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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간행도서

황성용 시집, <햇볕 그 햇볕>

by 푸른사상 2023. 12. 11.

 

분류--문학()

 

햇볕 그 햇볕

 

황성용 지음|푸른사상 시선 185|128×205×9mm|168쪽|12,000원

ISBN 979-11-308-2122-1 03810 | 2023.12.12

 

 

■ 시집 소개

 

무수한 삶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시편들

 

황성용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햇볕 그 햇볕』이 <푸른사상 시선 185>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참신하고 실험적인 표현과 시어를 다루는 숙련된 솜씨로 삶의 의미를 심화시키고 있다. 우리를 지배하는 수직적인 삶의 가치체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인식으로 자아의 생명력을 노래하는 것이다.

 

 

■ 시인 소개

 

황성용

목포에서 뱃길로 오십 리 정도 되는 해남 산이면에서 태어났다. 물고구마를 자주 먹고 자란 소농의 자식이었기에 부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주로 했다. 목포고등학교를 나와 청풍명월의 고장에 있는 충북대학교를 다녔다. 2017년 『광남일보』 신춘문예 시 「스웨터」가 당선되어 지금까지 시를 쓰고 있다.

 

 

■ 목차

 

제1부 아래는 아래다 위는 위여서

불안정 / 비의 현실 / 아침 인사 / 밥 먹은 것처럼 / 아래 / 안 되는 것 / 추억은 쓸쓸하다 / 초고층 / 헝겊 / 어차피 모른다 / 산의 경우 / 서로 사랑해서 다른 것들 / 싹이 바람을 맞을 때 / 거듭거듭 세상은 의자 낙원 / 배 / 뉘시오 / 염문설

 

제2부 얼굴이 타도록 쳐다본다

발행 연도 / 비현실적 / 셔츠 / 돌발 답변 / 블랙핑크 대책 / 바다의 부작용 / 석양의 예(例) / 그륻 / 천 냥 하우스 / 좊음 / 해상풍력 / 간식용 휴식 / 도열 / 개시의 경우 / 나이 그릇 / 꽃에 꽃 피는 꽃

 

제3부 적막해서 시끄러운

영락공원 / 랄랄 / 루머 / 옥수수의 실수 / (제목은 따로 없다) / 코코넛이 젤리가 아닌 것처럼 / 제주 농민 / 왜 내 일이 아니냐 하면 / 날 좀 보소 / 우리도 보편적으로 살자 / 운수 없는 날 / 위로의 풍경 / 저수지의 경우 / 모놀로그 / 정원-결원=현원 / 위험이 위험해질 때

 

제4부 혼란에서 나를 구해주렴

의견 불일치 / 무효의 유효 / 햇볕 그 햇볕 / 그들은 태풍이라 할지 모르지만 / 딴 내용 / 소라 / 바람은 아니다 / 클리어링 / 훨훨 나는 나비야 / 창성장 / 꽃은 핀다 / 물음표 / 강아지와 관계없는 일 / 천수 천안 관세음보살 광대원만 무애대비심 대다라니경(천수경) / 스웨터

 

작품 해설 : 말들의 모험과 시원으로서 모성애 - 임동확

 

 

■ '시인의 말' 중에서

 

아홉 바퀴를 돌고 있으면서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게 하는 뭔가 없다

그저 돌고 있다는 것뿐

그저 돌고 있다는 감각뿐

돌아볼 줄 모를 수도 있다

궁금증이 생기지 않는 일은

끔찍하다

 

 

■ 작품 세계

  

황성용 시인의 시들은 대체로 ‘재현(representation)’하기보다 ‘표현(expression)’을 지향한다. 외부 세계에 대한 정확한 모방이나 재현보다 자신 내부의 것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표현하는 데 익숙하다. 어떤 대상을 묘사하거나 그리는 대신 작품과 그걸 창조하는 예술가 자신과의 관계에 중점을 둔다. 기존의 설명이 안 되는 자신의 감성과 정서, 느낌과 욕망 등을 표출하는 데 더 민감하다. 특히 그는 언제든 언어와 물리적 현실과 분리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새로운 의미 부여 가능성을 타진하는 언어적 탈영토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 자신조차 알 수 없는 그 어떤 현실을 주로 언어에 구축된 현실에 의해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자기 표현이 주된 그의 시적 밑받침이다.

그런 그는 언어와 현실 혹은 ‘대상’과 실재가 일대일의 대응 관계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 또한 “저수지”라는 ‘대상’과 거기에서 벌어진 사건을 제대로 드러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에겐 “저수지”에서 빠져 죽은 “실종자”에 대해 곧이곧대로 지시하거나 재현할 수 있다는 시적 “룰(rule)”은 의심 없이 따라야 할 불변의 규칙이나 시법(詩法)이 아니다. 오히려 곧잘 언어를 진위(眞僞)의 테두리에 가두는 그것들은 “부정”해가야 할 대상에 불과하다. 그의 시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게 죽은 “애”의 “익사체”와 그를 찾는 가족들의 “눈물”에 대해 구구절절 얘기하지 않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그의 관심사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저수지”의 “수위”와 “평안”, “하늘”과 “비”의 “범람”(「저수지의 경우」)에 대한 그저 혼연하고 우발적인 인상이다.

그런 만큼 황성용 시인에게 시 쓰기는 단순히 감정의 발산이나 정서의 고조를 위한 행위가 아니다. 세계를 투명하게 열어 보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하는 재현주의적 관점보다 주위 환경과 연관된 인지적 요소를 포함하는 직관에 기반한 집요하고 고된 상징화 과정에 놓여 있다.(중략)

결과적으로 그런 점에서 그의 시들은 생명력을 기울여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이자 거기에 의의를 부여해가는 정신적 원형(Archetape) 찾기에 더 가깝다. 설령 그게 “실패해도 실패가 되지 않는 성공한 실패”가 그의 유일한 삶의 “원칙”이 되고, 시의 “기준”(「위험이 위험해질 때」)이 되고 있다. 김현, 김지하, 최하림 이후 끊긴 목포문학의 화려한 명맥을 이으며 넘어서길 바라는 그에 대한 기대를 걸게 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문득 그가 우리 앞에 목포를 상징하는 잠룡(潛龍)처럼 한 시대를 뒤흔드는 새로운 전망과 이해의 시들을 펼쳐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임동확(시인·한신대 교수)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헝겊

 

일전에 조선소 다녀왔던 표시로 느티나무에 헝겊을 달아놓았다

 

한 사람뿐이었는데, 그 헝겊의 내막을 알고 싶은

사람이 어느덧 열 사람이 넘고 있다

 

액운을 물리치는 통상적인 생각들이었다

 

소나무에 걸려 있는 모습도 보였는데 거기는

제빵 공장 다녀와서 걸어놓았나

 

궁금증이 돌돌 말려 있다

 

피를 닦을 때는 모르나 물기를 닦는

걸레이다, 라고 보이는 그들에게

 

나무에 달린 헝겊이 알 수 없는 용도로

새끼치고 있다

 

손수건 정도 좁혀질 때 눈물깨나 뺐을

로맨스 영화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행주치마처럼 조직으로 뭉쳐서

공격을 하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슬아슬하게

배신과 소신의 구별도 없이 나무를 흔들었을

 

그 광풍, 헝겊

 

 

햇볕 그 햇볕

 

내가 수련이 아니기에 수련을 모른다

 

그래서 수련을 본다

 

좌정하며 본다

 

뒷면의 나날들은 볼 수 없다

 

낙심만 생긴다

 

더 이을 감정은

쓸쓸함이다

 

심연(心淵) 어디에 관산이 있었다지

 

하, 이름 모를 꽃들이

들어 있을 거야

 

꽃들이 만발한 데

수련이 없을 리 없지

 

수련이 없는 척 안 하고

수련은 피고 있다

 

햇볕 어제 그 햇볕 그대로

 

 

스웨터

 

엄마 영정 사진을 찍는 날

 

일생의 좌중을 한 번에 멈추고 그 안에서 골몰히 앞을 바라보는 한 방의 시선, 시장 냄새도 들어간다

 

느슨했던 안이 넘어졌는지 엄마의 얼굴이 카메라 앞에서 손님 쪽으로 살짝 기운다

 

엄마 스스로 올올이 물 수 있는 어금니 하나로 얼굴을 살짝 들어 올린다 힘들었던 무게는 내리고, 쪼그렸던 다리는 반듯이 편다

 

푸르른 날과 무성한 날을 곱해도 영이 되는 적자의 숲에서 내려오지 못해 항상 엄마의 앞치마는 땀으로 젖어 있다

 

비누칠을 해도 빠지지 않을 때 방망이질의 쓰임에 따라 한 방에 끝내려고 사진사는 필요 없는 각도를 버린다

 

버릴 컷을 버려진 시간으로 남아 있을 때 엄마는 살림의 다이어트를 위해 땀방울 하나하나 털실로 꿰매는 절약 스웨터(sweater)

 

코가 빠져도 스웨터의 구멍을 버리지 않는 센스, 엄마는 유산의 단추 하나를 남겨둔다

 

나는 아침을 먹기 전에 빼빼한 삶의 스웨터로 찍힌 영정 사진을 찾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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