읽기』 『김명순 전집-시·희곡』 『김남주 산문전집』 『김규동 깊이 읽기』, 공편으로 『한국 대표 노동시집』 『이기형 대표시 선집』, 시론 및 비평집으로 『한국 민중시 문학사』 『패스카드 시대의 휴머니즘 시』 『지식인 시의 대상애』 『현대시의 성숙과 지향』 『시학의 변주』 『만인보의 시학』 『여성시의 대문자』 『여성성의 시론』 『시와 정치』 등이 있음. 고려대 국문과 및 같은 대학원 졸업. 현재 안양대 국문과 교수.

 

 

■ 목차

 

∎ 책머리에

 

제1부 1948~1950년

아메리카 영화 시론(試論)

아메리카 영화에 대하여(설문)

전후(戰後) 미·영의 인기 배우

미·영·불에 있어 영화화된 문예 작품

로렌 바콜에게

 

제2부 1952~1953년

그들은 왜 밀항하였나?

자기 상실의 세대

<종착역> 감상

 

제3부 1954년

<제니의 초상> 감상

로버트 네이선과 W. 디터리 영화 <제니의 초상>의 원작자와 감독

1953 각계에 비친 Best Five는?

한국 영화의 현재와 장래

한국 영화의 전환기

앙케트

영국 영화

몰상식한 고증

<물랭루주(Moulin Rouge)>

존 휴스턴

<심야의 탈주>

<챔피언(CHAMPION)>

일상생활과 오락

인상에 남는 외국 영화

100여 편 상영 그러나 10여 편만이 볼만

 

제4부 1955년

영화의 사회의식과 저항

외화(外畵) 본수(本數)를 제한

최근의 외국 영화 수준

최근의 국내외 영화

1954년도 외국 영화 베스트 텐

영화예술의 극치

악화(惡畵)는 아편이다

시네마스코프의 문제

문화 10년의 성찰

<피아골>의 문제

산고 중의 한국 영화들

회상의 명화선(名畵選)

서구와 미국 영화

<내가 마지막 본 파리>

예술로서의 시네스코

영화 감상을 위한 상식

회상의 그레타 가르보

비스타 비전

 

제5부 1956년

‘금룡상(金龍賞)’을 제정

영화 법안

영화 구성의 기초

몽타주

아메리카의 영화 잡지

시나리오 ABC

다큐멘터리영화

세계의 영화상

옴니버스영화

1955년도의 총결산과 신년의 전망

현대 영화의 감각

회상의 명화선

한국 영화의 신구상

<격노한 바다>

이태리 영화와 여배우

J. L. 맨키위츠의 예술

회상의 명화

절박한 인간의 매력

 

∎ 작품 해설

∎ 작품 연보

∎ 박인환 연보

 

 

■ 출판사 리뷰

 

푸른사상사에서 박인환 전집 시리즈로 『박인환 번역 전집』과 『박인환 시 전집』을 발간한 데 이어 『박인환 영화평론 전집』을 간행해 영화평론가로서의 박인환을 새롭게 조명한다. 이 전집에는 <카사블랑카> <아리랑> <춘향전> 등 박인환 영화평론에 소개된 영화 포스터와 박인환 영화평론이 발표된 잡지들의 화보로 수록해 독자들에게 풍부한 자료를 제공한다.

1953년 한국전쟁이 휴전된 이후 1954년 한국영화평론가협회가 결성되면서 박인환은 본격적인 영화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에 서구 문화가 대거 유입되었는데, 이때 시작된 박인환의 영화평론 활동은 시대의 흐름을 적극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영화평론이라는 분야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당시, 협회 조직에 가담함으로써 한국 영화평론의 토대를 마련했다.

1954년 말경에 들어서는 『영화계』 『신영화』 『영화세계』 등 영화 전문잡지들이 창간되어 대중들의 이목을 끌었는데, 박인환은 영화 잡지를 비롯해 다양한 매체에 영화평론을 발표하여 국내외 영화를 소개했다. 그뿐만 아니라 감독, 시나리오, 배우 등 영화 제작에 관한 문제와 영화 정책에도 주목하여 발전 방안을 제시했다. 국내외의 영화 상황을 진단하고, 영화의 역할과 사회의식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었다.

1956년 갑작스럽게 타계하기까지 박인환은 누구보다 왕성한 영화평론 활동을 펼쳤다. 대중들이 영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고, 한국 영화를 향한 깊은 애정을 보였다. 국내외의 다양한 영화들을 소개하고 한국 영화의 발전을 위해 힘쓴 박인환의 영화평론가 활동은 주목된다. 당연히 주목해야 할 것이다.

 

 

■ ‘책머리에’ 중에서

 

박인환 전집 시리즈 중에서 올해는 『박인환 영화평론 전집』을 내놓는다. 그동안 『박인환 번역 전집』과 『박인환 시 전집』을 간행했고, 내년에는 박인환의 산문들을 엮어 간행할 예정이다. 박인환의 작품들을 발굴하고 간행하는 작업은 수월하지 않지만, 박인환 연구에 필요한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기에 보람을 느낀다.

지금까지 발굴한 박인환의 영화평론은 총 59편으로 동시대의 영화평론가들 중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질적으로도 수준이 높다. 앞으로 박인환은 모더니즘 시 운동을 주도한 시인일 뿐만 아니라 영화평론가로서의 지위도 확고하게 갖게 될 것이다. 마땅히 인정해야 할 것이다. (중략)

박인환 시인은 한국 영화를 매우 사랑했다. 그 깊은 애정이 있었기에 한국전쟁으로 인한 폐허의 땅에서도 한국 영화가 발전할 수 있었다. 영화평론가 박인환의 열정에 경의를 표하며 그의 목소리에 다시 귀 기울인다.

 

 

■ ‘작품 해설’ 중에서

 

박인환이 영화평론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이 휴전된 뒤부터, 특히 1954년 1월 한국영화평론가협회를 결성한 뒤부터였다. 영화평론이라는 장르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박인환이 주도한 조직 활동은 한국 영화평론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박인환은 이 단체의 상임 간사를 맡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한국전쟁이 휴전된 뒤 물밀 듯이 들어오는 서구의 문화 중에서 영화는 단연 앞장선 것이었으므로 박인환의 영화평론 활동은 시대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박인환은 그 이전에도 영화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메리카 영화에 대하여」(『신천지』, 1948. 1), 「전후(戰後) 미·영의 인기 배우」(『민성』, 1949. 11), 「미·영·불에 있어 영화화된 문예 작품」(『민성』, 1950. 2), 「로렌 바콜에게」(『신천지』, 1950. 6), 「그들은 왜 밀항하였나」(『재계』, 1952.8) 등이 그 예이다. (중략)

1956년 3월 20일, 박인환은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그 누구보다도 왕성한 영화평론 활동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의 급작스러운 비보는 큰 아쉬움을 남겼다. 박인환이 타계한 이후 발표한 영화평론은 「<격노한 바다>」, 「이태리 영화와 여배우」, 「J.L. 맨키위츠의 예술― <맨발의 백작 부인>을 주제로」, 「회상의 명화― <백설 공주> <정부(情婦) 마농>」, 「절박한 인간의 매력」 등이다.

박인환은 영화 잡지들을 비롯해 다양한 언론 매체에 영화평론을 발표함으로써 외국 영화와 영화배우를 독자에게 소개하는 것은 물론 한국 영화의 상황을 진단하고 전망했다. 제작자, 감독, 시나리오, 배우 등 영화 제작과 관계된 문제뿐만 아니라 영화 정책에도 관심을 갖고 그 나름대로 발전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 책 속으로

 

한국적이라고 자랑하던 것…… 말하자면 다 쓰러져 가는 농촌에서 지주에게 딸을 빼앗기는 농부의 서러움이나 강가에 배가 있고 수양버들 밑에서 울고 있는 처녀의 이야기…… 이러한 일련의 개념성을 버리고 새 시대가 욕구하는 현실과 미래에 걸친 참다운 인간 사회를 우리 영화인은 필름에 기록하고 표현하여야 할 것이다.

― 「한국 영화의 전환기」 중에서 (107~108쪽)

 

심위가 민간단체의 성격을 띠는 데 반해서 이러한 협의적인 기관은 많은 반관성(半官性)을 지니게 하여야 하며 재언(再言)한다면 ‘영화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가진 사람들만의 모임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중략)

이러한 순수한 단체가 다방면으로 노력한다면 법적으로 하등의 근거가 없는 ‘영화 검열제’ 같은 것도 자연 폐지될 것이며 자유로운 영화 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도 즐겁고 좋은 분위기가 양성될 것이라고 믿는다.

― 「외화(外畵) 본수(本數)를 제한」 중에서 (160쪽)

 

앞으로 제법 규모가 완비된 스튜디오라도 하나 있으면 전 영화인은 열정을 더욱 기울여 내용과 질에 있어서 그리 손색없는 작품을 많이 만들 것이라고 믿는 바이다. 그리고 상기한 영화들은 지금의 제작 진행의 성과로 보아 앞으로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까지도 진출될 충분한 가능이 엿보이고 있다.

― 「산고 중의 한국 영화들」 중에서 (211쪽)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