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8 간행도서

우한용, <아무도, 그가 살아 돌아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by 푸른사상 2018. 12. 11.




아무도, 그가 살아 돌아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우한용 지음푸른사상 소설선 22146×210×18 mm320

14,500ISBN 979-11-308-1391-2 03810 | 2018.12.10


  

■ 도서 소개

 

소설의 경계를 넓혀가는 지적 모험의 서사

 

우한용 작가의 소설집 아무도, 그가 살아 돌아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푸른사상 소설선 22>로 출간되었다. 저자는 하나의 장르가 아닌 장르 해체를 거듭하면서 소설의 경계를 넓혀가고자 한다. 아무도, 그가 살아 돌아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에서는 그러한 지적 모험 가운데 자기초월을 도모하는 치열한 싸움의 서사가 펼쳐진다. 

  


■ 목차

 

책머리에 : 소설가는 독자를 어떻게 고려하는가

 

돌아오지 못하는 탕아

목욕하는 여자

청동의 그늘

차디찬 꿈

아무도, 그가 살아 돌아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아베크 르 땅

도라산역 부역장

쥐는 오지 않았다

뼈 피리

 

좌담 : 작가를 위한 타작마당


  

■ 저자 소개

 

우한용

소설가. 월간문학고사목지대로 등단한 이래, 단편집 불바람, 귀무덤, 양들은 걸어서 하늘로 간다, 멜랑꼴리아, 초연기-파초의 사랑, 호텔 몽골리아, 붉은 열매, 중편집 도도니의 참나무』 『사랑의 고고학, 장편소설 생명의 노래 1,2』 『시칠리아의 도마뱀등을, 시집 청명시집, 낙타의 길, 검은 소를 출간하였다.



■ 출판사 리뷰

 

작가는 소설작업을 통해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한 솔로몬의 금언에 대해 전복을 시도한다. 틀을 정해놓고 소재만 달리해서 풀어내는 진부한 소설을 거부하면서, 소설의 경계를 넓혀가고자 한다.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장르론에 해박한 지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작가는 문학작품, 그림, 노래 등 문학의 인접 예술영역을 넘나들면서 문화에 대한 총체적 전망을 소설에 이끌어들이기 위해 혼신을 다한다. 일리야 레핀의 같은 제목의 그림이 소재가 되는가 하면(아무도, 그가 살아 돌아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소설이 환기하는 정서와 구성의 형식이 세계적 명성을 획득한 샹송과 절묘하게 맞물리는 작품(아베크 르 땅)을 만나면 문학의 영토가 인접예술과 밀착되어 있다는 실감이 우련한 광휘로 떠오른다.

작가는 문화뿐만 아니라 현실에 대한 역사적 의미포착에 뛰어난 감각을 보인다. 도라산역 부역장에서는 한국의 현실과 남북문제, 나아가 국제관계에서 한국의 위상 등을 허구서사로 엮어내는 상상력의 확산을 확인하게 된다. 또한 작가의 여행체험을 소설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유다른 역량을 보여주기도 한다.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허구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하기도 하고, 우크라이나의 근대역사와 언어정체성을 문제로 제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현실과 연관된 의미의 연결고리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작가는 성실하고 부지런하다. 역사 문화 현장을 찾아가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그들의 언어를 채집하며, 그들 삶을 추체험하여 살아보는 소설가의 자세는 다른 작가들의 롤모델이 될 만큼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 책머리 중에서

 

소설을 읽는 독자는 작가와 더불어 비평적 공감을 이루어내는데, 그게 독자의 윤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독자가 작품을 읽는 행위는 문학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의미를 생산하는 문화 생산의 과정이기 때문이지요. 작품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독자의 독서력입니다. 독자의 수준이 높아져야 그 나라 문학의 수준이 높아진다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중략)

작가와 독자는 가까우면서도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그런 관계 아닌가 싶습니다. 작가와 독자 양편에 모두 비평의식이 필요한 까닭이 이것입니다. 문화는 복선적이고 다면적인 가닥이 다층적으로 흘러가는 물결이라고 할까요. 다양함이 모든 가치에 우선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만, 다양성과 역동성이 상실된 문화를 새롭게 하고 생생하게 하는 것은 작가와 독자가 공유하는 비평의식 혹은 문화의식이 아닐까, 그게 나의 조심스런 제안입니다. (중략)

내가 쓰는 소설이 소설의 종 다양성을 확대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한다면, 그래서, 이런 소설도 있네, 하면서 몇몇이라도 눈여겨봐준다면 소설 쓸 이유가 있는 거지요. 그게 내가 독자를 고려하는 방법입니다.



■ 책 속으로 

 

네가 생애를 끝내기 전에 네 기억에 담아두었던 일들을 마무리하게 도와주는 게 애비로서 할 일이라 생각했다. 너의 어머니 소청은 뒷전이었다. 너의 옷가지며 책은 물론, 너의 체취가 밴 물건들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애비로서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나 같다. 아마 내가 네 소지품들을 챙겨가지고 돌아갔을 때, 너는 이미 네 기억을 음미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네가 죽어서, 네 형이 장례를 치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건 중요하지 않다.

(돌아오지 못하는 탕아 17)

 

현장은 그림 한 폭이 무슨 사주팔자의 끄나풀처럼 자신을 따라다닌다는 생각을 하면서, 일리야 레핀의 <답신> 그림에 대한 탐구라는 걸 해나갔다. 현장에게는 연구 아닌 것이 없고 눈만 가서 머물면 모든 게 탐구 대상으로 승화를 거듭해갔다. 현장은 진국이라는 세상의 평판과는 달리, 자기 먹을 것 별로 챙기지 못하는 빙충이라고 생각하곤 하였다. 그래서 용맹하고 잔혹한 코자크들 앞에서는 기가 팍 죽어 늘어지곤 했다.

(차디찬 꿈114)

 

경찰이 다녀간 다음 날 가장이 사라졌다. 그리고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가장이 돌아오리라고는 식구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 한 번 붙들려 가면 약식 재판을 끝내고 사형을 당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사형을 면하고 유형을 가면 유형지에서 병으로 죽었다는 통지서 한 장으로 돌아오는 이들이 마을마다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런데 가장이 돌아왔다. 그가 돌아오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식구들의 놀라움과 당혹감은 반갑다는 인사조차 건넬 수 없게, 식구들의 입을 얼어붙게 했다. 눈들만 불안하게 굴렸다. 그런 식구들을 쳐다보는 가장의 눈 또한 불안이 가득했다.

(아무도, 그가 살아 돌아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192~19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