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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미디어서평

[문화일보] 유경숙 엽편소설, <베를린 지하철역의 백수광부>

by 푸른사상 2017. 4. 17.



세상의 낯선 길을 찾아내는 61편의 엽편소설

게재 일자: 2017년 4월 14일 (金)


 


     


       
베를린 지하철역의 백수광부 / 유경숙 지음 / 푸른사상사
 
세상의 낯선 길을 찾아내는 짧은 이야기들을 담은 소설가 유경숙의 엽편소설집 ‘베를린 지하철의 백수광부’가 출간됐다. 엽편소설(葉篇小說) 또는 초단편 소설은, 대개 나뭇잎 한 장 또는 A4 용지 한두 장에 쓸 수 있는 소설이다. ‘콩트’로 분류되는 짤막한 이야기들을 접한 독자들은 대반전을 기대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에 다시 반전을 떠안기는 게 유경숙의 엽편소설이다. 단숨에 읽어 넘길 수 있는 짧고 경쾌한 소설들이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 인문과 철학을 넘나들며 풍부하고 소소한 이야기의 힘을 느끼게 만든다.

짬짬이 써 놓았던 짧은 소설 61편을 ‘유랑자들’ ‘술의 시간’ ‘고요를 깨뜨리는 소소한 옛이야기’ ‘탱자나무집 계집애’ ‘증미산 사람들’ ‘별종들’ ‘천지자연이 나의 스승’ 7부로 나눠 담았다. 작가 유경숙의 소설은 결코 화려하지 않다, 과장돼 있지도 않다, 간이 강하지 않은 사찰 음식을 먹을 때처럼 씹을수록 재료의 본디 맛이 돋보이는 소설이라는 평을 듣는다.

‘어느 인간이든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면 감추고 싶은 옹색한 골짜기 하나씩을 갖고 있다. 그늘지고 축축한 골짜기에 웅크리고 있는 취약한 존재, 그 취약한 영혼에게 말을 걸며 손을 잡아주는 것이 소설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또 옛사람이 말한 텅 빈 골짜기, 그곳을 드나들며 이야기를 채웠다 덜어내기를 반복해서 성채를 짓는 작업이라고. 인생 굴곡진 터널을 더듬더듬 짚어가는 과정을 글로 담겠다고, 야무진 꿈을 꾸기도 했다. 세상과의 불화 때문에 마음이 꽉 닫혀버린 이에게 바늘귀만큼의 구멍이라도 뚫어주고, 깊은 상실감으로 가슴 한편이 구멍 난 사람에겐 바람막이 점퍼를 입혀주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이 제 입술을 열어 스스로 말하고 집 한 채씩을 짓도록 돕고 싶었다.’(책머리 중에서) 

작가는 “먼 길을 에둘러 걸어왔다. 어쩌겠는가, 깨달음은 늘 뒤통수를 치며 한걸음 뒤에서 쫓아왔으니. 요즘은 내 귀가 참말로 순해졌다. 그래서 다시 노자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동안 세상을 떠돌며 만났던 천지자연이 모두 나의 스승이었고, 참을 수 없는 호기심 때문에 여우굴로 떨어졌던 참담함,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취약한 존재를 만난 것, 바로 그것들이 나를 살게 한 생명력이었음을 비로소 알았다”고 속내를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지난 2001년 ‘농민신문’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유경숙은, 창작집 ‘청어남자’와 e-book 소설집 ‘당신의 눈썹’ ‘백수광부의 침묵’을 지었다. 그리고 미니픽션 선집 8권을 공저로 펴냈다. 국제 문학단체 ‘한국 카잔차키스 친구들’ 회장을 지냈다.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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