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사랑
강계순 지음|푸른사상 시선 97|128×205×8 mm|128쪽|9,000원
ISBN 979-11-308-1405-6 03810 | 2019.1.30
■ 도서 소개
상앗빛 언어를 만나는 만선의 꿈을 노래한 시집
강계순 시인의 시집 『사막의 사랑』이 <푸른사상 시선 97>로 출간되었다. 문단에 나온 지 만 60년이 되는 시인이 시 쓰는 일로 살아온 자신의 삶을 정리하면서 펴낸 시집이다. 『사막의 사랑』에는 일상적이고 진부한 생활을 견디며 온갖 존재에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에 사랑과 추억과 의미를 부여한 시인의 순간들이 담겨 있다.
■ 시인 소개
강계순(姜桂淳)
경남 김해군 진영에서 태어나 경남여자고등학교와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서 수학했다. 1959년 『사상계』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강계순 시집』 『천상의 활』 『흔들리는 겨울』 『빈 꿈 하나』 『동반』 『익명의 편지』 『짧은 광채』 『지상의 한사나흘』(시선집) 『우매한 사랑』, 수필집으로 『딸이여, 떠날 준비를』 『쓸쓸한 땅에서 그대와 함께』 『그래도 꿈꿀 수밖에는』 등이 있다. 여성문학인협회 부회장, 한국가톨릭문인회 부회장, 성균문학회 부회장, 한국사이버대학 이사 등을 역임했다. 동서문학상, 월탄문학상, 성균문학상, 한국문학상을 수상했다.
■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배웅
배웅 / 안부 / 그 아이 / 탱자 울타리 / 습지에서 / 봄비 2 / 텃밭 / 화가 이중섭 1 / 화가 이중섭 2 / 화가 이중섭 3
제2부 연가곡 변주
자클린의 눈물 / 물망초 / 솔베이의 노래 / 로렐라이 / 브람스의 눈물 / 밤 인사 / 슬픈 아다지오 / 작별 / 샤콘
제3부 사막의 사랑
편백나무 숲 / 사막의 사랑 / 새벽 미사 / 봉숭아꽃 / 선인장 / 귀거래(歸去來) / 처서 / 향기 / 겨울 등반 2
제4부 지워진 이름
지워진 이름 1 / 지워진 이름 2 / 지워진 이름 3 / 지워진 이름 4 / 지워진 이름 5 / 지워진 이름 6 / 지워진 이름 7 / 지워진 이름 8 / 지워진 이름 9
제5부 소나기
소나기 / 부산 1 / 부산 2 / 부산 3 / 부산 4 / 부산 5 / 부산 6 / 봄비 1 / 작은 성당 / 유년의 집 / 출항 / 고래
제6부 눈 내리는 밤에는
등불 / 노을 / 모과주 / 신기루 1 / 신기루 2 / 눈 내리는 밤에는 / 수목원에서 / 학림다방 / 가을 산
제7부 슬픔의 세포
외삼촌 / 열녀비 / 아버지 / 어머니의 김치 / 달팽이 / 낚시 / 사막 / 게임 / 밧줄 / 슬픔의 세포 / 시에게
■ 시인의 산문 : 시와 함께 걸어온 길
■ 시인의 말
어느 아침, 문득 내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래서 15년 이상 컴퓨터 안에서 잠자고 있던 「소나기」 이후 시편들을 찾아내어 많은 부분을 손질했습니다. 이 책의 1·2·3·4부에 수록된 근년에 쓰여진 원고와는 거의 20년 가까운 세월의 터울이 지지만, 한 권의 시집으로 묶어 정리했습니다.
한때 ‘시 쓰는 일이 내 생존을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고 고백했던 날들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면서, 보잘것없는 이 시집이 내가 살아온 긴 세월 동안 크든 작든 알게 모르게 나와 인연을 나누었던 많은 분들에게 마지막 인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 시인의 산문
젊은 시절, 시만이 가장 가치 있고 가장 높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믿었던 날, 시인이라는 이름은 내게 지상의 어떤 이름보다 눈부신 이름이었고 가장 그립고 소중하고 유일한 이름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서툴게라도 시밖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으며 시 밖에는 볼 줄 모르는 색맹의 시력을 타고난 듯하다. 또한 시 이외의 것으로는 내 존재를 확인하는 방법을 모른다.
시는 그 전제적 힘으로 나의 시력과 감성과 생명력을 독점해왔고, 언제나 내게 시와의 뜨거운 밀회를 꿈꾸게 했다.
각박한 생활 속에서도 시는 때때로 내게 숨 쉬는 법을 가르쳐주었고 순간순간 자유의 공간을 제공해주기도 했다.
떠돌이 같은 마음의 병을 위로해주는 치유의 손이기도 했고 자칫 무너질 것 같은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든든한 바위가 되어주기도 했다.
세속적인 욕심이나 허영을 맑게 씻어주는 청정한 공기 같은 것이기도 했으며 고통의 신비를 깨닫게 해주는 열렬한 신앙 같은 것이기도 했다.
(중략)
세상과의 불화가 그 숙명인 시인이라는 자리는 벅차고 고통스럽긴 하지만, 그러나 세상에 시 쓰는 일 말고 또 어떤 근사한 일이 있다고 해도 나는 아마도 시를 생각하는 시간만큼 정직하게 고통과 행복을 누리는 시간을 가질 수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가시 면류관이 그 영광이며 절망이 그 양식인 시인이라는 자리는 내가 평생을 익숙하게 지내온 가장 친근하고 소중한 나의 일이며 결국 나의 중심이며 내가 짊어지고 온 십자가이다.
이것밖에는 나를 설명할 길이 없으며 나의 삶을 증거할 표적이 없으므로, 비록 초라하고 부끄럽지만 내 존재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시 쓰는 일을 드러낼 수밖에는 없다.
■ 시집 속으로
사막의 사랑
― 요한복음
그대 옷자락에는 언제나 모래 냄새가 난다
메마른 바람에 묻어 온 흙먼지 냄새가 난다
칼칼하게 갈라진 쉰 목소리로
애간장 타듯 부르는 그대 목소리에는
슬픔인 듯 안타까움인 듯 자주
피 냄새가 섞여 있다
갈라진 뒤꿈치와 허어옇게 바랜 무릎 다 드러내고
머리 둘 곳 없이 휘청휘청 걸어오는 그대 발걸음에는 언제나
굳은살처럼 박인 피로가 배어 있다
어디에도 머물 수 없이 걷고 또 걸어야 하는 끝없는 길
고달프고 허기진 그대의 사랑에는 멈출 수 없는 탄식의 눈물이
타는 듯 아픈 갈증이 뜨거운 인두처럼 지지지지 연기 냄새를 내고 있다
지도의 표면을 몇 번이나 바꾸는 거친 바람을 맞고도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사랑이여, 그대가 손짓하고 있는 까마득히 먼 곳을 향해
나도 모래바람이 되어 벗은 발로 걷고 또 걷지만
너무 아득하여 언제나 허방으로 빠지고 마는 내 발걸음
어디쯤 가면 나도 그대의 발 앞에 엎드려
눈물로 그 발 닦아드릴 수 있을지
시에게
바람난 사내 하나 끝내 못 잊고 밤마다 잠 설치는
초췌한 계집같이 빈 가슴 굽은 뼈
거뭇거뭇 검버섯 창궐한 손끝마다 힘 빠지고
성가시다 성가시다 푸념하면서
그래도 놓지 못해 오늘도 애간장 태우고
밤이나 낮이나 싸우고 다치면서 깊이 든 정 끊지 못하는
나의 밥이며 고통이며 지겨움인
시, 그대 냉정한 몸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나네,
날마다 등을 보이고 돌아서는 배반의
지지듯 타는 불가마에 살을 태우고
아주 그대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몇 번이나
단봇짐 싸서 사립문 밀고 나서다가 그래도
나 죽기 전까지 조강지처로
질기게 남아 있고 싶은 열절한 소망
허리 굽히고 굽히면서 매달리는
비천한 나날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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