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수필)
모나지 않은 집
김학주, 김재은, 이상옥, 정진홍, 이상일, 곽광수, 이익섭, 김경동, 김명렬, 정재서 지음
|숙맥 12|153×224×17 mm|296쪽|20,000원
ISBN 979-11-308-1447-6 03810 | 2019.7.25
■ 도서 소개
서울대학교 출신 노교수들로 이루어진 남풍회의 산문집 <숙맥> 12집이 『모나지 않은 집』이란 제목으로 푸른사상사에서 출간되었다.
학문에서도 인생에서도 완숙의 경지에 든 지 오래인 저자들은 글쓰기를 통해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한다. 여전히 명징한 정신과 비판적 시선으로 사회와 역사를 바라보고, 스스로를 날카롭게 성찰하며, 세상사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놓지 않는다.
한 편 한 편 읽을수록 깊이 있는 지성과 풍요로운 사유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산문집이다.
■ 저자 소개
김학주(중국고전문학 서울대학교) 김재은(발달심리학 이화여자대학교)
이상옥(영미문학 서울대학교) 정진홍(종교학 서울대학교)
이상일(독문학 성균관대학교) 곽광수(불문학 서울대학교)
이익섭(국어학 서울대학교) 김경동(사회학 서울대학교)
김명렬(영문학 서울대학교) 정재서(중국고전문학 이화여자대학교)
■ 목차
■ 책머리에:늙은 등걸에 피는 매화처럼
김학주 삼인행(三人行)이면 필유아사(必有我師)
식탁에 앉아 멀리 참나무를 바라보며
이백(李白)의 달과 술
백거이(白居易)의 시 「늙어서 경계할 일(老戒)」을 읽으며
김재은 선생 되기란
이상옥 약 먹으러 갔다가
“일생을 정리할 때”라는데
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 탐방기
크라코브, 그리고 아우슈비츠
정진홍 주선(酒仙)들께 드리는 소수자의 변(辯)
모나지 않은 집
저는 소원이 있습니다
돈에서 자유롭기
“와, 여름이다!”
시간 이야기
이상일 공연평론의 낙수(落穗)들
곽광수 프랑스 유감 IV
이익섭 우물 정(井) 자를 누르세요
음악을 보다
최돈춘 할아버지의 옛날얘기:개와 고양이, 그리고 여의주
김경동 배롱나무와 나, 그리고 아파트
김명렬 5월의 선물
사적인 공간
시간에의 반격:졸업 60주년에 부쳐
신념과 덕목
연병장의 쇼팽
정재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신화를 생각한다
동양신화는 귀환하고 있는가?
고왕금래(古往今來) 연편(連篇)
■ 책머리에
늙은 등걸에 피는 매화처럼
2002년 처음‘ 남풍회’라는 모임이 생겼을 때는 회원이 7-8명이었다. 그 대부분이 이미 대학에서 정년한 퇴임교수들이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곧 정년을 앞둔, 현역으로는 노장들이었다. 그러니 사실 우리는 정년 후 소일할 것을 위해 모였던 것이다. 그렇게 몇 번을 모여 담소를 나누다가‘ 이렇게 만나 이야기만 하다 헤어지기보다 각자 글을 써 모아 책을 내자’는 의견이 나왔고 모두가 이에 동의하여 이듬해 동인지를 내게 된 것이다.
첫 권을 낼 때는 그 뒤로 매년 한 권씩 내자 하였다. 그러나 두 번째 책은 그 후 4년 만에 나왔다. 그 후로도 해를 거른 적이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책을 내왔다. 다섯 권째를 내었을 때인가 누군가가 이렇게 한마디 하였다,‘ 대개 이런 동인지는 두세 번 나오다 마는데 다섯 번이나 나온 것은 놀라운 일이네요’라고. 그런데 지금 우리는 열두 권째를 내고 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이처럼 끈질기게 이 일을 지속하게 하는가? 그 해답은 향천(向川)이 창간호 서문에서 우리 모두가 한때는 문예 창작을 꿈꿨던 청소년이었으며 이제 나이 들어 그때로 회귀하고 있다고 한 말에서 찾을 수 있다. 근 20년간, 남풍회 결성 당시 아직 현역이었던 회원조차 팔십 고개를 넘는 지금까지, 이 동인지를 이어오고 있는 힘은 바로 그 젊은 시절 품었던 창작의 염원, 글쓰기에 대한 집념이 그 한 동력임이 분명하다.
우리가 그간 해온 작업은 비록 소박한 것일망정, 한 편, 한 편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지난번 호의 서문에서 모산(茅山)은 그런 글쓰기 즉, 하나의 완결된 작품을 만드는 일은 ‘글을 짓는’ 것이라고 하였다. 집이나 옷이나 밥같이 중요한 것을 만드는 것은 ‘짓는다’ 하듯이 글도 그 중요한 것의 반열에 들어서 ‘짓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집, 옷, 밥 등은 모두 그 만드는 방법과 순서를 정해 놓은 법방(法方)이 있다. 그 법방을 충실히 따르면 잘 됐건 못 됐건 그 물건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글을 짓는 데에는 그런 법방이 없다. 하나의 완결된 글을 만드는 데에는 기껏해야 ‘처음과 중간과 끝이 있고 이것들이 어떤 효과를 내기 위해서 유기적으로 작용하게 한다’ 정도가 법방이라면 법방일 것이다. 그러나 예컨대 그 ‘처음’이라는 것이 무엇이라고 정해진 것이 없다. 연대순으로 일어난 사건을 기술하는 서사시에서조차 처음이 제일 먼저 일어난 사건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서양의 서사시의 모형은 아예‘ 중간으로 들어가서(inmedias res)’ 시작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연대기적 시간과 별 상관이 없는 내용을 소재로 하여 어떤 느낌이나 생각을 표현하고자 하는 수필에서는 더구나 처음에 무엇으로 시작해야 하는지가 정해져 있을 리 없다. 따라서 나머지도 다 미정이다. 그러니 이런 글짓기는 처음부터가 낯선 시도이고 미지의 탐색이고 새로운 도전일 수밖에 없다.
이제 팔십을 넘게 살았으니 준칙을 따라 해야 하는 일도 대강 어느 정도에서 타협하고 끝내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글짓기만은 그럴 수가 없다. 첫째, 우리의 오래된 글에 대한 숭상이 그런 손쉬운 처리를 용납하지 않는다. 둘째, 이것이 더 실제적인 이유인데, 글짓기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정신적 기율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무기력하게 이완되었던 정신이 글을 지을 때면 아연 긴장하여 제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래서 글의 내용과 형식에서 취하고 버리는 것을 엄격한 기준에 의해 처리한다. 그 기율은 우리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증좌인 것이다. 또한 그것을 통해 우리는 무언가 의미 있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생명 활동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로 하여금 이 동인지 활동을 지속케 하는 또 다른 동력이 있는 것이다. 부족하지만 그런대로 대강 넘어가는 것을 늙음을 인용하는 것이라면 글에서 그런 적당주의를 불허하는 것은 늙음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문장의 배치로부터 부사의 위치, 단어의 선택에 이르기까지 적합한 표현을 찾아 고치고 또 고치는 고달픈 과정을 감내한다. 그렇게 정성을 들여 한 개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곧 우리에게는 늙음의 거부요 살아 있음의 확인인 것이다.
거칠고 구부러진 늙은 가지에 핀 서너 송이의 매화가 젊은 가지에 흐드러지게 핀 매화보다 더 운치 있고 격조 높을 수 있다. 단, 가지는 늙었을지언정 꽃은 젊은 꽃에 못지않아야 그럴 수 있다.
봄이 되면 매화 옛 등걸에 성긴 꽃이 피듯이 우리는 내년에 또 몇 편의 수필을 써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작업은 창작에 대한 우리의 염원과 자기 기율의 정신이 살아 있는 한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 책 속으로
이 시에서 늙어서 경계할 일이라고 읊은 대목 중에 지금의 노인들도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셋째 “이것저것 얘기를 길게 하게 된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노인들 중에는 사석에서나 공석에서나 말을 하기 시작하면 그칠 줄 모르고 홀로 길게 발언을 하는 경우가 있다. 나 자신도 늙어 가면서 쓸데없는 말을 길게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생각된다. 생각이 제대로 돌지 않기 때문에 결국은 자기 생각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여 쓸데없는 말이 많아지는 것이다. 쓸데없는 말을 한다는 것은 결국 말을 잘 못하는 것이 된다. 쓸데없는 말 많이 하여 득이 되는 경우란 거의 없다. 듣는 이들 모두가 저 늙은이 주책이 발동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기 일쑤이다. 장자(莊子)가 말한 “오래 살아서 많은 욕을 보게 된다”는 가장 중요한 까닭도 늙어서 쓸데없는 말을 이것저것 많이 하는 데 있지 않은가 여겨진다. (34쪽)
더 흥미로운 것은 문화권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등근 집을 설명하는 데에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모퉁이, 모서리, 구석에는 못된 귀신이 깃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귀신이 집안 식구들을 병들게 하고 다투게 하고 온갖 못된 짓을 다 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것을 피하려면 모서리나 모퉁이나 구석이 없는 둥근 집을 지어야 한다는 겁니다. (96쪽)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그로 인해 내가 좀 손해 볼 각오만 되어 있으면 별 부담 없이 실천할 수 있는 덕목쯤으로 생각하여 나는 그것을 나의 신념으로 삼았었다. 그러다가 그것을 정말 흔들림 없이 지켜 낼 수 있는지를 판가름할 만한 시험대에 오르자 나는 도망친 것이다. 그것을 신념으로 지키기 위해서는 때로는 내 생명을 걸어야 한다는 각오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한때 나의 신념으로 여겼던 것이 실은 허울만 좋은 속 빈 구호였다는 사실이 노정되고 만 것이다. (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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