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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미디어서평

[광남일보] 박석준 시집,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

by 푸른사상 2020. 6. 12.

 

 

‘남민전’ 사건 시화…아픈 삶의 고해

박석준 시인 세번째 시집 ‘시간의 색깔은…’ 펴내
현대사 굴곡·해체된 삶 조망 3부 구성 12일 출판회

그의 시에는 아픔이 서려있다. 그의 작품에는 정제되지 않은 채 투박한 삶의 테두리 안으로 국가 폭력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고, 개입하는가가 가감없이 드러난다. 민주화운동 선봉에 섰던 큰형 박석률과 셋째형 석삼은 유신체제 말기에 날조된 공안사건으로 꼽히는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의)의 주역이다. 

그 이전 큰형은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과 앞서 언급한 남민전,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 사건으로 고초를 겪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큰형은 민청학련 10개월, 남민전 9년1개월, 범민련 10개월 등 총 10년7개월 투옥됐으며, 남민전으로 인해 사형선고 후 무기를 선고받았다. 셋째형은 남민전에 연루돼 무기 선고 후 15년 징역형에 처해진 뒤 9년1개월 투옥됐다. 

온 시대를 독재정권과 맞서 싸웠던 셈이다. 그의 시에는 이같은 굴곡진 삶이 그대로 노정된다. 일상이 초토화되는 상황을 목도했다. 전 생애에 걸쳐 드리운 그늘이었다. 남민전 사건은 당사자들의 가족을 해체하고, 개인의 삶을 파괴시켰다. 이같은 남민전 사건을 고스란히 담아낸 시집이 나왔다. 

푸른사상 시선 124번째권으로 나온 박석준 시인(63·광주)의 세번째 시집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가 그것으로, 남민전 사건을 목도했던 시인의 비망록이자 역사서시다. 

그의 시편들은 민주주의를 향한 염원과 고투의 내용이 담겨져 있다. 그에게 남민전 이후의 삶은 고비였다. 고비는 늘 찾아왔고, 그럴 때마다 삶은 뼈마디가 쑤시는 것처럼 아려왔다. 

운동권 집안이라는 낙인으로 인해 고요한 시간들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몇 차례의 권력이 바뀌고 나서야 좀체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바뀐 세상이 왔다. 바뀐 세상이 온 뒤 그의 삶은 치유 아닌 아픔이 견고한 살을 이루고 있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상처들은 덧났다가, 아물었다가를 반복하며 그의 삶을 따라다녔다. 그의 시는 아픈 삶에 대한 고해이자 민주화를 쟁취하기까지의 피비린내나는 시간들이 흐르고 있다. 

남민전은 이미 여러 사람이 다뤘다. 김남주 시인이 그랬고, 시인의 큰형이 그린 바 있다. 박 시인은 온전하게 한권의 시집에 이를 담았다. 시인은 유신체제 말기부터 1980년 군사독재정권 치하에서 옥고를 치른 두 친형과 가족의 고통에 그치지 않고,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현장에 있었던 자신의 경험까지 우리의 현대사를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이 시집에는 힘들고 불안했지만 정의의 길을 걸어온 시인의 엄숙하고 순수한 정신이 투영돼 있다. 큰형의 수감으로 인해 가족들의 가난과 불행 및 불안이 시작됐지만 원망하는 마음보다는 그의 삶을 기꺼이 다독인다. 큰형을 한 개인적인 존재로 보기보다는 역사적 존재로 인정하는 것이다. 시속에는 가감없이 이런 사실들이 노정된다. 이 사실들의 기술은 굿이나 무술같은 행위 절차없이 해원에 가닿는 방법으로 읽혔다. 

‘먼 곳’을 비롯해 ‘생의 프리즈’, 표제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 등 3부로 구성됐으며, 아프디 아픈 삶이 투영된 40편의 작품이 수록됐다. 이번 시집은 대동맥경화로 인해 수술을 하는 등 건강이 좋지않은 상황 속에서 출간됐다는 설명이다. 시편들은 순순히 개인의 소소한 삶으로 결코 치부할 수 없는 민주화의 역사가 구체성을 더하며 전개된다. 다른 시집과 달리 실제 인물들의 이름이 시 속에서 거명된다. 

시인은 작가의 말을 통해 “자유를 바라고 피폐하지 않은 삶을 바라지만, 사람이 말을 차단하고 통제하며, 사람을 구속하고 소외시킨다. 통제해 단절시키는 것은 부조리해 아픔과 상실을 낳는다. 위치를 잃은 소외된 것, 말을 잃은 것, 통제된 것, 못사는 것 등 색깔을 잃어가는 시간은 어둡고 슬프다. 사람들은 욕망이 있어 돈과 문화를 따라 도시가 집중된 서울 쪽으로 떠난다. 의미 잃은 과거는 꿈과 같으며, 의미 잃은 현재도 꿈과 같다.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고 밝혔다.

문학평론가 맹문재 교수(안양대)는 “시인은 한국 시문학사에서 남민전 사건을 담아낸 시인으로 기록되고 평가될 것이다. 두 친형이 남민전에 가담함으로써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불안을 겪어야 했던 상황을 한 권의 시집으로 담아낸 의의는 결코 작지 않다”고 평했다. 

박석준 시인은 광주 출생으로 전남대 국문과를 졸업, 섬에서 교사로 재직할 때 자서전 ‘내 시절 속에 살아 있는 사람들’을 발간했으며 2008년 ‘문학마당’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카페, 가난한 비’와 ‘거짓 시, 쇼윈도 세상에서’를 펴냈다.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됐던 4년6개월을 포함해 34년 동안 교직에 재직했다. 영광공고 교사를 끝으로 60세에 명예퇴직했다. 

한편 출판기념회는 12일 오후 6시30분 광주 5·18기념재단 한 음식점에서 열 예정이다.

 

광남일보, "‘남민전’ 사건 시화…아픈 삶의 고해", 고선주 기자, 2020.06.11

링크 : www.gwangnam.co.kr/read.php3?aid=1591867996358489025</a href="ht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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