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태 시집
빗방울 화석
128×205×8 mm|128쪽|값 8,800원|979-11-308-1244-1 03810|2017.12.10
■ 도서 소개
원종태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빗방울 화석』이 <푸른사상 시선 84>로 출간되었다. 우포늪을 비롯한 자연의 이치, 이중섭으로 표상되는 예술, 근현대사의 아픔과 세월호에 이르는 시대의식까지, 시인은 오늘날 시가 담당해야 할 역할에 대해 담담하게 묻고 있다.
■ 시인 소개
원종태
경남 거제도 산골에서 태어나 유소년기를 보냈다.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적만 둔 채 주로 시와 사회정치적인 일에 매달렸다. 1994년 『지평의 문학』에 「향우회」 외 7편을 게재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여러 신문사 기자로 전전하다가 고향에서 작은 신문사를 경영했다. 2015년 첫 시집 『풀꽃경배』를 냈다. 한국작가회의, 경남작가회의 회원이다. 열등감이 많고 어눌하며, 가족과 사회와 역사에 늘 빚지고 살고 있다. 모든 존재가 스스로 빛나는 평등 세상을 꿈꾸며,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섬 / 절세의 고수 / 어쩔 수 없는 일 / 맑은 날 / 흰 노루귀 / 화엄사 홍매 / 아무것도 아닌 것 / 꽃 핀 자리 / 바람꽃 / 수국 빈집 / 꽃에 팔려 길을 잃다 / 천남성 / 그 사람 / 빗방울 화석 / 거제 노자산 / 받침 없는 것들
제2부
통영, 이중섭 / 서귀포, 이중섭 / 우포늪 편지 / 우포늪 / 화양연화 / 동해남부선 / 위성 / 피지 않은 그 꽃 / 골짜기에서 놀다 / 소사나무 / 의령 세곡리 은행나무 할매 / 나무 나무 / 모래실 마을 / 단풍 / 바람 / 연어 우표가 붙은 엽서
제3부
신과 가장 가까워질 때 / 한 천년이라는 말 / 지리산 / 시월 / 어둑 / 11월 / 지리산 대원사 / 긴 밤 / 눈 내리는 날 / 잘 가라, 시여 / 외눈박이 새 / 호래기 / 등이 뜨겁다 / 겨울 / 경상도 사내 / 구조라 해수욕장
제4부
소년이 핀다 /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 6월을 수배합니다 / 올라간다 / 포로수용소에서 보내는 편지 / 어느 날 병원을 나오며 / 이빨이 흔들린다 /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 달빛 걷기 / 숨 / 다시는 바다에 가지 못하리 / 금요일에 돌아오렴 / 밥 한 그릇 / 겨울혁명 / 설악산을 그냥 내버려두라
작품 해설:부재(不在)하는 것의 문서고 - 박형준
■ 작품 세계
시는 개인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이다. 동시에, 시는 사물과 세계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이해를 통해, 인간 삶의 본질과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하는 사유의 형식이기도 하다. 원종태 시인의 『빗방울 화석』은 명멸하는 것들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하여, 인간이 감히 궁구하기 어려운 우주의 진리와 이치를 되묻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그는 사물과 인간의 현존 가능성을 ‘부재(不在)의 감각’을 통해 정초하고자 한다. 시인의 이러한 시적 특징을 ’소멸의 미학’이라 부를 수 있는데, 여기에는 사물과 대상을 바라보는 시인 특유의 따뜻한 시선이 배어 있다. 풀, 꽃, 나무, 새, 들, 산, 바다, 하늘 등과 같이, 그가 ‘경배’하고 있는 자연의 양태는 모두 우리의 기억/자리에서 사라져버렸거나, 사라지고 있는 것들이다.
원종태의 시 세계는 ‘부재의 존재론’이라 명명할 만하다. 허면, 시인이 소멸하는 것(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두워진다는 것, 혹은 사라진다는 것이야말로-“깊어진다는 것은 색도 소리도 없어진다는 것/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어둑」)-인간 삶의 유한성과 자연의 무한성을 비교 체험하고 성찰할 수 있는 사유의 계기이기 때문이다.
시인의 새 작품집 『빗방울 화석』에서도, 인간 존재의 한계와 현존 가능성에 대한 물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시적 탐구 행위는 자아와 세계, 혹은 차안과 피안의 경계를 허물며, 서정시가 추구하는 미적 합일의 경지를 구현한다. 시인은 과장되지 않은 시선과 위트 넘치는 표현으로, 우주의 질서와 존재의 근원을 응시하고 있다. 이러한 시적 경향성은, 첫 시집 『풀꽃 경배』를 가로질러 두 번째 시집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원종태 시인은 자연을 관조(觀照)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그리고 속세의 잡다한 사연을 추억하거나 통속화하지도 않는다. 그의 시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처로운 탄식에 그치지 않고, 자연과 인간의 시간을 함께 아우르고자 한다.
이런 관점과 태도는 ‘이중섭 연작’(「서귀포, 이중섭」 「통영, 이중섭」)에서 더 잘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시는 인간의 예술이 우주의 섭리와 이치를 사유함으로써 “영원”(「서귀포, 이중섭」)의 길에 이르는 과정을 탐색한다. 인간의 유한성과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무한한 현존 가능성을 개방하는 것이야말로 예술(詩)의 본질이라는 것. 시인은 그것을 제주와 통영에서 만난 ‘이중섭’에서 발견했다. “찰나는 영원의 다른 이름”이고 “빛나는 별이 죽은 별의 숨결이듯 젊은 화가여/너에게 닿기 위해서는 폭발하듯 폭삭 늙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시적 자의식은, 결국 죽음(마모와 소멸)의 유한성을 선구함으로써 인간 삶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힐 수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원종태 시인은 서정시가 과연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심각하게 질문하고 있다.
첫 시집 『풀꽃 경배』나 두 번째 시집의 1, 2, 3부와는 전혀 다른 작품이 『빗방울 화석』의 4부에서 펼쳐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것은 가히 충격적이라 할 만하다.
4부에 수록된 시의 핵심 소재는 1980년 5월의 광주, 반파시스트 저항 ‘백장미’ 활동, 1987년 6월 항쟁, 한국 전쟁과 포로수용소, 세월호 사건(「어느 날 병원을 나오며」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숨」 「다시는 바다에 가지 못하리」 「금요일엔 돌아오렴」 「밥 한 그릇」 「겨울혁명」), 고공농성 투쟁 노동자(「올라간다」), 복지관 부당해고 노동 투쟁(「이빨이 흔들린다」), 촛불혁명(「겨울혁명」), 설악산 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 반대(「설악산을 그냥 내버려두라」) 등이다. 다소 급작스럽게 느껴지는 이러한 시적 변화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그가 시인으로서, 언론인으로서, 그리고 우리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서 혹독한 자기 비판(“너무나 유유하고 자적했다”)에 이르게 된 계기는 따로 있다. 어쩌면, 누구나 두려워서 피하고 싶은, 바로 그 사건.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가 그것이다.
4부의 많은 작품들은 직간접으로 세월호 사건을 다루고 있다. 시인은 “한동안 시를 못 썼”다며, “다시 시를 쓸 수 있을까요/다시 세상은 피어날 수 있을까요”(「미안해요 미안합니다」)라고 말한다. 너무나도 참담하고 참혹한 대형 참사 앞에, 어떤 말도 어떤 수사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에 처한 것이다. “세상의 모든 시인은/다시는 서정시를 쓰지 못”(「다시는 바다에 가지 못하리」)할 것이라는 인식은 철저한 자기 부정이다. 1~3부와 달리 더 이상 인간 삶의 본질과 우주의 이치를 노래할 수 없게 된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빗방울 화석』의 4부는 자연이나 인간 존재론이 아닌 또 다른 ‘부재(不在)’에 대한 문서고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이 ‘없다’는 처절한 현실 감각이다. 더불어, “금요일이 영영 없는 엄마 아빠”(「금요일엔 돌아오렴」)의 상실감에 대한 안타까운 연민이다. 시인은 비록 사물과 자연의 소멸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노래하지 못하지만, 더욱더 어둡고 아픈 사회적 심연 속으로 걸어들어가 부재의 망각과 싸우고 있는 셈이다.
저 깊고 차가운 맹골수도 속으로 사라져간 아이들을 잊지 않고 기록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겨운 일이다. 그것은 어쩌면 지금까지의 시적 성취를 모두 포기하는 무모한 결정일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은 “수학여행 가서 돌아오지 못한 딸아이를 위해/등신불이 되어가는 아버지”(「밥 한 그릇」)를 보며, 차마 혼자 자연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한다(「다시는 바다에 가지 못하리」). 시인이 자연이 아닌 현실 세계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당신을 생각하며 걷는 사람들이 있다”(「달빛 걷기」)는 것, 이는 인간의 부재를 현존화하는 생(生)의 쟁투인 동시에, 서로의 아픔을 기억하고 보듬는 연대의 말 건넴이다. 그대를 잊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기억하겠다는 것. 그것만이 우리 모두를 구원할 수 있는 동시대의 시적 과제임을 원종태 시인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박형준(문학평론가·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해설 중에서
■ 시인의 말
단단한 눈물
돌 속에서 수억 년 동안 내리는 빗방울
오직 흰 귀로 말하는 것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세계
무의미한 시공간과 덧없음
자웅동주로 함께 있어도 외롭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더 많은 일을 하고
생존의 최전선이자 죽음의 덫이기도 한 뿔
삶과 세계의 양가성, 역설에 대하여
두 번째 시집 또한 미안하고 부끄럽다
■ 추천의 글
원종태 시인은 바다와 섬과 산과 길 위에서 하늘의 별을 바라보기도 하지만 지상의 자작나무와 소사나무와 은행나무와 느티나무와 떡갈나무와 고사목 등을 품는다. 연꽃과 대나무꽃과 때죽나무꽃과 홍매와 수국 등도 품는다. 어린 새와 어린 짐승과 노랑나비와 백로와 꽃게와 우포늪과 지리산과 거제 노자산과 경상도 사내와 동무들과 이중섭과 노동자 등도 품는다. 시인이 나무와 꽃과 생명체를 품는 것은 최루탄과 화염병과 포로수용소와 세월호와 부당해고 등의 높은 벽을 넘는 촛불을 노래하기 위해서이다. 시인은 “해가 지고 별이 뜨고 꽃 피고 지고 운행이라는”(「위성」) 자연의 질서와 역동성과 생명력을 광장의 촛불에서 발견하고 기꺼이 따르고 있다. 시인의 그 지향은 정결하고 질박하고 간절해서 “수천 개의 흰 눈을 뜨고/수만 개의 흰 귀를 세우고/흰 모가지를 뽑아들”(「아무것도 아닌 것」) 정도로 희기만 하다. “푸른 멍이 붉은 멍으로 바”(「시월」)뀔 정도로 붉기만 하다.
― 맹문재(시인·안양대 교수)
그는 참 맑고 투명한 사람이다. 투명하게 앉아서 보고 엎드려서 보고 서서 보고 무릎 꿇고 보고 눈 감고도 본다. 어디 애인을 숨겨놓기라도 한 것처럼 가만히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보려고 짐승처럼 할딱거리며 달려가기도 하고, 별들이 총회를 여는 계곡과 능선에서 꽃에 팔려 길을 잃기도 한다. 그러고선 한마디도 쓰지 못한 백지를 두려워하며, 장맛비가 깨어진 장독을 맹렬하게 낭독하듯 투명하게 시를 읊는다. 피지 않은 꽃 피어날 그 꽃을 기다리면서 자신은 그저 아무것도 아니어서 좋다고 노래하는 시인. 빗방울 화석처럼 그의 투명한 노래도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시간을 살게 될 것이다. 그게 투명인간의 운명이니까.
― 하아무(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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