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억오천만 대 일
주요섭 지음|정정호 엮음|153×224×20 mm|328쪽
26,000원|ISBN 979-11-308-1436-0 03810 | 2019.5.31
■ 도서 소개
21세기, 세계시민 주요섭 문학의 재평가를 기대하며
주요섭의 장편소설『일억오천만 대 일』의 첫 단행본이 푸른사상사에서 출간되었다. 조선 말기에서 일제 강점기 해방에 이르는 우리 최근세사의 암흑과 고난의 황폐한 시대를 다루어 역사 서지의 의미를 지닌 소설이다. 타계 77주년을 맞아 미간행되었던 그의 작품을 발굴하여 그동안 주로 단편소설에 국한되었던 주요섭에 관한 관심과 논의를 확대하고자 한다.
■ 목차
■ 책머리에
병(病)든 족속
민족(民族)의 수난(受難)
■ 작품 해설 : 조선 말 민족 수난기의 병든 인간들 이야기
■ 주요섭 연보
■ 주요섭 작품 목록
■ 저자 소개
주요섭(朱耀燮, 1902~1972)
소설가. 호는 여심(餘心). 평양 출신. 시인 주요한(朱耀翰)의 아우이다. 평양에서 성장하였다. 평양의 숭덕소학교, 중국 쑤저우 안세이중학, 상하이 후장대학 부속중학교를 거쳐 후장대학 교육학과를 졸업하였다. 미국으로 유학하여 스탠퍼드대학원에서 교육심리학을 전공했으며 중국의 베이징 푸렌대학, 경희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국제PEN 한국본부 회장을 역임. 1921년 단편소설「추운 밤」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인력거군」「사랑손님과 어머니」 등 40편 가량의 단편소설을 비롯하여「구름을 잡으려고」와「길」(1938) 등 4편의 장편소설과 2편의 중편소설,「김유신(Kim Yu Shin)」(1947과「흰 수탉의 숲(The Forest of the White Cock)」(1963) 등의 영문 소설을 남겼다.
■ 엮은이 소개
정정호(鄭正浩)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 및 같은 대학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밀워키) 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비평이론학회장, 국제비교문학회(ICLA)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대표 저서로『영미문학비평론』『비교세계문학론』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현대문학이론』『헤럴드 블룸 클래식』 등이 있다. 현재 문학비평가,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국제PEN 한국본부 번역원장.
■ 출판사 리뷰
장편소설『일억오천만 대 일』은 조선 말기부터 3·1만세운동에 이르기까지 식민지 시대 평안도 중심의 조선 인민들의 삶을 다룬 역사대하소설 제1부이다. 이 소설은 한반도 조선 최근 역사의 다양한 사건들과 장면들을 복합적으로 재현한다. 작가는 민족의 수난 시대였던 이 시기에 ‘불구자’, ‘병든 족속’과 같았던 조선인들의 삶과 그들이 겪는 사건들을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따라서 이 책은 어떤 역사, 지리서보다도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 조선 식민지 착취와 근대화의 궁핍하고 비루한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 진실에 가까운 사실주의 소설이다. 또한 당시의 시대 상황을 파노라마적이고 다큐멘터리와 같이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역사 사료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2019년, 3·1독립선언과 만세운동 그리고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이 시점에 장편소설 『일억오천만 대 일』이 어느 때보다 가치 있게 읽히기를 기대하며 저자의 자전적 요소가 깊게 배어 있는 미간행 작품인 만큼 작가 주요섭에 대한 논의도 한층 폭넓게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 책머리에 중에서
올해 2019년은 소설가 주요섭의 탄생 117주년, 타계 77주년이 되는 해이다. 주요섭은 작가 생활하는 동안 영문 중·장편소설 각 한 편을 포함하여 수십 편의 단편소설, 한 편의 중편 그리고 네 편의 장편소설을 창작했다. 그러나 그동안 국내 한국문학 학계와 문단에서 주요섭에 관한 관심과 논의는「사랑손님과 어머니」 등 주로 단편소설에 국한되었다. 주요섭의 단편소설들은 대부분 선집으로 엮여 여러 곳에서 지속적으로 출판되었다. 이에 비해 주로 신문과 잡지에 연재되었던 네 편의 장편소설 중에서는『구름을 잡으려고』(1935) 등 일부만이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편자는 그의 다른 장편소설에도 관심을 가지고 읽고자 단행본을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1950년대 말에 발표된 그의 나머지 장편소설 두 편은 단행본으로 출판되지 못하고 아직도 연재되었던 월간 문예지 『자유문학』에 파묻혀 있었다. 이에 편자는 잡지에 숨겨져 있어 알려지지 않은 장편소설들을 단행본으로 세상에 내놓아 햇빛을 보게 하고 싶었다.
비교문학에 관심을 가졌던 편자는 오래전 미국에서 영문학 공부를 할 때 문학 연구와 비평의 기초 작업으로 서지목록 작성과 정본(定本) 텍스트 편집의 중요성과 그 출간에 관한 기본 지식을 습득할 기회가 있었다. 이번에 편자는 첫 작업으로『자유문학』에 연재되었던『일억오천만 대 일』(1957~1958)을 복사하여 입력하고 각주를 달아 비록 최종적인 결정판 정본(definitive text)을 목표로 단행본으로 처음으로 내놓는다. 이 소설은 이조 말기 청일전쟁(1894~95)를 전후로 북한의 평안도 지방의 두 가족의 영고성쇠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국 현대소설을 좋아하고 작가 주요섭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과 연구자들에게 이 소설이 주요섭 문학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시작되기를 기대한다.
■ 추천사
주요섭은 진폭이 큰 작가이다. 이 ‘큰 작가’를 대표작의 울타리에서 풀어주어야 한다. 이는 문학을 다루는 이들의 책무이다. 주요섭은「사랑 손님과 어머니」라는 대표작의 울타리에 갇혀 있다. 「인력거꾼」 「살인」 등 단편도 대표작의 또 다른 울타리이다. 작가를 대표작의 울타리에서 풀어주기 위해서는‘ 전집’을 기획해야 한다. 전집은 어느 작가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의욕과 문학적 사명을 반영한다. 현실여건을 넘어서는 출판의 사명감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번에 내는 장편소설 선집은 작가 주요섭을 전체적으로 다루는 계기가 될 것이다.
‘큰 작가’는 한두 마디로 규정되기를 스스로 거부한다. 주요섭은 지극한 섬세성과 광대한 전망을 동시에 포괄하는 작가정신을 실천한 작가이다. 전체성에 대한 욕구 그 자체가 소설의 본령이다. 주요섭은 단편을 통해 인간 심성을 섬세하게 드러냈고, 『구름을 잡으려고』,『일억오천만 대 일』,『망국노 군상』,『길』 등 장편소설을 통해서는 시대의 풍정과 전망을 리얼하게 그려냈다.
이 책이 주요섭 이해와 연구의 바탕이 될 것은 물론, 작가의 소설사적 위상을 드높이는 도약대가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우한용(소설가, 서울대 명예교수)
■ 소설 속으로
“학생들, 우리 국가를 제창합시다.” 하고 교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음악 선생이 강단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풍금이 내다 놓여 있어야 할 자리에 풍금이 보이지 않았다.
“자, 시작.” 하고 교장이 말했다.
“하아님이 우우리 임군을 도우우사…….” 하고 시작하던 교장은 교단 위에 쓸어지고 말았다.
학생들의 제창도 중단되고 말았다. 어느 선생 하나 교단으로 올라가서 쓸어진 교장을 일으켜주는 이 없었다.
음악 선생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이것이 우리가 부를 수 있는 마즈막 국가였오. 우리나라는 왜놈에게 그만…….”하다가 그도 쓸어지고 말았다.
교장이 비슬비슬 몸을 일으키면서
“학생들 다 집으로 가시오.” 하고 말했다.
학생들은 와글와글 끓기 시작했다.
상급생들은 소리 내 울기 시작했으나 창덕이 또래는 곡절을 몰라서 두리번두리번하기만 했다.
고개를 억지로 꼿꼿이 세우고 두 주먹을 불끈 쥔 교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다들 집으로 가서 태극기를 감추시오. 학교 태극기는 그냥 띠어두겠오. 참아 내 손으로는…….”
체조 선생이 날쌔게 교단 위로 뛰어 올라갔다‘. 호랑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 선생이었다.
“차렷!” 하고 그는 쨍쨍 울리는 목소리로 호령하였다.
웅성웅성하면서 흩어지던 학생들은 제각기 제 위치에서 차렷자세를 취하였다.
“국기에 향하여 경롓!” 하고 체조 선생은 소리 질렀다. 국기에 향하여 경례하던 체조 선생, 교장, 선생들, 그리고 성인이 다 된 상급생들은 중간에 쓸어지고 말았다. 그들은 가슴을 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통곡했다. 슬그머니 겁이 난 창덕이와 그 또래들은 교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거리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학교 교장과 선생들과 상급생들은 통곡을 하고, 학교 개학한 지 며칠 안 되어 갑자기 방학이 되고, 태극기를 감추어야 되고, 국가를 마즈막 부르는 이런 중대한 일이 생겼건만도 거리에 부산나게 나다니는 대중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분주히 왔다 갔다 하기만 했다.
돈버리에만 눈이 벌개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하기는 나라야 망하건 흥하건 그건 왕과 대신들 노름일 따름이지, 일반 민중에게는 나라보다도 조반석죽이 조죽석미음으로 격하되지 않을가 하는 염려에 전 정신과 노력이 집중될 따름 여렴이 없었다.
一千二백만 명에 달하는 한민족은 그들이 아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동안 일본의 식민지 백성이 되고 만 것이었다.
(140~141쪽)
‘흥, 저런 데 감쳤다구 내가 못 찾을라구.’
그는 배를 뒤지 위에 대고 손을 내밀어 그 보 한구퉁이 속으로 들이밀었다.
손에 잡히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말랑말랑하지가 않았다. 딴딴한 나무때기 같은 감촉이었다.
그는 보재기를 쳐들고 들여다보았다. 달빛이 거기까지 및이지가 않아서 잘 보이지는 않으나 하여튼 떡은 아니었다. 손으로 만져보니 가느다랗고 탄탄한 대 같은 것도 잡히고 종이 같은 감촉도 느끼었다. 대같이 생각되는 물건을 집어 치어들었더니 종이가 짝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는 당황했다. 그냥 내버려두고 나갈가 보다 하는 생각이 났으나 호기심이 그것을 허락치 않았다. 그는 조심조심 그 대를 들어 올리었다. 그것은 손에 들 수 있는 자그마한 기 한 포기이었다. 얼른 달빛이 비치는 데까지 나가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것은
아!
그것은 소학교 시절에 지하실에서 그려보고는 번번히 불태워버리군 하던 태극기이었다.
그의 가슴은 활랑활랑하였다.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독립!”
“독립!”
“독립!”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다.
평양 구시가에 있는 각 급 학교 교문으로는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든 학생들이 줄지어 나오면서 만세 만세를 불렀다. 각 교회에서도 남녀 신도들이 모두 태극기를 휘둘면서 만세를 부르면서 문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골목마다 남녀 학생들이 드나들면서 집집마다에 태극기를 돌려주어 띠우게 하였다. 어떤 집에서는 九년이라는 긴 세월을 장농 밑에 숨겨 고이 간직했던 큰 태극기를 꺼내다가 문에 띠웠다.
장터에 모였던 시골 농군들도 남녀 학생에게로부터 태극기를 얻어 쥐었다.
장터도 비고, 상점도 비고, 여염집도 비고, 학교 교실도 비고, 사람이라는 사람은 모두 다 거리에 나서서 기를 휘둘으면서 만세를 불렀다.
三월 초하룻날 오후 일이었다.
하도 갑자기 사방에서 일시에 봉기했기 때문에 그 기민하기로 유명했었던 일본 경찰관들도 어리벙벙하여 멍하니 바라다보고만 있었다. 조선인 순사들은 길에서 순사 모자를 벗어 내던지고, 긴 칼을 풀어 내버리고 만세 행진에 가담하였다.
(234~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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