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조론
신웅순 지음|푸른사상 학술총서 45|153×224×16 mm|272쪽
22,000원|979-11-308-1394-3 93800 | 2018.12.17
■ 도서 소개
문학과 음악, 두 장르에 걸쳐 있는 시조의 정체성
신웅순 교수의 『한국현대시조론』이 <푸른사상 학술총서 45>로 출간되었다. 문학이자 음악이며, 불가분의 관계인 시조문학과 시조음악을 함께 연구한 이 책은 노래로 불려졌던 시조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 기반 위에서 현대시조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한 시도이다.
■ 저자 소개
신웅순(申雄淳)
충남 서천에서 출생. 대전고를 졸업하고 공주교대·숭전대를 거쳐 명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초등·중등 교사, 중부대학교 교수를 거쳐 현 중부대학교 명예교수.
저서로 『한국시조창작원리론』, 『시조는 역사를 말한다』, ?시조로 보는 우리 문화』, ?시조로 찾아가는 문화유산』 등 22권, 시조집 『누군가를 사랑하면 일생 섬이 된다』 등 16권, 그 외 평론집, 동화집, 수필집 등 10권의 창작집이 있다.
■ 목차
■ 책머리에
제1부 현대시조의 정체성
시조 명칭론
1. 음악상으로서의 명칭
2. 문학상으로서의 명칭
시조 분류론:음악
1. 들어가며
2. 음악적 분류
3. 마무리
시조 분류론:문학
1. 들어가며
2. 기존의 논의
3. 문학적 분류
4. 마무리
현대시조의 음악성 고찰
1. 서론
2. 가곡 4장과 시조 종장 첫 음보
3. 시조 음보와 시조창의 각
4. 현대시조의 음악성 검토
5. 결론
현대시조의 시조 정체성 문제
1. 서론
2. 시조창과 현대시조
3. 시조와 연작 시조
4. 결론
음악·문학으로서의 시조, 그 치유 가능성에 대한 일고
시조는 시조다워야 한다
시조 정체성 소고(小考)
현시대의 시조 아이덴티티 ― 윤재근, 홍성란 님의 「왜 시조인가」를 읽고
시조 형식에 관한 소고(小考)
1. 들어가며
2. 장
3. 구
4. 소절
5. 나오며
「혈죽가」 소고(小考)
1. 서론
2. 「혈죽가」와 고시조, 현대시조와의 접점
3. 결론
사이버 문학에 있어서 현대시조의 가능성을 위하여
1. 들어가는 말
2. 전자 텍스트로서의 시조문학
3. 사이버 공간과 현대시조
4. 사이버 공간에서의 현대시조 창작의 가능성
5. 마무리
제2부 시조의 폭넓은 사유
3장 형식과 폭넓은 사유
시조 비평상에 대하여
시조 부흥론의 득과 실을 생각하며
한글 서예로 시조 한 수를
뿌리의 고독
시조인가 시인가―국정 국어 교과서의 예에서
■ 참고문헌
■ 찾아보기
■ 출판사 리뷰
음악과 문학이었던 시조가 다른 길을 걸어온 지 100여 년이나 되었다. 그로 인해 지금의 시조는 문학적인, 특히 창작적인 측면에서 정체성이 많이도 훼손되었다. ?한국현대시조론?에서는 현대시조의 정체성의 문제를 제기하고 현대시조가 시조의 정체성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가를 점검해보고자 하는 데에 연구의 목적을 두고 있다. 저자는 시조의 정체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생각할 뿐만 아니라 인문학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달라져감에 따라 현대시조의 영역 또한 시대의 흐름에 맞게 확장하기 위한 시도를 한다.
책은 총 2부로 나뉘어 살펴보면 1부에서는 주로 ‘현대시조의 정체성’에 대한 논문들을 실었다. 그동안 많은 학자들이 언급했던 것들이나 문학 쪽에서의 연구가 대부분이었으나 저자는 여기에 시조음악, 가곡·시조창 쪽에서의 필자의 생각을 덧붙였다. 2부에서는 ‘시조의 폭넓은 사유’로 시조 비평의 필요성과 시조 부흥론의 득과 실, 시와 시조와의 관계 그리고 한글 서예로 시조 한 수 쓰기 등 현대시조의 폭을 넓히기 위한 저자의 생각들이 담겨 있다.
■ 책머리 중에서
필자가 20여 년을 생각해왔던 분야가 시조의 정체성 문제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시조음악에 대한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던 것이 가곡과 시조창이었다. 시조를 문학의 시선으로만 보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시조문학과 시조음악이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것이 시조음악과 시조문학을 함께 연구해야 하는 이유이다.
음악과 문학을 함께 연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문학과 음악 간의 충돌 현상과 일관성에서 문제가 생기게 된다. 시조문학의 한 분야만이라도 제대로 연구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누군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위안을 하기도 했다.
이 책은 그 결과물 중의 일부이다. (중략)
■ 책 속으로
시조라는 명칭은 18세기 후반 이후부터 음악상의 명칭으로 불리다가 1920년대 시조 부흥 운동 이후 다른 문학적 시형과 구분하기 위해 음악상의 명칭을 차용, 지금의 시의 형태인 문학상의 명칭으로 고정되어 불리고 있다. 그러나 1920년대 이전에도 시조가 음악상의 명칭으로만불리지도 않았던 기록이 있다. 석북과 동시대의 인물이기도 했던 채제공(1720~1799)의 『번암집』은 시조가 문학상의 명칭으로도 불리고 있었음을 시사해줄 수 있는 기록이어서 이에 대한 심도 있는 고구가 필요하다.
지금의 시조 명칭은 언급한 바와 같이 18세기 후반 시조창이 생겨나면서부터였다. 원래 시조는 음악적인 명칭으로 쓰여져왔으나 1920년대 시조 부흥 운동 이후부터는 같은 명칭을 사용하면서 하나는 음악장르로 다른 하나는 문학 장르로 쓰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시조 명칭은 음악상으로는 ‘시조창’으로 문학상으로는 ‘시조’로 사용되고 있다.
(25~27쪽)
본 논의는 1920~1930년대 이후 부르는 시조에서 읽는 시조로의 전환, 독립된 시조에서 연작 시조로의 전환에 따른 시조의 정체성에 지금도 논란의 여지를 남겨두었던 문제들이다.
전자는 오늘날에도 시조의 과거가 창의 흐름이었다는 관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전제하에 짓는 시조, 읽는 시조를 강조한 나머지 과거의 시조와의 화해를 고려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문제 제기를 했다. 후자는 여러 수가 서로 의존하면서 전개, 통일되도록 짓자는 연작 시조의 작법이 각 수가 독립된 상태로 지었던 시조의 전통적 작시법과는 어긋난다는 점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이는 고시조·개화기 시조와 1920~1930년 이후의 현대시조의 정체성 비교로 귀결되는 문제이며 시조 전통의 계승과 단절의 문제이기도 하다.
필자는 ‘시조창의 연행 유무’와 ‘3장 6구 12음보’의 시조 형식에 원칙을 두고 ‘시조창과 시조’의 관계를 다루었고 ‘시조와 연작 시조’의 관계를 다루었다.
(106~107쪽)
자세히 살펴보면 시와 시조를 구분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시조를 시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시조도 정형시이기 때문에 시이기는 하다. 시의 특징인 운율을 설명하기 위해서, 운율을 설명하기에 가장 알맞은 고시조를 끌어들인 것이다. 고시조가 시로 둔갑되어 있다. 이로 인해 고시조는 시가 되었다.
무엇을 시사하는가. 대부분 사람들은 시조를 시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글쓴이도 별다른 생각 없이 그렇게 썼을 것이다. 이는 심각한 문제이다. 학생들은 이 고시조를 시조라 하지 않고 시라고 생각할 것이 아닌가.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이제부터는 고시조를 시라고 해야 논리에 맞다.
시조는 우리 역사이며 정신이다. 우리 선조들이 우리 정신으로 쓴 우리의 시조이다. 이를 시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현대시밖에 없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 우리 역사이고 우리 정신인 시조를 현대시로 가르치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252~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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