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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미디어서평

[노컷뉴스] 김혜영, <아나키스트의 애인>

by 푸른사상 2015. 12. 22.

[신간] 시인이 쓴 산문집 '아나키스트의 애인'




고도로 절제된 응축 언어를 사용하는 시인이 처음으로 긴장을 풀고 산문집을 냈다.

시인이자 평론가로 활동하는 김혜영의 산문집 '아나키스트의 애인'(푸른사상 산문선 13)이 그것. 제목이 다소 도발적이다. 누구나 20대의 젊은 시절엔 '아나키스트'를 한번씩은 꿈꿨지 않았는가? 또 '애인'이란 말은 동서고금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가장 열정적인 단어중의 하나가 아닌가?

책에서 말하는 아나키스트는 '박열'이다.그는 국내 최초로 무정부단체인 '흑도회'를 창립했다.그의 사상은 일제치하 젊은 지식인들과 학생들에게 큰 사상적 영향을 미쳤다.하지만 흑도회는 1923년 일본 왕자 히로히토를 암살하려 한 사건에 연루돼 해체됐고 핵심이었던 그는 무기징역을 언도받는다.

애인은 '가네코 후미코'. 1903년 요코하마에서 태어나 23살의 꽃다운 나이에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녀는 일본인이었지만 역시 박열과 함께 일본 천황과 황태자를 암살하려한 대역죄를 모의했다는 혐의로 사형을 선고 받는다.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지만 끝까지 전향을 거부하고 의문의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책의 첫머리인 '아나키스트,박열의 애인'이라는 제목의 글에는 박열의 무릎에 앉아 책을 읽는 가네코 후미코의 사진이 실려 시대의 아픔을 넘은 '로맨스'를 상상하게 한다.

저자는 이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가네코 후미코'란 제목의 시를 지었다.

'1923년 붉은 태양처럼 빛나던/ 일본 천황을 암살하려 한 혐의로 구속된/아나키스트 박열과 아내 가네코 후미코의/오래된 사진을 신문에서 발견했다...(중략) 사랑하는 박열의 품에 안겨/콧노래를 부르며 책을 읽던 그녀가/봄비를 맞으며/나의 서재를 다녀갔다 '

3부로 구성된 책에서 저자는 사회와 정치, 문학과 예술 같은 묵직한 주제를 고민하는 글뿐만 아니라 주변의 소소한 일상까지 자연스럽고 담담하게,시인의 시선과 언어로 담아냈다.

'성철 스님의 아내'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성철 스님이 출가 후 찾아온 아내를 내치는 장면을 소개하며 <사랑이 큰 사람은 언제나 두렵고 걱정이 많은 법>이라거나 금혼식을 한 부부에게 존경을 보내면서도 <이유도 모른 채 툭,이 세상에 던져져 누군가와 살을 맞대고 50년을 산다는 것은 신비스럽고 고통스러운 제의>라고 자신의 내면을 드러낸다.

시인답게 현실에 대한 관찰은 날카롭게, 문학과 예술에 대해서는 다양한 미각을 전해주고, 일상적인 삶은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낯설게하기'라고 해야 하나? 늘 보고 겪어온 것인데 시인의 글을 통해서는 다르게(낮설게) 느껴진다.

더구나 1,2,3부를 나누는 장면마다 삽입된 화가 서승은의 몽환적인 그림은 책에 독특한 매력을 더해주고 있다.

이 책이 등불을 켠 눈사람처럼, 눈꽃처럼 독자의 가슴에 삶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불어넣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영문학도인 저자는 고백파 시의 창시자인 로버트 로월 연구로 부산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월트 휘트먼, 실비아 플라스, 로버트 로월 등의 영미시인들과 현대 한국시인들의 시 세계를 숭고미와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탐색해왔다.

조자룡 헌 창 쓰듯 흘러가는 시인의 산문이 예사롭지 않다.


노컷뉴스/2015.12.22/부산CBS 정민기 기자

 

 

http://www.nocutnews.co.kr/news/452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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