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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미디어서평

[한겨레신문] 안재성, <실종작가 이태준을 찾아서>

by 푸른사상 2015. 10. 2.

안재성, <실종작가 이태준을 찾아서>, 한겨레신문, 2015.10.2.

 

 

 

조선말을 사랑한 선비 작가 이태준

 

 

유서 깊은 양반 가문의 서자로 태어난 소설가 이태준은 20대 중반까지 굶주림과 노숙, 밑바닥 생활을 겪었다. 그러나 소설가로 이름을 얻고선 1933년 서울 성북동에 작은 한옥을 짓는 등 생활의 안정을 찾는다. ‘수연산방’이라 이름 붙인 이 한옥은 지금도 남아 있다. 김명렬 서울대 명예교수 제공

 

 

양반집 서자이자 고아로 자란 이태준

서정적인 문체로 독자 사랑 받아
일제에 ‘소극적 저항’으로 버텼으나
분단과 전쟁 속에서 머물 곳을 잃다

실종작가 이태준을 찾아서
안재성 지음/푸른사상·1만8500원

 

소설가 김동인은 1945년 8월15일 오전 10시 젊은 시인 서정주와 함께 조선총독부 정보과장을 찾아간다. 더 철저하게 일본에 충성할 작가단체를 만들자고 제안하지만 거절당한다. 무안하게 총독부를 나선 이들은 정오에 일왕의 항복 방송을 듣고 집으로 도망친다. 같은 날 이광수는 집 뒤 계곡으로 운동을 나갔다가 사람들한테 같은 소식을 듣고 황급히 집에 돌아가 문을 걸어 잠근다. 일제 때 조선 문단(또는 지식인 사회)의 풍경을 이처럼 집약해 보여주는 장면이 있을까.

장편소설 <파업>의 작가 안재성이 상허 이태준(1904~미상)의 삶을 추적해 복원해냈다. 그가 남긴 자전적 소설과 수필, 여러 증언을 바탕으로 일종의 ‘이태준 평전’을 써낸 셈이다. 이태준은 1946년 월북한 이후 한국전쟁 뒤 숙청당해 언제 어디서 숨졌는지 확인되지 않는 비극적 운명의 소설가이다.

지은이는 이태준이 자신의 시대를 어떻게 겪어냈는지 다뤘기에,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시대의 풍경을 그려냈다. 일제의 패망과 광복이 “벼락처럼” 찾아올 때 김동인과 이광수가 보여준 행동은 훌륭한 예시이다. 당시 이태준은 일제의 핍박에 고향인 강원도 철원에 몇년째 칩거하고 있는 상태였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작가 이태준이 소설가로서 성장하고 성공한 과정, 일제의 탄압 속에서 버티는 모습, 그리고 월북 이후 북한의 삶 등이 그것이다.

이태준은 대한제국 말기 개혁파로 하급 관리였던 아버지의 서자로 태어났으나, 부모를 일찍 여의고 친척집에서 온갖 설움을 받으며 자란다. 고종 부인 민비의 친척으로 뇌물로 막대한 부를 쌓은 민영휘가 세운 휘문고보를 다녔으나, 동맹휴업을 선동한 혐의로 퇴학당한다. 일본 유학을 다녀와선 한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노숙자 생활까지 한다. 이태준은 이 와중에 서정적 문체와 치밀한 묘사, 가난한 민중에 대한 애정 등이 담긴 소설을 잇달아 내놨다. 1933~1943년 어느 신문에든 그의 연재소설이 실리지 않은 해가 없을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린다. 서울 성북동에 한옥을 짓고 골동품 수집 취미까지 즐길 만큼 ‘인생의 황금기’였던 시간이다.

그러나 시대는 그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1933년 필명을 날리던 9명의 젊은 작가들이 ‘구인회’를 구성했는데,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1925년 결성) 쪽으로부터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 된다. 극좌파의 공격인 셈인데, 이 과정에서 “이야기꾼이지, 사상운동가는 아닌” 이태준의 면모가 드러난다.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 개전 이후 더욱더 흉포해진다. 숱한 작가들이 지조와 명예를 더럽히지만, 이태준은 ‘소극적으로’ 저항한다.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1941년 평양 대강연회에 끌려나왔음에도 유일하게 조선말로 연설하고 일왕 찬양 대신 춘향전 한 구절을 읽고 내려온다. 1943년 철원으로 낙향한다. 그러나 버티던 이태준도 막판에 일본어로 단편소설 한 편을 지어 발표하고 만다.

문제는 그 이후이다. 해방이 찾아왔고, 이태준은 임화 등 카프 쪽 인사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문단 인사들을 놀라게 만든다. “대표적인 순수파 작가”가 뒤늦게 정치에 뛰어든 것이다. 친일파가 미군정을 등에 업고 날뛰는 상황을 보면서 그가 좌익 쪽에서 미래의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지은이는 추정한다.

1946년 8월 이태준의 갑작스런 월북을 다룬 대목부터 책은 앙상해진다. 그 전까지는 이태준이 창작물을 통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 보였기에 입체적 분석이 가능했지만, 이 무렵부터는 제대로 된 작품이 없어 지은이의 추정이 중심이 됐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자료 부족이라는 빈자리는 스탈린과 김일성에 대한 지은이의 비판적 평가가 대신한다. 이를테면 이태준이 월북한 뒤 곧바로 70일 가까운 일정으로 소련을 시찰하면서 사회주의 체제에 탄복한 것을 두고 지은이는 “그곳이 병적인 정신상태”에 있음을 알지 못했다고 총평한다. 이태준은 한국전쟁 당시 종군작가로 활동하는데, 지은이는 당시 그의 글이 거칠고 조악해졌음을 지적하면서 그가 창작의 자유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사회주의 실패와 전쟁이라는 커다란 쟁점에 대한 진척된 문제의식을 기대한 독자라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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