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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간행도서

김용아 시집, <헬리패드에 서서>

by 푸른사상 2020. 7. 27.

 

분류--문학(시)

 

헬리패드에 서서

 

김용아 지음푸른사상 시선 129128×205×10 mm1529,000

ISBN 979-11-308-1689-0 03810 | 2020.7.30.

 

 

■ 도서 소개

 

소외된 변두리 인간들을 향한 따뜻한 인간애

 

김용아 시인의 첫 시집 헬리패드에 서서<푸른사상 시선 129>로 출간되었다. 가난하고 어두운 음지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와 소외 계층을 향한 연민과 애정이 깊은 시집이다. 탄광 노동자, 일용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힘들고 고달프게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애정을 가지고 감싸 안는다.

 

 

■ 시인 소개

 

김용아

여고 시절 문학상과 5월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전태일문학상 시 부문 추천작으로 작품집에 오르기도 하였다. 마리서원과 소행성 B612에서 잠시 문학 공부를 한 때를 아름다운 시기로 기억하고 있으며, 2017월간 시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2020년 강원문화재단 시 부문 생애최초지원수혜자로 선정되었다.

(E-mail : novel02@hanmail.net)

 

 

■ 목차

 

시인의 말

 

1

제장마을 가는 길 / 폐갱(廢坑)에서 / 도계를 넘으며 / 안경다리를 지나 / 쑥물 / 사북, 그 이후 / 완행버스에서 / 오후 세 시의 신호수 / 펜스공 / 무연고 행려 사망자 공고문을 보며 / 자본주의 배추 / 10월에 / 부활주일 예배 / 한덕철광 신예미광업소 매몰자를 위하여 / 헬리패드에 서서 / 강에게 시를 돌려드리다 / 사북 기행

 

2

성금요일 / 석탄가루 묻은 수첩 / 24번 꽃무덤 / 밥 한 끼 / 햇반 더하기 컵라면 / 글렌 굴드의 노동 일기 / 5월이 가네 / 굴비를 엮으며 / 바질 / 파꽃 서사 / 제초제 / 뼈 한 조각 / 메마른 겨울 / 예수님의 못

 

3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해도 / 배려 / 놓아주는 것도 사랑이다 / 망가지지 않으려면 / 저물녘의 기억법 / 농부 / 호미를 씻으며 / 고구마 / 제장마을에서 / 청령포에서 / 돌아 흐르는 강 / 풍기할매 / 11/ 하송리 은행나무 / 엄마를 잃은 I에게 / 저물녘 묵상 / 두 발을 강에게

 

4

줄배 / / 바람의 일 / 연리목 / 당신의 이름을 지울 수가 없네 / 콩 고르는 저녁 / 가재골 형님 / 우리 큰오빠 / 고모 생각 / 언니에게 / 장성 가는 길 / 감자전을 구우며 / 개장 / 꽃이 진 자리 / 닥나무 서사 / 신발 / 봄 안부

 

작품 해설21세기 사실주의 휴머니즘의 새 지평김영철

 

 

■ 시인의 말

 

시를 다시 쓰게 된 날은 어두운 강 저편으로 날아가는 새를 본 저물녘부터였다.

너무 많은 이들이 떠났다. 모두 나를 지켜주던 벽들이었다. 얇은 벽마저 다 사라져버렸을 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여겼을 때 찾아와주었던 것들, 그때마다 내가 한 유일한 일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람보다 더 자주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면서도 일상을 포기하지 않았고 쓰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고 기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나를 잃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안 때이기도 했다. 헬리패드에 서서 흔드는 노란 구조 깃발처럼 남은 이들에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기를, 폐갱 속에서 오랫동안 묻혀 있던 시들도 강에게 돌려드린다. 비록 지금은 함께하지 못하지만 나를 지키고 세우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던 이들에게 말할 수 없는 감사함을 올려드린다.

 

 

■ 작품 세계

  

김용아 시의 기본 흐름과 시선은 사회적 약자와 소외 계층에 고정되어 있다. 그는 늘 어둡고 음습한 음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갖고 있다. 탄광 노동자, 이주 노동자, 일용직 노동자, 소작농민, 품팔이 일꾼, 떠돌이 장꾼 등 열악한 환경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시의 주인공들이다. 사회학에서 이야기하는 경계인(境界人, marginal man)이 바로 그들이다. 이곳저곳, 어느 곳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채, 삶의 변방에서 부평초처럼 떠도는 변두리 인간들의 초상화를 그려내는 일이 김용아 시인의 길이다. 삶의 정착지를 잃은 채 떠돌이 삶을 꾸려가다가 어느 날 문득 세상을 하직하는 민초(民草)들의 삶, 그곳에 시인의 시선이 꽂혀 있다. 그들과 함께 느끼고, 숨 쉬고, 살아보는 감정이입(empathy), 대리 체험의 분비물이 바로 그의 시편들이다.

말하자면 김용아 시의 지평은 노동시, 곧 참여문학, 실천문학, 민중문학의 지평에 열려 있다. 계급 투쟁적인 아지프로(agipro) 시는 물론 아니지만 문학의 현실참여, 앙가주망(engagement)의 포즈는 분명해 보인다. 목적시로서의 노동시, 계급 투쟁으로서의 정치시와는 거리가 멀다. 그의 시에는 인정의 꽃이 피고, 사람들의 인향(人香)이 물씬 풍긴다. 떡 한 줌 주고받는 훈훈한 인정과 인심, 아프고 힘든 이들을 감싸 안는 따뜻한 인간애가 잔물결처럼 흐르고 있다. 그런 점에서 김용아 시는 휴머니즘의 지평에 닿아 있다.(중략)

김용아 시는 이처럼 이야기시를 통해 노동자들, 민초들의 삶을 복원하려 애쓰고 있다. 그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하는 방법을 이야기에서 찾은 것이다. 그리해서 김용아의 이야기시가 탄생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용아의 이야기시는 1930년대 프로문학에서 논의된 대중화론과 단편 서사시에 양식적 계보가 닿아 있다

김영철(문학평론가·건국대 국문과 명예교수) 작품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폐갱(廢坑)에서

 

개망초 세잎클로버

지천으로 피어난 광장

검은 광차에 실려

어둠 속으로 불려간다

 

누군가는 웃고 떠들었다

누군가는 무섭다고 도망가고

또 누군가는 투쟁하던 때를

떠올렸다

 

우리는 사막의 미로에

왕과 함께 버려진

노예처럼

갱도를 떠돌았다

 

지하 1,500미터

천년이 지나도 여전히

사막을 떠도는 그 노예처럼

우리의 삶도 그렇게 전해질 것이다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끊임없이

떠돌고 있노라고

 

 

헬리패드에 서서

 

외계의 하늘을 바라보며 헬기의 이동 경로를 따라 서성이다 헬리패드 위에 무사히 내딛는 것을 보고서야 깊은 숨을 몰아쉽니다 언젠가 잡풀 무성한 강변에서 사어가 되어버린 지 오래인 수메르어처럼 낯선 헬리패드를 만들던 그가 전화를 걸어 부탁한 것은 그보다 더 낯선 식염 포도당정이었습니다 동네 하나뿐인 약국에 들러 어렵게 찾아간 남한강변 걷기만 하는데도 바닥의 뜨거운 열에 발목이 잡혔습니다 박하사탕처럼 하얀 식염 포도당정과 얼음 결정이 그대로 살아있는 생수 덕분인지 잠시 웃어 보였습니다 뒤에는 아직도 베지 못한 풀들이 무성했지만 어디에서 마쳐야 하는지 언제 돌아오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헬리패드는 무사히 완성되었고 몇 달 지난 후부터 헬기가 뜨고 내렸습니다 닥터헬기장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는 캄캄한 어둠을 뚫고 그것을 타고 날아갔다면 이쪽에서의 시간을 좀 더 반복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약국이 사라지고 그도 사라졌습니다 읍내 유일한 약국이 없어져 함께 사라졌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가 만든 헬리패드만은 그곳에 남았습니다 그게 남아 있는 한 길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모를 때 언제든 좌표가 되어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 구조 깃발을 흔들 수 있다는 것 여전히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석탄가루 묻은 수첩

 

익숙하지 않은 교대 시간

자주 고장 나는 컨베이어 벨트

너무 쉽게 막히는 배수관

낙탄은 수시로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렸으며

그때마다 그는

허리를 깊이 숙여야 했다

수첩에 적힌 것 하나라도

지워졌더라면

석탄 가루처럼 무수한 날들

그의 편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그의 마지막이 담긴

작업장 CCTV

끊임없이 되돌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하나였으나 하나가 아닌 시간들

피어보기도 전에 진다

그의 것이었으나

그의 것이 되지 못한

헤아릴 수 없이 검은 날들

수첩 속으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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