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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간행도서

유희주 시집 <소란이 환하다>

by 푸른사상 2019. 6. 10.



소란이 환하다


유희주 지음푸른사상 시선 103128×205×8mm1089,000

ISBN 979-11-308-1438-4 03810 | 2019.6.5




■ 도서 소개


날것의 언어로 일상의 서정을 노래하다


유희주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소란이 환하다』가 <푸른사상 시선 103>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생의 순간들이며 일상을 특유의 직설적인 방식과 날것의 언어로 읊는다. 또한 디아스포라 문학인으로서 국가적인 경계를 넘는 연대와 자유를 꿈꾸고 있다.


■ 목차


■ 시인의 말


1부 다정한 수행

신발 / 생일 미역국 / 궤도 / 2월 말 / 멋대로 / 이제 / 어금니 / 질그릇 / 배움 / / 돌탑 되기 / 나무 울타리 / 같다 / 개미집 / 친절해지기

 

2부 걸음걸이

주민등록 초본 / 인수봉 아랫동네 / 번동 일기 / 삼양동 빨랫골 / 미아동 / 쌍문동 1987 / 정릉 / 사당동 / 화곡동 / 능곡 / 도곡동 이화주택 / 필동로 5(1) / 필동로 5(2) / 수유시장 / 오렌지, 전쟁은 말이야 / 몸의 타투

 

3부 연인에 부쳐

나팔꽃 / 말갛게 / 수국 / / 비린내 / 별 세기 / 반성 / / 대나무 / 궁궁이 꽃 / 사랑 / 해바라기 / 헤어진 날 / 민들레 부부 / 상수리나무

 

4부 그들의 숨결

잠깐 / 균형 / / 풍경화 / 고개 / 베트남 여자 / 시골살이 / 우물 속에 빠진 책 / 한낮 / 선인장 / / 어쩌다 낭만 / 물수리 / 눈밭 / 독립지사 남자현 / 해피 엔딩

 

■  작품 해설경계인이 회감하는 맛과 상생 - 김응교


 

■ 저자 소개


유희주(柳熙珠)

 1963년에 태어나 서른일곱 살 시인정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3년 미국 매사추세츠로 이사한 후 2007년 평론으로 미주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았고, 2015년 소설 박하사탕을 발표하면서 소설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림도 그리고 있다. 그림과 시에서 풍기는 것이 많이 비슷하다고 느끼고 있다. 시집으로는 어둠에 젖어 썼던 떨어져 나간 것들이 나를 살핀다와 어둠과 이별 의식을 치른 엄마의 연애, 산문집으로는 마음을 치유할 수 있도록 추억을 나눈 기억이 풍기는 봄밤이 있다. 지금은 비영리단체 매사추세츠 민간 한국 문화원을 운영하며 한인 도서관, 한국 학교, 한국 문학 번역 koreanlit.com 사업을 등에 메고 있다.

 

   

■ 시인의 말

 

사람은 태어나 한 단어로 시작해서 서서히 언어의 지평을 넓혀간다. 누가 얼마나 많은 언어의 지평을 열었을까. 사유의 지평은 또 얼마나 깊이를 더했을까. 시인들은 그 언어의 지평에 있어 콤플렉스를 느끼는 자들이다. 끝없이 새로운 언어와 이미지와 메타포를 찾아 헤맨다. 에스엔에스(SNS)가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좋은 글, 좋은 시들을 서로 보내며 위로한다. 너무도 평범한 감정이 흘러넘친 그 글들을 나는 읽지 않았다. 시인에게 있어 평범한 것은 재미없으니까. 시가 사람들 속에서 걷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하다. 그들은 화려한 수사와 비문 등으로 직조된 메타포를 이해 못하므로 시인과 소통하기보다는 그들대로 소통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시가 사라진 지 오래다.

내가 사는 이곳은 거대한 수도원 같은 곳이다. 삶 자체가 수행이 아닐 수 없다. 새로움을 향해 치닫던 나는 길 위에 멈췄다. 나의 수행은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 일상의 언어로 챙겨 보는 것에서 출발했다. 자연스럽게 언어의 거품들이 사라졌다. 또한 감성의 거품도 사라졌다.

어느새 미국에서 오래 살아온 나는 섬광처럼 스치는 시적 이미지들도 매우 미국적으로 변했음을 느낀다. 감정의 표현과 전달 방법 자체도 달라졌다고 고백한다. 허락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상대의 그 어느 것에도 개입하지 않는 것이 체질화되고 있다. 그 때문일까, 내 시를 만난 사람은 작품의 표현에 갇히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시를 발견하게 되기를 바란다.

시인은 신과 사람을 이어주는 제사장이었다. 그동안 나는 나 자신을 위한 제사를 지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반성하며 친구와 이웃들의 언어로 돌아간다. 나의 이러한 시도는 자칫 위험하다. 아직 날것의 언어를 받아쓰기도 서툴고 전달하기도 서툴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이번 시집을 기꺼이 제단에 올린다.



■ 추천의 글


소란이 환하다에 이르러 유희주 시인은 오롯이 날것의 언어를 꺼내놓는다. 슴슴한 나물로도 성찬이다. 수유리에서 매사추세츠까지 처절하게 살아내고 견디며 감싸 안은 날것의 시편들을 보며 유희주 시인의 넉넉한 품을 짐작한다.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보기가 쉽다. 이 책에는 밖에서 들여다본 안과 밖의 풍경들이 유희주 시인 특유의 직설적인 방식으로 펼쳐진다. 안팎의 삶들이 씨줄과 날줄로 들고난다. 주민등록 초본의 주소를 따라 유희주 시인이 살던 동네의 무수한 이름들과 골목을 따라가 보면 지난한 삶이었지만 눈물겹던 그때의 풍경들과 생활이 살뜰히도 촘촘하다. 자연인으로서 유희주는 거침없는 사람이다. 여러 가지를 감내하면서도 늘 생기 넘치며 씩씩하다. 무슨 인연이 그런지, 오랜 인연이었으나 단 한 번도 만날 수가 없었지만 이렇게 또 한 소식을 듣는다. 유희주 시인이 천성으로 타고난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사랑과 눈물겨운 헌사가 소란처럼 환하다.

송진권(시인)

 

유희주 시인은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흙을 밟는 만큼 흙을 닮는다고 인식하고 따르려고 한다. 수십 년 노동으로 발목이 삭은 중국, 몽골, 네팔, 베트남 등의 이민자들이 살아가는 매사추세츠에서부터 대한민국의 삼양동, 미아동, 쌍문동, 정릉, 사당동, 능곡, 필동, 수유시장까지 걷고 있는 것이 그 모습이다. “여든아홉 살 우리 엄마는 물론이고 하나둘 사라지는 부지런한 어른들”()을 부르고 있는 것도 그러하다. 그리하여 앞서 달리지 못하고 그림자의 끝만 밟으며 열일곱 번의 이사를 했지만(주민등록 초본) “장래 희망이 심겨진 흙”(화곡동)을 밟았던 곳을 거쳐 크느라 소란이 환옥수수밭 안”(나무 울타리)에 들어서는 시인의 얼굴은 애틋함을 넘어 말갛고 넉넉하다. 단출하면서 발랄하고 환하면서 따스하고 그리고 낮잠에 들 만큼 편안하다.

맹문재(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 작품 해설


디아스포라 경계인(境界人) 작가의 작품에는 자신이 상실한 순간들, 지금 체험하고 있는 차별이나 모멸의 일상을 전하고 싶은 무의식이 가득하다. 게다가 모국어에서 떠나 외국어의 세계에서 모국어로 쓸 때, 되도록 쉬운 표현으로 내용을 나누고 싶은 무의식이 앞서기 마련이다. 이 지점에서 미국에서 시를 쓰고, 소설을 쓰며, 또한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 한국문학을 영어로 번역하여 알리려 애쓰는 유희주 시인의 시집을 대한다.

가장 일상적인 순간을 가장 쉬운 표현으로 담아낸 이 시집은 한국문학에서 변방으로 여겨져 왔던 영역을 확장시킨다. 유 시인은 역사적이거나 개인적인 상처를 어떻게 치료, 극복하려고 인간이 노력해왔는가에 주목한다. 행과 행 사이에, 연과 연 사이에 상실과 그리움이 상처로 남겨져 있지만, 시인은 그것을 어둡게 표현하지 않는다. 시인은 그 상처를 정면으로 직시하려 한다. 그 상처를 극복하여 상처와 대화하려는 상통하려는 노력을 시인은 보여준다.

서울중심주의, 혹은 언어중심주의 시각에서 보면, 유 시인의 시집은 아직 덜 구운 거친 막사발로 보일 수 있다. 청자나 백자나 분청사기는 아니지만 거친 막사발에도 미학이 있다. 디아스포라 작가들의 성긴 표현들은 게으름 때문이라기보다. 삶의 일상성을 날것으로 전하고 싶은 자장(磁場) 안에 스스로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 사는 자이니치[在日] 디아스포라 문학, 중국에 사는 조선족 문학, 중앙아시아에 사는 고려인, 미국에 사는 아메리칸 코리안 문학은 새로운 중심주의 문학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디아스포라 문학의 아픔과 상처를 존중한다고 문학적 장치를 게을리하는 것을 당연시할 수는 없다. 이번 시도는 극단의 평가를 받을 것이다. 일상성을 살렸다는 평가와 반대로 시적 장치가 허술하다는 평가도 있을 수 있겠다. 그 평가를 넘어서는 책무는 오로지 유 시인 자신의 몫일 것이다. 일상성을 전혀 새롭게 표현했던 시인 김수영이나, 보헤미안의 디아스포라 후예였던 카프카 문학의 탁월성을 떠올릴 수 있겠다. 세 번째 시집의 출판을 축하드리며, 유 시인의 또 다른 시도를 기대해본다.

김응교(시인 · 문학평론가, 숙명여대 교수)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나무 울타리

 

못 없이

어깨를 걸었다는 것이

오기 어린 노인처럼 짱짱하다

 

청청한 옥수수밭 안

크느라 소란이 환하다

 

버스 온다는 신호 기다리는 동안

푸른 소리를 잡고

무릎을 세운다

 

 

말갛게

 

햇빛과 그림자는 한집에 살고 있는 애물단지

누구를 불러주냐에 따라 팔자가 달라지지

이도 저도 치우치지 않으면

키가 똑같아

 

오늘은 동지

내일은 하지

다른 날들은 모두 무릇해질 만해

 

혹여 다른 힘에 끌려나가도

괜찮으려면

헹궈내는 연습 365

 

 

베트남 여자

 

베트남 여자 바니는

화장도 곱게 하고 치장도 예쁘게 하고 있지만 늘 화난 얼굴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각국의 사람들끼리

가장 쉬운 단어, 앵그리 우먼이라고 부른다

 

유니폼 갈아입는 라커룸에서 앵그리 우먼이 노래를 듣는다

나는 베트남 노래냐고 묻고

앵그리 우먼은 가톨릭 노래라고 한다

바니는 찬양을 반복적으로 틀어놓고 눈을 감고 있다

 

미지근했던 향수가 울컥 뜨겁다

여름 내내 대상포진으로 고통받던 바니가

고향을 떠나서 겪었을 하나하나의 일은 곧 나의 일

 

콧소리가 예쁘다는 칭찬 한마디에

모든 경계를 다 풀고 낭창낭창해진 바니가 라커룸에서 드린

그 기도가 무엇이든

나는 무조건 아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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