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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시선

정선호 시집, <번함 공원에서 점을 보다>

by 푸른사상 2017. 11. 2.

 

정선호 시집

번함 공원에서 점을 보다

 

128×205×9 mm1448,800979-11-308-1224-3 038102017.10.31

 

 

도서 소개

 

정선호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번함 공원에서 점을 보다<푸른사상 시선 82>로 출간되었다. 과거에는 스페인과 미국의 식민지였고 오늘날엔 다국적 거대 기업이 들어서 있는 낯선 이국에서 시인은 주체적인 인간성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는다. 칠 년 세월에 반은 필리핀 사람이 되었다는 그는 오늘도 우기와 건기가 교차하고 다양한 인종들이 섞여 사는 그 땅에서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시인 소개

 

정선호

충남 서천에서 태어나 금오공과대학교 생산기계공학과와 창원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01경남신문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내 몸속의 지구』 『세온도를 그리다가 있다.

 

 

차례

 

시인의 말

 

1

바다 위에서의 저녁 식사 / 영화관 앞 흔들의자 / 타잔은 살아 있다 / 바다 정류장 / 올랑가포 운동장 트랙을 달리다 / 우기를 지내는 일 / 노래하는 두 성자에 대한 경의 / 다국적 커피점이 있는 휴일의 저녁 / 공동묘지를 지나다 / 패스트푸드점에서 시를 쓰다 / ()을 걸어놓다 / 닭싸움을 읽다 / 골프라는 운동 / 춘향휴게소에서 머물다 / 수녀들의 만찬

 

2

우기에 가을을 맞다 / 번함 공원에서 점을 보다 / 얼굴을 만지다 / 막걸리를 마시다 / 파라바얀 공원의 저녁 / 고국에서 온 제비 / 푸른빛을 마시다 / 카와그 밀림 속을 달리다 / 내 몸속의 우물 / 이별 / 봄꽃의 감각 / 주인 없는 카페에서 놀다 / 입국자를 기다리다 / 고구마 남자 / 광장에서의 글쓰기

 

3

모롱비치를 기억하는 태양 / 나무들 사이에서 놀다 / 낯선 골목을 서성이다 / 적도에서의 성탄절 축제 / 챔피언 / 자전거 타는 공원의 휴일 / 해변을 달리다 / 억새풀의 기억 / 적도의 섬나라에서 제주도로 보내는 통신 / 손목시계를 고치다 / 불륜에 대한 변명 / 호수에서 전화를 걸다 / 건기(乾期)를 말하다 / 응답하라 2016

 

4

요절한 가수의 노래를 부르다 / Without you / 그 시내버스의 야간 운행 / 풍선 / 세상에 이런 일이 / 어머니의 신발 / 난을 치다 / 봄은 네 갈래다 / 초봄, 천주산을 오르며 / 바다 묘지 / 쉰 즈음에 / 폐선 / 벚꽃 핀 거리 / 한여름에 겨울을 노래하다 / ()시인의 선인장

 

작품 해설필리핀의 시학 - 맹문재

 

작품 세계

 

정선호는 한국 시문학사에서 필리핀을 선구적으로 노래한 시인으로 평가될 것이다. 시인은 필리핀의 역사와 현재의 경제, 사회, 정치, 문화 등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부각시켰다. 단순히 작품의 제재로 삼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체험을 통해 상황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필리핀의 전반을 폭넓고도 깊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필리핀의 사람들 얼굴은 여러 종류라고 밝히고 있듯이 필리핀은 혼혈 민족이다. “원주민부터 말레이시아에서 온 말레이족, 그들과/스페인, 미국인, 인도인, 중국인, 일본인과의 혼혈인이/필리핀 사회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집안의 형제끼리도 피부색과 얼굴이 다른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필리핀인은 그걸 따지거나 화젯거리로 만들지 않는다.

화자는 필리핀 수비크시 아이얀몰 안에있는 다국적 커피전문점에 갔다가 자본주의를 실감한다. “많은 다국적 기업들은 엄청난 자본을 발판으로/세계의 곳곳에 공장과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에 따라 문제점이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 공장과 상점은 제 나라의 자영업자를 퇴출하고 많은 이들을 다국적 기업의 노동자로 만들, “가격을 올려 사람들 사이에 위화감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작품의 화자가 살아가고 있는 수비크시역시 다국적 기업이 많은 자유무역 도시라서/외국 기업의 현지인 노동자와 외국인이 많이 살고 있다. 그리하여 그곳에서 젊은 현지인 여자와 외국 중년 남자가 만나고/상점 밖의 택시들은 계속 그들을 태우고 가곤한다.

자본주의의 강압에 적도 지방에서 우기를 지낸다는 것은/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항상 젖어 있을 수밖에 없다. “마음속엔 빗물 가득해 거기서 허우적대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세계화의 심화로 인해 겪을 수밖에 없다. 자본과 노동력의 이동이 증대되지만 자본의 이동이 용이한 데다가 위력이 강해 경쟁력이 약한 산업은 지배받는다. 따라서 그 산업에 몸담고 있는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노동을 강요받을 뿐만 아니라 일자리마저 불안한 처지에 놓인다.

따라서 자본주의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전략이 필요한데, 작품의 화자가 야자수 한 그루 옮겨와 키우는 것이 그 모습이다. 자본주의가 연장 근무를 지시하고 작업량을 채우기를 요구하는 행동에 비해 화자가 야자수를 키우는 것은 주체적인 행동이다. 단기적으로는 자본주의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화자는 궁극적으로 나무는 자라 내 정수리에 뿌리를 내릴 것을 믿는다. 그리하여 열매 맺자 빗물을 정제해 열매에 넣어준다. 화자의 이와 같은 행동은 단순히 자연에 귀의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마음속에 야자수 한 그루 옮겨와 키우는 것은 자신의 뿌리를 내리는 행동을 상징한다. 자본주의의 강요에 의해 상실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주체성을 되살리려는 것이다.

정선호 시인은 “2차 대전 때 일본군과 미군이/교전 중에 방어벽으로도 사용했으며/지금은 술 취한 남자들의 방뇨막이 되기도하는 바탄시의 골목들을 걸으며 필리핀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자본주의가 횡행하는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이국의 낯선 골목을 서성이며 나는/세계의 모든 골목은 안녕한지 문득 궁금”(낯선 골목을 서성이다)해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적도 지방엔 12월에도 햇볕이 강렬했지만/거리엔 성탄절 트리가 세워지고 전등에 점등되고/성탄절 노래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필리핀 사람들과 함께한다. “눈 내리는 성탄절을 상상하며/집집마다 가족이 모여 음식을 만들고 파티를”(적도에서의 성탄절 축제) 열며 함께 노래하는 것이다. 문화의 다양성을 수용하면서도 주체성을 추구하는 필리핀 사람들의 개방적인 태도를 한국의 상황과 비교하며 주목하는 것이다.

필리핀은 민중들의 항쟁으로 정권 교체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문제를 개선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두 엘리트 정치의 한계, 군부의 갈등, 빈곤, 종교적 대립 등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필리핀은 1907년에 근대식 선거를 실시한 정치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민주화된 정권이 분열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강고한 통합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필리핀들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보여준 것이다. 필리핀 사람들은 다국적 기업의 침투가 국가를 퇴조시키는 것이 불가피하지만 국민들이 국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오랜 역사를 통해 자각하고 있다. 그리하여 점점 심화되는 세계 자본주의 시대에 맞서 개방적이면서도 주체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맹문재(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해설 중에서

 

 

시인의 말

 

밥벌이 때문에 칠 년 동안 머무는 필리핀에서

내 피부는 검어지고 체질도 많이 바뀌었다

고국에서 오십 년을 지내면서 만들어진

몸의 체질은 점차 열대지방화되었다

식사는 한국 식단으로 했으나 간식과 과일은

열대지방의 것으로 먹고 마셨다

 

고국과 필리핀 사람들의 생활은 너무 달랐다

필리핀에선 일 년에 두세 차례 벼농사를 짓고

많은 과일나무 덕분에 굶는 이가 거의 없다

일 년 내내 더운 날씨라 두꺼운 옷이 필요 없어

옷값이 적게 들고 얼어 죽는 이 없다

 

먹고사는 걱정이 적어 아이를 많이 낳았으며

아이들은 학교에서 늦게까지 공부를 하지 않았고

심하게 경쟁도 하지 않으며 과외 활동을 많이 했다

많은 사람들은 기능직이나 서비스 분야에서 일해

소득이 적었으나 소수의 자본가들은 재산이 많다

 

사회에 만연된 부조리와 정부 정책의 부실로

사회보장제도가 적어 많은 사람들이 어렵게 지냈다

건강보험제도가 부실해 사람들의 병원비 부담이 커

평균 수명이 한국보다 십 년 정도 짧았다

 

몸 한쪽은 한국인, 다른 한쪽은 필리핀인인 내가

필리핀인과 부대끼며 한 시대를 살았다

 

 

추천의 글

 

그렇다. ‘카와그 밀림을 달리는 일이나 올랑가포 운동장을 뛰는 일이나 바기오시 만손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는 일이나 혹은 수비크시 아이얀몰 안의 다국적 커피 전문점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일이나 번함 공원호숫가에서 늙은 여자에게 점을 보는 일이나 바탄시 바닷가노천카페에서 수녀들이 저녁을 먹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나 더러는 바탄시의 골목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이나, 어느 날 날아온 한 통의 전자 메일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한 시인이 아직 고독하게 살아 있다는, 그래서 여전히 시를 쓰고 있다는 구체적인 표징들이다. 얼마나 다행한가.

오인태(시인)

 

시간의 문을 열어 10여 년 비행을 한 시인(詩人)이 있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른 공간에 살고 있다. 늘 마음에 담고 살지만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비움의 공간으로 남았다. 그렇다고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그리워만 하면서 살 수는 없는 일이다. 그곳에도 시인의 눈길을 원하는 생()들이 파닥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낯선 공간에 사는 사람들이나, 떠나오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공간이나, 돌이켜보면 하나의 시간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의 세 번째 시집 시편들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누구나 살기 위해 공간을 떠나게 되면 생을 담보로 시간을 쓸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할지라도 시인이 놓을 수 없는 것이, 비에 젖은 사람들이다. 정선호 시인은 또 다른 공간에서 그걸 품고 있었다.

김희정(시인·대전작가회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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