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시)
꼬치 아파
윤임수 지음|푸른사상 시선 142|128×205×7 mm|120쪽|10,000원
ISBN 979-11-308-1777-4 03810 | 2021.3.22
■ 도서 소개
아픈 세상을 온몸으로 끌어안는 속살 깊은 사랑
윤임수 시인의 시집 『꼬치 아파』가 <푸른사상 시선 142>로 출간되었다. 속도와 편리함에 종속된 자본의 논리에 맞서 시인은 문명사회의 외곽에서 허름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존재들을 웅숭깊은 시선으로 보듬어준다. 이 세상의 약자들을 선한 눈빛으로 끌어안는 시인의 속살 깊은 마음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 시인 소개
윤임수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경기 안양에서 성장했고 대전에서 삶을 키웠다. 1998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상처의 집』 『절반의 길』이 있다. 현재 한국작가회의와 민족문학연구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한국철도공사에서 일하고 있다. (E-mail : yunis007@korail.com)
■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미원집 / 나는 / 화엄벌 억새 / 삼소굴(三笑窟)에 들고 싶다 / 구봉대산 / 망해사 / 내 마음의 부처 / 가거도 일박 / 삼강에서 보내는 편지 / 다시 망해사 / 불편함의 힘 / 태연하게 / 갈목비 / 대롱대롱 그때 / 삼혹호 / 동백
제2부
비오는 아침 / 지리산 길섶 / 두부탕 / 약력 / 함백 친구 / 자장자장 / 우리 동네 식물원 / 아픈 사람 / 왕년 / 폐지 줍는 노인 / 담배 피우는 여자 / 마음은 바쁘다 / 맑은 대구탕 / 항동 기찻길 / 말씀 / 한겨레호 열차
제3부
물끄러미 / 구절초꽃 / 별 / 삼삼한 세상을 그리며 / 흐린 어둠 / 내 사랑 펑펑 / 빗방울 수만큼 / 그대를 위한 바다 / 개펄 / 도장산 심원사 / 청산도 초분 / 금오산 부처 / 문화동 주공아파트 / 여경암(餘慶庵) / 묵호 등대 / 요선암(邀仙岩)
제4부
기꺼이 나는 / 스며들었다 / 꼬치 아파 / 봄날의 그늘 / 아주 사소한 생각 / 살얼음이 살짝 / 2월 / 동백 아가씨 / 별난집 / 빈집 / 우수 무렵 / 양원역 / 경배 / 양지꽃 / 환한 잠 / 늦겨울 소망
■ 작품 해설:느린 걸음으로 그리는 환대의 시학 - 오홍진
■ 시인의 말
부족한 듯 넘치지 않고
모자란 듯 설치지 않는
더없이 순진한 삶을 향해
내 마음 한 자락 내려놓으니
눈빛 선한 그대
언젠가 그 마음 만나거든
맑은 햇살과 같이
밝은 꽃구름과 같이
그대도 기꺼이 오래
여기에 오래 머물러주오
■ 작품 세계
윤임수는 첫 시집인 『상처의 집』에서 “세월에 덧나고 금 간/상처와 상처가 서로 붙들고/쓰러질 듯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는/그 오래된 끈기를”(「상처의 집」) 노래했다. 상처와 상처가 서로 붙드는 삶은 두 번째 시집인 『절반의 길』에서는 “내 시에도 사람들이 가득했으면 좋겠다.”(「사람」)라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거듭 표현된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상처 입은 몸으로도 제 삶을 따뜻하게 만들려고 한다.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는 “오래된 끈기”는 아픈 세상을 온몸으로 끌어안으려는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세 번째 시집인 『꼬치 아파』에서도 이러한 시적 기조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지나간 시절을 빛낸 사람들을 하나하나 시 세계로 불러낸다. 빛나는 시절은 상처 입은 시절과 다르지 않다. 상처 입은 몸으로 그들은 빛나는 시절을 일궈냈다. 윤임수의 시가 지나간 시절의 아름다움을 지금 이 시대로 불러내는 이유라고 하겠다.
느린 걸음을 떼며 주변을 둘러보는 시인을 온갖 사물들이 스스로 몸을 열어 맞이한다. 「삼소굴(三笑窟)에 들고 싶다」에서 시인은 “모든 마음의 경계 앞에서/늘 안쓰럽게 머물렀던 내 발걸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물을 지배하려는 욕망을 내려놓으면‘ 나’와 사물을 나누던 경계는 쉬이 허물어진다. “가벼워, 참으로 가벼워/세상 속으로 훌쩍 스며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시구에 윤임수가 이른 시 세계가 분명히 드러난다. 자기를 놓은 시인을 사물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환대를 한다. 자본의 시선으로 보면, 한없이 가벼운 삶은 한없이 불편할지도 모른다. 시인은 무엇보다 이러한 가볍고도 불편한 삶으로 속도와 증식에 매인 자본의 세상과 맞서고 있다. 자본은 환대를 모른다. 자본이 모르는 이 환대를 끌어안고 시인은 불편한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향해 기꺼이 느릿한 발걸음을 떼고 있는 것이다.
― 오홍진(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중에서
■ 추천의 글
여기 스스로를 ‘시산주삼혹호’라 칭하면서 부지런히 산을 오르고 술집을 주유하며 시를 쓰는 ‘눈빛 고운’ 시인이 있다. 유목민의 목초지처럼 그가 세상 속을 떠돌며 찾고 있는 것은 ‘진정’ 아름다운 것들이다. 그가 진정 원하는 아름다움이란 낮게 휘어지고, 오래되어 느리고, 때로는 불편함에서 문득 깨닫게 되는 ‘힘’이다. 아름다움에 천착하는 그의 시어들은 오랜 세월 ‘살을 발리고’ ‘뼈를 깎이어’ 어느새 한결 가볍고 부드러워졌다. 나아가 웅숭깊은 시선으로 ‘물끄러미’ 사물을 응시하고 ‘태연하게’ 세상과 마주하는 경지에 잇닿아 있다. ‘장대비에 맥을 놓은 백일홍을 보며’ ‘꼬치 아프다’고 한 표제시에서 시침 뚝 떼고 생명과의 교감을 전하는 시인의 능청스러움 또한 압권이다. 한층 곰삭고 깊어진 시인의 술상에 왁자지껄 길손들 넘쳐나기를! ― 고증식(시인)
“편리함에 몸을 맡기”지 않고 “걷고 또 걸어서 여기까지”(「불편함의 힘」) 시인을 올 수 있게 한 힘은 선한 마음이다. 그 선한 마음은 불리한 실존에 굴복하지 않고 본질적 가치를 지향함으로써 천명(天命)에 의해 만물이 태어나듯이 사랑을 낳는다. 시인의 사랑은 이곳저곳을 소란하지 않게 감싸며 느릿느릿 흘러가는 만경강처럼 부드러우면서도, 팍팍한 삶을 쓸어 담는 늙은 아버지의 갈목비처럼 살뜰하다. 그리고 말소리 낮은 사람들이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손길을 내미는 봄 햇살처럼 속살이 깊다. ― 맹문재(시인·안양대 교수)
■ 시집 속으로
불편함의 힘
아주 오래전 이야기인데
정규 모임이 끝나고도 끈질기게 남은
몇몇의 시간은 질질질 흘러
마침내 한밤이 되고야 말았는데
가난뱅이 보일러공 시인은
한사코 택시비를 받지 않았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먼저 가라고
기다렸다가 첫 버스를 타면 된다고
편리함에 몸을 맡기면 끝장이라고
단 한 번의 손짓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가끔 일이 있어 한밤을 걸을 때면
문득 그때 그 모습이 떠오릅니다
나는 그런 모습을 가슴에 안고
걷고 또 걸어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불편함의 힘을
온몸으로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고맙게도 말입니다.
폐지 줍는 노인
삶의 터전이었던 굽은 골목을
고스란히 허리에 담고 있는 저 노인
폐지 가득 낡은 유모차에 기대어
오래 숨을 고르고 있는 저 노인
수없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지금도 저렇게 멈추어 있는 것일까
팔십 년의 지난한 세월을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꼬치 아파
혀 짧은 발음의 그는
가끔 미간을 찡그리며
아후 꼬치 아파, 하는데
대체
골치가 아픈 것일까
꼬치가 아픈 것일까
오늘 아침
장대비에 맥을 놓은 백일홍을 보며 또
아후 꼬치 아파, 하는데
백일홍은 골치도 없고 꼬치도 없으니
분명
꽃이 아픈 게 맞으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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