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8 간행도서

권지영, <누군가 두고 간 슬픔>

by 푸른사상 2018. 9. 28.



누군가 두고 간 슬픔 

 

권지영 지음푸른시인선 014130×215×8 mm1209,000

ISBN 979-11-308-1372-1 03810 | 2018.9.29



■ 도서 소개


사랑의 시학을 노래하다

 

권지영 시인의 신작 시집 누군가 두고 간 슬픔<푸른시인선 14>로 출간되었다. 시인 자신이 지나온 시공간과 그때그때 만났던 빛나는 순간에 대한 소중한 기억의 도록이자,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진정성 있는 경험적 고백록인 이 시집을 통해 사랑의 마음을 서정시로 노래한 시인의 시학을 느낄 수 있다.  


 

■ 시인 소개


권지영

경희대 국제한국언어문화학과에서 공부하고 저서로는 붉은 재즈가 퍼지는 시간』 『꿈꾸는 독서논술』 『재주 많은 내 친구등이 있다.

 

■ 목차


시인의 말

 

1

고요 서사 / 거미줄 / 나를 깨우는 단어 / 거미 / 걸어가는 사람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물가에 누워 / 엄마의 고추장 / 평화 양과점 / 모나미 볼펜 / / 콩고 코발트 / 돌아간다는 것 / 가벼운 눈송이 / 가시연꽃 / 호랑이 그리기 / 가을밤

 

2

일식 / 겨울의 미학 / 그리움 하나 / 국수 건조하는 집 / 신발 정리 / 더딘 당신 / 보도블록의 울음 / 봄이 오는 마을 / 빌더무트의 진실 / 산다는 건 / 작은 행복 / 선운사에서의 한낮 / 바닷가 지붕 낮은 집 / 슬픔이 내리는 지하철 / 당신의 아픈 말이 강물 되어 흐르고 / 생존 수영법 / 그해 식목일

 

3

어쩌면 우리 아무 사이 아닐지라도 / 아득 / 저녁놀 / 일곱 무지개 / 터키의 뱀 의사 / 호수의 시선 / 황금 소나무 / 가을 단풍 / / 시의 속삭임 / 꽃잎 진 자리 / 소소한 밤공기 / 바틀비에게 햇빛을 / 감정의 질감 / 나무와 나 / 파란 달이 뜨는 날 / 사이프러스의 문장

 

4

관계 / 이따금 / 사랑의 본질 / 슬픔은 그대 가슴에 / 낯선 세계 / 바닥의 숨 / 등 푸른 초원 / 어른이 된다는 것 / 그대 사랑하는 일이 / 등불의 노래 / 조금씩 / / 하루의 종착역 / 구름시 오후 / 산딸기밭 메주 / 초코와 바닐라 / 명랑 생각

 

작품 해설근원적 사랑으로 가 닿는 시쓰기의 궁극 유성호


 

■ 시인의 말 중에서 

 

슬픔을 퍼 올릴 수 없지만

조금씩 덜어냈으면 해요.

깊고 어두운 곳에서 꺼내어

푸른 오늘마주한 풍경 너머로

 

어디선가 문득 그리움을 만난다면

당신이었으면 좋겠어요.


 

■ 작품 세계 

 

권지영이 펴내는 이번 신작 시집은, 시인 자신이 지나온 시공간과 그때그때 만났던 빛나는 순간에 대한 소중한 기억의 도록이자,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진정성 있는 경험적 고백록이기도 하다. 권지영의 시는 서정시의 창작 동기인 자기 고백과 탐구의 과정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실례에 해당하는데, 어쩌면 그녀는 이러한 가없는 기억들을 수습하고 또 고백을 이어가는 것이 시인 됨의 일차적 이유가 되기라도 한다는 듯이 서정적 회감(回感)과 토로를 지속적으로 이어간다. 또 하나 권지영 시편에서 간취할 수 있는 음역(音域)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수평적 타자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관심이다. 사랑의 마음은 권지영의 양도할 수 없는 시작의 원천이요 궁극의 목표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권지영은 자체를 사유하는 메타적 인식과 실천을 줄곧 보여준다. 이처럼 권지영의 스스럼없는 고백,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지극한 마음, ‘를 향한 간단없는 성찰의 의지는 이번 시집을 빛나게 하는 성과의 원질(原質)로 다가온다. (중략)

권지영은 자신의 구체적 관찰과 사유 그리고 밀도 있는 언어를 통해 이러한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서정시의 이치를 최적화하여 구현해간다. 그 형상은 도드라지게 주류적인 질서가 아니라, 항상 외곽이나 주변을 서성이는 시선에 의해 발견되는 역리(逆理)의 것일 때가 많다. (중략)

눈부신 어떤 한순간에 일종의 상상적인 항구성을 부여하여 그것을 호환 불가능한 기억으로 치환하는 것은 서정시가 오래도록 수행해온 작법 가운데 하나이다. 이는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이 고유하게 경험한 시간으로 귀환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외따로 떨어진 사물과 사물 사이에 유추적 관련성이 놓이는 것도 이러한 기억의 매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권지영이 노래하는 사랑의 감각은 이러한 기억의 원리에 의해 발원하는데, 여기서 사랑이란 자신이 한 시절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그러나 지금은 함께하지 못하는 대상에 대한 한없는 기억에 바탕을 둔 연애시적 접근을 함의한다. 이는 단연 권지영 시의 확연한 지향이자 그 기저(基底)에 흐르는 강렬한 힘이 아닐 수 없다. 그 점에서 사랑의 시학은 이번 시집의 미학적 근간이요 수원(水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략)

지나간 시간 속의 사건들을 통해 시간적 과정을 담아내는 서사와는 달리, ‘서정은 현재의 정서적 집중을 통해 대상에 대한 순간적 반응을 언표한다. 그래서 대상의 속성을 보여줄 때에도 서정시는 대상이 그러한 속성을 가지게 된 과정이 아니라, 구체적 상황에서의 정서적 반응을 통해 그 대상의 속성을 증언하게 마련이다. 그 순간성을 충만한 현재형이라 이르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일 것인데, 권지영은 그러한 충만한 현재형을 통해 타자들에 대한 정성스런 연대감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시인의 따뜻하고 글썽이는 시선을 잘 보여주는 실례들일 것이다. (중략)

우리는 그녀의 시를 통해 서정시가 인간 존재를 합리적으로만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인 현존을 통해서도 파악할 수 있는 양식임을 알아가게 된다. 그 점에서 권지영의 언어는, 서정시가 끊임없이 우리의 현재적 감각을 탈환해가는 예술임을 확인해주는 더없이 확연한 물증이 된다. 이제 이러한 세계가 더욱 심화하고 확장하여, ‘시인 권지영의 기억과 언어가 많은 독자들의 마음속에 머물게 되기를, 마음 깊이 소망해본다.

유성호, 작품 해설 중에서

 


■ 추천의 글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의 시선은 늘 낮고 외롭고 슬픈 것들을 향하기 때문이다. 그의 순정한 마음결은 또 우리를 무너지게 한다. 오리의 물갈퀴 질로 호수가 와지직 갈라지며 비명을 지르고 있다거나 새벽에 내린 눈을 쉬이 밟지 못하겠다는 시인의 마음 앞에서 어찌 우리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오봉옥(시인, 서울디지털대 교수)

 

삶과 풍경을 대하는 권지영 시인의 눈 속에는 사랑의 문장이 흘러넘친다. 그녀에게 그늘뜨거운 볕에 드리운 그대의 손바닥이고, ‘이름죽은 자들에게 주는 꽃 한 송이’(일곱 무지개)이다. 때때로 이 사랑의 문장들 안으로 사랑하는 대상과의 거리감과 그로 인한 생의 아득함이 밀물져오기도 하지만, 시인은 마른 잉크의 속삭임이 담긴 우체통’(더딘 당신)에서도, ‘빗방울이 마른기침을 하는 보도블록’(보도블록의 울음)에서도 마침내 사랑의 기미를 발견해내고 만다. 낮고 소소하고 둥근 것들을 향하는 시인의 시선 안에 이처럼 사랑의 문장이 가득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시인의 현주소가 구름시 노을도 태평국이고 시인이 머무는 시간이 구름시 뭉게분 둥둥초/그대를 기다리기 좋은/오후 530’(구름시 오후)이기 때문이리라.

이선이(시인, 경희대 교수)


 

■ 시집 속으로 

 

더딘 당신

 

당신을 기다리는 동안

모든 이야기가 당신이 됩니다.

차창 밖으로 달리는 자동차가 되었다가

마른 잉크의 속삭임이 담긴 우체통이 됩니다.

서서히 나타나는 별의 안부에 가벼워지는 나는

당신과의 기억 속을 날아가는 나비가 됩니다.

나의 안테나는 아스팔트에 눅눅한 전파를 보내고

느리게 가는 시계와 마주 앉아 벽이 됩니다.

하나, 둘 어스름 속에서 피어나는 불빛이 당신이 되고

탁자 위에 피어나는 커피 향이 됩니다.

다가오는 발자국이 당신이기를

카페 문에 달린 맘 급한 손잡이가 됩니다.

기다림의 시간만큼 더디게 머물러주기를

오래되고 낡은 의자가 됩니다.

 

 

슬픔이 내리는 지하철

 

운 좋게 급행열차를 타고

일곱 정거장을 건너뛰어

도시의 경계를 넘는다.

조금 더 사람들이 타고

조금 더 사람들이 내리는 동안

전철 안은 오후의 활력을 찾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하고

지하철 밖 세상을 순식간에 적셔주었다.

 

빗방울의 왈츠 앞에서 잔뜩 움츠리고

춤을 추듯 뛰어가는 사람들.

차가워진 낯선 역사에는

물이 고인 대지 위로

누군가 두고 간 슬픔이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조금씩 헐거워진 채로

빗방울의 소란에 기대어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 더 맑아지고 있었다.

 

 

시의 속삭임

 

첫 줄을 기다린다는 이

단 한 줄도 쓰지 않네

문장이 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떠나간 사람이 다시 오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더 아득한 거리

사랑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사랑을 기다리는 것처럼

단정 지을 수 없는 시간

 

시가 말을 걸어오기까지

숱한 그리움을 밀치고

보얗게 다가설 수는 없는 것인가

그대를 생각함에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인 것처럼

시를 쓰기까지가

이토록 흐린 것인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오늘 첫 줄을 기다리는 이

다가올 문장을 위해 기도하듯 읊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

시가 내게 다가와 속삭일 때까지

아프도록 절망하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