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소설)
하늘 아래 첫 서점
이덕화 지음|푸른사상 소설선 20|146×210×17 mm|288쪽
15,500원|ISBN 979-11-308-1368-4 03810 | 2018.9.20
■ 도서 소개
제각각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돌봄과 돌아봄의 문학
이덕화 교수의 소설집 『하늘 아래 첫 서점』이 <푸른사상 소설선 20>으로 출간되었다. 김유정의 「산골 나그네」에 대한 오마주와도 같은 표제작 「하늘 아래 첫 서점」을 비롯하여 여덟 편의 단편이 문학과 사회, 인간을 향한 저자의 끊임없는 사유와 탐색의 시선을 담아내고 있다.
■ 목차
■ 책머리에
돈가스와 요구르트
한 잔의 에스프레소
그미의 책
잔혹한 낙관
하늘 아래 첫 서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원을 달리다
갈색의 세월
■ 작품 해설:돌봄과 돌아봄의 시학 _ 안미영
■ 저자 소개
이덕화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김남천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여성문학학회, 한국문학연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박경리, 최명희 두 여성적 글쓰기』 『여성문학에 나타난 근대체험과 타자의식』 『한말숙 작품에 나타난 타자윤리학』 『은밀한 테러』 『블랙레인』 『흔들리며 피는 꽃』, 공저로 『페미니즘과 소설비평』 근대편과 현대편,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다』가 있다. 2002년 혼불학술상을, 2011년 남촌문학상, 2016년 노근리문학상을 받았다. 현재 작가교수회 회장, 평택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로 있다.
■ 출판사 리뷰
소설가이자 국문학자인 이덕화 교수의 신작 소설집 『하늘 아래 첫 서점』은 김유정, 김남천, 박경리 등 연구와 창작을 겸해 온 저자의 문학 여정을 보여주는 작품집인 듯하다. 김유정의 「산골 나그네」에 대한 오마주와도 같은 「하늘 아래 첫 서점」, 아예 소설가 김유정을 등장인물로 내세워 몽골의 평원을 내달리게 한 「초원을 달리다」, 그리고 박경리의 ?토지? 중 유인실과 오가타, 그들의 아이 쇼지의 뒷 이야기를 이어 쓴 「갈색의 세월」 등에서는 우리 근현대문학의 대가들에 대한 저자의 경의와 자유로운 상상력을 느낄 수 있다. 「잔혹한 낙관」에서는 늦깍이로 국문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여성 연구자가 불온서적 문제에 얽혀 유치장 신세를 져야 하는 과거의 불합리한 사회현실과 세월호 사건이 오버랩되며 우리 사회를 연민과 공감의 눈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보여준다.
■ 책머리 중에서
무더위 때문에 많은 것을 생각할 기회를 가졌다. 보통 더위를 타지 않는 편인데도 이번 여름의 열대야는 새벽까지 후끈거려 잠을 설친 날이 많았다. 움직이면 땀이 솟으니 될 수 있으면 외출을 삼갔다. 그러다 보니 책을 많이 읽게 되고 사색으로 이어졌다. 우선 근본적인 내 삶에 대한 성찰에서부터 글쓰기에 대한 혹은 민족의 운명, 국가의 운명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띄엄띄엄 사색만 이어질 뿐 결론은 있을 리 없다. 살아 있는 한 무언가를 해야 하고 그 무언가가 나에게는 글쓰기이다. 자신에 혹은 삶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나 사색을 통하여 독자에게 울림을 줘야 한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있었지만 글쓰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독자가 내 소설을 읽음으로써 힘이 나고 새로운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내 삶의 영역이 일천하다 보니 현장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또 함께하는 소설 속의 인물들을 제대로 읽었는지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어떤 작가는 독자들이 읽지도 않는 소설을 자족하기 위해 쓰고 싶지 않다며 소설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필자는 일생 한 편의 작품이라도 마음에 드는 작품을 창작하기 위해 일생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속적으로 쓸 생각이다. 한 편의 작품을 쓰기 위해 많은 사색을 하고 인간을, 현 사회 현상을, 국가와 민족을 제대로 읽으려고 노력하려고 한다.
■ 해설 중에서
이 작품집에는 근대 작가 ‘김유정’을 소재로 한 작품이 2편이나 있다. 작가가 한국 근대 작가 김유정의 삶과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주목을 요한다. 작가가 즐겨 읽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의 창작 세계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늘 아래 첫 서점」이 김유정의 작품을 중심 소재로 삼고 있다면, 「초원을 달리다」는 김유정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두 작품을 통해 작가가 김유정과 그의 소설에서 특별히 수용해내려 한 미학적 가치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하늘 아래 첫 서점」은 지리산 자락을 배경으로 한다. 찬경은 지리산 자락의 하늘 아래 첫 동네에서 서점을 운영한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퇴직 후 고향인 이곳으로 내려왔던 것이다. 서점은 산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읽을거리와 커피를 제공하는 쉼터이다. 그는 김유정의 「산골 나그네」를 읽던 차, 산골에 사는 여인을 맞이한다. 중년의 여인은 서점에 딸려 있는 방을 보며 하룻밤 묵게 해주기를 간청한다. (중략)
김유정이 주목한 것이 ‘가난’이 아니라 ‘사랑’이었듯이, 이 작품도 ‘윤리’가 아닌‘ 사랑’에 주목한다. 나그네가 찬경의 통장을 훔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남자에 대한 사랑에 있었다면, 주인공 찬경이 두 남녀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돌봄’이 전제되어 있다. 그것은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거나,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이성간의 사랑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내가 나 아닌 대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는 것이다. 작중 찬경의 고백처럼 “마음을 정하지 말고 마음이 흐르는 방향으로 행동”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자연의 속성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가 견지하는 ‘돌봄’의 미덕은 인위적인 힘이 더해지지 않고 저절로 생겨나 스스로 이루어지는 존재로서 자연에 기원을 두고 있다. (중략)
이 작품집에서 돌봄은 단순히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는 데 그치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두루 살피는 돌아봄의 영역으로 전이되고 확산된다. ‘돌봄’이 이른바 ‘돌아봄’으로 우리 사회와 현실의 곳곳으로 확대된다. 특히 이 세상의 그늘진 곳에서 신음하는 어린 생명을 돌아보며 그들의 삶을 읽어내고 그들이 현실에 건재할 수 있는 삶의 문법을 모색한다. 「한 잔의 에스프레소」와 「요구르트와 돈까스」는 우리 사회에서 자존감 없는 청년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음식을 제목으로 삼고 있는데, 불우하고 미숙한 청춘들은 에스프레소, 요구르트와 돈까스를 탐하며 내면의 공허를 달랜다.
― 안미영(문학평론가·건국대학교 글로벌캠퍼스 교수)
■ 책 속으로
재형이는 먼저 배식을 받고 요구르트를 핥듯이 빨고 있는 성묵이를 돌아보았다. 가슴속에 아픔이 스쳐 지나갔다. 성묵이의 폭력 아닌 폭력은 계속되었고, 성묵이를 통해 인내한다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겼다. 어떤 환경에서도 긍정적 가치를 발견해내려는 것이 인간이라는 아버지의 말을 묵상하며, 성묵이가 자신에게 주는 긍정적 가치를 찾으려고 하는 기간이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가장 인생에서 괴로운 시기였다는 사실이었고, 될 수 있으면 성묵이를 피하고 싶었다. (「돈가스와 요구르트」, 27~28쪽)
“아줌마, 대한민국 정부가 언제 국민들에게 이해받고 일한답니까. 국가가 죄인이라 하면 죄인이지. 아버지가 납북된 것 때문에 저는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났어요. 그건 이해가 돼요? 스스로가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버린 인간들이 얼마나 되는 줄 알아요? 아줌마, 유치장에서 며칠 고생하는 것은 코미디 수준이에요.”
“아니, 어떻게 경찰이 그런 말을…….”
“아줌마, 여기 있어봐요. 억울한 사람 천지예요. 아무도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생각 안 해요. 아줌마 생각에 제 아버지 납북된 게 제 죄냐고요. 아버지가 유명한 학자였다는 것도 나에게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그것 때문에 납북됐고, 그로 인해 엄마가 죽고 내가 평생 죄인으로 살고 있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에요. 저는 경찰서에 근무하면서, 근무는 아니고 여기는 내 집과 마찬가지예요. 참 아버지 덕도 봤네요. 아버지 제자가 서장으로 있을 때 제가 불쌍해 보였는지, 여기 사환으로 일하라고 해서 들어온 게 벌써 이십 년이 됐어요. 그리고 하도 궂은일을 다 맡아서 하다 보니 정식 경찰로도 만들어줬어요. 정식 경찰관이 되어도 계속 저 혼자 당직하며 여기서 살거든요. 여기 와서 저를 이해하게 됐고요. 이제 억울한 것도 아무것도 없어요. 더도 말고 쫓겨다니지 말고 밥이나 얻어먹고 살다 죽는 소원밖에 없어요. 이렇게 사는 것도 대한민국에 태어난 죄 때문이에요. 아줌마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죄예요. 아줌마는 이 나라에서 보지 말라는 책을 샀으니, 분명죄를 지은 거라고요.”(「잔혹한 낙관」, 122~123쪽)
“여기 좀 있어도 되죠?”
여자는 찬경의 뒤를 따라와 책상 가까이 놓인 의자에 앉더니 서점을 눈으로 훑으며 말했다.
“네, 그럼요. 근데 어떻게 이 시간에……”.
차림을 보니 여행 중인 것 같지도 않고, 등산복 차림도 아니다.
“저 윗동네 살아요. 여기 이런 서점이 있다니 기적 같아요. 하늘 아래 첫 서점이라, 새재마을에 있는 서점이라는 뜻이네요”.
“네. 그렇게 인터넷에 올렸더니 금방 새재마을에 있는 서점임을 알더라고요. 하기야 지리산 이쪽을 다녀간 사람은 모를 리 없죠”.
50대 후반 정도의 나이인데도 청바지에 엉덩이까지 오는 검은 티셔츠 위에 빨간 점퍼를 깜찍하게 입었다. 머리는 생머리다. 딱히 미인이라고 할 수 없지만 모든 것이 나무랄 데 없는 균형적인 몸매와 얼굴 그리고 무엇보다도 발랄함이 주는 매력 있는 여인이다. (「하늘 아래 첫 서점」, 1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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