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소설)
살아 있는 돌
이길환 지음|푸른소설선|146×210×18 mm|312쪽|16,500원
ISBN 978-89-91918-98-6 03810 | 2021.7.27
■ 도서 소개
한 조각 삽화처럼 남은 미묘한 인연들의 기억
이길환의 소설집 『살아 있는 돌』이 <푸른소설선>으로 출간되었다. 추억 속에 한 조각 삽화처럼 남은 만남과 이별, 미묘한 인연의 고리 등 여러 가지 소재들을 이야기로 엮어내는 작가의 솜씨가 인상적이다. 작가가 직접 덧붙인 해설은 작품을 이해하는 데 긴요한 도움이 되어준다.
■ 작가 소개
이길환
1994년 중편 「타인의 침상」으로 『오늘의 문학』 신인작품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로 『아르마딜로』 『영화 속의 남자』 『하늘채 사랑』 『길에게 묻다』 『불조직지심체요절』, 창작집으로 『찔레꽃 화장』이 있다. 제3회 직지소설문학상 최우수상을 받았으며, ‘금강의 소설가들’ 회원,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mail:4245111@daum.net)
■ 목차
■ 작가의 말
내 영혼의 나그네
세월의 뼈
여름 한낮
벽 속의 너
살아 있는 돌
전생에서의 하루
미늘의 눈
묻어 있는 시간
망각의 세월
아름다운 이별
■ 작품 해설:음영(陰影)에서 생성되는 이별과 해후 ― 이길환
■ 발표지 목록
■ 출판사 리뷰
활발한 집필 활동을 이어온 중견 소설가 이길환이 『한국소설』, 『금강의 소설가들』, 『문예와 비평』 등 여러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들 중 단편 8편, 중편 2편을 엮어 이 소설집에 실었다. 추억 속에 한 조각 삽화처럼 남은 만남과 이별, 미묘한 인연의 고리 등 여러 가지 소재들을 이야기로 엮어내는 작가의 솜씨가 인상적이다. 한국전쟁과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같은 역사적 사건을 제재로 민중이 겪은 아픔과 애환도 들려준다. 작가가 직접 덧붙인 작품 해설은 소설의 모티프가 된 사건과 영감을 받은 일들을 밝혀 작품을 이해하는 데 긴요한 도움이 되어준다.
표제작인 「살아 있는 돌」은 요양원에서 지내는 노인들의 활력 없는 삶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나날을 담은 소설이다. 치매에 걸리거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요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온종일 잠을 자거나 침대에 앉아 죽음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자식들은 각자 살아가느라 바빠서, 한번 들어가면 죽어서야 나오는 현대판 고려장과도 같은 요양원에 부모를 모실 수밖에 없다. 그 밖에,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때문에 고향을 떠난 원주민들의 이야기를 다룬 「미늘의 눈」, 조부 묘의 이장(移葬)을 통해 한국전쟁의 비극을 부각한 「세월의 뼈」 등, 수록작들의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하다. 각 작품마다 인물들의 인간적 삶의 역경과 고뇌를 생생하게 형상화함으로써 지금껏 지나온 길,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 작가의 말 중에서
두 번째 소설집을 묶는다. 첫 소설집을 묶을 때는 쉽게 작품을 선택하여 발간했는데, 이번에는 오래전에 발표했던 작품까지 일일이 찾아내서 다시 읽어보며 수록할 작품을 골랐다. 그 때문에 작품이 다소 요즘 시대와 동 떨어지는 것도 있다. 가령 6·25나 5·18의 시대적 배경이 나오는데, 이는 작품을 오래전에 발표했기 때문이다.
작품을 쓸 때마다 나는 시종일관 긴장을 한다. 단편소설이나 중편소설을 쓸 때는 그나마 분량이 짧아 긴장이 빨리 끝나지만, 장편소설을 쓸 때는 몇 달씩, 혹은 일 년 동안 긴장하기도 한다. 긴 시간 동안 긴장하다 마침내 작품이 끝나서 긴장이 탁 풀릴 때의 그 쾌감, 그것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이번 소설집을 묶는 동안에도 긴장의 연속이었다. 작품을 고르고, 교정하고, 출판사에서 온 교정지를 붙들고 또 여러 날을 고생했다. 이제 교정을 끝내고 홀가분하게 계룡산을 찾는다. 가끔 오는 산이지만 녹음이 짙어 편안하다. 연일 된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갈참나무 위에서 매미가 따갑게 울어댄다. 땅속에서 6년 만에 나온 매미다. 암컷 매미는 단단한 산란관이 있어 나무껍질을 뚫고 속에 알을 낳는다. 45일에서 10개월, 또는 그 이상 걸려 부화한 애벌레는 땅속으로 들어가 나무뿌리의 진을 빨아먹으며 자라다가 열다섯 번이나 탈피한 끝에 6년 만에 밖으로 나와 허물을 벗고 매미가 된다. 북아메리카의 매미는 애벌레로 지내는 기간이 17년이나 되는 것도 있다고 한다.
소설을 쓰는 데에도 매미처럼 인고(忍苦)가 따른다. 스토리를 이어가며 플롯과 주제와 문체가 어긋나지 않았는지 살피며 끌어가다 마침내 종지부를 찍을 때, 나는 매미가 된 기분이다. 애벌레의 긴 인고 끝에 얻은 작품이 화려하게 날개를 달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매미를 닮았기 때문이다. 글을 많이는 못 쓰지만, 한 편이라도 작품이 탄생할 때마다 나는 긴장이 풀리고 또 한 편의 소설을 끝냈다는 희열을 느낀다.
■ 작품 세계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글을 쓰는 데는 특별한 방도가 없다고 했다. 그는 “오랫동안 한곳에 붙박여서 쓰고 또 쓰는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그의 대표작인 「노인과 바다」는 무려 200번이나 교정을 했고, 『무기여 잘 있거라』도 39번이나 새로 고쳐서 나온 작품이라고 한다. 이런 부지런함이 그를 노벨상의 영광도 있게 했고 세계적인 대문호로 만들었다. 이처럼 소설은 자신과의 끈기 있는 싸움이다. (중략)
「살아 있는 돌」과 「아름다운 이별」은 죽음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전자는 요양원에서, 후자는 집에서 직접 죽음을 맞는데, 둘 다 노인의 삶을 다루고 있다. 작은아버지가 요양원에서 지내서 가끔 면회하러 갔었다. 그곳에서 활력이 없는 노인들의 삶을 보며 작품을 구상했다.
「살아 있는 돌」은 시골에서 혼자 사는 아버지가 치매에 걸려 누군가가 모시지 않으면 안 되는데, 형제들이 서로 모시기를 거부해서 요양원으로 모시고, ‘나’는 요양원 직원이라 아버지를 관찰하는 내용이다. 나를 낳고 이듬해 어머니가 병으로 죽어서 아버지는 계모를 들였는데, 민철이라는 아이까지 데리고 온 여자를 나와 형은 새엄마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새엄마는 민철이를 남기고 떠났고, 아버지는 그 여인을 못 잊어 40년 전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요양원이란 곳은 한번 들어가면 죽어서야 나오는 현대판 고려장과도 같다.
이처럼 아버지가 하는 일이란 온종일 잠을 자거나 간이침대에 앉아 있는 일이다. 이미 치매에 걸려 기억을 못 하고 혼자서는 거동을 못 하는 아버지는 그곳에서 죽음을 맞을 때까지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 때문에 아버지는 앞으로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중략)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남들이 다루지 않은 기발한 소재를 찾아야 하는데, 나는 일상에서 쉽게 소재를 찾고 글을 써왔다. 스티븐 무어(Steven Moore)는 ‘작가는 혼자서 모든 배역을 맡는 오페라’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소설을 쓸 때 나는 모든 것을 경험한 것처럼 혼자서 다 써나가기 때문에 좋다. 소설을 쓰는 동안 누가 간섭하거나 조언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소설이 매력 있는지 모르겠다.
― 작품 해설 중에서
■ 작품 속으로
“그때는 무조건 빨갱이는 처단해야 했고, 빨갱이가 설 자리가 없었다. 한 집에 빨갱이가 있으면 그 가족까지 몰아서 처형하는 연좌제가 있었고, 어머니는 아들에게만큼은 빨갱이 자식이라는 멍에를 씌우지 않으려고 생면부지인 남자를 자신의 남편이라고 부둥켜안고 울었나 보다. 다, 나 잘 되라고.”
아버지는 다시 막걸리를 마신다. 칠십 년 동안 가슴에 묻어둔 한이 이제야 풀리는 모양이다. 인부들은 삽을 놓고 저마다 담배를 피워 물고 있다. 어차피 산업단지가 조성되므로 남은 묘도 없애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니다. 연고가 없는 묘라고 시에 알리면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화장하든, 다른 곳으로 옮기든 알아서 할 것이다. 나는 굴착기 기사에게 파헤쳐진 묘를 복원하라고 말한다. 할아버지의 묘인 줄 알고 명절 때마다 찾아와 절을 올린 것이 꺼림칙하다.
(「세월의 뼈」, 44쪽)
나는 거동을 못 하는 노인을 침대에서 일으켜 휠체어에 앉혔다. 노인은 앙상한 뼈만 남아서 깃털처럼 몸이 가벼웠다. 알아서 손수 몸을 씻는 노인들은 그나마 생활이 나은 편이었다. 실내에서는 자유롭게 다닐 수 있으므로 식사를 끝낸 노인들은 세면장에 갔다 와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휴게실에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었다. 모두 환자복을 입은 노인들이라 멀쩡한 노인도 환자처럼 보였다.
이곳에는 총 사십여 명의 노인이 요양하고 있다. 그중에 아버지도 포함되어 있다. 여든여섯이나 된 아버지를 시골집에 혼자 있게 할 수 없어서 요양원으로 모셨는데, 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함에도 다시 집으로 보내달라고 시도 때도 없이 성화였다.
(「살아 있는 돌」, 131쪽)
「호곡」에서 이미 밝혔듯이 그는 바로 그 무렵에 김설원 씨를 만났다. 이십 대 초반에서 함께 강의를 듣던 여학생이었다. 김설원 씨는 그때 발랄하고, 우울하고, 현실을 비판하고, 시위하고, 공부하고, 어디에 비위를 맞춰야 할지 모를 여자였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그다음 날, 그러니까 5월 19일 20시경에 그는 광주 서구청 앞에서 김설원 씨와 함께 있었다. 그는 구경꾼으로, 김설원 씨는 횃불을 들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렸다. 시민들이 쓰러지고 피 흘리고, 군화 소리가 가까워졌다. 그는 김설원 씨의 손목을 잡고 뛰었다. 어디가 어딘지 모르며 달렸는데 이상하게도 군화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돌부린가에 걸려 그는 넘어졌다.
-형, 일어나. 잡히면 죽어. 김설원 씨가 그를 부축했는데, 군화 소리가 다가오자 그녀는 저편으 로뛰어가고 있었고 누군가가 자신의 목덜미를 움켜잡는 전율을 느꼈다. 그때, 자신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있었다. ‘저 여자가 주동자예요. 난 단지 구경만 했어요.’ 그 후로 김설원 씨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망각의 세월」, 2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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