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시)
곡선을 기르다
오새미 지음|푸른사상 시선 145|128×205×8mm|146쪽|10,000원
ISBN 979-11-308-1801-6 03810 | 2021.6.15
■ 도서 소개
곡선의 물길을 틀어 마음을 적시는 시편들
오새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곡선을 기르다』가 <푸른사상 시선 145>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숲과 나무로 둘러싼 자연의 한복판에서 이 세상의 존재들과 어우러지고 소통하며 조화를 이룬다. 우리 삶의 풍경을 가로지르는 곡선의 유연한 이미지들로 메마른 존재들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 시인 소개
오새미 (본명 오정숙)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다. 2018년 『시와 문화』 신인상에 「밤의 온도는 측정 불가」 외 4편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가로수의 수학 시간』이 있다. (E-mail : oh9647@hanmail.net)
■ 목차
제1부
계절의 이빨 / 나무의 건축법 / 꽃의 질량은 변하지 않는다 / 리트머스 잎사귀 / 나무는 노래한다 / 비는 수직 바람은 수평 / 물의 토목공사 / 봉숭아꽃 더욱 빨개질 때 / 사막에 내리는 눈 / 배추밭 보육원 / 사자왕의 행진 / 사원과 거목 / 길을 사유하다 / 모서리의 진화 / 기억 속엔 ㄱ이 살고 있다
제2부
단추의 감정학 / 연필심 / 나무의 경제학 / 울음 김장 / 새벽 어시장엔 바다가 없다 / 빨간 날 / 새벽을 배송하다 / 바다에 놓인 의자 / 검은가슴물떼새 / 눈물의 서식지 / 명당 / 동굴 파는 사람들 / 살얼음 꽃 / 산은 낮아진다 / 별의 눈물은 달다
제3부
뿌리 없는 나무 / 노을 택배 / 장마 정거장 / 등대부엉이 / 꽃피는 아궁이 / 번 아웃 / 숨겨둔 일기 / 홍수가 지나간 마을 / 우물은 퍼내도 마르지 않는다 / 눈물 한 병 어둠 한 접시 / 새들은 날지 않는다 / 빨래 건조대 / 흐린 날에 눈을 감고 / 대하소설 제1권 봄 / 틈
제4부
신발은 외롭다 / 곡선을 기르다 / 구름의 수유 / 감나무 설경 / 먼지가 사는 집 / 토마토 / 이따봐새 / 봄에 떨어지는 나뭇잎 / 눈물밥 / 눈물 속에 길이 있다 / 버팀목 / 립스틱 / 마리나베이가 있는 하늘 / 생일 / 우 박사 / 식탁방
작품 해설 : 나무와 곡선의 건축술-이재훈
■ 추천의 글
산그늘이 감싼 붉은 이슬, 떡잎들의 연둣빛 옹알이, 아기가 듣는 엄마의 심장 박동 등 오새미 시인의 시에 출몰하는 곡선의 이미지들은 부드럽고 촉촉하게 시집 전편을 휘돈다. 그 곡선은 동그란 나이테 오선지로, 눈이 앉았다 떠난 자리마다 파랗게 움트는 새싹으로, 물관 깊숙한 기도로 혹독한 시련과 상실뿐인 존재의 심장을 따스하게 감싸고 위무한다. 온몸을 던져 도로를 내는 물의 토목공사나 눈보라의 송곳니에 물려 꿈틀대는 뿌리처럼 익숙한 자연물에서 건져 올리는 이미지들은 상상의 물길을 틀어 메마른 가슴을 적시며 다채롭게 분류(分流)한다.
그녀가 눅눅한 행주에 서식하는 눈물과 네 개의 뿔을 품은 모서리의 통증으로도 날마다 진화하는 이유는 하루를 훈훈하게 지피는 아궁이처럼 잿더미 속 빨간 불씨를 간직한 시인이기 때문이다. 그 사랑은 어판장 노인의 뒤틀린 어깨나 보육원 아이들의 김장놀이를 들여다보기 위해 몸을 낮추며 점점 둥글어진다. 몸과 마음에서 자라나는 곡선은 그녀의 시를 멀리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다. 갈라지고 금 간 세상의 틈을 메우는 민들레 같은 희망이 녹아든 집, 그녀 시집의 초록 깊은 우물물에 입술을 축여볼 일이다.
― 강신애(시인)
■ 시인의 말
연두색 크레파스를 꼭 쥐고 연둣빛 새싹을 그리다가
초록색으로 바꿔 쥐고 초록빛 푸른 잎사귀를 그린
두 번째 시집입니다
바람에 흔들려 가지가 아플 때
진통제 삼아 별을 마시곤 했던 나무의 날들과
가지에 온기를 전해주었던 따뜻한 햇살의 손길을
초록빛 글씨로 적어
내려놓습니다
■ 작품 세계
시인은 나무의 속살을 바라보고, 나무의 전생을 헤집으며, 나무에 관한 존재의 비의를 끊임없이 묻고 타진하는 언어를 선험적으로 내뱉고 있다. 나무에 관한 수많은 시와 나무에 관한 수많은 이미지는 서로 변용되고 습합되며 새로운 인식의 지점을 획득해 나갔다. 오새미의 시에서도 나무에 관한 본질적 사유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오새미는 나무가 인간과 오래도록 소통한 흔적을 찾는다. “고사목이 되는 주사를 맞으며/허연 등뼈를 드러낸 채 눈 감고 있는 거목도 한때는/몇억 광년 거리의 행성과 교신했을 터”(「사원과 거목」)라며 죽은 나무의 근원까지 헤아린다. 이러한 인식은 나무를 평범한 식물적 대상이 아니라 특별한 대상으로 자각한다는 점을 지시한다. 이미 타버린 나무에게까지 오래도록 시선을 던지고 이내 “속에서 불이 꺼지지 않았는지”(「번 아웃」) 살피고 이를 통해 쌓인 눈이 녹는다는 현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설파한다.(중략)
오새미는 나무를 통한 수직과 수평의 인식과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 삶을 바라보는 곡진한 시선 등을 통해 시의 긴장을 견지해왔다. 수직과 수평의 인식은 곡선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위의 시에서 나무의 “잎사귀나 꽃은/직선이 없고 곡선만 있다”고 한다. 나무의 수직과 수평의 상상력에 그치지 않고 곡선으로까지 확장한다. 나무는 “무성한 줄기로 슬픔과 배려를 기르며/숲도 달빛도 동반자”라고 인식한다. 직선만 있으면 이 세계는 유지할 수 없다. 수직과 수평이 줄 쳐진 세계 속에서 곡선의 유연함이 있어야 단호한 선들을 모두 품을 수 있다. 그런 곡선의 상징을 힘입는 대상으로 “아기”, “산새”, “울음”, “이슬”을 얘기한다. 곡선이 아니고는 품을 수 없는 시적 대상들을 하나씩 호출한다.
곡선은 “사람까지 키우는” 힘이 있다. 눈앞이 온통 곡선의 세상이라면 당신은 사람으로 커가고 있는 것이다. 오새미는 나무를 통해 세계를 보고, 수평과 수직의 이미지로 사물의 본면을 사유하다, 곡선에 이르러 사람을 살핀다.
―이재훈(문학평론가·건양대 교수) 작품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나무의 건축법
햇살이 길게 팔을 늘이고
바람이 살랑살랑 찾아오는 언저리에
튼튼하게 터 잡은 나무
깊숙이 뿌리를 내리는 공사
땅을 깊게 파
잔잔한 자갈과 모래를 섞어
철재처럼 굳건한 기둥을 세운다
바위가 가로막기도 하지만
틈을 지나가며 감싸는
유연한 공법으로 해결한다
굵은 줄기로 층층이 쌓아가며
넓고 푸른 잎사귀로 인테리어를 한다
전기공사는 벌과 나비의 일
꽃들이 눈부신 조명을 켠다
바람의 노래를 부르는 우듬지 테라스
날아가는 음표들이 햇빛에 찰랑댄다
더욱 깊어지는 초록 그늘
나무의 건축이 완성되는 날
하늘은 드넓은 정원이 되어주었다
비는 수직 바람은 수평
방울방울 흘러내리는 비
나무를 수직으로 젖게 하고
흔적 없이 지나가는 바람은
꽃향기를 수평으로 번지게 한다
모두가 꿈꾸는 조화
기차는 들판을 가로로 달리고
건물은 하늘을 세로로 올라간다
과욕을 억눌러야 하는데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들
가속 페달에 발을 얹는다
아래로 쏟아지며
먼지를 씻어주는 비
강물은 옆으로 흐르며
윤슬로 반짝인다
세상을 수평으로 길들이는 바람은
분수에 넘치는 구름에게
해법을 알려준다
잎사귀에 중심을 두고
뿌리에 마음을 담는
수직의 비와 수평의 바람이
균형을 잡는 날이다
곡선을 기르다
곡선을 기르는 나무
잎사귀나 꽃은
직선이 없고 곡선만 있다
무성한 줄기로 슬픔과 배려를 기르며
숲도 달빛도 동반자라고 가르친다
직선을 선호하는 사람
꺾일 수도 떨어질 수도 있어
엄마 젖을 먹으며 자라는 아기를
곡선으로 기른다
둥지 잃은 산새와
비바람에 쓰러지는 풀잎의 울음
둥글게 드리운 산그늘이 감싼 붉은 이슬
곡선이 아니고는 품을 수가 없다
나무를 가꾸며 꽃을 피우고
사람까지 키우는 곡선
봄산을 오르다 무더기로 피어난
제비꽃과 철쭉에 멈춰서는 발걸음
햇살의 그림자와 바람의 손길
눈앞이 곡선의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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