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시)
씨앗의 노래
차옥혜 지음|푸른사상 시선 107|128×205×10.3 mm|152쪽|9,000원
ISBN 979-11-308-1453-7 03810 | 2019.9.10
■ 도서 소개
어머니의 마음으로, 농부의 마음으로 쓴 생명의 시
차옥혜 시인의 열두 번째 시집 『씨앗의 노래』가 <푸른사상 시선 107>로 출간되었다. 씨를 뿌려 생명을 기르는 농부처럼 시인은 따뜻하고 섬세하고 단단한 언어로 대지와 자연을 담고 있다. 씨앗들이 속삭이는 생명력에 귀 기울이며 우리의 희망과 치유의 노래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 시인 소개
차옥혜
1945년 전주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영문학과와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경희문학상과 경기펜문학대상을 수상했다. 시집 『깊고 먼 그 이름』 『비로 오는 그 사람』 『발아래 있는 하늘』 『흙바람 속으로』 『아름다운 독』 『위험한 향나무를 버릴 수 없다』 『허공에서 싹 트다』 『식물 글자로 시를 쓴다』 『날마다 되돌아가고 있는 고향은』 『숲 거울』, 서사시집 『바람 바람꽃-막달라 마리아와 예수』, 시선집 『연기 오르는 마을에서』 『햇빛의 몸을 보았다』 『그 흔들림 속에 가득한 하늘』이 있다.
■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희망이 부르는 소리
적막이 적막을 위로한다 / 봄길 / 거듭나는 가을 / 안개 낀 가을 아침 / 가을 텃밭 / 산숲 / 희망이 부르는 소리 / 어머니는 옛살비 / 사랑도 넘치면 독이 되나 봐 / 씨앗의 노래 / 세상 / 낮은 곳으로 흘러 돌아오는 물 / 꽃이 모두에게 꽃이 아니구나
제2부 눈꽃 빛으로 환한 꿈꾸는 벌판
벚꽃 세상에서 / 눈꽃 빛으로 환한 꿈꾸는 벌판 / 초록 물들어 희망을 심는 유월 / 산불 / 가뭄에 물 주기 / 비가 살리는 초목 / 꽃씨를 나누니 / 여름바람이 짓는 초록 세상 / 농부는 바람에 백기를 들지 않는다 / 사랑 2 / 은행나무 / 지는 꽃에게 / 가을, 빈손은 무엇을 노래해야 하나 / 벼랑에 몰린 할아버지 산지기
제3부 시인
시 / 시인 / 바다를 사랑한 동백나무 / 얼어 죽은 물총새의 푸른 날개 / 단풍 / 숫원앙의 노래 / 전복 껍질 / 집념의 수학자 / 황태 덕장을 지나며 / 김유정 문학관 / 나비 시인 / 바다 시인 / 눈멀고 귀먹은 찔레나무 / 유기견 토리가 반짝인다
제4부 하늘을 보아야 꽃이 핀다
하늘을 보아야 꽃이 핀다 / 촛불 꽃 마음 꽃 /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다 / 떨기나무 불꽃을 본 모세들 / 붉은 닭의 해를 맞아 / 통곡하는 오키나와 한국인위령탑 / 바람 너는 누구냐 / 너무 늦게 찾아온 비 / 살아 반짝이는 당신은 경이로운 존재 / 부부젤라를 불자 / 지진이 났다 / 서서평 / 미안하다 미안하다
제5부 일흔두 번째 봄
자작나무 숲에 망명하다 / 바다 앞에서 / 어머니가 지어주신 목화솜 이불 / 일흔두 번째 봄 / 우러를 손 만나고 보니 / 아까운 날이 간다 / 네 절망이 보일 때 / 삶의 밤은 길고 깊어라 / 봄을 부르는 꽃 친구 / 외로운 꽃 / 장대비가 내린다 / 겨울의 입구에서 님에게 / 그리운 집 / 별의 꿈
■ 작품 해설:생명의 씨앗, 혁명의 씨앗 - 이경수
■ 시인의 말
애틋한 마음으로 열두 번째 시집을 묶는다.
진실, 생명, 평화, 사랑의 말들을 찾아 헤매는 말의 순례자, 시인으로 사는 길은 나의 자부심이고 기쁨이지만 아직도 길은 멀고 아득하기만 하다.
뜰, 밭, 숲에서 씨앗을 주워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두 손으로 공손히 감싸고 가슴에 품어보다 귀를 대본다. 설렌다. 가슴이 뛰고 벅차오른다. 씨앗은 소리 없이 희망의 말들을 속삭인다. 씨앗은 현재, 과거, 미래의 통합이다. 씨앗은 꿈 덩어리다. 흙에 떨어져 물을 먹고 뿌리를 내리며 싹터 풀이 되고 나무가 되어 비, 바람, 햇빛과 사랑을 나누며 꽃이 피고 열매나 씨를 맺는다. 이처럼 끝없는 순환으로 영원히 산과 들을 푸르게 하는 것이 식물뿐이랴. 동물이나 사람에게도 죽음을 뛰어넘어 거듭 새 세상을 끌어오는 영원한 생명의 빛인 씨앗의 노래가 있다. 내 시집이 씨앗의 노래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 작품세계
자연에서 서정을 발견하는 우리의 현대시 독법은 오랫동안 편향되어왔다. 생명의 순환과 지속성은 한편으로는 죽음을 이겨내고 새 생명을 불러오는 혁명적인 자리이기도 한데, 생각해 보면 우리의 전통 서정시에서는 변혁의 힘을 제거하거나 은폐한 채 인간사에 대한 유비로 자연을 읽어내거나 생명을 찬양하거나 신비화하는 데 치우쳐 있었던 것도 같다. 차옥혜 시인의 열두 번째 시집을 읽으면서 처음 들었던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이 시집이 그리고 있는 자연 서정의 힘은 씨앗의 생명력이 지닌 아름다움과 온기에도 있지만, 그것이 지닌 변혁의 힘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자 하는 데도 있었다. 자연의 위의와 아름다움에 감탄의 눈길을 주면서도 이 시집이 생활 현실의 고단함과 신산함을 놓치지 않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어쩌면 차옥혜의 시는 신동엽의 시가 지니고 있었던 대지의 생명력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계승하고 있는 시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씨앗의 존재론이라고 부를 만한 이번 시집에서 차옥혜의 시는 따뜻하고 섬세하고 단단한 언어로 치유의 노래를 들려준다. 찬란한 생명을 틔울 씨앗처럼 목숨을 살리는 시를 쓰고자 하므로 차옥혜는 어머니의 마음이자 농부의 마음으로 시를 쓴다. 씨를 뿌리고 생명을 기르는 마음으로 존엄한 생명에 경이로운 눈길을 주며 공들여 쓰는 차옥혜의 시를 읽다 보면 서정시가 지닌 가능성을 문득 믿고 싶어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숙주를 찾아 식탁을 차려대는 세상에서/지금 살아 반짝이고 있는 당신은.얼마나 신비하고 경이로운 존재”인지, “평생 생명의 존엄을 지킨 당신은/얼마나 복된 삶”(「살아 반짝이는 당신은 경이로운 존재」)인지 아는 시인은 생명을 귀히 여기는 마음으로 이번 시집을 묶었을 것이다. 「지진이 났다」에서도 드러나듯이 생명과 자연 생태계를 소중히 여기는 그 마음은 때론 지진을 두려워 할 줄 아는 마음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자연을 두려워할 줄 안다는 것은 그만큼 생명을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차옥혜의 이번 시집에서 우선 눈에 띄는 시는 자연을 노래한 시들이다. 온갖 꽃과 나무와 풀 이름이 등장하는 차옥혜의 시를 읽다 보면, 시를 읽으면 조수초목의 이름을 알 수 있다고 시의 효용성을 제자들에게 역설했던 공자의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차옥혜의 시는 꽃 이름, 나무 이름, 풀 이름을 알려주는 것은 물론이고 여전히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배울 것이 적지 않음을 일러준다.
―이경수(문학평론가, 중앙대 국문학 교수) 해설 중에서
■ 추천의 글
차옥혜 시인의 시(노래)는 꽃이 피고 새가 나는…… 곡식과 채소들이 갖가지 모습으로 자라는 흙빛도 고운 밭자락에 앉아서 읽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농부들의 손에 의해서 혹은 스스로 몸을 가꾸듯이 알알이 여물어가는 지상의 작고 아름다운 열매들…… 그것들의 빛깔과 향기와 의미들을 불러들이고 있는 고요한, 적막한 자연의 시편들! 형체를 지니거나 숨 쉬는 것들이라면 조금이라도 놓치지 않고 다가서는 그의 로고스(말, 언어)는…… 두 손을 모으게 하는 기도문처럼 그리운 음성과 생에 대한 경건주의로 아련하게 읽혀진다. 그의 시는 생명과 평화와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감사함으로 가만가만 젖어와 오늘을 노크, 사랑함의 문을 열어준다.
— 김준태(시인)
흙을 밟고 살아가는 시인은 안개 낀 가을 아침 앞이 보이지 않지만 그 속에 꽃이 피고 과일이 익고 곡식이 여물고 짐승들이 젖은 잎새를 헤치며 먹이를 찾는 것을 바라본다. 여름바람이 세상을 초록빛으로 물들이려고 쉴 새 없이 씨를 뿌리는 것도 바라본다. 가뭄과 장마와 폭풍을 이긴 들깨와 호두와 감과 은행과 고구마와 방울토마토 앞에서는 두 손을 모은다. 그리하여 시인은 세상을 밝히다가 먼 길 떠나는 꽃이며, 나무와 산새와 산짐승을 지키는 산지기며, 암투병하는 몸으로 한여름 뙤약볕에서 밭을 매는 이웃을 품는다. 배추꽃 무꽃 부추꽃으로 피고 시냇물로 바람으로 세계를 닦다가 “마침내 내 별자리로 돌아가면/밤마다 못 잊을 지구별/사람, 집, 마을, 들, 산천/어루만지는/별이 되리”(「별의 꿈」)라는 노래도 가슴 깊이 부른다.
— 맹문재(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 시집 속으로
씨앗의 노래
그해 겨울
기근이 전염병처럼 퍼졌다
전쟁으로 남편과 시어머니를 잃은 영희는
시아버지와 어린 자식들을 위해
간신히 묽은 죽을 쑤어 밥상을 차렸다
시아버지는 단식으로 속병을 고친다며
식사를 거부하고 물만 마셨다
영희가 매일 수시로 아무리 죽을 권해도
시아버지는 한사코 막무가내였다
봄이 오자 뼈만 남은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시신을 염하고 시아버지의 요를 거두니
씨앗들이 깔려 있었다
볍씨, 콩, 상추, 아욱, 무, 배추, 조……
장례를 마치고 자식들과 고향을 떠나려던
영희는 통곡하며 씨앗을 끌어안았다
생명을, 희망을, 미래를 껴안았다
아버지 저도
사람 씨앗을 위하여
어떤 일이 있어도
곡식 씨앗을 지키겠습니다
아버지가 목숨으로 지킨 씨앗
아버지의 몸이고 넋인 씨앗
아버지와 나와 자식이 씨앗으로
한 몸입니다
조상과 후손과 나는 씨앗으로
함께 영원합니다
영희는 죽을힘을 다해
논밭을 갈고 씨를 뿌렸다
걸핏하면 울던 울보 영희는
그 이후 절대 울지 않았다
씨앗이 밀고 가는 세상
씨앗이 먹이는 세상
씨앗이 키우는 세상
씨앗은 생명이다 목숨이다 넋이다
씨앗은 아버지다 어머니다 나다 자식이다
초록 벌판에
종일 일하며 부르는 영희의 노래가
끊임없이 울렸다
시
깊고 먼 그 이름이다
바람 바람꽃이다
발아래 있는 하늘이다
아름다운 독이다
날마다 되돌아가는 고향이다
그 흔들림 속에 가득한 하늘이다
숲 거울이다
만날 수 없는 희망이다
희망이 부르는 소리다
눈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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