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수필)
무화과가 익는 밤
박금아 지음|푸른사상 산문선 38|147×217×14 mm|240쪽
16,500원|ISBN 979-11-308-1791-0 03810 | 2021.5.30
■ 도서 소개
유년의 뜨락에 세워진 한 그루 무화과나무
박금아의 첫 수필집 『무화과가 익는 밤』이 <푸른사상 산문선 38>로 출간되었다. 어린 시절 저자에게 어머니는 친구네 집 마당에 있던 무화과나무처럼 늘 손이 닿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모성애 결핍 콤플렉스로 반평생을 ‘우는 아이’로 살았던 저자는 글쓰기를 통해 모든 인간과 자연은 ‘울음을 품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울음’을 존재에 대한 연민으로 승화시켰다. 상징과 비유로 함축된 시적 언어와 탄탄한 문장이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 작가 소개
박금아(본명 朴錦仙)
남쪽 바다의 작은 섬에서 어부의 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부모를 떠나 뭍으로 나왔다. 진주 삼현여고를 거쳐 숙명여자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한 뒤 삼성그룹 사보 기자로 일했다. 삼십여 년을 전업주부로 살면서 좌충우돌한 시간을 버텨내느라 글을 썼다. 우연한 기회에 아버지의 이야기를 쓴 글로 해양문학상을 받았고, 2015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수필 「조율사」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등대문학상(2017), 천강문학상(2019)을 수상했고, 201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창작기금 수혜작가로 선정되었다.
(E-mail_ ilovelucy@hanmail.net)
■ 목차
작가의 말
제1부 푸른 유리 필통의 추억
길두 아재 / 별똥별 / 적자(嫡子) / 깃발 / 앞돌 / 동박새 / 어린 손님 / 푸른 유리 필통의 추억
제2부 무화과가 익는 밤
태몽 / 어장(漁場) / 애기똥풀 / 단층애(斷層崖) / 택배 할매 / 어머니의 지팡이 / 열무김치 담근 날 / 그녀가 대답해주었다 / 무화과가 익는 밤
제3부 달팽이의 꿈
매발톱꽃 앞에서 / 달팽이의 꿈 / 암매미의 죽음에 부쳐 / 어떤 문상(問喪) /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 오빠 생각 / 피아노가 있던 자리 / 음력 팔월 스무나흗날 아침에 / 놀란흙 / 휘파람새
제4부 동백꽃 피는 소리
새를 찾습니다 / “우린 날 때부터 어섰주” / 그의 누이가 되어 / 테왁, 숨꽃 / 새 / 하늘말나리 / 숨은 꽃 / 종이컵 그리기 / 거리의 성자들 / 동백꽃 피는 소리
제5부 조율사
교장 선생님과 오동나무 / 감나무집 입주기(入住記) / 15 극장 / “굿바이, 제라늄!” / 저녁의 악보 / 흔적 / 간종(間鐘) / 노랑머리 새의 기억 / 샤갈의 마을에 들다 / 조율사(調律師) / 다시 찾은 유년의 몽당연필
해설 : 대상애와 가족애의 화음 - 맹문재
■ 추천의 글
박금아의 수필을 읽노라면, 그 메시지에 몰입하게 한다. 그가 짓는 인간 존재의 문제들이 투명하고 선명하다. 그의 수필은 지적 언어의 만찬에 초대된 손님과도 같이 때론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하지만, 잠시 숨을 고르노라면 변환의 기술, 그 상징적 의미와 함축 그리고 해석의 진중함에 숨 막히게 한다. 직관의 통찰이요, 창조적 공법일 것이다. 한마디로 그의 작품은 미적 감수성과 함께 존재론적 사유와 인문학적 성찰이 빛난다.
- 한상렬(수필가, 문학평론가)
박금아의 글은 소설 같고 시 같아서 더욱 수필 같은 수필이다. 소설 같은 이야기가 있고 시처럼 이미지가 넘쳐나서 더욱 수필인 수필이다. 과거를 복원하는 능력은 능숙한 소설가에 닿고 사물을 자연의 움직임에 비유하는 감각은 빼어난 시인에 닿는다. ‘들려주기’로 ‘보여주기’로, 우리네 삶이 이렇듯 많고 많은 사연을 쌓아오면서 이렇듯 자잘한 정들을 서로 나눠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니, 이는 한국 수필이 모처럼 크게 ‘쏘아주는’ 한 바구니 선물이다.
- 박덕규(문학평론가, 단국대 교수)
■ 출판사 리뷰
생명이 내는 ‘울음’에 대한 연민과 공감
박금아의 첫 수필집 『무화과가 익는 밤』은 등단 이후 6년간 지면에 발표했던 글들을 모았다. 저자가 만난 소소한 일상이 비유와 함축의 언어로 담겨 있어 시를 읽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탄탄한 문장력과 견고한 구성이 이끄는 서사는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유년에 겪은 모성애 결핍 콤플렉스는 허기의 시간을 거쳐 결혼과 함께 ‘울음’으로 발화된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저자를 맞았던 건 개수통에 수북이 쌓여 누군가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던 빈 그릇들이었다. 결혼을 살아내자면 공들여 가꾸어 온 과거를 묻어버려야 했다. 탈출만이 살길이었다. 돌도 안 된 아기를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취업 시험을 준비했다. 하지만 추락은 계속됐고 만신창이로 끝났다. 결핵으로 다시 집안에 감금되었을 때 유일한 빛이 되어준 것은 글쓰기였다. 밤낮으로 버둥질한 끝에야 매미의 유충과도 같은 깜깜한 시간을 밀어내고 세상 속으로 다시 나올 수 있었다.
글을 쓰면서 비로소 자신 안에서 오십여 년 넘게 울고 있던 ‘울음’의 실체를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을 내쳤다고 여겼던 어머니,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했던 존재들도 울고 있었다. 마침내 이 세상은 모든 생명이 내는 크고 작은 ‘울음’으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속으로 꽃 피우는 무화과나무처럼, 산 것들이 낸 ‘울음’은 눈으로 볼 수 없을 뿐, 어딘가에서 분명히 꽃으로 피어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확장한다. 저자는 한 번 울어보지도 못하고 죽은 암매미처럼 발화되지 못하고 사라진 ‘울음’을 찾아 쓰기로 한다.
결국 『무화과가 익는 밤』은 박금아가 일생을 통하여 들었던 과거와 현재의, 인간과 자연이 내는 ‘울음’에 대한 지극한 연민과 공감의 총합인 셈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시간을 더듬어 다시 걸었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십 년을 머물렀다. 발목을 잡고 불화한 시간과 드잡이했다. 문장을 퇴고하는 일은 걸어온 발걸음을 수정하는 일이었다. 길이 문장이 되는 체험이었다.
수필가라는 이름을 얻고 6년. 지면에 발표했던 글들을 모았다. 덜컥 겁이 났다. 지극히 사적인, 사소한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 무슨 의미가 될까. 내 글은 편편이 울퉁불퉁했고 더군다나 울음투성이였다. 부끄러웠다. 출판사에 마지막 원고를 넘기기로 했던 날, 남해로 가는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외딴 바닷가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노을이 내리고 있었다. 포구는 밀물로 출렁이며 구멍 숭숭한 개펄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펄에 박혀 있던 목선 한 척이 떠올랐다. 가슴 언저리가 만져졌다. 내 썰물의 시간, 밀물이 되어 들어와 다독여준 손길들을 생각했다.
그 들물의 기억을 담으려고 했다.
■ 해설 중에서
박금아의 수필들은 대상애를 지향하는 가족애의 의의와 가치를 여실하게 제시해주고 있다. 가족애는 수많은 작가가 추구해온 주제이지만, 박금아의 작품들은 견고한 구성(plot)으로 구체성을 확보해 깊은 울림을 준다. 또한 토착어와 일상어의 활용으로 관념성을 극복하고, 감각적인 묘사로 밀도 높은 이미지를 창출하고 있다. (중략)
현대사회에는 “가족은 단순히 언어에 의해서 포착될 수 있는 단일한 것이 아니”라 “많은 사회적 단위들이 어느 정도는 가족으로 생각될 수 있”다.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이 퇴색하는 대신 상징적인 가족의 개념이 생성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단체나 집단에서 구성원들 서로가 가족의 호칭으로 부르는 것이 그 모습이다. 구성원들 사이에 공동체 의식과 연대감이 공유되고 있는 것이다.
박금아의 수필들은 이와 같은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가족주의의 울타리를 넘는 의지와 윤리로 자신과 인연이 된 존재들을 품는다. 주체성을 가지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가족애와 대상애를 발휘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작품들에서 소개되는 가족은 일반명사가 아니라 특별한 지시대명사로 각인된다. (중략)
박금아는 구체적인 어휘와 감각적인 문체와 견고한 구성을 통해 가족애와 대상애의 화음을 이룬다. 가족 사랑을 개인적인 영역으로 침잠시키지 않고 공유의 가치로 끌어올린 것이다. 그리하여 박금아의 가족애는 현대사회의 물질주의와 인간 소외에 맞서는 친밀감과 역동성을 띤다.
- 맹문재(문학평론가, 안양대 교수)
■ 작품 속으로
감긴 눈꺼풀 속으로 환한 빛이 들어왔다. 설핏 눈을 떴을 때 하마터면 고함을 지를 뻔했다. 온 세상이 은빛이었다. 나는 아재의 바지게에 담겨서 된서리가 모다기로 쏟아져 내리는 길을 돌아가고 있었다. 멀리 외가가 보였다. 뒤꼍 대숲도 아재가 목말을 태워 올려주던 감나무도 마당도 꿈결인 듯 고요했다. 여우도 부엉이도 잠에 빠진 듯 산길엔 싸락싸락 갈잎에 서릿발 부딪는 소리만 났다.
오늘 밤에도 무서리가 내린다. 서랍 속 사진을 꺼내어 본다. 뚜벅뚜벅 시간을 걸어 나온 길두 아재가 그날처럼 나를 깨운다.
“자야, 니, 또 와 우노?”
(「길두 아재」, 17쪽)
잘 때가 되어 할머니 집으로 올 때면 무화과나무 아래로 돌아왔다. 아그데아그데 열린 무화과를 올려다보기만 해도 마구간의 어린 말처럼 “어무이예에!” 소리가 나왔다. 그러면 나무는 가지를 열고 이파리를 젖혀 무화과를 내밀었다. 금방이라도 누런 젖이 뚝뚝 떨어져 내릴 것 같았다. 발꿈치를 들고 무화과를 향해 손을 뻗으면 향란이네 고양이도 허기를 느꼈던지 내 기척에 귀를 쫑긋거리며 앞발을 돋우었다. “야옹!” 소리에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쥐들이 몰려나와 기겁을 하며 달아났다. 소스라쳐 놀라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젖물이 흥건할 무화과를 한 번도 손대보지 못한 채 그곳을 달음박질쳐 나왔다.
(「무화과가 익는 밤」, 86쪽)
달팽이가 되었다. 낮이면 집에 틀어박혀 있다가 밤이면 거리를 활보했다. ……. 붉은 선으로 이룬 원고지 한 칸 한 칸이 밤새 내가 돌아다닌 길이었다. 아침이면 해독할 수 없는 문장들이 책상 위에 점액의 흔적으로 남았다. 달팽이가 온몸으로 써 내려간 상형문자처럼, 뜻을 알 수 없는 글씨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퇴색하기는커녕 더 선명해지는 것이었다. 어느 날이었던가. 이런 은빛 문장을 보았다.
‘껍데기를 깨야 해!’
(「달팽이의 꿈」, 99쪽)
비 오는 날, 날아가는 새들을 보면 두 마리 새가 떠오른다. 신학생의 품에 머물렀다 간 아기 새인 듯도 하고, 한 발의 총성과 함께 영원 속으로 날아가버린 푸르디푸른 영혼인 것 같기도 하여 오래도록 바라본다. 새가 나는 저 하늘길에도, 내가 무심코 걷는 이 땅의 길에도 그토록 많은 날갯짓이 있었다니…….
(「새」, 154쪽)
밤새도록 동백꽃이 내리던 날이었다. 절정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내려놓는 도도함이었을까. 낙화의 순간에도 동백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날 새벽, 병갑이 아지매는 다른 날보다 꼿꼿한 자태로 고기 상자 위에 앉아 있었다. 설핏 부처웃음이 비쳤던가. 두 눈을 내리감은 순백의 얼굴이 꽃송이를 다 떨구어 내린 한 그루 동백이었다.
(「동백꽃 피는 소리」, 173쪽)
글자를 다 담아내지 못한 공책처럼, 제게 온 시간들을 온전히 보듬지 못한 채로 살았습니다.한 번도 내 안에 들인 적 없어 밖에서 떨고 있을 저의 한뎃것들에게 미안합니다.
신문사에서 소식이 왔던 그날 밤, 전화기가 고장났습니다.
“참 오래 버텼네요.”
수리공의 말에 짠해졌습니다. ‘쓰라.’는 한마디를 전해주려고 버텨온 듯했습니다.
(「다시 찾은 유년의 몽당연필」, 2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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