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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간행도서

서숙희 시조집, <먼 길을 돌아왔네>

by 푸른사상 2020. 9. 1.

먼 길을 돌아왔네

 

서숙희 지음|푸른사상 시선 133|128×205×7 mm|114쪽|9,000원

ISBN 979-11-308-1702-6 03810 | 2020.8.31

 

■ 시조집 소개

 

부조리한 세계에 굴복하지 않는 자기애

 

서숙희 시인의 시조집 먼 길을 돌아왔네<푸른사상 시선 133>으로 출간되었다. 이 시조집에서는 부조리한 세계를 회피하거나 굴복하지 않고 자기애로써 극복하는 시인의 모습이 주목된다. 시시포스가 자신의 운명을 부정하지 않고 바위를 굴려 올리는 형벌을 기꺼이 수행하며 신들에게 맞서고 있듯이, 시인은 자신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삶의 동반자로 삼고 있는 것이다.

 

 

■ 시인 소개

 

서숙희

경북 포항 기계면에서 태어나서 1992매일신문부산일보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고, 1996월간문학신인상에 소설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조집으로 아득한 중심』 『손이 작은 그 여자』 『그대 아니라도 꽃은 피어, 시조선집으로 물의 이빨이 있다. 백수문학상, 김상옥시조문학상, 이영도시조문학상, 한국시조작품상, 열린시학상, 경상북도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현재 포항에서 활동하고 있다. (E-mail : woomul35@hanmail.net)

 

 

■ 목차

 

시인의 말

 

1

바람꽃 / 금환일식 / 푸르고 싱싱한 병에 들어 / 반도네온에게 / 고독의 뼈는 단단하다 / 빙폭 / 쇄빙선 / 어느 날 밤의 그로테스크 / 아파트 야화(夜話) / 그 섬의 선인장 / 팔에 대한 보고서 / 비보호좌회전 / 피 묻은 상처는 밥이다 / 그곳, 폐광

 

2

아프릴레 / 이운다는 말 / 이후 / 먼 길을 돌아왔네 / 이사 전야 / 사진은 왜 / 물외라는 이름 / 사랑과 이별에 대한 몇 가지 해석 / 가버린 것들은 / 백석처럼 / 지는 꽃 / 흰죽의 기억 / 전혜린을 읽는 휴일 / 밤비 / 찰람찰람

 

3

종이컵 연애 / 관계 / 캔을 따는 시절 / / 불면의 렌즈에 잡힌 두 개의 이미지 / 일몰, 그리고 / 어떤 죽음 / 그 밤에 반전이 있었다 / / 키 큰 피아니스트 / 그 여자의 바다 / 불온한 오독, 혹은 모독 / 컴퓨터로 시 쓰기 / 십자가 도시

 

4

희망대로 달리다 / 돌담 미학 / 손의 벽 / 저녁 기도 / 퇴근길 / 공은 둥글다 / 일요일 오후에는 바지를 다린다 / 적과 / 누더기 시 / 책상다리가 절고 있다 / 두만강은 흐른다 / 포항물회 / 구만리 보리밭

 

5

봄시() / 동백꽃처럼 / 버들노래 / 화엄사 홍매화 / 필리버스터 하라 / 연잎 구슬 / 여름 절집 연밭은 / 구월 저녁 / 시월, 오후 한때 / 어쩌면 오늘은 / 가을볕에 서면 / 그렇게 가을 저녁이 / 햇살 원고지 / 겨울 덕장에서

 

작품 해설시시포스의 역설 - 맹문재

 

 

■ 시인의 말

 

그리하여 여기까지 왔다,

고통과 상처의 맨발로.

얼마나 더 가야 할지 모르지만 또 가야 한다.

여전히 캄캄한 울음의 집을 지고서,

 

 

■ 작품 세계

  

서숙희 시인의 시조 세계에서 시시포스의 역설을 볼 수 있어 주목된다. 카뮈는 시시포스 신화에서 시시포스를 부조리한 상황의 전형적인 인물로 인지해온 기존의 관점을 뒤엎고 고통과 절망에 굴복하지 않는 인물로 해석했다. 삶에 대한 열정으로 신들을 멸시하는 것은 물론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형벌을 기꺼이 수행하는 존재로 이해한 것이다. 서숙희 시인의 작품에서도 부조리한 운명을 비관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지상에서의 삶을 추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중략)

카뮈는 시시포스 신화에서 신들의 형벌로 바위를 굴려 올리는 시시포스를 부조리한 영웅으로 해석했다. 이전까지의 문학이나 철학 등에서 시시포스는 가장 비극적인 존재로 인식되었다. 신들을 속인 사기꾼으로 또는 죽음의 신을 쇠사슬에 묶은 죄인으로 영원히 벌 받아야 하는 존재로 간주해 온 것이다. 그렇지만 카뮈는 기존의 해석과는 다르게 시시포스가 신들의 노여움을 사서 형벌을 받게 된 이유가 신들을 멸시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시시포스가 죽음을 거부하고 지상의 시간에 바친 열정을 주목했던 것이다. (중략)

시시포스의 역설은 서숙희 시인의 작품 세계를 이루고 있는 토대이면서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주제의식이다. 시시포스가 바위를 굴려 올리는 형벌을 수행하면서도 자신의 운명을 부정하지 않고 기꺼이 신들에게 맞서고 있듯이 시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지상에서의 동반자로 삼고 있다. 부조리한 상황에서 감당해야 하는 시간도 아픔도 슬픔도 인연도 신에게 의탁하지 않고 자기애로 품는다. 그리하여 작품들은 고뇌와 근심의 얼굴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지하의 세계에 갇혀 있다가 메마른 언덕을 넘어오는 봄과 같은 생기를 띠고 있다. 인간 소외가 지배하는 이 부조리의 세계에 굴복하지 않는 자기 실존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맹문재(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작품 해설 중에서

 

 

■ 추천의 글

 

서숙희 시인의 이운다는 말은 시조 단수이다. 3645자 내외의 극히 절제된 정형시가의 단시조이다. 그렇게 응축하면서도 말이, 어감이 자꾸자꾸 뭔가를 그립게 반복하며 자유롭게 맴돌고 있는 느낌만을 그대로 전하고 있는 시이다. ‘이운다는 말의 반복이 의미가 아니라 음() 상징으로 확산되며 떠난 임을 자꾸 되뇌게 하고 있지 않은가. 그 아프고 고운 어감이 한 꽃잎 두 꽃잎, 삶과 우주 전체를 덮으며 결국은 유한한 존재들의 시리도록 아름다운 삶의 파노라마를 펼치게 하고 있지 않은가.

이경철(문학평론가)

 

서숙희 시인은 시 가버린 것들은에서 이재행과 박기섭의 텍스트를 자신의 텍스트 속에 끌어들여 새 살을 입히며 그리움을 새로이 노래하는 방식을 찾고 있다. 그 많은 시인들이 노래한 너는 떠나고너는 가고를 넘어서 가버린 것들의 간 곳을 묻는다. 그러노라면 가버린 것들이 문득 새로운 육체를 통해 다시 등장함을 볼 수 있다. 떠나고 가버린 것들을 그 이름” “그 세월로 부르는 사이, “아득한너무 환한이 서로 달려들어 엉겨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움을 주제어로 삼아 앓는 중생의 모습이 깨꽃처럼 환하다.

박진임(문학평론가·평택대 교수)

 

 

■ 시조집 속으로

 

피 묻은 상처는 밥이다

 

피 묻은 상처는

한 그릇의 밥이다

 

불어터진 감성의 배후가 될지도 모를

어설픈 에스프리는 나의 밥이 아니다

 

찬 바닥을 기면서 맨몸을 문질러 쓴 유서 같은 문장을 뚝뚝 꺾어 넣은 밥 녹슬은 숟가락으로 푹푹 퍼먹는 밥

 

잠복해 있던 울음들 조각조각 토해내고

희망의 손목에 철컥, 수갑을 채우는

 

피 묻은 붉은 상처의,

슬프고도 힘센 밥

 

 

먼 길을 돌아왔네

 

젖은 생을 조금씩 배경에게 내어주고

저 또한 배경이 된

한 다발의 마른 시간

 

그 사이

우리 관계는

먼 길을 돌아왔네

 

첫 마음 첫 향기는

귀밑머리로 세어지고

피울 꽃도 지울 잎도 없는 가벼워진 몸에

 

잘 마른

울음 몇 잎이

나비처럼 앉았네

 

낡은 신발 흙을 털듯

기억을 털어내고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마지막 한 문장

 

마른다,

그 말의 끝은

아직 젖어만 있네

 

 

어떤 죽음

 

그는 죽었다

무슨 징후나 예고도 없이

제 죽음을 제 몸에 선명히 기록해두고

정확히 세 시 삼십삼 분 이십이 초에 죽었다

 

생각해보면 그의 죽음은 타살에 가깝다

오늘을 어제로만, 현재를 과거로만

미래를 만들 수 없는,

그 삶은 가혹했다

 

날마다 같은 간격과 분량으로 살아온

심장이 없어 울 수도 없는 그의 이름은

벽시계,

뾰족한 바늘뿐인

금속성의 시시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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