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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간행도서

권서각 산문집, <대장장이 성자>

by 푸른사상 2020. 11. 16.

분류--문학(산문)

 

대장장이 성자

 

권서각 지음푸른사상 산문선 33147×217×18 mm312

16,000ISBN 979-11-308-1717-0 03810 | 2020.11.12

 

 

■ 도서 소개

 

답답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게 하는 문장

 

권서각 시인의 산문집 대장장이 성자<푸른사상 산문선 33>으로 출간되었다. 변방에서 나고 자란 작가가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겪었던 일화와 소회를 담았다. 사람 사는 이야기로 시대를 기록하는 작가는 특유의 해학적인 문체로 삶의 희로애락을 묘사한다. 오랜만에 책을 읽는 재미를 통해 답답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게 해준다.

 

 

■ 작가 소개

 

권서각

경북 순흥에서 태어났다. 본명 권석창. 회갑을 지나면서 쥐뿔도 아는 게 없다는 의미로 서각(鼠角)이란 이름을 아호 겸 필명으로 쓰고 있다. 1977조선일보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눈물반응』 『쥐뿔의 노래』 『노을의 시, 산문집으로 그르이 우에니껴, 학술서로 한국 근대시의 현실대응 양상 연구(박사 학위 논문) 등이 있다. (E-mail_ sgkweon51@hanmail.net)

 

 

■ 목차

 

작가의 말

 

1부 눈길

우문현답 / 장날 / 순흥 청다리 / 고기 먹어 / 위득이 / 대학을 갈쳈불라 / 꼬치영감 / 눈길

 

2부 코스모스는 언제 피는가

신체발부 수지부모 / 빛바랜 미소 / 파란 손가락 / 코스모스는 언제 피는가 / 성지순례 / 장발 수호기 / 덕출이 / 낭만 선생전 / 건곡사 폐경 스님

 

3부 어디쯤 가고 있을까

명랑 쾌활한 봄날 / 조껄떡전 / 더 바보 / 흰 장갑 / 농민 / 칼국시 / 어디쯤 가고 있을까 / 요조숙녀

 

4부 더할 나위 없이 보잘것없는

더할 나위 없이 보잘것없는 / 해봉약전 / 침묵의 소리 / 아무도 할배를 말릴 수 없다 / 장사의 기술 / 대장장이 성자 / 그럼에도 불구하고 / 부치지 못한 편지

 

 

■ 출판사 리뷰

 

권서각 시인의 두 번째 산문집 대장장이 성자는 변방에서 나고 자란 작가가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겪었던 이런저런 사건과 소회를 담은 책이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화하는 문화는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이 산문집에서는 경상도 사람들만의 독특한 정서와 생활양식을 보여준다. 작가는 경상북도 북부 주민들의 다채로운 생활상과 그들만의 정서를 추억의 낱장에서 꺼내어 기록한다. 무뚝뚝한 사투리 속에 가려 있지만 그 속에 숨 쉬는 그들만의 따뜻한 온정과 유쾌함은 맛깔스런 변방서사를 탄생시킨다.

변방의 다양한 인간 군상에 얽힌 이야기가 쏠쏠하게 재미있다. 소백산 자락에 자리 잡은 자연인, 전설적인 주먹으로 알려진 건달 흰 장갑’, 잔꾀를 부리다 된통 당한 고추 장수, 문인들의 지나치게 호쾌한 술자리. 변방에서 체험하는 소박한 세상살이를 묘사하는 저자 특유의 유머와 해학은 읽는 재미를 증폭시킨다. 생경한 경상도 방언은 투박하지만 정겹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위험한 상황만 맞닥뜨리면 36계 줄행랑을 쳤던 유년 시절과, 첫 번째 임지였던 첩첩산중 오지 학교에서의 교사 생활에 얽힌 추억들까지, 사람 사는 이야기로 시대를 기록하는 작가의 기억 창고에서는 유쾌하면서도 어딘가 깊고 쌉싸름한 맛이 난다.

 

 

■ 추천의 글

 

술을 부르는 안주가 있듯이 독후감을 부르는 책이 있다. 이 책의 무엇이 나를 독후감의 수고까지 치르게 하였을까? 중간중간 소나무 옹이처럼 박혀 있는 유머와 글 전체에서 풍기는 은근한 해학은 읽는 재미를 증폭시킨다. 또한 저자 특유의 문체라고 할까. 이리저리 굽어지는 은유적 표현과 시공간의 원근을 아우르는 타임머신적 비유법은 문장의 이해도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스스로 산문이라고 겸손을 말하지만 그 속에 촌철살인의 유머와 해학, 그리고 사회를 보는 그의 안목과 깊이를 알 수 있다.

- 권용철(네이버 블로그 <사람과 나무>, https://blog.naver.com/paha1287)

  

 

■ 작가의 말 중에서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야 한다는 옛말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정치·경제·교육·문화 등 거의 모든 것이 서울 중심입니다. 필자가 태어나서 지금도 살고 있는 경상북도 북부 지역은 우리나라의 변방에 속합니다. 변방에서 나서 아직도 이곳에 살고 있습니다.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 가운데 서울에 살다가 지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분들은 많지만 변방에서 나서 변방에 살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문화라고 한다면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문화의 양상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필자가 살아온 시대와 지역에서의 사람 사는 이야기는 그 나름대로의 문화적 특성이라는 의미를 지닌다는 생각입니다. 변방에서 겪은 이야기가 산문집 그르이 우에니껴로 상재된 바 있습니다.

재미있고 의미 있다는 몇몇 독자들의 응원에 힘입어 그때 못다 한 이야기를 이어서 썼습니다. 이 글은 그르이 우에니껴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세월이 더 흐르면 사라져버릴 이야기들을 오래되고 낡은 기억 창고에서 꺼내어 기록으로 남깁니다. 이 변방서사가 한 시대를 살피고 기억하는 데 조그만 보탬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작품 속으로

  

올해는 송이 좀 땄수?”

, 가방을 보면 몰라? 태어나서 올해 가장 큰돈을 벌었어. 내 크게 한잔 살게.”

빛바랜 콧수염 사이로 흰 이를 드러내며 형은 밝게 웃었다.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큰돈과 형의 큰돈은 단위가 다르다. 몇십만 원도 형에게는 큰돈이다. 짐작건대 보통 사람들의 한 달 월급 정도 벌었으리라. 형은 돈이 없을 때는 돈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고 오직 돈이 있을 때만 돈이라는 단어를 쓴다.

 

젊어서 들어온 소백산에서 그의 청춘도 빛이 바래어 거의 할배가 되었다. 어느 날 무심히 텔레비전을 켜니 형이 화면에 나왔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었다. 리포터가 형의 집을 찾아 산중 생활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리포터가 송이를 따러 산에 오른 형을 따라 함께 산에 올랐다. 드론이 공중에서 아름다운 계곡을 조망한다. 장면이 바뀌어 산 중턱에 나란히 앉은 형과 리포터를 카메라가 잡는다. 나란히 앉아 쉬면서 리포터가 형에게 물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하세요?”

형이 대답했다.

, , 아무 생각이 없지 뭐.”

참으로 우문현답이다.

(23, 우문현답)

 

 

윤 초시의 담뱃대가 대길이 머리에 딱 소리를 내었다. 틀릴 때마다 담뱃대로 대길이 머리통을 골프 치듯 했다. 또 한 구절 가르치고 묻고 모르면 때리고를 반복했다. 대길이 머리에서 혹부리가 나려고 했다.

됐니더, 고마하소. 논 갈게요.”

하는 수 없이 대길이는 논에 들어 쟁기를 잡았다. 윤 초시에 당한 것이 억울했다. 화가 나서 일을 하니 더 힘이 들었다. 오늘따라 수렁이 더 깊어 깊이 빠진 발을 빼내기 힘겨웠다. 거머리도 달라붙었다. 그런 마음도 몰라주고 소가 또 멈춰 섰다.

이랴! 가자! 이누무 소!”

소가 움직이지 않았고 오줌만 솰솰 갈겼다. 오늘따라 소까지 대길이 마음을 몰라주었다. 소도 심술을 부렸다.

대길아, 더 못 갈겠다. 이제부터 내가 쟁기 잡을 테니 니가 앞에서 끌어라!”

저도 나도 힘이 들기는 마찬가지인데 마냥 소에게 욕만 할 수 없었다. 대길이는 쟁기를 잡고 한참을 서 있더니 소에게 말했다.

이랴! 이누무 소, 고마 대학을 갈쳈불라!”

갈쳈불라가르칠까 보다의 변방 말이다. 소도 대길이가 대학배우다가 당하는 걸 보았기에 죽을힘을 다해 앞으로 나갔다. 중천의 해가 빙긋 웃고 있었다.

(62, 대학을 갈쳈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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