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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간행도서

안준철 시집 <생리대 사회학>

by 푸른사상 2019. 7. 9.

분류--문학(시)

생리대 사회학


안준철 지음|푸른사상 시선 104|128×205×10 mm|152쪽|9,000원
ISBN 979-11-308-1445-2| 2019.7.10



■ 도서 소개


날것의 언어로 일상의 서정을 노래하다


안준철 시인의  『생리대 사회학』 이  <푸른사상 시선 104>로 출간되었다. 자신의 고통을 토대로  다른 사람의 고난과 고통은 물론이고 쇠락해가고 사라져가는 것들을 섬세하고 애틋하게 품는 시인의 마음이 독자들을 위로해준다.


■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조금 / 병원 나들이 가는 길 / 안개와 풍경 / 어떤 야만 / 봄의 사중주 / 탑 / 참회록 / 말 / 눈길 / 어떤 풍장 / 꽃들이 울고 있더라 / 나는 아직 애도하지 않았다 / 이월이의 반가사유 / 빙의가 온 날

제2부
내 몸은 너무 성성하다 / 앵두 따는 법 / 괜찮다 / 하루 / 온전한 시간 / 위로 / 파시 / 차마 / 시인과 의사 / 꽃구경 / 아름다운 모델 / 저기요 / 각방 / 시간 여행

제3부
환대 / 아우뻘쯤 돼 보이는 사내와 / 시월에 / 빨간 조끼 / 처서(處暑) / 남원역에서 / 산책 / 노을이 오지 않은 저녁 / 가을비 / 순간의 꽃 / 다 늦을 무렵 찾아간 / 별 / 금이 간 의자

제4부 
첫사랑과 별(別)하다 / 회갑 / 좋은 일 / 그녀들의 실루엣 / 아기 손바닥 / 생리대 사회학 / 겨울 숲에서 / 천 번의 산책 / 자전거 타기 / 풀씨 / 억새 / 12월 / 여행 / 눈 가난하게 내린 날에는

제5부 
봄, 꽃 / 새해 소원 / 봄이 오기 전에 / 검은 산 / 갈대 / 나무에게 / 의자 / 밥과 천국 / 사랑  / 지금 길을 잃은 자만이 / 지는 낙엽을 보며

■ 작품 해설:진실의 힘을 믿는 다정한 시인 - 박일환


 

■ 저자 소개


안준철(安俊鐵)

1954년 전주 출생으로 전남 순천에서 교직 생활을 하다가 정년퇴임했다. 1992년 제자들에게 써준 생일시를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뒤 시집으로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가 있다. 산문집으로 『아들과 함께하는 인생』 『그 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처음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등도 있다. 교육문예창작회와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며 전주에서 산책가로 살고 있다.

 

   

■ 시인의 말

 

반평생 몸담았던 학교와 아이들을 떠나온 뒤, 자전거를 타고 천변을 따라 구순을 바라보고 계시는 장모님 댁에 동무해 드리러 가는 것이 일이 되었다. 연속극 재방송을 같이 보다가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 철이 들기도 전에 너무도 일찍 돌아가신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가 눈에 밟히곤 했다. 어머니는 내게 몸만 주신 것이 아니었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처음으로 쓴 시 비슷한 것을 보시고 애정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그때의 기억이 나를 버티게 한 것은 아닐까. 시를 쓸 때마다 내 삶의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나 괴로워하면서도 말이다. 두 분 어머님께 이 시집을 바친다.



■ 추천의 글


이번 시집을 통해 안준철 시인이 시로써 도달한 좌표가 정확하게 읽힌다. 그 지점은“ 차가운 것 조금/따뜻한 것 조금/서로를 조금씩 내어놓고“”이내 알맞게 섞인” 자리다.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은 감정과 이성이 시편마다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는 “한 소녀의 자람이/나의 시듦으로 인한 것이라”는 우주 만유의 평균율을 읽어내는 시점과 지점에 이른 것이다.“ 안개는 풍경을 지워서 풍경을 만들지만/지독한 안개는 풍경을 만들지 못한다는” 중도의 통찰에 이르렀다. 모나거나 각지지 않은 시선과 언어가 편안하게 와서 안긴다. 안준철 시인의 시의 한 축을 이루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과 애정, 연대의식도 그 온도가 너무 과열되어 있거나 차갑게 식어 있지 않다. 그의 시에서는 36.5도 인간의 건강한 체온이 느껴진다. 자신의 삶과 세상을 향한 시선이 적정한 균형점에 도달한 것이다. 시의 표정들이 한결같이 편안하고 포근하다.“ 어려운 숙제를 푼 소년처럼/배시시 웃”는 시인의 모습이 선연하게 그려진다.                                                                                                                                      ― 복효근(시인)


그의 시는 공기처럼 가볍고 물처럼 맑고 투명하다. 파도에 쓸리는 모래알처럼 눈과 손에 쥐고 있을 수 없다. 해석과 의미를 계량키 위해 헛심 쓸 틈이 없다. 눈 녹듯 금세 마음으로 다가와 스며들어버리는 따뜻하고 착한 시들의 경지가 쉬운 듯하지만 높고 넓고 고매하다. 읽고 나면 내 마음도 어떤 안과 밖의 분별과 경계로부터 자유로워져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의 존엄과 아름다움에 동화되고 만다. 장식과 치장 없이 삶과 자연의 본질과 겸허를 향해 오직‘ 사랑’으로 육박하는 시편들이 어떤 잠언록보다 새롭고 귀하다. 이런 정직한 정신의 반석들 위에서 우리 모두를 사랑으로 이끄는 시들이 참 고맙다.                                      ― 송경동(시인)


박명처럼 더욱 가난한 마음을 온전하다 여기게 하는 시인의 언어들은 결핍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지점에 돌 하나를 올려 그의 사랑을 살짝 건드린다면 무궁한 이야기가 쏟아질 가을 섬진강의 수묵화다. 그는 어떠어떠한 행위들로 그냥 시를 살고 있다. 아내를 살고 어머니를 살고, 특히 구순에 가까운 연로하신 장모님과는 한참 열애 중이다. 삶이란 파편처럼 피었다 지는 찰나임에도, 그 순간을 온전한 시간으로 빚고 있는 시인의 언어들! “눈길은 눈이 간 길이니 너를 바라본 것이 모두 길(道)”임을 알고 있는 그와 어언 25년을 함께해온 시간들이 지금도 언어 너머 가슴으로 만날 수 있느냐고 묻고 있다.     ― 이민숙(시인, 샘뿔인문학연구소장)

   


■ 작품 세계


안준철 시인을 처음 알게 된 건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1992)라는 시집을 통해서였다.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들의 생일마다 써주었던 축시를 모은 시집이다. 안준철 시인은 대학 졸업 후 제약회사에 다니다 뒤늦게 다시 사범대에 편입하여 교사의 길로 들어섰다. 그런 만큼 교직에 대해, 그리고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에 대해 애정이 남달랐다. 제자들의 생일 축시를 일일이 써주게 된 건 그런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 역시 오래도록 교사 생활을 해왔지만 한 번도 생일 축시 같은 걸 써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토록 괴로운 세상에 태어난 건 저주(?)받을 일이지 축하받을 일이 못 된다는 게 내 알량한 생각이기도 했다. 그래서 시를 쓰는 동안에도 나는 줄곧 긍정보다는 부정의 정신을 벼려온 편이다. 그게 불의와 모순이 지배하는 세상에 맞서는 방편이자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방법이라 여겼다. 그에 반해 안준철 시인은 줄곧 긍정과 낙관의 세계를 일구어 왔다.
(중략)
“절망은 희망의 밥”이라는 저 낙관의 힘이 안준철 시인의 시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그건 시인이 “진실만이 희망”이라는 굳건한 믿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이 없다면 시도 없다는 것이 안준철 시인의 지론이다.(중략)
안준철 시인은 외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비록 말 못 하는 꽃 한 송이일지라도. “눈이 유난히 큰 꽃망울 하나가/나를 빤히 쳐다보”는 모습에서 시인은 꽃이 자신을 환대하는 마음을 본다. 또한 「이월이의 반가사유」에서는 장모님 댁의 강아지 이월이가 자신을 반가워하는 모습에서 역시 환대의 자세를 읽어낸다. 환대를 받으면 그만큼 돌려주어야 하는데, 그건 그리 어렵거나 큰일이 아니다. 같이 마주 보아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환대의 마음을 나누는 것 아니겠는가. 환대란 그렇게 상대를 자신의 눈과 마음 안에 모시는 일이다. 식물이나 동물과의 관계에서도 그럴진대 사람을 대하는 일은 또 어떻겠는가.

박일환(시인)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병원 나들이 가는 길

병원 나들이 가는 길


건널목 맞은편에 서 있는
예쁜 귀마개를 한 소녀와
그 건너편에 서 있는 늙수그레한 사내가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유쾌한 상상
 
작은 나무처럼 서 있는
한 소녀의 자람이
나의 시듦으로 인한 것이라면
억울할 것 같지 않다는
즐거운 계산
 
신호등이 바뀌자
얼었던 풍경들이 스스로 풀리고
어려운 숙제를 푼 소년처럼
배시시 웃다


하루


아내가 눈병으로 고생하는 동안
장모님은 전화로만 안부를 물어오셨다
이삼 년 뒤면 구순이 되시는
장모님께 눈병이라도 옮길까 봐
아내는 전전긍긍했던 것인데
대신 내가 장모님 댁에 들러
연속극 재방을 같이 보기도 하고
그러다가는 언젠지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드신 장모님 곁에서
한숨 푹 자고 오기도 했다


초록을 잃고서야 제 색깔을 얻은
백발의 억새가 눈부신 천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갔다가
자전거를 타고 돌아왔다


하루가 물 흐르듯 지나갔다



환대

길 가다가 만난
풀꽃 한 무더기
허리께를 잘 모아 쥐면
한 아름의 꽃다발이 될 성싶어
손을 모으는 시늉만 하고는
막 돌아서려는데
눈이 유난히 큰 꽃망울 하나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가만 보니
눈망울이 작은 꽃들도
안 보는 척
곁눈질을 하고 있다



좋은 일

암 진단을 받고 나니
암일까 아닐까
가슴 조이던 시간들
이제는 안녕이다
좋은 일이다
 
나이 들면서
자리 잡기 시작한
조무래기 병들
명암도 못 내밀게 되었으니
좋은 일이다
 
가을을 사랑하는 일이
누구를 해치는 일은 아니겠으나
이렇게 마냥 행복해도 되는 건지
늘 미안했는데
좋은 일이다
 
걱정 근심 없이 살아온
내 몸에서도
암이라는 것이 자랐나 보다
세상 걱정도 하며 살라는 건지
좋은 일이다
 
암 진단을 받고 보니
많은 것들이 달라 보인다
세상은 더 아름답고
사랑할 것들이 더 많아졌다
좋은 일이다



생리대 사회학

오래전에 폐경 선언을 한 아내와
생리대를 사러 동네 마트에 다녀왔다


전립선암 수술 후
보송보송한 여성 전용 생리대를
요실금 팬티 대용으로 착용한 지도
일 년이 다 되어간다
 
남자가 생리대를 차고 다닌다고
아내는 나를 놀리면서도
속내로는 짠한 마음이 드는 모양이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여자니까 당연한 일이지 했던 거다
피를 뚝뚝 흘려도 남의 일이었던 거다

아내가 반평생을 고생했으니
나는 반의반이라도 해야지

그러면 공평하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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