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와 꽃잎
유진택 지음|푸른사상 시선 102|128×205×8mm|116쪽|9,000원
ISBN 979-11-308-1435-3 03810 | 2019.5.30
■ 도서 소개
경물을 바라보다 하나가 되다
유진택 시인의 시집 『염소와 꽃잎』이 <푸른사상 시선 102>로 출간되었다. 경물과 친밀하고 조화로운 서정성을 띠면서 가족과 연인은 물론 자신이 살아가는 이 세계를 사랑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시인의 세계인식은 사랑의 본질을 회복하고 사랑의 의의를 인식하고 사랑의 가치를 지향하기 때문에 주목된다.
■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사랑과 흑심 사이
붉은 감잎 / 봄밤 / 나비 1 / 흰 배 / 선풍기 / 노랑부리저어새 / 나비 2 / 투계 / 외계인 아내 / 멸치 / 소문 / 군무 / 사랑과 흑심 사이 / 백일홍에서 혁명을 떠올리다 / 계급장 / 산불 / 유행
제2부 고향집은 슬프다
나비 3 / 고향집은 슬프다 / 나비 4 / 혈서 / 염소와 꽃잎 / 고백 / 폭우 / 꽃 짐 / 물푸레나무가 쓰는 편지 / 동백꽃 엽서 / 시집살이 / 단풍 / 엉겅퀴꽃 / 무꽃
제3부 붉은 오지
벌촛길 / 나비 5 / 고향 / 구제역 / 위험한 사랑 / 골똘 / 보쌈 이야기 / 홍등가 여자 / 침묵하는 자들을 위해 / 붉은 오지 / 폐공 / 효자손 / 만월 / 기계 앞의 경배 / 지게 / 노숙자
제4부 노승과 휘파람새
염탐 / 개복숭아꽃 필 때 / 노모의 평생직장 / 풀과의 열애 / 금잔화 / 성난 황소 / 막춤 / 꽃구경 / 엄마 신발 / 첫사랑 / 중매 / 탐욕 / 노승과 휘파람새 / 서어나무 숲으로 난 길 / 고로쇠나무 할머니 / 폐가 / 그리움의 길 / 봄날 잔치 / 대쪽 같은 사랑
■ 작품 해설:경물(景物)의 시학 - 맹문재
■ 저자 소개
유진택(兪鎭澤)
충북 영동군 황간면 안화리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30년 가까이 대전에 정착하였다. 1996년『문학과사회』 가을호에 시「달의 투신」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텅 빈 겨울 숲으로 갔다』『아직도 낯선 길가에 서성이다』『날다람쥐가 찾는 달빛』『환한 꽃의 상처』『달콤한 세월』『붉은 밥』이 있다. 2013년, 2016년, 2019년 대전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받았고, 2018년 대전문학관 시 확산 시민운동 작가로 선정되어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에 시화가 걸렸다. 현재 한국작가회의와 좌도시 회원이며 대전작가회의 이사를 거쳐 무천문학 회장이다. 서대전 세무서 운영지원과에서 일하고 있다.
■ 시인의 말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파울로 코엘료의 장편소설인 『연금술사』에 나오는 구절이다. 살렘의 늙은 왕이 산티아고에게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인 줄 알았지만 그 말은 사실이었다. 나도 간절히 원해 시집을 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집을 낼 때마다 나무에게 미안하다. 나무는 한 개인의 탐욕을 위해 얼마나 중노동에 시달렸는가.
종이를 대주느라 밤낮없이 고생했을 나무에게 졸지에 죄인이 되었다.
내 시집을 위해 쓰러진 나무의 제단에 바칠 흰 꽃 대신 시집을 놓고 용서를 빈다.
■ 추천의 글
꽃을 탐하지 않을 나이. 나비의 팔랑거림에 귀를 기울일 나이. 넘기고 넘긴 시간들 속에 눈에 무엇도 걸리지 않고 들어올 나이. 시인의 나이다. 이런 나이가 있어 애절함도 간절함도 질퍽함도 육화시키고 꽃이며, 나비며, 거미며, 어머니의 주름살도 온전히 본다.
나이를 그냥 먹는 것이 아니다. 오늘 자고 내일 일어나면 나이를 밥그릇 세듯이 먹으면 좋겠는데 그런 나이는 시인의 나이일 수 없다. 시인의 나이는 자연의 나이와 닮아 있다. 몸에 쌓여 생긴 나이를 벗어내고 마음에 쌓인 나이로 자연과 연애하듯 말을 건다. 이야기를 듣는다.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다. 시인의 나이가 참 곱다. 그래서 그런지 유진택 시인의 시가 사물들에게 향하는 마음이 따듯하고 순하게 읽힌다. 부럽다!
— 김희정(시인)
■ 작품 해설
유진택 시인은 경물을 바라보면서 가족과 연인은 물론 자신이 살아가는 이 세계를 사랑하고 있다. 주관적인 감정이나 관념으로 대상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경물과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사랑을 의미화하는 것이다. 경물시는 대상에 대한 묘사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영미의 이미지즘 시와 유사한 면이 있다. 작품의 자아가 중심이 되지 않고 대상 스스로 존재성을 드러낸다는 차원에서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지즘 시에서의 시적 대상은 자아의 가시적인 범주로 한정된 것으로서 단순화되고 객체화된다. 객관의 기준을 시인의 눈앞에 드러난 형상 그 자체에 두기 때문에 대상은 고유한 속성을 나타내지 못한다. 시적 대상은 시적 자아에 의해 사물화된 객체, 즉 시적 자아가 주도하는 타율적인 대상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형상 너머에 존재하는 대상의 의의를 자율적으로 환기하는 경물시와는 차이를 보인다.
경물시는 작품의 자아와 대상의 관계가 유연하고 자율적이다. 상호 독립성을 지니면서 자아가 보지 못한 대상의 의미를 수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경물의 형상 너머에 존재하는 본질을 비추어보며 유기적인 관계를 갖는다. 자아와 대상이 통합이나 융합을 추구하지 않더라도 서로 친밀하고 조화로운 서정성을 띠는 것이다. 동화나 투사를 통한 자아와 대상의 동일화를 추구하는 것과는 다르게 자아가 중심이 되지 않으면서 대상과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중략)
작품의 화자와 대상은 주체와 객체로 구분할 수 없다. 화자는 자신의 욕구를 위해 경물을 도구화하거나 목적화하지 않고 이물관물의 태도로 바라본다. 자아의 인위적인 개입 없이 경물의 실재를 인식하는 것이다. 경물은 화자가 바라보는 형상 그 너머에서 자신의 영역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그와 같은 실재 앞에서 화자는 침묵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화자의 침묵이 경물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고, 경물의 침묵이 자기 존재를 숨기는 것도 아니다. 침묵이 기의를 고착시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경물의 기의를 다양하게 인정함으로써 사랑의 의미가 확대되고 심화된다.
자본주의가 심화되는 오늘의 상황에서 경물을 통한 사랑의 변주는 큰 의미를 갖는다. 자본가는 자기 자본의 확장과 권력 유지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분업화되고 기계화되고 자동화된 노동 과정에서 노동자는 공장의 소모품으로 전락되어 개성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의 상품으로 취급받는 노동자는 자신으로부터도, 사람들로부터도, 그리고 자연으로부터도 소외되고 있다. 의식주를 해결하고 문화생활을 영위하고 세계를 바라보는 많은 정보를 소유하고 있지만 자아의 상실로 말미암아 피상적인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경물을 통해 가족애와 이성애와 사회애를 추구하는 시인의 세계인식은 주목된다. 사랑의 본질을 회복하고 사랑의 의의를 인식하고 사랑의 가치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 맹문재(문학평론가, 안양대 교수)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염소와 꽃잎
둑에 매여 있는
염소의 콧등에 꽃잎이 내려앉는다
허공 어디쯤에서 날아왔는지
꽃잎이 거뭇거뭇 시들었다
붉은 꽃이 거뭇하게 변할 때까지
세상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가
영영 시들 것 같지 않는 꽃잎에
파르르 떠는 염소의 눈꺼풀
염소도 외눈으로
시든 꽃잎을 슬쩍 보았을 것이다
침묵하는 자들을 위해
촛불을 쳐들지 못하는 너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겠다
차라리 나무에게서 배워라
꽃에게서 배워라
그들은 촛불을 쳐들지 못해도 단풍을 쳐들었고
전단을 뿌리지 못해도 꽃잎을 날렸다
사지 멀쩡한 사람들보다
침묵하는 그들에게서 배워라
그들은 꽃을 촛불처럼 켜서 세상을 밝혔고
단풍을 빨간 띠처럼 둘러 세상을 깨웠다
그들의 침묵 속엔
용암처럼 끓어 넘치는 함성이 있다
봄날 잔치
버드나무가 머리칼 풀어 강둑에 늘어지면
산비탈 앵도화도 화르르 피었지요
벌 떼들 부릉거리며 꿀샘 찾아다니면
강 언덕 산도화도 뺨 붉어졌지요
봄날이면 산골짝 따라 쑥꾹새 소리 어지럽고
벌들은 달콤하게 울었지요
온종일 풀밭 위에 벌렁 드러누워
강물 같은 구름 한 점 목메어 바라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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