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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간행도서

숙맥 13집, <큰 나무 큰 그림자>

by 푸른사상 2020. 11. 25.

분류--문학(산문)

 

큰 나무 큰 그림자

 

김경동, 김명렬, 김상태, 김재은, 김학주, 이상옥, 이상일, 이익섭, 정진홍, 곽광수, 정재서 지음

숙맥 13153×224×20 mm33620,000

ISBN 979-11-308-1722-4 03810 | 2020.11.25

 

 

■ 도서 소개

 

인문학적 정신에서 길어낸 잠언과도 같은 이야기

 

남풍회 회원들의 산문집 큰 나무 큰 그림자가 푸른사상사에서 출간되었다. 우리나라의 인문학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11명의 석학이 학문과 인생의 연륜을 바탕으로 심오한 사색의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인문학적 정신에서 우러나온 깊은 사색과 세상을 꿰뚫어 보는 시선을 가진 원로 교수들의 이야기는 잠언과도 같은 무게감을 주고 있다.

 

 

■ 저자 소개(전공 및 대학)

 

김경동(사회학 서울대학교)

김명렬(영문학 서울대학교)

김상태(국문학 이화여자대학교)

김재은(발달심리학 이화여자대학교)

김학주(중국고전문학 서울대학교)

이상옥(영미문학 서울대학교)

이상일(독문학 성균관대학교)

이익섭(국어학 서울대학교)

정진홍(종교학 서울대학교)

곽광수(불문학 서울대학교)

정재서(중국고전문학 이화여자대학교)

 

 

■ 목차

 

책머리에

 

김경동

염치

 

김명렬

나의 문리대 시절

때죽꽃

봄비

선생 티

젊은 엄마

하굣길

 

김상태

미투 운동을 보면서

바람 속에 산 인생

베블런 효과

오리엔테이션

욕망과 절제 사이에서

 

김재은

접시꽃 사연

창고 정리

 

김학주

남에게 장미꽃을 보내 주면

채염(蔡琰)비분시(悲憤詩)

잠참(岑參)의 시 등고업성(登古鄴城)

군자(君子)의 올바른 행실

 

이상옥

불법과 합법 사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유감

서점 출입이 일상이던 시절

트리어 고대 로마를 기억하는 고장

뤼데스하임 한 성녀의 자취를 찾아

뉘른베르크 단죄에서 화해로

 

이상일

친일파 대 반일종족주의자

공연평론의 낙수(落穗)()

 

이익섭

편지에서 메일로, 다시 카톡 카톡

대국어학자의 낱말 공부

큰 나무 큰 그림자

 

정진홍

회상을 위한 잡상(雜想)

 

곽광수

프랑스 유감 IV

 

정재서

죽창무정(竹窓無情)

코로나 19, 절멸? 혹은 공존?

서평 연편(連篇)

 

 

■ 책머리에 중에서

  

내가 숙맥에 처음 참여한 것이 2호인데, 그때 원고 마감이 멀지 않은 상황에서 원고 걱정을 하니까, 백초 형이 내가 한 퇴임 교수 답사와 그 이듬해의 입학식 축사그 둘 모두 핀치 히터로 한 것이었는데도 좋을 거라고 부추겨서, 거기에 기왕에 나온 다른 글 한 편을 더해 내 책임을 탕감했었다. 이 이야기는 내가 숙맥의 글들에 대한 잘못된 장르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나라의 수필이라는 장르는 상당히 자유로운 것이긴 하지만, 영어의 essay나 불어의 essai의 장르적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특히 essai는 몽테뉴의 수상록(제목 자체가 그냥 복수로 Essais이다)이나 카뮈의 표리같은 예들이 있기는 해도, 일반적으로 오히려 시론이나 평론이라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이는 듯하다: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의 부제는 현상학적 존재론 시론(essai d'ontologie phenomenologique)이다. 몽테뉴나 카뮈의 경우도 철학적 사유가 내재되어 있음은 누구나 아는 바와 같다. 나는 내 그 두 연설문을 essai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수필로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이것과 연관되어 생각나는 것은, 모산 선생님의 어린 왕자의 한국어 번역들이다: 정녕 본격적인 훌륭한 번역 평론이다. 우리의 자유로움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글에 수필도, essay, essai, 내 연설문 같은 것들도 모두 포괄하게 한다.

위의 이야기들은 우리의 자유의 관점에서 우리 글들의 장르적 자유도 말하기 위해서이다. 시는 이미 제1호에 해사, 북촌 두 분 선생님이 그 사례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소설은 왜 안 되겠는가? 그리고 희곡도? 나는 장래에 단편소설과 단막극 희곡도 숙맥에서 읽게 될 기대에 차 있다.

- 곽광수

 

 

■ 책 속으로

  

베블런 효과라는 말이 있다.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베블런(Thorstein B. Vevlen)의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상층계급의 두드러진 소비의 특징은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지각없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인류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이와 비슷한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자본주의가 보편화된 미국에서 유행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1899년에 발간된 저서였으니 한국으로 치면 개화기에 해당한다. 자본주의 체재가 어느덧 한국도 본격화되면서 베블런 효과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수년 전이라고 생각된다. 베블런 효과가 학생들 간에 이상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일이 있었다. 힘센 녀석이 약한 학생의 옷을 강제로 바꾸어 입게 한 데서 일어난 일이다. 노스페이스라든가 하는 상표가 붙은 겨울 윗도리를 약한 학생을 위협해서 바꾸어 입은 사건이다. 그 상표의 방한복을 입어야만 학생들 간에는 부유층의 자녀로 대접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엔 그놈이 그놈처럼 보였지만 학생들 간에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그 상표의 옷을 입어야만 부유층 자녀로 알려져 있었던 모양이다. 어른들 사회에서는 진작부터 고가의 상품으로 베블런 효과가 호기롭게 행사되었지만 학생들 간에는 뒤늦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교복을 입는 한국에서는 겨우 방한복에서 그 효과를 누리고 있었던 셈이다.

- 77(김상태, 베블런 효과)

 

 

편지는 쓰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짧은 글이지만 이상하게 지켜야 할 격식이 많고, 무슨 말을 넣고 빼야 하는지 조심스러운 부분이 여간 많지 않았다. 더욱이 손으로 쓰는 것이니 글씨를 잘 써야 한다는 강박감이 여간 크지 않았다. 추사의 한문 편지를 보면 글씨의 크기며 획의 굵기도 자유자재로, 그야말로 일필휘지요 그것으로 한 폭의 작품이어서, 이런 분은 편지를 쓸 때도 얼마나 흥취가 넘쳤을까 싶기도 하나, 보통은 글씨 때문에 버리고 새로 쓰고, 버리고 새로 쓰고 하는 일을 몇 번씩이나 하지 않는가.

그렇게 힘을 들인 것인 만큼 편지에서는 그 사람의 체취가 우러난다. 봉투에서도 종이에서도 그 사람의 체취를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글씨가 그렇다. 글이 사람이라 하지만 글씨야말로 사람이다. 거기에 그 사람이 다 담겨 있다. 글씨를 보면 저절로 그 사람이 떠오르고 그 사람을 만난 듯 반갑다. 편지를 소중히 여긴 것은 무엇보다 편지를 보낸 사람의 이 체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정이 담겨 오가던, 그처럼 귀히 여김을 받던 편지는 이제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세월 따라 어쩔 수 없이 이메일 시대에 살게 되었다. 가벼움은 따져 무엇하며 메마름은 따져 무엇하겠는가. 우물거리다 뒤처지지 않도록 숨을 몰아쉬는 도리밖에 없다.

- 245(이익섭, 편지에서 메일로, 다시 카톡 카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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