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산문)
내 안의 그 아이
송기한 지음|푸른사상 산문선 34|147×217×14 mm|224쪽
16,000원|ISBN 979-11-308-1719-4 03810 | 2020.11.25
■ 도서 소개
힘든 시대를 꿋꿋하게 걸어온 우리들의 발자국
송기한 문학평론가(대전대 교수)의 산문집 『내 안의 그 아이』가 <푸른사상 산문선 34>로 출간되었다. 저자는 가난과 어려움을 온몸으로 겪었던 어린 시절의 체험을 진솔하게 기록함으로써 개인사 및 가족사는 물론 당대의 풍속사를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힘든 시대를 꿋꿋이 걸어오며 간직한 저자의 순수한 감성은 독자들에게 짙은 향수와 아울러 감동을 선사한다.
■ 작가 소개
송기한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한국 전후시와 시간의식』 『고은:민족문학에의 길』 『문학비평의 욕망과 절제』 『한국 현대시의 서정적 기반』 『시의 형식과 의미의 이해』 『21세기 한국시의 현장』 『한국 현대시와 시정신의 행방』 『한국 현대시의 근대성 비판』 『1960년문학연구』 『서정주 연구』 『한국시의 근대성과 반근대성』 『문학비평의 경계』 『비평과 인식』 『현대시의 정신과 미학』 『서정의 유토피아』(1, 2) 『현대문학의 정신사』 등이 있다. 대전대 우수학술연구상, 시와시학 평론상, 대전시 문화상 학술상 등을 수상하였다. 문학평론가. UC BERKELEY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대전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부 교수로 있다.
(E-mail_ khsohng@dju.kr)
■ 목차
작가의 말
제1부 부끄러운 하루
도둑 아닌 도둑 / 두부 있니? / 아버지의 독립운동 / 엄마의 떡판 / 부끄러운 하루 / 덕구 / 막내가 세상에 오던 날 / 3년의 인연 / 아버지의 두통
제2부 승부 없는 가을 운동회
반공 교육 / 우리들의 키다리 아저씨 / 풍금을 잘 치던 선생님 / 원산폭격 / 엉뚱한 질문 / 이상한 풍선 / 승부 없는 가을 운동회 / 벼 이삭 줍기 / 10월 유신 / 교장 선생님의 장례식 / 시골 학교 서울 학교 / 은진미륵 보물 찾기 / 송충이 잡기 / 쥐 꼬리 숙제 / 육성회비
제3부 가난을 나누어 먹는 날
상엿집 / 다시 볼 수 없는 친구 / 미제와 일제 / 김일의 레슬링 / 흑백 텔레비전 / 원닝이 / 돼지 잡는 날 / 노 의사 / 가난을 나누어 먹는 날 / 화려한 불꽃
제4부 빵 속의 꿈
꽁보리밥을 숨기던 날 / 새마을운동 / 공판장 / 서커스 공연 / 공책과 연필의 하나님 / 빵 속의 꿈 / 산타클로스 김 할아버지 / 하얀 손수건
■ 출판사 리뷰
등잔불에 머리를 들이대다가 머리카락을 태우고 말았던, 텔레비전이 있는 집으로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옹기종기 김일의 레슬링 경기를 시청하던 그때 그 시절……. 이 책은 스마트폰 하나로 음악을 감상하고 강의를 듣고 쇼핑을 하고 금융 거래까지 할 수 있는 현대의 젊은이들은 생각도 할 수 없는, 불편하고 고단했지만 낭만이 가득했던 그 시절을 증언한다. 저자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유년 시절의 환경적, 문화적 어려움과 당대의 생활 풍경을 진솔하게 기록한다. 한 시대를 기억하며 세대 간에 공유하는 이 회고록은 잊혀져 가는 것들을 아름답게 재현해낸다.
어려운 형편에 사람 먹을 것도 부족하여 키우던 강아지를 팔아버릴 수밖에 없었고, 새 학년마다 학급 친구들에게 연필과 공책을 나눠주던 여학생과 같은 반이 되고 싶어 했으며, 동경의 대상이자 꿈에 그리던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된 그곳에서 접한 낯설기만 한 풍경들……. 근대화의 물결이 한참 못 미친 그 옛날의 고향을 배경으로 세밀하게 그려낸 가난한 풍경은 애잔하지만 어딘가 정겹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독립운동에 작게나마 일조했던 적이 있고,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 당한 고문으로 평생 두통을 달고 살았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이 책에 담겨 있다. 험한 시대를 꿋꿋하게 걸어온 그러한 아버지들의 발자취는 독자들에게 짙은 향수와 감동을 선사한다. 고향이 그립고 인생살이에 지친 이들에게 작은 위안을 건네주는 책이다.
■ 추천의 글
예리한 비평가이자 순정한 비평가이기도 한 송기한 교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보다가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린 시절의 환경, 문화적 어려움을 적나라하게 묘사해 잊고 있었던 생활의 불편과 진저리나는 가난을 정겨움으로 읽게 되는 이 글은 사회와 역사의 변화를 거치며 발견의 눈과 마음의 눈을 뜨는 한 편의 아련한 소설이다. 마치 돋보기를 끼고 보듯 작은 모습까지 낱낱이 세심하게 표현하는 대목에선 울컥하며 더 읽지 못하는 진한 감동으로 마음 저리다. 바로 나 자신의 어린 시절이 여기 있다. 너나 우리들의 어린 시절이 여기 있다. 꿋꿋하게 험한 시대를 걸어온 우리들 발자국을 보석 안듯 품게 되는 이 글을 만약 놓치면 소중한 것을 잃게 되는 슬픔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는 여기서 비평가를 잠시 벗고 자꾸만 엷어져가는 순수한 감성의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작가이거나 우리들 내면에 흐르는 “울고 있는 아이의 상처”를 안아주는 유정한 시인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 신달자(시인)
모든 글은 삶의 기록입니다. 그것도 진솔한 삶의 기록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좋은 글은 자전적인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최종적인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자신 시를 쓰는 사람이고 수필 비슷한 글을 많이 쓴 사람이지만 맨 나중에 쓰고 싶은 글이 자전적인 산문입니다. 이를 나는 생애수필이라고 혼자서 이름을 지어서 부르기도 합니다. 이른바 이 생애수필을 대전대학의 송기한 교수께서 쓰셨네요. 좋은 일이고 부러운 일입니다. 본분의 장래는 문학평론이지만 아마도 이 책을 쓰면서 가장 감명 깊었고 가장 유의미한 시간을 보냈을 겁니다. 글이란 것은 자기의 체험을 넘지 못하고 자기 체험을 쓸 때 가장 신이 나고 보람을 느끼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미리 보내준 원고를 얼핏 읽어보았습니다. 가장 아름다웠고 가장 의미심장했던 과거의 기억을 소상히 아름다운 문장으로 수놓듯 쓰셨군요. 문체가 바르고 순결한 언어로 이루어진 문장이군요. 어쩌면 성장소설을 읽는 느낌이기도 했습니다. 한 인간의 인생 역정 증언이지만 한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공동 증언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좋은 책을 내시는 저자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 나태주(시인)
■ 작가의 말 중에서
나는 1962년 5월 충청남도 논산군 성동면 정지리 167번지에서 태어났습니다. 아직 근대화의 물결이 한참 못 미친 아주 낙후된 동네였습니다. 여기에 쓴 글들은 그로부터의 일들에 관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글들은 단순한 나의 가족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나의 삶 속에서 혹은 가족사 속에서 당대의 풍속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사 이래로 이런 삶은 이 시기만에 한정된 것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삶은 지속적이고 항상적인 것이었으며, 우리의 심연 속에 늘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는 나만의 개인사가 아니라 우리의 보편사였다고 감히 말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것은 나의, 우리의 서러움입니다.
이 글의 주체랄까 시점은 어린 나 자신입니다. 가능한 한 당시의 시각을 최대한 확보하려고 했습니다. 지금 여기의 가치평가들은 가급적 개입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쓰고자 한 것입니다.
읽어주신다는 것, 그것은 한때의 아픔을 공유한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 작품 속으로
서울은 농촌과 여러 가지 다른 점이 많았습니다. 가장 차이가 나는 것은 물이었습니다. 바로 수돗물이지요. 이 물을 먹으면 무슨 약품 냄새 같은 것이 났지만, 그것이 꼭 싫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냄새를 서울 사람들은 잘 느끼지 못하는 듯했지만 시골에서 자란 나는 대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물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그 이질감을 금방 알 수 있었던 거지요. 하지만 나는 그 냄새를 좋아했습니다. 왜냐하면 수돗물을 먹으면 피부가 하얗게 변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서울은 공해와 건물 등이 자외선을 차단하기 때문에 피부가 보호받아서 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든 그런 사실을 알 수 없었던 나로서는 피부가 하얗게 된다는 것이 단지 수돗물 때문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물장수가 있었다는 사실 역시 신기했습니다. 새벽에는 “물 사쇼.” 하는 소리를 계속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소리가 가끔은 의아하게 들릴 때가 있었습니다. 그 좋은 수돗물을 놔두고 물을 왜 또 사 먹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 때문입니다.
어떻든 서울은 설레기도 하고 신기한 공간이었습니다. 저녁에는 네온사인이 있고, 가로등이 빛나고 있어 낮과 같았습니다. 이는 시골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문명들이었습니다. 시골은 저녁만 되면 칠흑같이 어두워서 밖에 나가는 것이 불가능했는데, 서울은 저녁에도 낮처럼 돌아다닐 수 있고, 놀 수 있었습니다. (24~25쪽, 「두부 있니?」)
그럼에도 새 학년이 되어 친구를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언제나 주목받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친구는 내가 살고 있는 옆 마을의 윤○○이라는 애였습니다. 새 학년이 되어 처음 친구들을 만날 때, 이 친구가 우리 반에 왔는가 아닌가는 나만의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학급 전체의 관심사였습니다.
이 친구가 여학생이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기사 예쁜 여학생이라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국민학교 저학년이긴 해도 예쁜 여학생과 한 학급이 된다는 것은 언제나 가슴을 설레는 일이긴 했지만 말입니다.
○○이는 모두가 기대하는 그런 여학생이 아니었습니다. 예쁜 여학생도 아닌데, 왜 그가 한 반으로 되는 것이 기다려지는 것일까요.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연필 한 자루와 공책 한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74쪽, 「우리들의 키다리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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