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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간행도서

박화성 앤솔러지(서정자·김은하·남은혜 엮음), <나는 작가다>

by 푸른사상 2021. 4. 28.

 

분류--한국문학, 근대소설

 

나는 여류작가다

 

박화성 지음서정자·김은하·남은혜 엮음153×224×21 mm376

20,000ISBN 979-11-308-1783-5 03810 | 2021.4.20.

 

 

■ 도서 소개

 

한국 여성문학사에 새겨진 뚜렷한 족적, 박화성

 

한국 여성문학사에서 가장 오랜 시간 활동하며 한 시대를 이끌어온 박화성의 작품 선집 나는 작가다(서정자·김은하·남은혜 엮음)가 푸른사상사에서 출간되었다. 엮은이들은 이 책을 통해 여류작가가 아닌 작가로서 근대문학사에 뚜렷한 이정표를 세운 박화성의 문학 세계를 펼쳐 보인다. 식민지의 민중, 특히 여성들의 비참한 삶을 제재로 시대의 모순과 부조리를 소설로써 통렬히 비판한 작가 박화성의 대표작 중단편 소설 11편과 수필 1편을 해설과 함께 실었다.

 

 

■ 저자 소개

 

박화성(朴花城, 1903~1988)

전남 목포에서 출생해 어린 시절 유랑의 소녀라는 작품을 쓸 만큼 문학을 좋아하며 성장했다. 1925조선문단추석 전야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뒤 김명순, 나혜석의 뒤를 잇는 신여성 2기 작가의 대명사가 되었다. 등단한 뒤 동경 유학을 떠나 독서회에 참여하고 근우회 동경지부 창립대회에서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귀국해서 자신의 고향이자 조선의 대표적인 근대 도시인 목포를 배경으로 식민지 민중이 겪는 빈곤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한편 민중의 고통을 팔자나 운명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상호연대를 강조했다. 장편 17, 중편 및 단편 66편을 발표해 한국 문학사에서 여성 작가의 길을 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 엮은이 소개

 

서정자, 김은하, 남은혜

서정자(초당대학교 명예교수), 김은하(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남은혜(카이스트 강사)는 한국 현대문학 연구자로서 오래전부터 박화성연구회의 구성원으로 함께 활동해왔다. 박화성연구회는 여성 작가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자 발족한 연구자들의 모임이다. 2006년 야마다 요시코 교수(현립 니가타대학 한국문학 전공)가 목포를 방문해 서정자 교수와 박화성 문학 현장 답사를 마친 뒤 구상되어 2007년에 제1회 박화성 학술대회를 시작으로 정식 발족했다. 현재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목포, 도쿄, 서울에서 소영 박화성 문학 페스티벌을 목포시의 후원을 받아 개최해왔다. 회장 서정자는 박화성 문학 전집(2004)과 박화성 논문 선집 박화성, 한국 문학사를 관통하다(2013)를 기획·발간해 박화성 문학 연구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앞장서왔다. 박화성연구회는 박화성과 목포를 중심에 두되 여성 작가와 지역 문학으로까지 연구 대상을 확장해나가려고 계획하고 있다.

 

 

■ 목차

 

발간사

 

추석 전야

작품 해설 _ 1920년대 여공의 눈에 비친 식민지 근대의 모순 - 서정자

 

하수도 공사

작품 해설 _ 민중의 의식화로 식민지 극복을 꿈꾸다 - 서정자

 

두 승객과 가방

작품 해설 _ 투쟁의 축은 어디로 이동하는가 - 남은혜

 

홍수전후

작품 해설 _ 가난한 자들이여 상호부조하라! - 김은하

 

한귀(旱鬼)

작품 해설 _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남은혜

 

고향 없는 사람들

작품 해설 _ 고향을 잃어버린 영웅들의 프롤로그 - 남은혜

 

불가사리

작품 해설 _ 일제 말년의 불가사리 - 남은혜

 

온천장(溫泉場)의 봄

작품 해설 _ 사고 팔리며 유전하는 명례의 이야기 - 김은하

 

광풍(狂風) 속에서

작품 해설 _ 여성해방은 어떻게 가능할까? - 김은하

 

샌님 마님

작품 해설 _ 노동이 여자를 구하리라 - 김은하

 

휴화산

작품 해설 _ 치유되지 못한 슬픔과 역사의 유령 - 김은하

 

수필 _ 여류작가가 되기까지의 고심담

작품 해설_글 쓰는 여자의 불온성 - 김은하

 

작가연보

작품연보

박화성의 문학 지도 - 서정자

 

 

■ 출판사 리뷰

 

1925조선문단에 단편소설 추석 전야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한 소영 박화성은 한국 여성 최초로 동아일보에 장편소설 백화를 연재한 작가이자, 장편 17, 중단편 66편에 이르는 수작을 끊임없이 창작하며 한국 여성문학사에서 가장 오래 활동한 작가로서 그 이름을 남기고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과소평가되거나 폄하되었던 시대에, 남성 중심적인 문단 분위기에 굴복하지 않고 날카로운 시대인식을 소설화하며 당당한 작가로서 우뚝 선 것이다. 앤솔러지의 제목처럼 여류라는 한계를 지워버리고, 오롯이 작가로서 일관해온 박화성의 문학적 삶을 이 선집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박화성은 일제강점기라는 굴곡진 시대에 수많은 문제작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식민지 수탈의 거점이었던 목포는 그가 출생하고 성장한 곳으로, 박화성 문학의 특별한 배경이 되었다. 그는 목포를 배경으로 조선인 하층민, 노동자 계급의 비참하고 빈곤한 실상과 식민지 여성이 겪는 고통을 구체적으로 그려내며, 식민지 담론에서부터 이데올로기의 대립, 분단과 해방공간까지의 시대적 갈등을 치밀한 구성과 유려한 필치로 소설화한 것이다.

엮은이들은 1920년대 방적공장 여성 노동자의 눈에 비친 식민지 민중의 고통과 부조리한 사회현실을 형상화한 추석 전야, 하수도 공사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착취로 인해 벌어진 파업을 다룬 하수도 공사, 식민지 여성이 물건처럼 사고 팔리는 현실을 소재로 한 온천장의 봄, 8·15 해방 이후에도 여전히 오지 않은 여성해방의 현실을 이야기한 광풍 속에서등 작가를 대표하는 중단편 소설 11편과 1편의 수필을 선정하고 작품마다 각각의 해설을 달아 작품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21세기의 여성주의를 고민하는 오늘날의 여성들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이 될 수 있는 작품들이다. 또한 최초 발표된 판본을 저본으로 하여 수록한 수필 여류작가가 되기까지의 고심담에는 여성으로서의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

박화성 단편문학의 전모를 담은 이 책은 박화성 문학 연구뿐만 아니라 동시대 작가 연구와 한국 근대문학사 연구의 진일보를 위한 발걸음이기도 하며, 한국 문학사에서 독자적인 길을 개척한 작가박화성의 족적을 살피는 길이기도 하다.

 

 

■ ‘발간사’ 중에서

 

지금도 1920~30년대 신문·잡지를 뒤지면 박화성 선생의 글이나 인터뷰가 종종 새로 발굴되어 나온다. 박화성 선생은 1925년에 등단하면서 이어 명문 니혼(日本)여대 영문과 유학 경력을 쌓았고, 동아일보에 여성 최초로 장편소설을 연재하여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을 뿐 아니라 하수도 공사를 비롯하여 시대적 주제를 형상화한 선구적 작가로서 당시 문제작가의 순위에 들었기에 여기저기 청탁에 따른 글이 1920년대로부터 계속 실렸다. 또한, 1920년대 등단 여성작가 중 자서전을 쓴 유일한 작가이기도 하고 한국전쟁으로 일실된 자료를 제한 평생의 문학활동 자료를 차곡차곡 정리해둔 유일한 작가이기도 하다.(중략)

여성으로서 활동하기 지극히 어려운 현실에서 문단에 등장하고 활동했던 박화성은 페미니즘 소설을 쓰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부장주의 제도를 용인했던 것도 아니다. 그의 등단작 추석 전야에서도 의식 있는 여주인공을 내세웠고, 장편 백화에서도 남자 중엔 사람다운 사람이 없다.”고 일갈하는 대목도 나온다. 이런 단정적인 말을 하기까지에는 그의 체험이 있었으련만 그런 그가 페미니즘 소설을 쓰지 않은 데는 계급해방이 여성해방이라는 사회주의 여성해방 사상이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 여성문인 첫 세대인 페미니즘 실천가 김명순, 나혜석, 김일엽의 뒤를 잇는 소설을 쓰지 않은 것은 그들이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어 사회로부터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된 것을 목도한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주연 평론가는 박화성을 20세기 한국 근대문학의 문을 연 작가라고 높이 평가하면서 박화성은 남녀 차이에 애당초 무심한 성평등 의식이 상당했다고 본다. “박화성은 여성이라는 에피세트가 불필요한 글자 그대로의 본격적 작가였다, 박화성의 첫 작품 추석 전야부터 홍수전후」 「하수도 공사등등의 대표작들이 모두 사회의식이 강렬한 현실주의 소설들이라는 점에서 근대 한국문학의 출발점에 큰 시사점을 던진다.”고 하였다. 한국소설의 성격적 특성, 사회성 현실성을 처음으로 구현한 작가라는 점에서 박화성은 선구적이며 그러므로 박화성은 20세기 한국문학의 문을 연 작가라 평가된다고 하였다.

작가 자신은 여성작가에게 여성다운 글쓰기를 종용하는 김문집, 안회남, 김남천, 김기림 평론가들의 글에 대하여 좌담회 등에서 공개적으로 항의 비판했으며 자신을 여류작가로 분류하는 데 강력한 불만을 표시하였다. 그는 동시대의 남성작가와 치열하게 싸웠다(문학으로)’고 말했다. 그런 박화성이 해방 후 페미니즘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나아가서 1965년 결성한 여류문인회 회장에 선출되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이는 한국 여성작가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이자 박화성이 문단 활동을 통해서 여성문인의 소외를 얼마나 뼈저리게 실감한 결과였는지를 반증하는 사실이라 하겠다.

 

 

■ 작품 속으로

 

당신이 왜 참견했소.”

하며 미안한 듯이 적삼에 묻은 피를 바라본다. 영신은 전일부터 빈부와 계급에 대한 반항심을 잔뜩 가지고 있었으며 더구나 감독의 평일 행위를 몹시 미워하던 터라 떨리는 입술로

그러면 당신이 왜 먼저 그 따위 짓을 하느냐 말이야. 감독이면 점잖게 감독이나 하지 어린애들 머리를 잡아다리며 부인들을 건들며 그 따위 못된 짓을 하니 누가 좋다고 하겠소. 그래놓고는 당신이 도리어 때려, . 그게 무슨 짓이야. 왜 우리는 개만도 못하게 보이오? 우리도 사람이야, 사람. 기계에 몸이 매였을지언정 이러한 당신과 꼭 같은 사람이란 말이야. 우리는 당신같이 나쁜 짓은 하지 않는 좋은 사람이란 말이야”.

그는 독이 가득 찬 눈으로 감독을 쳐다보며 소리를 버럭버럭 지른다.

(추석 전야, 19)

 

너 네 본남편 생각이 나서 그러지? 바른 대로 말해봐.”

하고 영감이 명례의 손을 잡았다.

나를 우리 집으로 돌려 보내주세유. ”

하고 명례는 진정의 말을 토하였으나

흥 내가 너를 맞어 오던 날 솜리 여인에게 얼마나 많은 돈을 준 줄 아니?”

하고 영감은 코웃음으로 그 말을 지어버리려 하였다. 명례는 처음 듣는 일이매 눈물을 그치고 영감을 쳐다보았다.

내가 그 여인에게 돈 사백 원을 주고 요리 값으로 삼십 원을 주었다. 그러고 오늘 또 칠십 원을 내놨으니 니 때문에 오백 원 돈이나 쓰고 너를 보내줄 성싶으냐? 너는 네 남편에게서 오십 원에도 팔려 왔다며? 그러니 내가 너를 오백 원에 산 일을 생각해봐야지. 아무리 어리기로 그런 철도 몰라? 네 소원대로 오늘이라도 여기서 떠날 테니 자 울지 말고 좀 눠 있거라.”

하고 영감은 명례를 안아 뉘려 하였다.

명례는 영감의 손을 뿌리치고 방바닥에 엎드려지며 피맺히는 울음을 내놨다.

나는 일평생 이리저리 팔려 다니며 종노릇만 하다가 죽을 목숨인가

하고 생각이 들매 바로 아침때까지도 행복스럽게 생각되던 자기의 몸이 벌레보다도 더 천하고 하찮게 보였다.

(온천장(溫泉場)의 봄, 247)

 

당신들은 축첩법 금지를 헌법으로 제정하셨나요? 축첩자는 국민으로의 모든 자격과 의무를 상실한다, 이렇게요. 당신들도 다 축첩을 동경하시는 모양입니다그려. 하하하하, 아스세요. 인간으로서 생존력과 생존권이 박약한 가련한 여인과 자손들을 당신들은 얼마나 불리실 셈인가요? , 걸핏하면 법률로써 제정한다구요? 대체 법률은 누가 누구를 위해서 만드는 것인가요? 병자와 약자와 극빈자를 보호 양생하는 기관을 세운다는 새 헌법이 나기 전에는 국문의 주권과 권력이라는 건 다 거짓이어요.”

그의 창백한 얼굴이 복숭아처럼 빨개지며 두 손으로 허리를 짚고 버티고 선다.

모든 국민들은 법률 앞에 평등이며 성별이 없다구요? 그래서 여권 옹호에 있어서는 아무런 생각들도 않으셨나요? 아주 여성을 무시하고 생렴도 않으셨나요? 당신네 국회에 한 명의 여성이 없다는 건 당신네는 어떻게 생각하며 그 책임을 누구에게 지우십니까

그는 주먹을 마주치며 자리를 둘러본다. 손님들의 눈에는 강렬한 동요의 빛이 나타난다.

또 보세요. 금년 여자대학교에 입학 지원자들이 전혀 없게 된 그 원인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그걸 남의 일로만 방관하실 작정이시죠? 그렇죠? 그렇다면 비겁해요. 무력해요. 보기 싫어요. 빨리들 돌아가세요.”

(광풍(狂風) 속에서, 259~260)

 

S. 지금의 내 버릇은 언제나 창작만은 머리에서 다 얽어매가지고 원고지에다가 바로 내리쓰건만 하수도 공사만큼은 정성껏 초하고 수정하고 청서하고 해서 정중히 쓴 것입니다. 그 지긋지긋스러운 병과 싸움을 하면서. 더구나 기막힌 가난과 바쁨 속에서.

그랬건만 내 피로 아로새긴 하수도 공사는 그 후 다섯 달이 지나서야 동광(東光)5월호에 춘원 추천 소설이란 우스운 레테르를 붙여가지고 나왔습더이다. 그 레테르 때문에 또 얼마나 귀 시끄러운 구설을 들었겠습니까?

그때쯤은 원고료 받는 속을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니 240자 원고지로 당당 120페이지나 되는 (아무리 보잘것없었지만) 피묻은 작품의 그 품값으로 한 푼의 원고료도 못 받은 일을 생각하면 선배 제씨야말로 좀 냉혹한 편이 아닙니까? 뭐요? 원고료 대신 춘원 추천 소설이란 귀한 간판을 받지 않았냐구요? 하하, 과연 그랬군요. 영리하고 현명하신 그들은 원고료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 춘원 추천 소설이란 지극히 안전한 상표를 붙였으니까요. 그것 역시 여자이기 때문에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여자라 더 우대받은 일도 있지만) 시골뜨기기 때문에 받은 한 에피소드라면이겠지요.

(<여류작가가 되기까지의 고심담>, 337~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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