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는 책을 만들었고, 책은 ‘세월호’를 기록하고 기억했다.
책을 탄압한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정권의 발목을 잡았다. 출판사 문학동네는 2014년 10월 소설가와 교수 등 12명이 세월호 참사에 관해 쓴 글을 모은 <눈먼 자들의 국가>를 출간했다가 ‘좌편향’ 출판사로 낙인 찍혀, 세종도서(문화부 우수도서) 선정에서 불이익을 당했다. 세월호가 기울어지기 시작해 침몰 때까지 101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방대한 자료로 되살려낸 당시의 상황은 <세월호, 그날의 기록>(진실의 힘)에 담겨 진실을 찾는 이들이 두고두고 들춰보는 책으로 남았다.
인터넷서점 예스24에서 12일 집계한 결과를 보면, 2014년부터 지금까지 나온 세월호 관련 책들 가운데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이 지은 <금요일엔 돌아오렴>(창비)이 독자들의 선택을 가장 많이 받았다. 두번째로 많이 팔린 책은 <눈먼 자들의 국가>였다. 지난해 8월 출간된 김탁환 소설가의 <거짓말이다>(북스피어)가 세번째였다. <세월호, 그날의 기록>과 34명의 시인들이 단원고 아이들의 입을 빌려 쓴 <엄마. 나야>(난다)가 뒤를 이었다. 최지혜 예스24 사회정치 엠디(MD)는 “올해는 특히 세월호 인양이 본격화된 3월부터 세월호 관련 도서의 판매량이 늘어 지난 1, 2월보다 3, 4월 판매량이 77.3% 증가했다”고 말했다.
세월호 3주기를 맞아 나온 관련 도서들은 더 다양해졌다. 학자, 시인, 소설가, 사진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세월호를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펴낸 책 10여권이 최근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학문으로 해명하다 학술적으로 세월호 참사를 분석한 책들 가운데 정신분석학자 백상현이 쓴 <속지 않는 자들이 방황한다: 세월호에 대한 철학의 헌정>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슬픔이 어떻게 공동체를 각성시키고 혁명을 일으키는 강력한 정동이 됐는지 분석한다. 유가족·시민들은 슬픔을 끝내고 길들이려는 정부의 작업에도 슬퍼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들의 상실을 봉합할 언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부의 세월호 침몰 원인과 대통령의 7시간 의혹에 대한 해명에도 속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신 박정희와 박근혜, 그리고 김기춘이라는 ‘단 하나의 아버지'를 거부하고, ‘새로운 다수의 아버지들'을 찾아 나섰다. 국가 권력은 이들에게 추방을 명했고, 이들은 방황해야 했다. 라캉의 명제대로 “속지 않는 자들이 방황한다.”
그러나 방향 없는 방황이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라는, 어딘가에 상실된 진리와 정의가 존재할 것이라는 확신이 이들을 인도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 가다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세월호의 ‘유령'은 “죽음이 만들어낸 텅 빈 허무의 공동을 새로운 삶의 가능성과 정의 실현으로 대체해달라”며 이들을 새로운 세계의 시작, ‘혁명’으로 이끌었다.
사회과학자들도 세월호 참사 연구 결과물을 내놨다.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교수 6명이 2015년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논문을 보완해 낸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에서 이재열 사회학과 교수는 ‘시스템 이론’의 관점으로 참사를 분석한다. 이 교수는 조직학습이론에선 실패로부터 배우기 위해서는 시스템 자체에 의문을 던지고 이를 고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 정부는 다양한 재난과 사고에도 시스템을 지탱하는 암묵적인 가정과 목표는 그대로 둔 채 그 안에서 ‘노력하겠다’며 채찍질만 더해왔다. 이 때문에 문제 해결 방법은 번번이 희생양 찾기로 귀결돼, 말단 업무 담당자를 처벌하고 끝나는 ‘꼬리 자르기'가 반복됐다. 이 교수는 실패에서 배우려면 먼저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진상규명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와 집권여당의 조직적인 방해로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충분한 진상규명을 하지 못했다.
잊지 않고 기억하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기록하는 작업도 이어졌다. <잊지 않을게 절대로 잊지 않을게>는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와 4.16연대의 기획으로 정원선, 배영란 작가가 희생자 초상 화가, 팽목항 자원봉사자,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국회의원 등 시민 10명을 인터뷰한 책이다. 직장인 최강현씨는 세월호에서 희생된 단원고 학생 모두의 초상화를 그렸다. 아마추어 화가인 그가 희생자 학생들의 생일에 맞춰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한 지 어느덧 2년이 흘렀다. 초상화 작업이 끝난 뒤엔, 지금은 곁에 없는 아이를 넣은 가족 그림을 그려주며 작업 영역을 넓혀왔다. 최씨는 “제 그림은 박카스 정도 의미밖에 없다. 희생자 부모님들에게 잠깐 통하는 진통제 정도”라고 몸을 낮췄다.
<잊지 않고 있어요, 그날의 약속: 세월호를 기억하는 대구 사람들>은 세월호참사대구시민대책위원회 기획으로 전교조 대구지부의 한유미 활동가가 대구 지역 시민을 중심으로 28명을 인터뷰한 것을 담았다. 세월호 계기 수업을 했다가 대구시교육청으로부터 경고 처분을 받은 전교조 교사,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든 고등학생들, 지하철역 앞에서 매일 세월호 손팻말을 들고 출근길을 지키는 부부 등 세월호를 함께 기억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의 이야기를 실었다.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재난참사기억프로젝트팀은 과거 7개의 대형참사를 다시 꺼내 들었다. 7명의 작가들은 유가족들을 만나고 자료를 뒤져 1970년 남영호 침몰사고부터 1999년 씨랜드 화재참사,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2011년 춘천봉사활동 참사, 2013년 태안해병대캠프 참사와 여수산단 대림산업 폭발참사, 2014년 장성요양병원 화재참사 등을 돌아봤다. <재난을 묻다: 반복된 참사 꺼내온 기억, 대한민국 재난연대기>에서 작가들은 “기억과 기록이 가능할 때만, 그래서 진실이 드러날 때만 합당한 치유와 보상, 유사 사건의 재발방지, 용서와 화해를 통한 공동체의 회복이 가능하다고 믿는다”고 썼다.
소설과 시로 읽다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 4·5월호는 커버스토리에서 ‘플래시 픽션’이란 독특한 형식을 시도했다. 2014년 4월 16일을 오전 9시부터 자정까지 3시간씩 나눠 최은영, 김혜진, 백수린, 이혁진, 유재영 작가가 각각 짧은 이야기를 만들었다. 세월호 승객들이 구조됐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하는 대학 시간강사, 수업시간에 세월호 희생자를 위해 기도하다가 우는 여학생들을 보며 자신은 잠시도 추념하지 않은 것을 부끄러워하는 대학생 등 “세월호 사건과 관련 없어 보이는 인물들의 삶에 사건이 어떻게 틈입하는지 다섯 개의 시선으로 에둘러 재구성”했다.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소속 시인 61명이 쓴 세월호 3주기 추모 시집 <꽃으로 돌아오라>, 교육문예창작회 소속의 전·현직 교사 26명의 시를 담은 <세월호는 아직도 항해 중이다>도 출간됐다. <꽃으로 돌아오라>에서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 시인들은 마음을 모아 책머리에 시를 한 편 실었다.
“가만히 있지 마라/ 사월 꽃들아 눈 부릅떠라/ 명찰을 떼지 않은 꽃아, 나비야/ 광장에 오라/ 이제 부활하라/ 꽃으로 돌아오라”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90695.html#csidx4b2a4081328b38ca565ad95c0a92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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