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논리에 감춰진 한국사회의 민낯
무안 출신 백정희 소설가
소설집 '가라앉는 마을'
소외된 약자 향한 시선
한국사회 부조리 담아
1960년대 이후 산업화는 굶주림을 해결했지만 또 다른 사회 모순과 부조리를 낳았다.
이것은 양극화와 청년실업 급증 등으로 이어지면서 세대간 계층간 갈등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고 있다.
무안 출신 백정희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가라앉는 마을'(푸른사상刊)은 소외된 계층과 약자들을 향한 속 깊은 애정으로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부조리를 짚어낸다. 각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생존권이 보장되지 못하고 자본의 논리 속에서 착취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도시 공간의 재개발과 농촌 개발에 따른 거주민의 계급적 분리와 생존에 직면한 현실은 주거 난민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빈곤하다는 이유만으로 뿌리내렸던 곳으로부터 주변부로 배제되고, 개인과 사회의 폭력에 직면하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표제작이자 작가의 등단작인 '가라앉는 마을'은 자본의 논리가 어떻게 거주자인 인간을 추방하고 배재하는지 잘 보여준다. 마을 주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농촌 지역에 개발되는 생수공장의 취수 작업으로 인해 마을이 가라앉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인간의 근원적인 삶의 터전인 '땅'이 자본과 문명화에 의해 상실되고 파괴되고야 만 것이다.
신자유주의 시대 이후 자본의 새로운 축적 논리에 급변하고 있는 현재, 이명박 정권 시기의 '뉴타운 재개발'의 광풍으로 휩쓸려간 도시의 주거지를 배경으로 삼은 작품도 주목할 만하다. '바람은 길이 없다'와 '계단 위에 있는 집' '마지막 집'의 등장인물은 낡은 연립주택부터 임대아파트까지 주거 공간에서 가진 자와 빈곤한 자 사이의 차별과 폭력성을 잘 드러내준다.
이외에 백화점 식육부에 근무하는 임금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다룬 '외양간 풍경', 관광 개발에 따른 자연 파괴와 이주를 결정하는 동물들의 비상회의를 그린 '새들은 어디로 갔을까', 작품 표절과 도용의 문제를 조명한 '진혼교향곡'은 우리 앞에 펼쳐진 인간 문제를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백 작가는 그의 소설을 통해 자본의 논리 속에서 삶의 근거는 물론 예술적 존엄을 훼손당하는 자본에 의한 수탈과 착취의 현실을 도시 개발의 과정 속에서 추방당하는 원주민의 시선과 중첩시켜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소설집에 수록되어 있는 여러 작품들은 계급적 분리에 의해 작동되는 도시 안에서의 풀뿌리 민중의 고통에 대해 표현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두드러진다.
농민들에게 '땅'은 도덕경제의 토대이다. 땀 흘린 만큼 소출을 거둘 수 있고, 이를 통해 가족경제를 지속할 수 있다는 오래된 희망이 농민들의 집단적 심성이다.
백정희 작가는 "국가가 국가에게 가하는 폭력, 국가 권력이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 개인이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 인간이 자연에게 가하는 폭력 등. 인간에게 폭력을 당한 자연은 다시 인간에게 재앙이 되어 되돌아오는 폭력을 생각했다"며 "인간들에게 상처 입은 흙이 눈물 흘리는 울음소리를 들었고 나무와 꽃과 새들의 울음소리, 바다와 강에서 들려오는 물고기들의 눈물과 울음소리, 땅속 지렁이들의 눈물과 울음소리, 인간 외의 이 지구 안에 존재하는 모든 동식물 생명체들이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는 울음소리가 제 귓전을 때렸다. 이제는 이 모든 폭력이 멈추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모든 생명체들의 울음소리를 제 펜 끝으로 외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응백 평론가는 "백정희의 소설을 읽으면 우리는 문학을 왜 하는가 하는 전통적인 질문에 바로 마주치게 된다"며 "그는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외된 자에 대한 뿌리 깊은 애정으로 반대편에 있는 제도와 인간을 질타하고 문학은 생계 수단이나 명예 같은 세속적인 것이 아니라 운명처럼 달라붙어 있는 신성불가침의 존재임을 증명한다"고 평했다.
백정희 작가는 무안군 청계면 남안리 동암마을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지난 1998년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가라앉는 마을'이 당선,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박화성문학상('싹') ,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상 대상('탁란'), 전태일문학상('황학동 사람')을 수상했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을 2회 받았다. 소설집으로 '탁란(托卵)'이 있다.
무등일보, "자본의 논리에 감춰진 한국사회의 민낯", 최민석 기자, 202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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